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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레트로토피아’을 통해 다시 ‘저엔트로피’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서울문화인] 예술을 하는 작가가 더 이상 물감을 구입하지 않고 물감을 소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는 단순 붓을 놓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점의 확장인 원, 그리고 면, 선의 모더니즘적 기하학적 도형의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는 김용익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진행되는 개인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의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46점(부산점 19점, 서울점 한옥 27점)을 다루고 있다. 김용익 작가(b. 1947)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繪具,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물감, 붓 따위)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 에너지 낭비의 최소화)적인’ 삶의 방식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전 작업을 ‘모더니즘 프로젝트’라 칭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인 추구는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며 자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이전의 작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도 과거의 조형적 특성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인 동양의 ‘주역’ 사상이 내제되어 있다.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작업에도 도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할 수 없었는지 작가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나는 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주역’의 철학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낸다. “50년 이상 작업을 하다 보니 주체성,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싸여서 오히려 정보가 혼란스럽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가 캔버스에 그려내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여러 방면에서 실패하였음을 간접적으로 그 대안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를 ‘레트로토피아’(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라고 정의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주역’이라는 사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띄우는 자유와 저항이자 비록 희망이 작가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향한 마지막 그의 희망의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행위’라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따라 작품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작품 가운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레이어 작품에 우연히 앉았다가 물감에 붙어 생명을 다한 모기 한 마리도 그의 작업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용익 작가는 “나의 삶과 예술이 같이 종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에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죽음에 대한 자유로워야 하는 제의(祭儀)작업이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상상과 책을 통해 예술을 펼쳐내다.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전시] 상상과 책을 통해 예술을 펼쳐내다.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서울문화인] 영화와 그 영화 속의 소품과 세트가 전시장에 펼쳐져 있고 벽면에는 대형 목판화(차콜 드로잉)와 마치 여러 작가의 화풍을 모아 놓은 듯한 오일 파스텔화가 가득하다.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첫 개인전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가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 두 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리너스 반 데 벨데(Rinus van de Velde, b.1983)는 가상과 실제, 평행우주 안의 무한한 개연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는 작가로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사진, 매체에서 클리핑 한 이미지나 역사적 인물의 삶에 대한 기록 등 일차적 사료를 기반으로 각 작품 속 독특한 세계관을 영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장르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영상화하고 있다. 영상(영화)에는 작가와 유사한 용모의 인물을 등장시켜 도플갱어, 평행우주 개념을 작품 세계에 끌어들여 회화를 확장시키고 있다. “상상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며,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며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 틈으로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볼 수 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덜 알게 된다.’는 도덕경의 노자의 말처럼 작가의 특이점은 여행을 거의 하지 않고 매일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상상과 공상만으로 스스로 설계한 내적 여행을 떠나고 이를 영상과 회화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11세 때 부모와 그랜드 캐니언을 보기 위해 미국여행을 떠났지만 장시간 비행과 이동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도착하여서도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는 ‘차라리 집에 머무는 게 낫다’, ‘내적 여행’, ‘안락의자 여행자’ 등 최근 그의 작품 제목에도 잘 드러난다. 반 데 벨데는 직접 여행하는 대신 잡지, 미술 서적, 역사서, 인물 전기 등 책과 영화, 뉴스 등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력만으로 모험을 즐기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이번 그의 첫 한국에서의 개인전에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작가 특유의 상상적 여행을 회화와 조각 그리고 영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먼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회화는 어딘가 익숙하듯 하면서도 어떤 것이 작가의 특징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풍이 다르다는 점에서 마치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최근의 오일 파스텔화는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같은 20세기 초의 외광파 작가들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상상의 풍경을 그린 것들이기 때문이다. 