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빅 아이즈의 창조자 마가렛 킨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 《빅 아이즈》

전.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오는 9월 27일까지
기사입력 2020.07.12 16:32 조회수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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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킨, 커다란 시야, 2014

 

 

 

[서울문화인] 마이아트뮤지엄이 개관전으로 선보인 <알폰스 무하>전에 이어 큰 눈의 어린아이 그림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미국의 여성화가 마가렛 킨(Margaret Keane, 1927~)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 <빅아이 Big Eyes>전을 지난 5월부터 선보이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삶은 그러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은 눈이 커다란 아이, 모딜리아니를 연상케 하는 긴 얼굴의 여성, 동물까지 멀리서 보면 만화의 주인공처럼 귀여워 보이는 캐릭터이지만 가까이 다가서 작품과 마주하면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그녀의 삶처럼 슬픔이 가득 베여있다.

 

마가렛 킨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마가렛의 미학과 스타일이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가렛 킨은 1950-60년대 크고 슬픈 눈을 가진 아이와 동물의 그림으로 미국 미술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국 여성화가다. 그녀는 1927년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 수술로 잠시 청력이 손상되었을 때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졌었다. 그 때문인지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난히 눈을 강조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빅 아이즈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다.

 

18세에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와 트라파겐 패션스쿨에서 미술을 배운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에 조용히 그림만 그렸다. 30세의 나이에 남편 월터를 만나 재혼 한 후 큰 변화를 맞이한다. 킨은 1950-60년대 소위 주류예술이었던 추상미술에서 벗어나 갤러리와 비평가들에게는 저급한 키치 예술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으나,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1960년대 서구에서 가장 사랑받은 그림이 되었다. 그녀는 대상을 그저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어린아이의 커다란 눈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특정계층만이 누리고 있던 고급예술을 벗어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포스터나 엽서 형태의 복제품을 판매하여 대중미술의 상업화에 혁신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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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이 둘을 성공적인 화가 부부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실상은 마가렛이 모든 작품을 그렸지만 월터가 거짓 작가행세를 하며 마가렛은 고스트 화가로 지내게 되었고 유능한 영업가였던 월터는 작품과 자신 스스로를 할리우드와 공영방송에까지 진출시켰다. 이는 당시 보수적인 미국사회에서 여성작가로서 이름을 내세우지 못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이렇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중은 월터 킨을 원작자로 알고 있었다. 그 둘은 각각 다른 화풍을 가진 사랑받는 화가 부부였다. 월터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그림에는 “KEANE” 이라고 대문자로 뚜렷한 서명이, 성숙한 여성을 아몬드 형태의 짙은 눈과 달걀형 얼굴, 갸냘픈 몸으로 인물을 표현한 작품에는 “MDH Keane” 이라는 서명이 되어있었고 두 경우 모두 보통 제작년도가 함께 표기되곤 했다.

 

이 두 스타일 모두가 아내 마가렛의 작품이라는 것은 현재 잘 알려진 사실이며, 여기서 현재라고 표현한 이유는 작가가 현시점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대 후반에 들선 지금까지도 작가는 시대를 휩쓸었던 60년대 당시의 스타일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훗날 마가렛은 나는 12년 동안 거짓말을 했고, 이는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이다. 하지만 돈으로 인해 나는 진실이 가지는 가치를 배웠고 명성, 사랑, , 혹은 그 무엇도 양심을 버릴 만한 가치는 없다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원작 논쟁은 월터와 이혼 후, 원작의 논란은 법정까지 이어졌으며, 2014년 팀 버튼 감독은 마가렛과 그녀의 전남편월터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논란을 담은 영화 <빅 아이즈>를 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게 되었다.

 

 

32 증거물 #224, 캔버스에 유채, 28 X 35.5 cm, 1986.jpg
1970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작가 ‘킨'이라는 것을 발표한 후, 1986년 호놀룰루 법정에서 극적인 결전이 있을 때까지 월터와 마가렛의 진실공방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소송 도중 판사는 월터와 마가렛에게 배심원 앞에서 그림 그리기를 요구했고 논란은 정점을 찍었다. 마가렛은 판사와 배심원 앞에 53분 만에 울타리 위를 때라보고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년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 필터는 어깨 부상으로 붓으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그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마가렛은 <증거들 #224>라고 불리는 이 작품에서 1955년부터 킨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예술 작품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작품의 뒷면에는 증거물 번호인 #224가 적혀있다. 이 그림은 그녀의 시그니쳐이자 전형적인 ‘빅 아이즈’ 스타일로서, 그녀의 회화 능력에 대한 모든 의심을 없애고 진실을 말해준 중요한 작품이다.

 

 


마카렛이 월터와 헤어진 후, 하와이로 이주한 후 그녀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와이의 밝은 날씨와 종교의 영향으로 그녀는 안정을 찾았고 그곳에서 새로운 남편과 가정을 꾸리면서 작품에도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밝은 색채로 표현된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행복해보였고, 더 많은 동물과 긍정적인 주제가 드러난다. 종종 황금색 배경에 공작과 다른 이국적인 동물들과 함께 의도적으로 고급스런 옷을 입혀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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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트레이드 마크인 큰 눈의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컬러풀한 색채 속에 보다 희망적인 메시지의 동화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녀는 저는 이제 밝은색 물감으로 어린이들이 동물들과 함께 즐겁게 미소짓는 행복한 그림, 지상 속 낙원을 그립니다. 때로 슬픈 그림들도 그리지만, 세상에는 슬픔도 있으니까요.”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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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앞서 그녀의 삶을 얘기한 것은 그녀의 삶을 알고 봐야 작품을 재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킨 아이즈 갤러리(Keane Eyes Gallery)를 비롯하여 여러 개인 소장 작품들을 엄선하였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까지 다양한 화풍의 원작 130여점이 그녀의 삶의 변화에 따라 5부로 구성하여 선보인다. 이 외에도 60년대 킨 열풍을 보도한 <LIFE >의 다큐 사진과 팀 버튼의 영화 자료 등을 함께 구성하여 더욱 입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도슨트를 추천한다. 전시는 92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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