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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금제굵은고리귀걸이(금제태환이식) 1쌍을 비롯하여 금제가는고리귀걸이(금제세환이식) 2쌍, 은제팔찌 1쌍 등의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포항 대련리 유적에서는 돌덧널무덤(석곽묘) 1기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6기 등 모두 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도굴을 당하였다. 하지만 무너진 천장돌이 껴묻거리(부장) 유물을 덮고 있었던 4호 무덤은 다행히 도굴꾼의 손길을 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적에서 가장 큰 4호 무덤은 돌방 길이 5.3m, 너비 1.8m의 긴사각형이며, 주검받침이 상하 2겹으로 겹쳐져 있다.
그리고 이곳 하층(1차) 주검받침에서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 금제굵은고리귀걸이 1쌍, 은제팔찌 1쌍이, 그리고 상층(2차) 주검받침에서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이 각각 출토되었다. 주검받침이 두 번에 걸쳐 만들어진 점, 다수의 귀걸이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4호 무덤에는 3구 이상의 주검이 시간차를 두고 추가로 묻혔던 것으로 판단된다.
금제가는고리귀걸이는 각각 중심고리(주환)에 샛장식(귀걸이 고리와 드리개 가운데 부분을 이루는 장식), 드리개(매달아 길게 늘이는 물건)가 결합된 구조로, 천마총과 서봉총, 보문리 부부총, 창녕 송현동고분 등에서 비슷한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원통형 샛장식에는 선문(줄무늬)과 투각(뚫새김)장식을 하였으며, 드리개에는 넓은 나뭇잎형 장식 1매와 작고 오목한 형태의 나뭇잎 모양 장식 2매가 각각 달려있다.
금제굵은고리귀걸이도 중심고리 아래에 중앙에 가로로 새김눈금선대(각목대)가 장식된 소환연접구체의 샛장식과 원뿔형의 드리개가 결합되어 있다. 충북 청원 상봉리, 서울 능동, 강릉 병산동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다만 대련리 유적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샛장식에 새김눈금선대가 존재하고 샛장식 아래쪽의 원반상 장식이 생략되는 등 전형적인 고구려산 귀걸이와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고구려의 제작 기법을 모방하여 신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신라 유적에서는 황내 대총 북분 출토품처럼 고구려산 이식이 출토되기도 하지만, (재)화랑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이 귀걸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엄격히 말하면 ‘고구려 양식’에 속하는 신라 이식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구려산 태환이식에는 중간식에 각목대가 없으며, 더하여 추형 수하식의 경우도 구체 바로 아래에 원반상의 장식이 부가되었다.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대련리 사례와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련리 4호분 태환이식은 고구려산이 아나라 판단했다.
이와 함께 돌방 남쪽 끝의 껴묻거리 공간에서는 그릇받침,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등 다양한 형식의 토기 수십 점이 출토되었다.
발굴기관인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은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금제귀걸이와 토기들은 경주 외곽에 해당하는 포항 일대의 굴식돌방무덤 수용 시기와 경로,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의 교류관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포항 흥해읍은 4세기말에서 5세기 전반까지 고구려의 남정과 신라 팽창의 한 루트인 동해안 진출 과정상에서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곳이다. 이곳 흥해읍 대련리 고분군의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철기류와 소량의 장신구도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고배, 개, 장경호 단경호, 직구호, 파배, 기대, 연질옹 등의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었으며, 현재 유물의 정리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정확한 편년은 알 수 없으나 대략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에 이르는 토기들로 추정했다. 철기류는 석곽묘와 석실묘 내부에서 확인되는데 대부분 꺽쇠나 관정, 소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유구 내부의 시상이나 내부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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