반 데 벨데가 많은 미술 사조들 속에서도 외광파를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에 대해 “내 현실과 가장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꿈과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상상하여 상상의 풍경에 도달하거나 과거의 외광파 화가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 그 예술 운동을 이해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는 꿈과 욕망이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반어적으로 ‘빛과 자연을 찾아 작업실 밖으로 나간 외광파 작가들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자신과는 가장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외광파 화가들이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보고 겪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반 데 벨데는 작업실 안 안락의자에 머물며 상상의 여행을 하고 상상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외광파 작가로서의 반 데 벨데가 그린 하늘, 바다, 호수, 숲, 들판을 담은 풍경화들로 가득하지만 작가의 회화는 마치 미술사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작가의 예술을 세계를 마주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 제목은 그의 작품 제목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글은 앙리 마티스가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한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인용문을 여러 색의 빛으로 가득한 추상화 밑에 손 글씨로 써서 빛을 찾아 여행한 20세기의 야수파 화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편 사실 자신은 실제로 떠나지 않고도 자기 집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작업관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서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영상화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영상(영화)에는 작가와 유사한 용모의 인물을 등장시켜 도플갱어, 평행우주 개념을 작품 세계에 끌어들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2, 3층에는 회회 외에 두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먼저 영화 <라 루타 내추럴>(2019-2022)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제목처럼 초현실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자아의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고, <하루의 삶>(2021-2023)은 외광파 작가의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은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쓰고서 작가의 도플갱어를 연기하며 가상과 실재, 모험과 일상,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며 저마다의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치들은 모두 작가가 작업실에서 목재와 골판지 등으로 직접 만들어 제작하고 있다. 스페이스 이수에서는 상상의 여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영화 세트이자 조각인 ‹소품, 터널›(2020) 외에도 공상을 하고 영감을 얻는 자리이자 여러 평행우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인 빈 침대를 그린 차콜 드로잉 그리고 탐험가, 예술가 등의 실존 인물들의 전기에 기반해 ‘허구적 자서전’을 담은 오일 파스텔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미술과 언어 등이 충돌하고 또 서로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작가의 삶과 내적 모험을 풀어낸 작품과의 동행을 통해 기존의 미술 시야를 벗어나 예술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전시는 5월 12일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이수에서 전시를 마치고 5월 말 전남도립미술관으로 이동해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기간에 평일 오후 3시, 주말 오후 3시, 5시에 도슨트 전시해설이 진행된다. 스페이스 이수는 토, 일, 공휴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성인기준 10,000원이며, 스페이스1, 스페이스2, 더그라운드의 전시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공연극장에서 만나는 공연콘텐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 국립극장 ‘별별실감극장’
공연극장에서 만나는 공연콘텐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 국립극장 ‘별별실감극장’
[서울문화인] 요즘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면 전시 외에도 관람객의 사로잡는 곳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인터렉티브 콘텐츠를 선보이는 실감 영상실이다. 그런데 이런 실감 영상을 박물관이 아닌 공연극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박인건 극장장) 공연예술박물관(관장 이주현)이 박물관 1층, 기존 별오름극장 공간에 2023년 3월 개관한 ‘별별실감극장’에서 공연예술을 프로젝션 매핑 기술과 멀티 센서 등을 활용해 만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귀토><온춤><호두까기 인형> 등 신규 콘텐츠 3편, VR백스테이지 투어 등 체험존 마련 ‘별별실감극장’이 2월 27일(화)부터 신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신규 콘텐츠는 실감 영상 3편과 증강·가상현실을 접목해 개발한 체험 프로그램 2개로 구성되어, 국립극장 공연을 새로운 방법으로 감상하고 작품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몰입형 실감 영상 3편은 창극·전통무용·발레 등 인기 레퍼토리 공연 속의 주요 장면을 생생하게 구현해 관람객이 작품 속에 있다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랙션 기법은 더욱 생생한 경험과 강력한 몰입으로 이끈다. 새롭게 공개된 영상 3편 중, 국립창극단 <귀토, 토끼의 팔란>은 작품의 배경인 깊은 바닷속 신비한 용궁의 모습을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었다. 토끼의 수궁 탐험에서부터 깨달음을 얻고 육지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어 국립무용단 <온춤>의 ‘월하정인’과 ‘산수놀음’ 영상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감정선에 맞추어 바뀌는 시공간이 눈길을 끈다. 달에서 등장하는 남녀, 한량무를 추는 선비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 등 다양한 효과로 눈을 즐겁게 한다. 공연에서 안무·출연을 맡은 국립무용단원 박기환, 박지은, 황태인, 이도윤이 제작에도 참여해 실감 영상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고전 발레의 대표작 <호두까기 인형>은 ‘눈의 나라’ ‘과자 나라’ 장면을 생동감 넘치는 실감 영상으로 구현했다. 130분 공연을 6분 영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가 안무를 새롭게 짜고, K-Arts 발레단의 정예 단원들이 출연한다. 실감 영상 외에도 체험존도 마련되었다. ‘별별체험존’에서는 해오름극장의 숨겨진 공간을 가상현실에서 탐색해 보는 VR 백스테이지 투어와 관람객이 직접 선택하고 꾸민 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만들어 보는 AR 무대 체험을 할 수 있다. 박인건 극장장은 “실감 영상과 체험 콘텐츠를 통해 관객들이 공연을 보다 가깝게 경험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신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 미래의 공연예술을 이끄는 국립극장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별별실감극장’은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운영시간(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금요일은 오후 7시 30분까지 연장 운영)에 방문하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홈페이지(www.ntok.go.kr/museum)에서 사전 예약도 가능하다. [권수진 기자]
