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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서울문화인] 2011년 프랑스에서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이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통해 모두 공개하였다. 2011년 환수당시 일부를 공개 한 적은 있지만 전체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의궤란,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 내내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어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특징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물로 왕의 결혼, 세자 책봉, 장례 등의 오례(五禮, 나라에서 지내는 다섯 가지 의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행사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조선 왕조 519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조선 초기의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제작된 의궤만이 남아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산용으로 구분되어 모두 5∼9부가 제작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산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 평창 오대산, 강화도 정족산 등의 사고로 보내졌다. 특히 어람용 의궤는 구름무늬, 화려한 연꽃넝쿨무늬가 표현된 초록의 비단에 국화 모양의 장식 등 일반 서책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황으로 특별하게 제작되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또한,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전문 관원(사자관)을 선발하여 반듯한 글씨체(해서체)로 정성껏 쓴 반면에 분상용은 각종 글씨 쓰기를 담당하는 관원(서사관)이 일반 글씨체로 쓰여졌다. 그림도 분산용은 나무에 새겨 도장처럼 찍은 후 채색하였지만, 어람용은 화원이 손으로 일일이 그린 후 채색을 한 것에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어람용은 두껍고 매끈한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측에서 일부 비단 표지를 문양이 없는 비단으로 교체해 놓았다. 이 어람용 의궤는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에는 보관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면서 의궤를 비롯하여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함께 소실되었다고 판단하였으나,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故(고) 박병선 박사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어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들어났다. 그러나 우리에게 귀중한 이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TGV의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 에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하며,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주도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지만 패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후 2011년 4월 14일, 1차분 75권 환수를 시작으로 2011년 5월에야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러나 환수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완의 환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의궤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그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적 문화재인 의궤를 우리의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시나 연구 등을 위해 의궤를 다른 기관에 대여하는 것 등도 프랑스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은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전시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은 물론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3부로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의 조명과 함께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하며,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에서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를 3D 영상으로 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서가 형태의 전시장은 마치 외규장각 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동을 안겨주며,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의궤의 한 장면을 실제로 전시장에 펼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연의 준화樽花와 의상도 새롭게 복원해 놓았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진행되며,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억하고자 11주기가 되는 11월 21일(월)~27일(일)에는 무료관람이 실시된다. 한편, 외규장각 의궤 이외에 833종 3430책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해제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외규장각의궤 DB를 구축했고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총 6권을 발간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서울문화인] 최근 들어 전시의 경향은 고전 회화나 유물중심의 전시보다는 근현대 작품이나 혹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이미지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은 유럽 명화에 목말라 있던 관람객에겐 담비와 같은 전시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첫 날부터 관람객의 줄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189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조선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30주년을 기념,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전시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600년 가까이 중앙 유럽 대부분과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일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 600년 가까이 유럽사에 굉장한 영향력을 준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세 가문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가문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를 알린 카를 5세,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트아네트,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뮤지컬로 익숙한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도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까지 근대사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다. 