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이전의 문화 에트루리아로의 과거로의 여행.

국립중앙박물관,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전(展
기사입력 2019.07.18 00:52 조회수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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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고대 그리스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리스 보물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에서는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 축이었던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선보이고 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에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2개 도시의 동맹으로 구성된 고대 국가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천년 가까이 지속된 지중해의 고대 문명이다. 당대의 역사가들에게 에트루리아인은 지중해에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로 평가받았다.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소아시아와 경쟁하며 자생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에트루리아 연맹은 기원전 5세기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이탈리아 북부의 식민 도시들은 켈트족에게 남부는 마그나 그라키아에 복속되고, 중부지방은 새로게 성장하던 로마와 경쟁을 벌였지만 기원전 396년 로마에 군사적으로 정복당하면서 에트루리아 시대가 저물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가 남긴 문화의 흔적은 로마 문화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로마라는 이름 속에 여전히 살아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들의 삶은 키아레나 타르퀴니아의 네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기원전 7세기 이후 지어졌던 약 6000여점의 무덤과 200여점의 프레스코화를 등 무덤과 부장품을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베일에 싸여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에트루리아 전시로, 불치 신전의 페디먼트(서양 건축에서 정면 상부에 있는 삼각형의 벽), 루니 신전의 페디먼트 등 중요한 에트루리아 문화재가 해외에서 전시되는 드문 사례이다. 특히 추모용 조각상인 <모자 상>은 이탈리아 볼테라 지역 밖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엄선한 약 300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의 중심은 에트루리아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비교, 에트루리아의 독특한 사후 관념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로 잘 알려진 D. H. 로렌스(D. H. Lawrence, 1885~1930)1927년 에트루리아 유적지를 답사하고 남긴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Sketches of Etruscan Places)>(1932)를 바탕으로 에트루리아, 로렌스의 감흥을 따라 여행하듯 구성되어다.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는 에트루리아에 대한 문명적 통찰력을 제공하며 아직도 에트루리아 연구자에게 자극을 주는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는 책이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었다. 먼저 1(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는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지리적 환경 등 에트루리아 전반과 지중해 세계에서 문화가 어떻게 교류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에트루리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이주해 왔다는 견해와 이탈리아 원주민이 세웠다는 견해가 있지만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리스인들은 에트루리아인을 가리켜 티르세노이(Tyrsenoi) 혹은 티레노이(Tyrrhenoi)라 불렀으며, 로마인들은 투스키(Tusci) 혹은 에트루스키(Etrusc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오늘날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2(천상의 신과 봉헌물)는 에트루리아인 삶 속의 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구보다도 종교와 신에 관심이 많고 심취한 삶을 살았던 에트루리아인은 이웃 그리스 종교관도 수용했다. 이들은 인간의 삶은 신의 통제 하에 있고, 사제들의 점성술과 예언을 통해서만 신의 뜻을 해석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봉헌물은 신과 그것을 믿는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했다. 이 종교관과 사상 등은 고대 로마 종교관의 근원이 되었다. 특히 에트루리아의 티니아(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유피테르)는 우니(그리스의 헤라, 로마의 유노), 멘르바(그리스의 아테나, 로마의 미네르바)와 함께 가장 중요시 되었던 신으로, 이 세 신을 모신 신전이 에트루리아의 모든 도시에 세워졌으며, 사람들은 신전에 모여 기도를 하고, 봉헌물을 바쳤다.

 

3(에트루리아인의 삶)에서는 시와 음악, 무용, 연회를 즐긴 에트루리아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무역, 항해, 전쟁에 적극적이면서도 문화를 즐기고 영위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에트루리아 문명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에트루리아의 무덤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이 부장되어 있어 이들이 남긴 무덤 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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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저승의 신과 사후 세계)에서는 에트루리아의 저승의 신과 내세관에 대해 소개하고, 에트루리아의 무덤과 장례 의례를 설명하고 있다. 에트루리아인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저승 신들의 존재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징한다. 그들의 유골함에 자주 등장하는 반트(Vanth)와 카룬(Charun)은 에트루리아 종교관에서 저승의 신들이다. 이들 무덤은 에트루리아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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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에서는 에트루리아에서 출발한 고대 로마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도시 외관을 본 떠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을 갖춘 도시로 발전했고, 세계 제국이 되었다. 로마에 남겨진 에트루리아의 영향 중 종교적인 영역과 권력의 상징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로마의 권력과 종교를 상징하는 많은 표상이 에트루리아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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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유물의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좀 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에트루리아 문명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는 1027일까지 개최되며 전시 기간 중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행사가 함께 개최된다. 자세한 정보는 전시 누리집 http://www.museum.go.kr 혹은 전화 02-1688-0361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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