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사례집 국내 첫 발간

기사입력 2017.01.03 00:08 조회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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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이 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위안부’ 들과 찍은 사진. 1944년 9월 7일, 햇필드(hatfield) 이병이 촬영한 사진으로 오른쪽 임신한 여성이 박영심이다. 아이는 곧 사산됐다고 한다.



 


 


- 서울대 인권센터가 미국태국 현지조사.. 연합군 공문서, 포로심문자료 등 발굴 성공


- 기존 증언 중심 서적 넘어 교차입체분석 통해 위안부 실태 보다 명확히 증명


- 추후 국공립도서관 등에 비치, 올바른 위안부역사 알리는 시민 강연회 등 개최


 


[서울문화인] 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의 하나로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위안부피해자 10인의 생생한 증언은 물론 미국, 태국 현지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역사적 입증자료까지 망라해 교차분석한 사례집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이야기(이하 위안부 이야기’)을 발간했다.


 


19918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피해를 증언한 이후 지난 26년간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서적은 몇 차례 발간된 적 있지만, 증언과 근거자료를 접목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사례집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시가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선정지원한 서울대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아카이브팀의 자료 발굴 및 연구 노력이 결정적 토대가 됐다.


 


이들은 지난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과 태국 현지를 방문, 방대한 자료 가운데 위안부관련 자료를 찾기 위한 발굴 조사를 펼쳤다. 그 결과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심문자료, 스틸사진, 지도 등 가치 있는 자료들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위안부연구에 있어 일본 정부군 공문서를 활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상황에서 이번에 발견한 미국 및 연합국 생산자료는 위안부실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역사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새롭게 발굴한 자료는 물론 기존 학계에서 소개되어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까지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담았다.


 


위안부 이야기에는 위안부피해 사례를 증언한 10인은 미디어 등을 통해 비교적 많이 알려졌던 분들 가운데 선정되었다. 10인은 김소란(가명, 필리핀), 김순악(중국·내몽고 장가구), 박영심(중국 남경, 운남), 문옥주(중국 동안버마), 배봉기(일본 오키나와), 김복동(싱가포르인도네시아), 김옥주(중국 해남도), 송신도(중국 무한), 박옥련(남태평양 라바울), 하상숙(중국 무한) 할머니다. (1명은 본인 요청에 따라 가명 처리했고, 나머지 9명은 실명이다)


 


내용은 위안부피해 여성의 생애사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 기존 증언집은 피해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았다. , 1인칭 시점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읽는 이로 하여금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했다.



 


김소란(가명)의 심문카드, 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


김소란(가명)의 이동경로, 붉은 선은 동원 및 위안소 이동경로, 파란선은 귀환경로


 


<필리핀 위안소 피해자 김소란(가명), ‘폭격이 나를 살렸다’>


1926년 경북 군위에서 일곱 딸 중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난 김소란(가명)1941년 봄, 어려운 가정형편에 큰 언니가 병원에 붕대 같은 것 씻어주면 한 달에 돈 얼마큼씩 받는다는 말에 언니와 함께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부산을 거쳐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시골로 간다.


 


한 사흘인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다. 쉰이 넘은 일본인 할아버지는 막 나를 발길로 차고 말도 못하게 했다. 정말 이게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에 한번 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했다


 


김소란(가명)은 미국의 폭격으로 인해 산을 넘고 도망치다가 미군에 의해 발견돼 마닐라 포로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 포로수용소에 있던 김소란은 그 후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집으로 오게 된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어떤 일을 당했다는 걸 아시고 나 결혼하고 나서 심장병으로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다. 난 조마조마하게 여기며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어떻게 그걸 알아가지고 매일 구박했다.”


 


 


 


위안부 이야기는 비매품으로 서울시는 추후 국공립도서관을 중심으로 배포해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을 밝히고 이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시민 대상 강연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이정은 교수는 이번 사례집을 통해 그 동안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는 위안부할머니의 이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해 삶을 꾸려온 여성들의 생명력 있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반 시민이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매우 높은 데 반해 정작 위안부 백서조차 발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동안은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를 대체했다면 이제는 이번 사례집과 같이 자료와 증언집으로 기록해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안부 실태를 명확히 증명해내는 데도 기여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진용준 기자]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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