참고로, 뮤지컬 속 엘리자베스(암살)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설립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이며, 루돌프 황태자(자살)는 그의 외아들이다. 또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냇동생 카를 루트비히의 장남이며, 멕시코 황제로 1867년 멕시코 저항군에 의해 처형된 막시밀리안 1세도 요제프 1세의의 동생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1916년까지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최장 재위하였으나, 불행한 가족사를 그대로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0세기 무렵 스위스의 작은 백작 가문으로 시작하였으나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와 공국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 지방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에 편입시켰다. 1495년에는 그의 아들 필리프와 스페인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자 후아나의 결혼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 새롭게 발견된 아메리카 영토까지 합스부르크의 영향 하에 놓이게 하였다. 1515년에 자신의 손녀와 손자를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 계승자들과 결혼시키면서 3세대 만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 제국 이후 가장 거대한 유럽 제국을 확장하고 통합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카를 5세(1500-1558)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면서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Let others wage wars, but you, happy Austria shall marry."(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하라) 합스부르크 왕조가 어떻게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결혼동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가족 간의 근친혼이었다. 조카와 삼촌, 엄마 동생과 고모의 아들, 여동생 딸, 이들은 모두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결혼 상대자였다. 초기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러나 수백년 간 이어진 이런 근친혼은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하나로 작용했다.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흔히 합스부르크립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립 유전병의 특징은 거대한 턱과 낮은 지능, 그리고 면역력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후대에 갈수록 대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유전병으로 유아사망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대를 잇지 못하면서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물려주게 되면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이 왕가를 이었으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발이 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더 이상 근친혼이 사라지면서 합스부르크립은 점차 사리지게 되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기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 간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그들이 수집한 예술품 빈미술사박물관은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으로 1858년,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가 황실예술품 컬렉션을 수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 등 고대유물부터 19세기 회화까지 방대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회화 방면에서는 피터르 브뤼헐 1세의 ‘바벨탑’, 램브란트의 ‘자화상’,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등 유럽의 미술관 중에서도 회화 방면에서는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하면서 놀라운 안목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라는 점이다. 이는 박물관의 수집품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4세(1605-1665)는 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문화적으로는 부흥기를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작품들은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남편인 레오폴트 1세와 아들 카를 6세에 의해 상당수 빈으로 이전되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때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주옥같은 명화가 빈으로 오게 되었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 작품 수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또 다른 인물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다. 대공은 161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아들로 성정이 용맹하고 전략이 뛰어나 30년 전쟁을 비롯한 오랜 기간 기사단장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그는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나 일생 동안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브뤼셀에서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관심이 많아 플랑드르 지역에 머물던 시기 장르별로 최고의 17세기 명화를 수집했다. 또한, 영국 버킹엄 공작의 소장품 경매 등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회화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적극 활용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 근무를 끝내고 빈으로 귀환할 때 자신의 수집품을 빈으로 이전했다. 