[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서울문화인] 리움미술관 옥상에 마치 통신탑을 연상하는 낯선 구조물이 눈에 띈다.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전시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보이스(VOICES)》를 관람하려는 관람객은 이미 그의 작품과 첫 대면을 한 것이다.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14M 크기의 타워구조물은 색다른 인지력을 가진 인공두뇌로 새롭게 탄생한 목소리인 <∂A>(2024)와 상호작용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필립 파레노의 신작 <막(膜)>이다. <막>은 센서 기능을 갖고 있어서,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모든 환경 요소를 수집된 데이터는 미술관 로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을 소개된다. 유입된 이 데이터는 사운드로 변환되기도 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자극하기도 하며 전시를 활성화시킨다. 이 소리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 운율을 활용한 새로운 신호를 해석하여 ‘단어’와 ‘문구’로 표현하는 동안에 탑의 양태를 기반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전시장 외부에서 이미 경험한 이 작품은 필립 파레노가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필립 파레노(1964년생, 프랑스에서 거주 및 활동)는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예술작품과 전시 경험을 재정의 하는 유기적인 방식을 탐구하는 작가로 여러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영상,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이 둘이 결합되는 영역을 탐구하다 보니 이러한 전시는 국내대중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는 전시는 아니다. 필립 파레노의 90년대 초기작부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대형 신작을 포함한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 이번 전시에 대해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공연과 같이 경험하는 전시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전시의 작품은 미술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M2 B1 전시장에는 전시장 곳곳을 부유하는 물고기들(〈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은 마치 전시장이 자신의 집인양 돌아다니고 있어 관람객이 오히려 그들의 영역(어항)에 들어온 것 같다. 또한 동심 가득했던 눈사람(〈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은 더위에 전시장 바닥에서 일그러지고 있다. M2 1층은 여러 협업자들과 제작한 1990년대 - 2000년대 초기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프랑스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Paris), 네덜란드 패션사진 듀오 이네즈 앤 비누드, 동료 작가 피에르 위그 등과 제작했던 10여 점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희망과 디스토피아에 대한 사진과 영상 〈엔딩 크레딧〉(1999)과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망가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해준 영상 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은 대상이 여러 형태의 목소리로 가시화 되어 존립의 (불)가능성과 예술의 저작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며, 피에르 위그, M/M(Paris)와 다양한 매체의 협업 방식을 소개하는 조명 및 가구 설치 작품 〈루미나리에(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M/M)〉(2001)과 그래픽 포스터 〈안리: 유령이 아닌, 그저 껍데기(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2000)를 만나볼 수 있다. 그라운드갤러리는 키네틱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깜박이고 움직이며, 관람객은 ‘섬광’을 인식하며 ’찰나’를 경험케 한다. <차양> 연작(2014-2023)은 기능이 부재하는 극장 차양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 작품 또한 미술관 외부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디지털 멀티플렉스 기술과 연동되어 사이키델릭한 풍경과 안무를 펼친다. 이와 함께 벽을 따라 〈깜빡이는 불빛 56개〉(2013)의 공연이 펼쳐지며 공간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움직이는 〈움직이는 벽〉(2024)은 마치 건물의 벽면이 떨어져 나와 움직이는 듯하다. 블랙박스는 영화관으로 변신,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환생시킨 영상 〈마릴린〉(2012)은 기계 장치를 통해 시선과 음성, 필체를 구현하여 유령처럼 허구의 눈속임으로 관객을 이끌며, <최초의 차양>(2016-2024)은 영화 상영이 끝나면 공간을 환하게 밝히며 막간을 알리는 사이니지 조명 역할을 한다. 잊고 있었다면 전시 제목이 《보이스(VOICES)》라는 것이다. 필립 파레노는 “사물은 관람객과 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소통하는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소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다. 전시장에는 작품마다 저마다 소리가 있다. 가까이서는 그 작품이 내는 소리를 또 어떤 곳에서는 여러 작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겹쳐서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다수의 목소리’는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요소이자 작품과 전시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목소리(들)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다수의 목소리’를 하나의 공간으로 집결시키며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한편, 전시기간 토크, 세미나와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어린이 대상 <그림자 인형극 워크숍>이 열리며, 매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자율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서울문화인] 별빛마저 삼켜버린 도시의 야경, 화려함 보다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마치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밤을 움직이는 차창에서 보듯 도시가 움직이고 있다. ‘점’과 ‘선’만으로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고 있는 윤협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24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 선보이고 있다. 윤협(b.1982)은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 후 서브컬처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업을 시작했다. 스케이트보드를 기반으로 한 벽화, 라이브 페인팅,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2010년 새로운 도시에 대한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이주한 윤협은 2014년 패션브랜드 랙앤본(rag & bon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뉴욕 맨해튼 하우스턴 가 소호에 벽화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뉴욕 예술계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유니버설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 바비브라운(Bobbie Brown), 유니클로(Uniqlo), 베어브릭(Be@rbrick), 허프(HUF), FTC, 나이키 SB(Nike SB) 등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였다. 윤협의 작업은 나이키(Nike) 오레곤 본사와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뉴욕, 티파니앤코(Tiffany & Co.) 오렌지카운티, 페이스북(Facebook) 뉴욕, 와이덴 케네디(Widen&Kennedy) 뉴욕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LA와 뉴욕, 밀라노, 빌바오, 런던,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다방면으로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오늘날 그를 상징하는 작업 방식은 2004년 라이브 페인팅을 하면서 그 공간과 순간의 감각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점’과 ‘선’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 이후 점과 선은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흥성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드러냈다. 작가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8년 정도 배웠다.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곡을 듣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더 즐겼다. 아마 당시 선생님은 싫어했을 것’이라 말한다. 