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이란-종교를 넘어 순례지가 된, 고레스 대왕의 묘

기사입력 2020.03.13 07:31 조회수 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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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드 황량한 사막지대에 우뚝서있는 고레스 대왕의 묘

 

 

 

[서울문화인] 페르세폴리스 북동쪽 6가량 되는 지점 파사르가드(Pasargad)의 황량한 사막지대에 파괴된 왕궁 터 인근에 유독 온전한 채 남아있는 커다란 석조물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석조물은 지금 터키 지역의 리디아 오아국부터 이라크 지역인 바빌로니아까지 점령하고 오리엔트를 지배하에 두며 페르시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왕 중의 왕이라 칭송받는 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 키루스 대왕(키루스 2, 고레스 대왕, BC 585? ~ BC 529)의 묘이다.

 

그는 전쟁을 위해 해외 원정 중 그 위대한 생애를 마치게 되었는데 그가 세운 왕궁 터 인근에 커다란 석묘를 만들어 안치되었다. 이 무덤에 사용되어진 돌들은 70km떨어진 곳에서 운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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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석묘가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석묘의 견고함이 아니다. 그는 주변국을 정복했지만 그 지방의 신()을 인정하고, 풍습을 존중하며, 자치를 허용하는 등 유화정책 때문일 것이다.

 

또한, 키루스 2(고레스 대왕)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해서도 최초의 선언을 하였으며 이것들을 그릇과 석비에 새겨 남겼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자신의 군인들에게 점령지 주민들을 약탈하거나 위협하는 행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자신의 개혁정신을 전하고 점령지를 개발하려는 공공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복사본은 뉴욕의 유엔본부에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후에 칙령을 내려 바빌로니아에 의해 끌려온 유대인들을 풀어줘(구약성경 에스라서 제1), 이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준 것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이 재건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성경에도 이 일이 기록되어 있으며 페르시아 왕인 키루스 2세를 칭송하는 많은 구절을 볼 수 있다(구약성경 이사야서 제45). 이에 유대인들은 그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고 '하나님의 목자' 등으로 칭송하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일까.. 고레스 대왕의 묘에는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성지가 되어 순례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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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터 주변에서 염소를 치고 있는 할아버지.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기를 다리우스는 상인이고 캄비세스는 장인인 반면 키루스는 아버지라고 한다. 왜냐하면 다리우스는 늘 어떤 결과나 이익을 중시 여겼고 캄비세스는 거칠고 가혹했지만 키루스는 자상하게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적국이었던 그리스에서도 오랫동안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Xenophon)은 자신의 책에서 키루스 2세를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 묘사하며 '비길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세계 정복자'로 표현했다. 헤로도토스도 키루스 2세를 그의 후계자들과 비교하여 그의 뛰어남을 증명하였다.

 

메데인들은 키루스를 정복자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들과 같은 혈통의 왕으로 여겼다.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에서도 그가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고는, 말을 타고 달려와서 고레스 왕의 궁을 불태우고 나서 내친김에 고레스의 석묘를 훼파하기 위해서 왔을 때 석묘의 글이 눈에 띄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통역관이 나 고레스는 한 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를 건드리지 말아 주시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하자 알렉산더 대왕은 말에서 내려 자신이 입고 있던 왕복을 벗어 고레스의 묘에 덮어 주었다고 한다.

 

역사상 키루스 2세처럼 여러 민족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왕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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