그 결과 그가 수집한 명화들이 대부분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단지 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욕심에서는 박물관의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 목록에 빠져 아쉬움이 남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얀 스테인의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등 잘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페르디난트 2세’, ‘펠리페 4세’, ‘테레사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프 2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왕실 장식품, 중세 갑옷 등 이번 에 소개되는 96점의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황제나 대공이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감상할 작품이 아니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1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 갑옷과 투구를 1894년에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서구 예술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유물들 중 많은 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쿤스트캄머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와 무구와 갑옷, 투구, 태피스트리, 옛 거장들의 회화, 정교한 장식예술품, 호화로운 의복과 궁중 예복들이 포함된 소장품들은 장엄함과 화려함, 왕권의 상징과 의례들, 합스부르크 통치자들과 관련된 영예와 장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약 100여 점에 이르는 유물 중 많은 수는 막시밀리안 1세, 티롤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 루돌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중한 컬렉션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보물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한, 전시 도록은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에 대한 특별하고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서울문화인]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영수)이 2016년부터 박물관 소장 자료를 예술 창작의 소재로 활용, 예술 및 산업 콘텐츠로서의 한글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한글실험프로젝트의 4번째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연구소> 특별전을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2016년 첫 전시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에 이어 2017년 <소리×글자: 한글디자인>, 2019년 <한글디자인: 형태의 전환>에 이어, 올해는 근대 시기 한글 자료를 예술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근대는 한글이 쓰이는 방법과 한글 문헌의 형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어문 규정의 토대가 다져진 시기이다. 1894년 고종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선포한 ‘국문선포’로 인해 한글은 창제 이후 약 450년 만에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글이 공식 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정리와 한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불러일으키며 한글 연구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글 연구자들에 의해 가로 쓰기, 띄어쓰기, 한글 전용 글쓰기 등 한글 사용에 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고, 출판물을 인쇄에 사용하는 한글 납활자도 활발히 생산되었으며 각종 서적에 특색 있는 한글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제작 바탕이 된 박물관의 소장 자료는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와 국어 문법서 『말의 소리』, 지석영이 편찬한 외국어 교재 『아학편』, 프랑스인 선교사가 편찬한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한글 띄어쓰기를 선구적으로 적용한 「독립신문」 등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번 한글실험프로젝트는 시각 분야 7명과 1팀, 제품·공예 분야 7명, 패션 분야 4명, 리서치프로젝트 2팀, 음악 분야 1명과 1팀, 영상 분야 1명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협업을 통해 한글문화의 외연을 더욱 확장했다. 특히 올해 음악 분야와 첫 협업을 시도했다. 국악 아카펠라그룹 토리스는 판소리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판소리 <흥부가> 중 흥부에게 은혜를 입은 제비가 강남에 갔다가 이듬해 봄, 박씨를 물고 흥부네 집으로 날아오는 여정을 주제로 한 소리 대목)를 불렀으며, 작곡가 김백찬은 근대 한글 연구자 주시경을 기리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근대 한글 연구소’라는 공간을 설정하여 4개의 연구실로 구성되었다. 1부 ‘동서말글연구실’에는 근대 시기 한글과 서양 언어의 소통이 반영된 『한어문전』 등의 자료를 재해석한 작품을, 2부 ‘한글맵시연구실’에는 가로쓰기, 풀어쓰기 등 근대 한글 사용 방법의 변화를 작가의 시각에서 새로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3부 ‘우리소리실험실’에서는 근대 시기 대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판소리계 납활자본 고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4부 ‘한글출판연구실’에서는 근대 한글 출판물을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한글실험프로젝트는 2023년 1월 29일(일)까지 진행 이후, 국내외를 순회하며 한글의 문자적·미적 가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알릴 예정이라 한다. [허중학 기자]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서울문화인] 경향신문사 맞은 편 경희궁 옆 골목 안쪽,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일컫는 ‘돈의문(敦義門)’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는 이름만으로 남게 되었다. 돈의문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이지만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대에 서전문(西箭門: 서살문)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옛 돈의문을 갓 지은 ‘새문’이었을 때 그 안쪽에 있다고 해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60년대엔 경기고 등 인근 명문고 진학을 위해 가정집을 개조한 과외방이 성행했고, 강북삼성병원 같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는 골목식당 집결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건물과 옛 골목길을 간직한 이 작은 마을은 지난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전면 철거될 뻔 했지만 ‘15년 서울시가 삶과 기억이 잘 보존된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재생하기로 하면서 ‘17년 마을 내 건물을 최대한 살린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조성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마을 내의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하였으며,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면서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많은 시민이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다양한 추억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하였다. 