작가는 ‘힙합, 펑크 등 다양한 인디펜던트 음악을 선호하고, 때론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이 가운데 재즈가 큰 흐름의 계획안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찬 거대한 유기체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 개성과 문화를 보며 직접 느낀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이번 전시 《녹턴시티》의 녹턴(nocturne)은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 받은 예술을 의미한다.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며, 낮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이라 작가는 말한다. 모든 것이 멈춘듯한 고요한 ‘밤’, 《녹턴시티》는 도시와 작가 사이 무언의 대화 한 장면이자, 뉴욕에 사는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시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밤의 옷을 입는 도시가 주는 적막함 그 고요하고 생경한 장면을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각언어로 조합, 선의 리듬과 색상의 화음은 관람자로 하여금 청각적 경험을 부여함과 동시에 21세기 시각 미술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맨해튼의 야경을 그려낸 16미터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2023)이다. 작가가 자전거로 브루클린에서 베어마운틴까지 왕복200km를 달리며, 허드슨 강에서 바라본 야경이 마치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듯 했다고 회상하는 이 작품은 허드슨강 수면 위에 반사되는 도시 불빛을 보며,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베어 마운틴에서 돌아오는 길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2023)은 베어 마운틴 정상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작가가 브루클린 자신의 집에서부터 뉴욕 동부에 위치한 베어 마운틴까지 약 20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왕복한 순간을 다섯 개의 캔버스에 시간의 흐름 순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해가 질 무렵 주황빛으로 물든 가을 단풍 사이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하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점점 어둠이 짙게 깔리는 화면에는 앞 자전거의 후미 등과 자동차 불빛에 의지하며 조지 워싱턴 대교 위에서 맨해튼으로 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자유로운 선들이 펼쳐지는 다음 장면에서는 도심 속 화려한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득한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사이를 질주한다. 이어서 마지막 장면에는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와 브루클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모습을 표현하며 긴 하루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번 서울에서 전시를 위해 고향을 찾아 서울에 대한 감정을 그려낸 <Seoul City>(2023), 런던에서 개인전 개최 후 방문한 파리의 기억을 표현 <Walking by the River>(2023)까지 뉴욕, 서울, 런던 등 다양한 도시의 야경을 그려낸 작품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DIY(Do It Yourself)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한 작품과 회화에서 조각으로 탄생한 <저글러(Juggler)>와 새롭게 발전시킨 <리틀 타이탄(Little Titan)>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회화 작업 방식인 ‘점’과 ‘선’이 조각으로 발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는 윤협의 작품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는 9세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1995년 중학생 윤협은 이태원 스케이트보드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의 로고나 페이지를 콜라주하고 드로잉하기 시작한다. 당시 스케이트보드 시설이 없어 벽돌이나 사물들을 모아 직접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창작했다. 이러한 DIY 방식으로 버려진 물건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음악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박스 마스크도 디자인했다. 작가는 창작의 과정과 스케이트보딩은 정신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이 그 공통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오래된 스케이트보딩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윤협이 손으로 직접 빚어 도자기로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와 함께 공상과학 속 로봇의 형태를 띈 새로운 캐릭터 <리틀 타이탄>은 그리스 아테네의 바위 지대에 있는 성과 요새, 전설 속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정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호기심과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 저글러와 타이탄 시리즈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소망과 소중한 추억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흔히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개인적으로 가지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롯데뮤지엄의 윤협 작가의 개인전은 신선함을 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롯데뮤지엄은 마지막 섹션에서 윤협의 작품을 미디어로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윤협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 : 윤협>이 마련되었다. 2024년 3월 1일(금) 14시 롯데월드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윤협 작가와의 대담이 진행된다. 김찬용 전시해설가가 사회를 맡아 윤협 작가와 함께 작품과 예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며, 매일 3회(11시, 14시, 16시) 전문 도슨트가 전시장에서 무료로 전시를 해설해 준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18,000원, 청소년 15,000원, 어린이 12,000원이며, 만 4세 미만은 무료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관람권이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제공된다. 관람 시간은 매일 10:30-19:00이며 마지막 입장은 18:30까지다. 휴관일은 월 1회이며, 롯데뮤지엄 홈페이지에 별도 공지된다. [허중학 기자]

문화 인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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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국제갤러리] ‘주역’ 21세기에 다시 캔버스로 소환. 김용익 개인전
‘레트로토피아’을 통해 다시 ‘저엔트로피’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서울문화인] 예술을 하는 작가가 더 이상 물감을 구입하지 않고 물감을 소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이번 프로젝트에 담긴 의미는 단순 붓을 놓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점의 확장인 원, 그리고 면, 선의 모더니즘적 기하학적 도형의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고 있는 김용익 작가가 국제갤러리 부산과 서울 한옥 공간에서 동시에 개인전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세 번째 진행되는 개인전이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전시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그의 2016년부터 최근까지의 근작 46점(부산점 19점, 서울점 한옥 27점)을 다루고 있다. 김용익 작가(b. 1947)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물감 소진 프로젝트(Exhausting Project)’라는 제목의 새 연작을 시작했다. 현재진행형인 이 연작은 지금 작가에게 남아있는 물감, 색연필 등 회구(繪具)들을 그의 여생에 걸쳐 모두 소진(消盡)하는 프로젝트이다. 