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 국립창극단, 10년 전으로 다시 되돌아가려나...

기사입력 2020.05.17 20:28 조회수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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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지만 욕심이다. 임기 3년 동안 다섯 바탕(판소리)은 힘들다. 작품은 전통을 고집하려고 한다. 하지만 1년에 한 작품은 현대적인 작품을 하려고 한다. 지난번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의 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겠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겠지만 재대로 우리의 소리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에 부임한 유수정 감독이 코로나19로 뒤늦게 첫 신작 춘향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앞으로 국립창극단의 방향성을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여기에 춘향의 대본과 연출을 맡은 김명곤 연출은 실험적인 작품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도 보여줄 수 있다. 창극단은 창극단이 되어야 한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라며 유수정 감독과 결을 같이 했다.

 

 

국립창극단 춘향의 김명곤 연출, 유수정 예술 감독.jpg
국립창극단 춘향의 김명곤 연출, 유수정 예술 감독

 

 

유수정 예술 감독은 1987년 국립창극단 단원을 시작으로, 창악부장, 수석요원 역임하고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을 역임하게 되었을 정도로 창극단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의 출연한 작품에서 혼란스러웠다는 이 날 말에는 과거 전통적인 창극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 전 예술 감독은 전통 판소리를 한 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럼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전임 예술 감독 김성녀(재임기간 : 2012.01.01 ~ 2019.03.11.) 기간에 선보인 작품은 한마디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연주의 <맥베스 부인>, <내 이름은 오동구>,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코카서스의 백묵원>, <숙영낭자전>, <아비. 방연>,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산불>, 어린이창극 <미녀와 야수>, <우주소리>, <패왕별희>까지 제목에서 보듯 그동안 국립창극단에서 전혀 선보이지 않은 소재의 작품들이다. 물론 판소리 다섯 마당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962년 창단 이후, 50년 간 판소리 다섯 마당을 위주로 선보여온 국립창극단의 입장에서는 파격이었다.

 

호불호가 있었다고 하지만 관객보다는 판소리계에서 그 목소리가 컷 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대가 달라진 만큼 객석도 달라졌다. 나이든 분들이 보는 공연이라는 분위기가 객석에는 젊은 층이 늘어났고 매진을 이룬 공연이 늘어갔다. 그러던 중에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프랑스 관객을 매혹시키다>, <김성녀 실험파리에서 통했다>, <파리 관객 매혹시킨 옹녀, 창극 세계화 길을 열다>,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 투어 공연>.... 등 언론은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 찬사를 보냈다.

 

과거 김성녀 전 예술 감독에 왜 이런 실험적인 작품을 계속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관객들이 또 춘향이냐, ‘수궁가야 객석에는 나이든 어르신들만 있고 젊은이들은 볼 수가 없다. 관객이 찾아오지 않은 공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나 또한 아주 젊은 층은 아니다.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창극을 보러가야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창극의 애호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전통 판소리를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관객이 많이 찾아오는 것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란 거다. 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복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중요한 행사나 명절에는 한복을 입어왔지만 점점 명절에도 한복은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한복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때 등장한 것이 개량한복이다. 그러나 이때도 논란은 있었다. 그리고 개량한복의 인기도 반짝했다. 그러나 다시 한복 붐이 생긴 것은 전주한옥마을에서 한복대여의 인기에 힘입어 이제 경복궁을 중심으로 4대궁 주변이나 북촌, 삼청도 거리에서 한복 입은 관광객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이런 풍경은 없었다. 그러자 다시 논란이 일었다. ‘이것은 전통 한복이 아니다.’라는 논란이다. 거기에 질 떨어지는 동남아에서 제작 논란이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답변을 해주고 싶다면 전통 한복을 만드시는 분들도 전통 한복을 만들어 대여사업을 통해서 한복 장려에 동참했으면 싶다. 그렇게 한다면 아마 시간당 대여비가 지금의 몇 배, 또는 수십 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도 지금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전통적인 한복 누가 봐도 아름답고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유산이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자릴 잡지 못하면 박물관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

 

창극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이 된다. 변형된 것을 한다고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형을 봐야 전통을 궁금해 하고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요즘 트롯열풍에서 보듯 한 때는 나이든 중년들이 찾는 음악이라 치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판소리도 유행가이다. 젊은 층이 찾아야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이어질 수 있다. 왜 국립창극단이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것에 대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동안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 대해 부정해서는 안된다.

 

유수정 예술 감독은 1987년 국립창극단 단원하여, 창악부장, 수석요원 역임하고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을 역임하게 되었을 정도로 창극단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의 출연한 작품에서 혼란스러웠다는 말에는 과거 전통적인 창극에 목말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 예술 감독은 전통 판소리를 한 분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립창극단 누리집에 국립창극단의 소개 글이다.

 

창극이란 무엇인가끈질기게 자문하며 오늘의 창극 만들다.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단 이래 한국 고유의 노래인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창극(唱劇)’을 선보이고 있는 국립극장 전속 예술단체이다. 창단 이후 55여 년간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부가수궁가적벽가)의 노래와 사설을 온전히 따라가는 전통적 스타일의 창극 무대를 꾸미며 애호층을 형성해왔다. 2012년 레퍼토리 시즌의 도입부터는 창극이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들을 국내외 저명 연출가 중심으로 창극화했다. 기존과는 사뭇 다른 행보로 그 어느 때보다도 창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으며 공연계 안팎으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행보와 동시에 국립창극단은 사라진 판소리 일곱 바탕의 이야기를 창극화하는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시리즈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일 뿐만 아니라, 국립창극단은 창극의 토대가 되는 판소리 보존에도 힘을 쏟아 전국 각지의 명창들이 꾸미는 <완창판소리> 무대를 30년 넘게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국립창극단은 오늘날의 다양한 관객과 소통 하는 일에 매진, 세계 속에서 우리 음악극 창극의 위상을 높이 세우고자 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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