처음에는 예술가를 위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돼 왔지만, 2019년 4월부터 전시·행사·체험 등이 열리는 시민참여형 공간(마을전시관(16개동), 체험교육관(9개동), 마을창작소(9개동))으로 재탄생하였다. 지난 9월 30일부터 이곳에서는 관객이 직접 배우가 되고, 마을 전체가 무대가 되는 ‘관객참여형 공연’ <백 년의 밤>이 진행되고 있다. <백 년의 밤>은 박(博), 문(門), 영(影),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지난 50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중, 장년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세대의 서울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백 년의 밤>은 ‘서울 100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 서울을 시민과 예술이 일상 속에서 가깝게 호흡하는 ‘시민문화향유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공연인 만큼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져 잔치에 손님으로 참여하거나, 준비된 의상을 입고 거리를 걷는 등 공연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또한, 공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원하는 만큼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스스로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제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좁은 골목길,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지만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고즈넉한 밤, 마을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은 공연장 무대에서 만나는 작품과는 사뭇 다른 애틋한 향수를 가득 안겨준다. 5명의 배우와 함께하는 <백 년의 밤>은 오는 12월 2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시간 내외로 진행되며, 매 공연마다 15명의 관객만이 함께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은 돈의문박물관마을 누리집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티켓은 전석 1만원이다. 한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공연과 더불어 친환경 벼룩시장 <돈의문 시장>, 서대문 주변 직장인들의 퇴근 후 자기계발을 공략한 강좌 프로그램인 <돈의문 야학당>을 함께 개최된다. 또한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한옥에서는 전통 공예 프로그램 <예술가의 시간> 등, 다양한 문화 행사 와 프로그램을 운영되고 있다. [허중학 기자]
글로벌 TOP 디제이들이 함께하는 EDM 페스티벌, 2022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글로벌 TOP 디제이들이 함께하는 EDM 페스티벌, 2022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서울문화인] 오는 10월 28일(금)부터 30일(일)까지 3일간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진행되는 국내를 대표하는 컨셉츄얼 EDM 페스티벌인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이하 스트라이크)을 앞두고 최종 타임테이블과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들을 발표되었다. 이번 스트라이크에는 할로윈 컨셉에 맞춰 다양한 코스튬과 특수효과들을 예고하고 있어 이에 대한 EDM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미 ‘쇼택(Showtek)’, ‘더블유앤더블유(W&W)’, ‘블라스터 잭스(Blaster Jaxx)’, ‘투자모(Tujamo)’, ‘덥비전(Dubvision)’, ‘루카스 앤 스티브(Lucas & Steve)’ 등의 글로벌 디제이/프로듀서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 최고의 EDM 페스티벌 중 하나인 데프콘.1(Defqon.1)의 기획사인 큐-댄스와 제휴를 맺은 엔딩쇼인 테이크오버를 발표하며, 일반 대중과 EDM 마니아들까지 모두 사로잡을 EDM 페스티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있다. 먼저 가로 70m, 높이 30m의 역대급 규모의 무대를 선보이는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준코코(Juncoco)’, ‘반달락(Vandal Rock)’, ‘션(Shaun)’을 비롯해 ‘투자모(Tujamo)’, ‘널보(Nervo)’, ‘윌스파크스(Will Sparks)’, ‘쇼택(Showtek)’, ‘더블유앤더블류(W&W)’ 등 해외 디제이/프로듀서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10월 30일(일)에는 세계 최대의 페스티벌 기획사인 네덜란드 큐-댄스와 함께하는 엔딩 쇼인 테이크오버를 선보이며 ‘스트라이크’의 피날래를 장식한다.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는 ‘인사이드 코어(Inside Core)’, ‘바가지 바이펙스써틴(Bagage Viphex13)’, ‘퓨어 100%(Pure 100%)’, ‘블로쏘(Blosso)’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실력파 디제이/프로듀서들이 공연을 펼친다. 평상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매쉬업과 퍼포먼스들로 메인 스테이지 못지않은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할로윈 컨셉에 맞춰 ‘스트라이크’를 찾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이벤트들도 준비되어 있다. ‘판타지 할로윈’이라는 컨셉에 맞춰 일반적인 호러 스타일이 아닌 유니크하고 패셔너블한 ‘스트라이크’의 드레스코드 컴페티션이 펼쳐진다. 페스티벌 베뉴 곳곳이 할로윈 포토존으로 장식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환상적인 가상의 공간에 있는 듯한 체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페스티벌 현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스트라이크 스페셜 타투 스티커 판매와 화려한 메이크업 체험 이벤트 등 나만의 페스티벌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스트라이크’는 2019년 아웃도어 하드스타일 EDM 페스티벌로 개최되어 ‘페데 레 그란(Fedde Le Grand)’, ‘씩 인디비쥬얼스(Sick Individuals)’, ‘오디오 트릭즈(Audiotricz)’, ‘코드 블랙(Code Black)’ 등 대중들에게 친숙한 곡들을 작업한 디제이/프로듀서를 비롯하여 강렬한 비트를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하드스타일 장르의 디제이/프로듀서들까지 출연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스트라이크’의 1차 오피셜 티켓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현재 10월 28일(금) 공연은 88,000원, 10월 29일(토)는 99,000원 그리고 10월 30일(일) 공연은 77,000원, 3일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3일권은 177,000원에 위매프(https://ticket.wemakeprice.com/)에서 구매 가능하다. [권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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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서울문화인] 2011년 프랑스에서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이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통해 모두 공개하였다. 