남아있는 회구(繪具,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물감, 붓 따위)를 색깔별로 골고루 소진하고자 화폭을 잘게 나누어 작업한 결과,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의 모양을 띄며 김용익이 예술가로서 평생 추구해온 ‘저엔트로피(low entropy 에너지 낭비의 최소화)적인’ 삶의 방식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전 작업을 ‘모더니즘 프로젝트’라 칭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인 추구는 ‘계몽주의로 각성된 인간의 이성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탐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후 위기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실패를 예증하며 자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를 살아오면서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의식주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가용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이전의 작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과 얇게 발린 물감 등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듯 보이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에도 과거의 조형적 특성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활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인 동양의 ‘주역’ 사상이 내제되어 있다. 종이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실제 『주역』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 괘(卦)의 형태를 차용하거나, 중국의 전통 우주론의 바탕이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에서 빌려온 원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작업에도 도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더니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할 수 없었는지 작가의 캔버스에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나는 글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주역’의 철학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 땅을 상징하는 네모와 하늘과 방위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원을 배열하여 음과 양의 균형과 조화를 드러낸다. “50년 이상 작업을 하다 보니 주체성,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싸여서 오히려 정보가 혼란스럽다”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가 캔버스에 그려내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가 여러 방면에서 실패하였음을 간접적으로 그 대안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를 ‘레트로토피아’(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라고 정의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주역’이라는 사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띄우는 자유와 저항이자 비록 희망이 작가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향한 마지막 그의 희망의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행위’라 말한다. 더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재료에 따라 작품 표면을 이루는 물감의 두께가 얇아 흐릿하거나 때로는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 다소 거친 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작품 가운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레이어 작품에 우연히 앉았다가 물감에 붙어 생명을 다한 모기 한 마리도 그의 작업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용익 작가는 “나의 삶과 예술이 같이 종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에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죽음에 대한 자유로워야 하는 제의(祭儀)작업이다.” 전시는 4월 2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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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상과 책을 통해 예술을 펼쳐내다.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전시] 상상과 책을 통해 예술을 펼쳐내다. 리너스 반 데 벨데 개인전
[서울문화인] 영화와 그 영화 속의 소품과 세트가 전시장에 펼쳐져 있고 벽면에는 대형 목판화(차콜 드로잉)와 마치 여러 작가의 화풍을 모아 놓은 듯한 오일 파스텔화가 가득하다.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첫 개인전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가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 두 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리너스 반 데 벨데(Rinus van de Velde, b.1983)는 가상과 실제, 평행우주 안의 무한한 개연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는 작가로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사진, 매체에서 클리핑 한 이미지나 역사적 인물의 삶에 대한 기록 등 일차적 사료를 기반으로 각 작품 속 독특한 세계관을 영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장르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영상화하고 있다. 영상(영화)에는 작가와 유사한 용모의 인물을 등장시켜 도플갱어, 평행우주 개념을 작품 세계에 끌어들여 회화를 확장시키고 있다. “상상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며,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며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 틈으로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볼 수 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덜 알게 된다.’는 도덕경의 노자의 말처럼 작가의 특이점은 여행을 거의 하지 않고 매일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상상과 공상만으로 스스로 설계한 내적 여행을 떠나고 이를 영상과 회화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11세 때 부모와 그랜드 캐니언을 보기 위해 미국여행을 떠났지만 장시간 비행과 이동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도착하여서도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는 ‘차라리 집에 머무는 게 낫다’, ‘내적 여행’, ‘안락의자 여행자’ 등 최근 그의 작품 제목에도 잘 드러난다. 반 데 벨데는 직접 여행하는 대신 잡지, 미술 서적, 역사서, 인물 전기 등 책과 영화, 뉴스 등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력만으로 모험을 즐기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이번 그의 첫 한국에서의 개인전에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작가 특유의 상상적 여행을 회화와 조각 그리고 영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먼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회화는 어딘가 익숙하듯 하면서도 어떤 것이 작가의 특징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풍이 다르다는 점에서 마치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최근의 오일 파스텔화는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같은 20세기 초의 외광파 작가들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상상의 풍경을 그린 것들이기 때문이다. 