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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실학박물관(관장 김태희,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과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이 2020년 공동으로 ‘정조대의 명재상 채제공과 실학’을 주제로 공동기획전을 개최한다.
한국사에서 18세기는 중흥과 개혁을 대표하는 시기 중 하나였다. 정치에서는 그동안 정계를 지배해 온 소모적인 당쟁을 지양하고 통합의 논리인 탕평을 추구했으며, 경제에서는 생산력을 확대하고 수취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사상과 문화에서도 북학(北學)과 새로운 문체ㆍ화풍 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동양 전체가 그랬지만, 그런 노력에는 한계가 적지 않았고, 조선은 서구가 주도한 근대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그런 18세기를 대표하는 신하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79세의 긴 생애 동안 영조와 정조라는 뛰어난 두 국왕이 이끈 국정의 중심에서 의미 있는 여러 개혁을 주도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소수파인 남인, 특히 서인에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청남(淸南)이었다. 그가 주목할 만한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성공시킬 수 있었던 데는 기득권이 상대적으로 적은 정파에 소속되었던 까닭도 일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왕권을 강화해 국정을 안정시키고 견결한 정치적 의리를 구현하는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번 특별전시는 4부로 구성하여 채제공과 실학에 대해 살펴본다. 1부에서는 채제공의 출신배경과 정조년간 재상으로서의 행적을 살펴본다. 서울경기지역 명가(名家)의 후예로서 그가 18세기 남인세력의 영수로 부상할 수 있는 배경을 전시로 풀었다. 1788년(정조12) 임금이 친히 어필로 우의정에 임명하는 ‘비망기’를 비롯하여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올렸던 상소들을 통해 채제공의 정치적 생애를 조망, 18세기 문화 중흥을 이끈 탕평군주 정조를 보필한 명재상 채제공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다.
2부는 실학과 채제공의 학문적 관련성에 주목했다. 채제공은 국가개혁을 위해 반계 유형원의 학문을 계승했고, 성호 이익의 학문을 후배학자들에게 권면했다. 또한 채제공은 열린 시각으로 서양의 학문을 실용적 차원에서 활용을 생각했다. 그가 북돋아주었던 실학자 정약용의 <죽란시사> 관련 유물과 이가환의 《금대전책》에서 채제공과 실학자와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은 채제공이 죽은 이후 직접 《번암고》라는 문집 편찬에 참여했다.
3부는 시대 변화를 읽은 뛰어난 관료로서 채제공의 활동을 다룬다. 그의 대표적인 공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신해통공(辛亥通共)’은 육의전(六矣廛) 등이 점유한 특권적 상업 독점권을 폐지하는 조치였다. 채제공은 이미 몇 차례 발의되었으나 실패를 거듭했던 통공책을 실현했고, 영세소민들의 삶을 보호해 주었다. 서울에서 상업 활성화에 기여한 신해통공의 단행은 영상작품 <신해통공-상생의 씨앗>으로 연출된다. 또한, 채제공이 총괄했던 정조의 최대 국책사업 수원 화성의 건설을 돌아본다.
4부는 ‘채제공, 그림과 기록으로 남다’라는 섹션으로 보물로 지정된 채제공 초상과 그가 죽은 후 이가환과 정약용이 교정한 채제공의 문집《번암문집》(樊巖稿, 19세기 초,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34호)의 간행과정을 전시로 연출했다. 특히 채제공의 행적을 기록한 한글필사본 《번상행록》(樊相行錄 19세기, 1책,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이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는 궁중화가 이명기가 그린 <채제공 초상 시복본>(蔡濟恭 肖像 時服本, 1792년,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보물 제1477-1호 일괄 지정), <정조가 친히 내린 우의정 임명 비망기>(正祖御筆 拜上 備忘記, 1788년,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7호) 등 30여점의 관련 유물과 3점의 전시영상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19일부터 8월 23일까지는 실학박물관에서 이어 9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이선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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