2011년 환수당시 일부를 공개 한 적은 있지만 전체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의궤란,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 내내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어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특징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물로 왕의 결혼, 세자 책봉, 장례 등의 오례(五禮, 나라에서 지내는 다섯 가지 의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행사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조선 왕조 519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조선 초기의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제작된 의궤만이 남아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산용으로 구분되어 모두 5∼9부가 제작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산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 평창 오대산, 강화도 정족산 등의 사고로 보내졌다. 특히 어람용 의궤는 구름무늬, 화려한 연꽃넝쿨무늬가 표현된 초록의 비단에 국화 모양의 장식 등 일반 서책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황으로 특별하게 제작되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또한,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전문 관원(사자관)을 선발하여 반듯한 글씨체(해서체)로 정성껏 쓴 반면에 분상용은 각종 글씨 쓰기를 담당하는 관원(서사관)이 일반 글씨체로 쓰여졌다. 그림도 분산용은 나무에 새겨 도장처럼 찍은 후 채색하였지만, 어람용은 화원이 손으로 일일이 그린 후 채색을 한 것에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어람용은 두껍고 매끈한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측에서 일부 비단 표지를 문양이 없는 비단으로 교체해 놓았다. 이 어람용 의궤는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에는 보관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면서 의궤를 비롯하여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함께 소실되었다고 판단하였으나,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故(고) 박병선 박사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어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들어났다. 그러나 우리에게 귀중한 이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TGV의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 에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하며,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주도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지만 패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후 2011년 4월 14일, 1차분 75권 환수를 시작으로 2011년 5월에야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러나 환수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완의 환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의궤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그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적 문화재인 의궤를 우리의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시나 연구 등을 위해 의궤를 다른 기관에 대여하는 것 등도 프랑스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은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전시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은 물론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3부로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의 조명과 함께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하며,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에서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를 3D 영상으로 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서가 형태의 전시장은 마치 외규장각 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동을 안겨주며,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의궤의 한 장면을 실제로 전시장에 펼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연의 준화樽花와 의상도 새롭게 복원해 놓았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진행되며,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억하고자 11주기가 되는 11월 21일(월)~27일(일)에는 무료관람이 실시된다. 한편, 외규장각 의궤 이외에 833종 3430책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해제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외규장각의궤 DB를 구축했고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총 6권을 발간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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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서울문화인] 최근 들어 전시의 경향은 고전 회화나 유물중심의 전시보다는 근현대 작품이나 혹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이미지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은 유럽 명화에 목말라 있던 관람객에겐 담비와 같은 전시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첫 날부터 관람객의 줄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189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조선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30주년을 기념,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전시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600년 가까이 중앙 유럽 대부분과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일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 600년 가까이 유럽사에 굉장한 영향력을 준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세 가문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가문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를 알린 카를 5세,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트아네트,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뮤지컬로 익숙한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도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까지 근대사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다. 