반 데 벨데가 많은 미술 사조들 속에서도 외광파를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에 대해 “내 현실과 가장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꿈과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상상하여 상상의 풍경에 도달하거나 과거의 외광파 화가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 그 예술 운동을 이해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는 꿈과 욕망이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반어적으로 ‘빛과 자연을 찾아 작업실 밖으로 나간 외광파 작가들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자신과는 가장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외광파 화가들이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보고 겪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반 데 벨데는 작업실 안 안락의자에 머물며 상상의 여행을 하고 상상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외광파 작가로서의 반 데 벨데가 그린 하늘, 바다, 호수, 숲, 들판을 담은 풍경화들로 가득하지만 작가의 회화는 마치 미술사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작가의 예술을 세계를 마주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 제목은 그의 작품 제목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글은 앙리 마티스가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한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인용문을 여러 색의 빛으로 가득한 추상화 밑에 손 글씨로 써서 빛을 찾아 여행한 20세기의 야수파 화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편 사실 자신은 실제로 떠나지 않고도 자기 집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작업관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서 그는 실제적 사건들과 상상력 속에서 혼합된 가상의 이야기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영상화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영상(영화)에는 작가와 유사한 용모의 인물을 등장시켜 도플갱어, 평행우주 개념을 작품 세계에 끌어들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2, 3층에는 회회 외에 두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먼저 영화 <라 루타 내추럴>(2019-2022)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제목처럼 초현실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자아의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고, <하루의 삶>(2021-2023)은 외광파 작가의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은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쓰고서 작가의 도플갱어를 연기하며 가상과 실재, 모험과 일상,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며 저마다의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치들은 모두 작가가 작업실에서 목재와 골판지 등으로 직접 만들어 제작하고 있다. 스페이스 이수에서는 상상의 여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영화 세트이자 조각인 ‹소품, 터널›(2020) 외에도 공상을 하고 영감을 얻는 자리이자 여러 평행우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인 빈 침대를 그린 차콜 드로잉 그리고 탐험가, 예술가 등의 실존 인물들의 전기에 기반해 ‘허구적 자서전’을 담은 오일 파스텔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미술과 언어 등이 충돌하고 또 서로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작가의 삶과 내적 모험을 풀어낸 작품과의 동행을 통해 기존의 미술 시야를 벗어나 예술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전시는 5월 12일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이수에서 전시를 마치고 5월 말 전남도립미술관으로 이동해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기간에 평일 오후 3시, 주말 오후 3시, 5시에 도슨트 전시해설이 진행된다. 스페이스 이수는 토, 일, 공휴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성인기준 10,000원이며, 스페이스1, 스페이스2, 더그라운드의 전시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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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극장에서 만나는 공연콘텐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 국립극장 ‘별별실감극장’
공연극장에서 만나는 공연콘텐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 국립극장 ‘별별실감극장’
[서울문화인] 요즘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면 전시 외에도 관람객의 사로잡는 곳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인터렉티브 콘텐츠를 선보이는 실감 영상실이다. 그런데 이런 실감 영상을 박물관이 아닌 공연극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박인건 극장장) 공연예술박물관(관장 이주현)이 박물관 1층, 기존 별오름극장 공간에 2023년 3월 개관한 ‘별별실감극장’에서 공연예술을 프로젝션 매핑 기술과 멀티 센서 등을 활용해 만든 인터랙티브 실감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귀토><온춤><호두까기 인형> 등 신규 콘텐츠 3편, VR백스테이지 투어 등 체험존 마련 ‘별별실감극장’이 2월 27일(화)부터 신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신규 콘텐츠는 실감 영상 3편과 증강·가상현실을 접목해 개발한 체험 프로그램 2개로 구성되어, 국립극장 공연을 새로운 방법으로 감상하고 작품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몰입형 실감 영상 3편은 창극·전통무용·발레 등 인기 레퍼토리 공연 속의 주요 장면을 생생하게 구현해 관람객이 작품 속에 있다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랙션 기법은 더욱 생생한 경험과 강력한 몰입으로 이끈다. 새롭게 공개된 영상 3편 중, 국립창극단 <귀토, 토끼의 팔란>은 작품의 배경인 깊은 바닷속 신비한 용궁의 모습을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었다. 토끼의 수궁 탐험에서부터 깨달음을 얻고 육지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어 국립무용단 <온춤>의 ‘월하정인’과 ‘산수놀음’ 영상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감정선에 맞추어 바뀌는 시공간이 눈길을 끈다. 달에서 등장하는 남녀, 한량무를 추는 선비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 등 다양한 효과로 눈을 즐겁게 한다. 공연에서 안무·출연을 맡은 국립무용단원 박기환, 박지은, 황태인, 이도윤이 제작에도 참여해 실감 영상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고전 발레의 대표작 <호두까기 인형>은 ‘눈의 나라’ ‘과자 나라’ 장면을 생동감 넘치는 실감 영상으로 구현했다. 130분 공연을 6분 영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가 안무를 새롭게 짜고, K-Arts 발레단의 정예 단원들이 출연한다. 실감 영상 외에도 체험존도 마련되었다. ‘별별체험존’에서는 해오름극장의 숨겨진 공간을 가상현실에서 탐색해 보는 VR 백스테이지 투어와 관람객이 직접 선택하고 꾸민 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만들어 보는 AR 무대 체험을 할 수 있다. 박인건 극장장은 “실감 영상과 체험 콘텐츠를 통해 관객들이 공연을 보다 가깝게 경험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신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 미래의 공연예술을 이끄는 국립극장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별별실감극장’은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운영시간(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금요일은 오후 7시 30분까지 연장 운영)에 방문하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홈페이지(www.ntok.go.kr/museum)에서 사전 예약도 가능하다. [권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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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전시] 필립 파레노, 미술관을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변신시키다.
