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체헬 소툰(Tchehel Sotoun)'이란 '40개의 원기둥'을 의미한다. 궁전에는 사이프러스 나무로 된 원기둥이 20개밖에 없으나 이것이 연못에 비쳐서 40개가 된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시적인 발상이 칼의 이슬람이 아닌 예술적 이슬람의 모습의 다가온다.
궁을 들어서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것은 인도의 타지마할이다. 크기는 타지마할에 비견될 수 없겠지만 인공의 연못에 비춰지는 궁전의 모습은 꼭 타지마할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곳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한 창 보수 중이라 인공의 연못에 완전한 형태의 40개의 기둥은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이곳 역시 궁전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교회당의 프레스코 벽화처럼 화려한 벽화가 아라베스크 문양과 함께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1647년에 샤 압바스 2세(Shah Abbas II)가 자신은 물론 고관대작과 대사들의 리셉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한 전용 궁전으로 건축한 체헬 소툰 궁전의 내부는 벽면 위쪽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묘사한 6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아래 벽면에는 작은 그림들로 페르시아 시대에 있었던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들 벽화들은 금색을 사용하여 왕실의 권위와 부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궁의 내부는 1978년 박물관으로 단장하여 개장하였는데 이곳에는 사파비왕조(Safavid Dynasty)와 관련된 카펫, 도자기, 주화 그리고 군사들이 입었던 금속으로 만든 옷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윗쪽의 대형 벽화는 1611년에 투르키스탄과의 연회를 개최한 모습, 1514년 오스만과 페르시아 간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 1544년에 몽골의 왕이 이란으로 피신하여 온 그림, 1510년 사파비왕조의 이스마일 1세가 우즈베키스탄을 격파시키고 왕을 죽이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747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디르샤(Nadir Shah) 등의 왕실의 영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체헬 소툰 궁전은 내부는 물론 외벽에도 다양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외벽의 벽화는 내부의 벽화는 달리 서양화풍의 영향을 받은 듯한 화풍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당시 유럽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벽화로 네덜란드에서 온 사신이 왕실 행사에 참석했던 모습이라 한다.
한때 이곳은 불에 전소되었다가 다시 지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지만 이런 아픔 속에서도 내부의 화려한 색감과 벽화는 여전히 생동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궁을 나오면서 깜짝 놀란 장면은 입구의 훼손된 벽화를 섬세하지 않은 손길로 복원하지 않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