참고로, 뮤지컬 속 엘리자베스(암살)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설립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이며, 루돌프 황태자(자살)는 그의 외아들이다. 또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냇동생 카를 루트비히의 장남이며, 멕시코 황제로 1867년 멕시코 저항군에 의해 처형된 막시밀리안 1세도 요제프 1세의의 동생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1916년까지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최장 재위하였으나, 불행한 가족사를 그대로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0세기 무렵 스위스의 작은 백작 가문으로 시작하였으나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와 공국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 지방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에 편입시켰다. 1495년에는 그의 아들 필리프와 스페인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자 후아나의 결혼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 새롭게 발견된 아메리카 영토까지 합스부르크의 영향 하에 놓이게 하였다. 1515년에 자신의 손녀와 손자를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 계승자들과 결혼시키면서 3세대 만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 제국 이후 가장 거대한 유럽 제국을 확장하고 통합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카를 5세(1500-1558)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면서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Let others wage wars, but you, happy Austria shall marry."(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하라) 합스부르크 왕조가 어떻게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결혼동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가족 간의 근친혼이었다. 조카와 삼촌, 엄마 동생과 고모의 아들, 여동생 딸, 이들은 모두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결혼 상대자였다. 초기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러나 수백년 간 이어진 이런 근친혼은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하나로 작용했다.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흔히 합스부르크립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립 유전병의 특징은 거대한 턱과 낮은 지능, 그리고 면역력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후대에 갈수록 대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유전병으로 유아사망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대를 잇지 못하면서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물려주게 되면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이 왕가를 이었으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발이 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더 이상 근친혼이 사라지면서 합스부르크립은 점차 사리지게 되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기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 간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그들이 수집한 예술품 빈미술사박물관은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으로 1858년,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가 황실예술품 컬렉션을 수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 등 고대유물부터 19세기 회화까지 방대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회화 방면에서는 피터르 브뤼헐 1세의 ‘바벨탑’, 램브란트의 ‘자화상’,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등 유럽의 미술관 중에서도 회화 방면에서는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하면서 놀라운 안목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라는 점이다. 이는 박물관의 수집품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4세(1605-1665)는 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문화적으로는 부흥기를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작품들은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남편인 레오폴트 1세와 아들 카를 6세에 의해 상당수 빈으로 이전되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때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주옥같은 명화가 빈으로 오게 되었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 작품 수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또 다른 인물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다. 대공은 161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아들로 성정이 용맹하고 전략이 뛰어나 30년 전쟁을 비롯한 오랜 기간 기사단장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그는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나 일생 동안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브뤼셀에서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관심이 많아 플랑드르 지역에 머물던 시기 장르별로 최고의 17세기 명화를 수집했다. 또한, 영국 버킹엄 공작의 소장품 경매 등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회화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적극 활용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 근무를 끝내고 빈으로 귀환할 때 자신의 수집품을 빈으로 이전했다. 