[서울문화인] 리움미술관 옥상에 마치 통신탑을 연상하는 낯선 구조물이 눈에 띈다. 리움미술관의 새로운 전시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보이스(VOICES)》를 관람하려는 관람객은 이미 그의 작품과 첫 대면을 한 것이다.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14M 크기의 타워구조물은 색다른 인지력을 가진 인공두뇌로 새롭게 탄생한 목소리인 <∂A>(2024)와 상호작용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필립 파레노의 신작 <막(膜)>이다. <막>은 센서 기능을 갖고 있어서,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모든 환경 요소를 수집된 데이터는 미술관 로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을 소개된다. 유입된 이 데이터는 사운드로 변환되기도 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자극하기도 하며 전시를 활성화시킨다. 이 소리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 운율을 활용한 새로운 신호를 해석하여 ‘단어’와 ‘문구’로 표현하는 동안에 탑의 양태를 기반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전시장 외부에서 이미 경험한 이 작품은 필립 파레노가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필립 파레노(1964년생, 프랑스에서 거주 및 활동)는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예술작품과 전시 경험을 재정의 하는 유기적인 방식을 탐구하는 작가로 여러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영상,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이 둘이 결합되는 영역을 탐구하다 보니 이러한 전시는 국내대중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는 전시는 아니다. 필립 파레노의 90년대 초기작부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대형 신작을 포함한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 이번 전시에 대해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공연과 같이 경험하는 전시이다. 시간에 따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전시의 작품은 미술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M2 B1 전시장에는 전시장 곳곳을 부유하는 물고기들(〈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은 마치 전시장이 자신의 집인양 돌아다니고 있어 관람객이 오히려 그들의 영역(어항)에 들어온 것 같다. 또한 동심 가득했던 눈사람(〈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은 더위에 전시장 바닥에서 일그러지고 있다. M2 1층은 여러 협업자들과 제작한 1990년대 - 2000년대 초기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프랑스 그래픽 디자인 듀오 M/M(Paris), 네덜란드 패션사진 듀오 이네즈 앤 비누드, 동료 작가 피에르 위그 등과 제작했던 10여 점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희망과 디스토피아에 대한 사진과 영상 〈엔딩 크레딧〉(1999)과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망가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해준 영상 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은 대상이 여러 형태의 목소리로 가시화 되어 존립의 (불)가능성과 예술의 저작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며, 피에르 위그, M/M(Paris)와 다양한 매체의 협업 방식을 소개하는 조명 및 가구 설치 작품 〈루미나리에(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M/M)〉(2001)과 그래픽 포스터 〈안리: 유령이 아닌, 그저 껍데기(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2000)를 만나볼 수 있다. 그라운드갤러리는 키네틱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깜박이고 움직이며, 관람객은 ‘섬광’을 인식하며 ’찰나’를 경험케 한다. <차양> 연작(2014-2023)은 기능이 부재하는 극장 차양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 작품 또한 미술관 외부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디지털 멀티플렉스 기술과 연동되어 사이키델릭한 풍경과 안무를 펼친다. 이와 함께 벽을 따라 〈깜빡이는 불빛 56개〉(2013)의 공연이 펼쳐지며 공간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움직이는 〈움직이는 벽〉(2024)은 마치 건물의 벽면이 떨어져 나와 움직이는 듯하다. 블랙박스는 영화관으로 변신,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환생시킨 영상 〈마릴린〉(2012)은 기계 장치를 통해 시선과 음성, 필체를 구현하여 유령처럼 허구의 눈속임으로 관객을 이끌며, <최초의 차양>(2016-2024)은 영화 상영이 끝나면 공간을 환하게 밝히며 막간을 알리는 사이니지 조명 역할을 한다. 잊고 있었다면 전시 제목이 《보이스(VOICES)》라는 것이다. 필립 파레노는 “사물은 관람객과 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소통하는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소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다. 전시장에는 작품마다 저마다 소리가 있다. 가까이서는 그 작품이 내는 소리를 또 어떤 곳에서는 여러 작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겹쳐서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다수의 목소리’는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요소이자 작품과 전시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목소리(들)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다수의 목소리’를 하나의 공간으로 집결시키며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한편, 전시기간 토크, 세미나와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어린이 대상 <그림자 인형극 워크숍>이 열리며, 매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자율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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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전시] ‘점’과 ‘선’으로 이어가며 시.공간이 움직이듯 그려낸 도시의 야경, 윤협 《녹턴시티》
[서울문화인] 별빛마저 삼켜버린 도시의 야경, 화려함 보다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마치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밤을 움직이는 차창에서 보듯 도시가 움직이고 있다. ‘점’과 ‘선’만으로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고 있는 윤협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24일부터 롯데뮤지엄에서 선보이고 있다. 윤협(b.1982)은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 후 서브컬처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업을 시작했다. 스케이트보드를 기반으로 한 벽화, 라이브 페인팅,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2010년 새로운 도시에 대한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이주한 윤협은 2014년 패션브랜드 랙앤본(rag & bon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뉴욕 맨해튼 하우스턴 가 소호에 벽화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뉴욕 예술계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유니버설 뮤직 그룹(Universal Music Group), 바비브라운(Bobbie Brown), 유니클로(Uniqlo), 베어브릭(Be@rbrick), 허프(HUF), FTC, 나이키 SB(Nike SB) 등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였다. 윤협의 작업은 나이키(Nike) 오레곤 본사와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뉴욕, 티파니앤코(Tiffany & Co.) 