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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한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1기)에서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6종이 새겨진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 1점과 소형 토기, 화살촉, 어린아이 두개골 편 등 유물도 함께 출토되었다.
발굴한 석곽묘 규모는 길이 165cm, 너비 45cm, 깊이 55cm정도의 크기에 치아와 두개골 편이 함께 출토되어 어린아이가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조성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당시 유물의 부장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유물은 5세기 말경 조성된 대가야 소형 석곽묘에서 나온 토제방울 1점이다.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에는 남성성기(구지봉), 거북(구지가), 관을 쓴 남자(구간),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그림(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선으로 새겨져있다.
각각의 그림은 하나하나가 고려 문종 때인 1075~1084년에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건국신화의 내용과 부합되어 대가야 건국신화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 그 동안 문헌에서만 나오던 건국신화의 모습이 유물에 투영되어 발견된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이번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건국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이 선각그림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수로왕 건국설화와 일치한다. 고 설명했다. 남성 성기는 가야 건국설화 속 여신 정견모주가 노닐던 고령 인근 가야산 상아덤을 표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거북 등껍데기는 고리 부분을 머리로 인식해 그린 것으로 판단되며, 관을 쓴 남자는 구간(九干)에 해당하는 지도자를 형상화했고, 하늘을 보는 사람은 팔과 발을 간략하게 선으로 그렸으며, 금빛 상자는 잎사귀 모양으로 나타냈다”, 이어 “방울을 만든 대가야 장인은 그가 살던 대가야 시조 탄생설화를 보여주고자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대가야 시대의 묘제가 수혈식(구덩식)에서 횡혈식(굴식)과 횡구식(앞트기식)으로 바뀌는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매우 큰 학술적 의미를 갖고 있어 주목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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