그 결과 그가 수집한 명화들이 대부분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단지 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욕심에서는 박물관의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 목록에 빠져 아쉬움이 남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얀 스테인의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등 잘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페르디난트 2세’, ‘펠리페 4세’, ‘테레사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프 2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왕실 장식품, 중세 갑옷 등 이번 에 소개되는 96점의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황제나 대공이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감상할 작품이 아니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1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 갑옷과 투구를 1894년에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서구 예술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유물들 중 많은 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쿤스트캄머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와 무구와 갑옷, 투구, 태피스트리, 옛 거장들의 회화, 정교한 장식예술품, 호화로운 의복과 궁중 예복들이 포함된 소장품들은 장엄함과 화려함, 왕권의 상징과 의례들, 합스부르크 통치자들과 관련된 영예와 장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약 100여 점에 이르는 유물 중 많은 수는 막시밀리안 1세, 티롤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 루돌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중한 컬렉션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보물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한, 전시 도록은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에 대한 특별하고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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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서울문화인]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영수)이 2016년부터 박물관 소장 자료를 예술 창작의 소재로 활용, 예술 및 산업 콘텐츠로서의 한글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한글실험프로젝트의 4번째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연구소> 특별전을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2016년 첫 전시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에 이어 2017년 <소리×글자: 한글디자인>, 2019년 <한글디자인: 형태의 전환>에 이어, 올해는 근대 시기 한글 자료를 예술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근대는 한글이 쓰이는 방법과 한글 문헌의 형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어문 규정의 토대가 다져진 시기이다. 1894년 고종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선포한 ‘국문선포’로 인해 한글은 창제 이후 약 450년 만에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글이 공식 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정리와 한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불러일으키며 한글 연구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글 연구자들에 의해 가로 쓰기, 띄어쓰기, 한글 전용 글쓰기 등 한글 사용에 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고, 출판물을 인쇄에 사용하는 한글 납활자도 활발히 생산되었으며 각종 서적에 특색 있는 한글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제작 바탕이 된 박물관의 소장 자료는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와 국어 문법서 『말의 소리』, 지석영이 편찬한 외국어 교재 『아학편』, 프랑스인 선교사가 편찬한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한글 띄어쓰기를 선구적으로 적용한 「독립신문」 등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번 한글실험프로젝트는 시각 분야 7명과 1팀, 제품·공예 분야 7명, 패션 분야 4명, 리서치프로젝트 2팀, 음악 분야 1명과 1팀, 영상 분야 1명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협업을 통해 한글문화의 외연을 더욱 확장했다. 특히 올해 음악 분야와 첫 협업을 시도했다. 국악 아카펠라그룹 토리스는 판소리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판소리 <흥부가> 중 흥부에게 은혜를 입은 제비가 강남에 갔다가 이듬해 봄, 박씨를 물고 흥부네 집으로 날아오는 여정을 주제로 한 소리 대목)를 불렀으며, 작곡가 김백찬은 근대 한글 연구자 주시경을 기리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근대 한글 연구소’라는 공간을 설정하여 4개의 연구실로 구성되었다. 1부 ‘동서말글연구실’에는 근대 시기 한글과 서양 언어의 소통이 반영된 『한어문전』 등의 자료를 재해석한 작품을, 2부 ‘한글맵시연구실’에는 가로쓰기, 풀어쓰기 등 근대 한글 사용 방법의 변화를 작가의 시각에서 새로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3부 ‘우리소리실험실’에서는 근대 시기 대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판소리계 납활자본 고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4부 ‘한글출판연구실’에서는 근대 한글 출판물을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한글실험프로젝트는 2023년 1월 29일(일)까지 진행 이후, 국내외를 순회하며 한글의 문자적·미적 가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알릴 예정이라 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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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서울문화인] 경향신문사 맞은 편 경희궁 옆 골목 안쪽,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일컫는 ‘돈의문(敦義門)’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는 이름만으로 남게 되었다. 돈의문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이지만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대에 서전문(西箭門: 서살문)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옛 돈의문을 갓 지은 ‘새문’이었을 때 그 안쪽에 있다고 해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60년대엔 경기고 등 인근 명문고 진학을 위해 가정집을 개조한 과외방이 성행했고, 강북삼성병원 같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는 골목식당 집결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건물과 옛 골목길을 간직한 이 작은 마을은 지난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전면 철거될 뻔 했지만 ‘15년 서울시가 삶과 기억이 잘 보존된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재생하기로 하면서 ‘17년 마을 내 건물을 최대한 살린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조성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마을 내의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하였으며,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면서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많은 시민이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다양한 추억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하였다. 