오렌지카운티, 페이스북(Facebook) 뉴욕, 와이덴 케네디(Widen&Kennedy) 뉴욕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LA와 뉴욕, 밀라노, 빌바오, 런던, 도쿄, 홍콩, 상하이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다방면으로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오늘날 그를 상징하는 작업 방식은 2004년 라이브 페인팅을 하면서 그 공간과 순간의 감각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점’과 ‘선’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 이후 점과 선은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흥성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드러냈다. 작가는 ‘어린시절 어머니의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8년 정도 배웠다.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곡을 듣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더 즐겼다. 아마 당시 선생님은 싫어했을 것’이라 말한다. 작가는 ‘힙합, 펑크 등 다양한 인디펜던트 음악을 선호하고, 때론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이 가운데 재즈가 큰 흐름의 계획안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찬 거대한 유기체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 개성과 문화를 보며 직접 느낀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이번 전시 《녹턴시티》의 녹턴(nocturne)은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 받은 예술을 의미한다.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며, 낮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이라 작가는 말한다. 모든 것이 멈춘듯한 고요한 ‘밤’, 《녹턴시티》는 도시와 작가 사이 무언의 대화 한 장면이자, 뉴욕에 사는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시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밤의 옷을 입는 도시가 주는 적막함 그 고요하고 생경한 장면을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각언어로 조합, 선의 리듬과 색상의 화음은 관람자로 하여금 청각적 경험을 부여함과 동시에 21세기 시각 미술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맨해튼의 야경을 그려낸 16미터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2023)이다. 작가가 자전거로 브루클린에서 베어마운틴까지 왕복200km를 달리며, 허드슨 강에서 바라본 야경이 마치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듯 했다고 회상하는 이 작품은 허드슨강 수면 위에 반사되는 도시 불빛을 보며,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베어 마운틴에서 돌아오는 길 On the Way Back from Bear Mountain>(2023)은 베어 마운틴 정상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것으로, 작가가 브루클린 자신의 집에서부터 뉴욕 동부에 위치한 베어 마운틴까지 약 20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왕복한 순간을 다섯 개의 캔버스에 시간의 흐름 순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해가 질 무렵 주황빛으로 물든 가을 단풍 사이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하산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점점 어둠이 짙게 깔리는 화면에는 앞 자전거의 후미 등과 자동차 불빛에 의지하며 조지 워싱턴 대교 위에서 맨해튼으로 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자유로운 선들이 펼쳐지는 다음 장면에서는 도심 속 화려한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득한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사이를 질주한다. 이어서 마지막 장면에는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와 브루클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모습을 표현하며 긴 하루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번 서울에서 전시를 위해 고향을 찾아 서울에 대한 감정을 그려낸 <Seoul City>(2023), 런던에서 개인전 개최 후 방문한 파리의 기억을 표현 <Walking by the River>(2023)까지 뉴욕, 서울, 런던 등 다양한 도시의 야경을 그려낸 작품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DIY(Do It Yourself)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한 작품과 회화에서 조각으로 탄생한 <저글러(Juggler)>와 새롭게 발전시킨 <리틀 타이탄(Little Titan)>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회화 작업 방식인 ‘점’과 ‘선’이 조각으로 발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는 윤협의 작품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는 9세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1995년 중학생 윤협은 이태원 스케이트보드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의 로고나 페이지를 콜라주하고 드로잉하기 시작한다. 당시 스케이트보드 시설이 없어 벽돌이나 사물들을 모아 직접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창작했다. 이러한 DIY 방식으로 버려진 물건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음악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박스 마스크도 디자인했다. 작가는 창작의 과정과 스케이트보딩은 정신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이 그 공통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오래된 스케이트보딩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윤협이 손으로 직접 빚어 도자기로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와 함께 공상과학 속 로봇의 형태를 띈 새로운 캐릭터 <리틀 타이탄>은 그리스 아테네의 바위 지대에 있는 성과 요새, 전설 속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정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호기심과 상상력으로부터 탄생한 저글러와 타이탄 시리즈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소망과 소중한 추억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흔히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개인적으로 가지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롯데뮤지엄의 윤협 작가의 개인전은 신선함을 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롯데뮤지엄은 마지막 섹션에서 윤협의 작품을 미디어로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윤협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 : 윤협>이 마련되었다. 2024년 3월 1일(금) 14시 롯데월드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윤협 작가와의 대담이 진행된다. 김찬용 전시해설가가 사회를 맡아 윤협 작가와 함께 작품과 예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며, 매일 3회(11시, 14시, 16시) 전문 도슨트가 전시장에서 무료로 전시를 해설해 준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18,000원, 청소년 15,000원, 어린이 12,000원이며, 만 4세 미만은 무료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관람권이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제공된다. 관람 시간은 매일 10:30-19:00이며 마지막 입장은 18:30까지다. 휴관일은 월 1회이며, 롯데뮤지엄 홈페이지에 별도 공지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