처음에는 예술가를 위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돼 왔지만, 2019년 4월부터 전시·행사·체험 등이 열리는 시민참여형 공간(마을전시관(16개동), 체험교육관(9개동), 마을창작소(9개동))으로 재탄생하였다. 지난 9월 30일부터 이곳에서는 관객이 직접 배우가 되고, 마을 전체가 무대가 되는 ‘관객참여형 공연’ <백 년의 밤>이 진행되고 있다. <백 년의 밤>은 박(博), 문(門), 영(影),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지난 50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중, 장년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세대의 서울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백 년의 밤>은 ‘서울 100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 서울을 시민과 예술이 일상 속에서 가깝게 호흡하는 ‘시민문화향유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공연인 만큼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져 잔치에 손님으로 참여하거나, 준비된 의상을 입고 거리를 걷는 등 공연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또한, 공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원하는 만큼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스스로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제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좁은 골목길,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지만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고즈넉한 밤, 마을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은 공연장 무대에서 만나는 작품과는 사뭇 다른 애틋한 향수를 가득 안겨준다. 5명의 배우와 함께하는 <백 년의 밤>은 오는 12월 2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시간 내외로 진행되며, 매 공연마다 15명의 관객만이 함께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은 돈의문박물관마을 누리집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티켓은 전석 1만원이다. 한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공연과 더불어 친환경 벼룩시장 <돈의문 시장>, 서대문 주변 직장인들의 퇴근 후 자기계발을 공략한 강좌 프로그램인 <돈의문 야학당>을 함께 개최된다. 또한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한옥에서는 전통 공예 프로그램 <예술가의 시간> 등, 다양한 문화 행사 와 프로그램을 운영되고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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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TOP 디제이들이 함께하는 EDM 페스티벌, 2022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글로벌 TOP 디제이들이 함께하는 EDM 페스티벌, 2022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서울문화인] 오는 10월 28일(금)부터 30일(일)까지 3일간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진행되는 국내를 대표하는 컨셉츄얼 EDM 페스티벌인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이하 스트라이크)을 앞두고 최종 타임테이블과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들을 발표되었다. 이번 스트라이크에는 할로윈 컨셉에 맞춰 다양한 코스튬과 특수효과들을 예고하고 있어 이에 대한 EDM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미 ‘쇼택(Showtek)’, ‘더블유앤더블유(W&W)’, ‘블라스터 잭스(Blaster Jaxx)’, ‘투자모(Tujamo)’, ‘덥비전(Dubvision)’, ‘루카스 앤 스티브(Lucas & Steve)’ 등의 글로벌 디제이/프로듀서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 최고의 EDM 페스티벌 중 하나인 데프콘.1(Defqon.1)의 기획사인 큐-댄스와 제휴를 맺은 엔딩쇼인 테이크오버를 발표하며, 일반 대중과 EDM 마니아들까지 모두 사로잡을 EDM 페스티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있다. 먼저 가로 70m, 높이 30m의 역대급 규모의 무대를 선보이는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준코코(Juncoco)’, ‘반달락(Vandal Rock)’, ‘션(Shaun)’을 비롯해 ‘투자모(Tujamo)’, ‘널보(Nervo)’, ‘윌스파크스(Will Sparks)’, ‘쇼택(Showtek)’, ‘더블유앤더블류(W&W)’ 등 해외 디제이/프로듀서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10월 30일(일)에는 세계 최대의 페스티벌 기획사인 네덜란드 큐-댄스와 함께하는 엔딩 쇼인 테이크오버를 선보이며 ‘스트라이크’의 피날래를 장식한다.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는 ‘인사이드 코어(Inside Core)’, ‘바가지 바이펙스써틴(Bagage Viphex13)’, ‘퓨어 100%(Pure 100%)’, ‘블로쏘(Blosso)’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실력파 디제이/프로듀서들이 공연을 펼친다. 평상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매쉬업과 퍼포먼스들로 메인 스테이지 못지않은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할로윈 컨셉에 맞춰 ‘스트라이크’를 찾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이벤트들도 준비되어 있다. ‘판타지 할로윈’이라는 컨셉에 맞춰 일반적인 호러 스타일이 아닌 유니크하고 패셔너블한 ‘스트라이크’의 드레스코드 컴페티션이 펼쳐진다. 페스티벌 베뉴 곳곳이 할로윈 포토존으로 장식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환상적인 가상의 공간에 있는 듯한 체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페스티벌 현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스트라이크 스페셜 타투 스티커 판매와 화려한 메이크업 체험 이벤트 등 나만의 페스티벌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스트라이크’는 2019년 아웃도어 하드스타일 EDM 페스티벌로 개최되어 ‘페데 레 그란(Fedde Le Grand)’, ‘씩 인디비쥬얼스(Sick Individuals)’, ‘오디오 트릭즈(Audiotricz)’, ‘코드 블랙(Code Black)’ 등 대중들에게 친숙한 곡들을 작업한 디제이/프로듀서를 비롯하여 강렬한 비트를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하드스타일 장르의 디제이/프로듀서들까지 출연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스트라이크’의 1차 오피셜 티켓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현재 10월 28일(금) 공연은 88,000원, 10월 29일(토)는 99,000원 그리고 10월 30일(일) 공연은 77,000원, 3일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3일권은 177,000원에 위매프(https://ticket.wemakeprice.com/)에서 구매 가능하다. [권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