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것도 백남준 작품이었어?

주변에 만나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작품들
기사입력 2021.09.13 11:28 조회수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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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흔히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백남준은 사실 해외에서 유명세로 인해 국내에 소개된 작가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때는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에게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 가운데 백남준이 아마 최고 적임자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백남준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80년대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좌우간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길 바란다.” (백남준, 1964)

 우리가 백남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백남준도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처음에는 재밌겠지만, 나중에는 지루해질 것이다” 그래서 견딜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의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나 자신도 무수히 방문했던 곳인데 그 작품이 백남준의 작품인지 인지를 못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혹시 이 글을 보게 되면 백남준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쉽게 혹은 상설로 볼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그동안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 본다.

 

백남준 작품을 가장 깊이 있게 관람하려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하면 좋겠지만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도 백남준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상설로 볼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백남준 작품을 가장 깊이 있게 관람하려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곳은 당연 인지를 하고 방문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2008년 10월에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는 2001년, 백남준과 경기도가 아트센터 건립을 논의 하게 되었고, 백남준이 생전에 그의 이름을 딴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하고 개관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비디오 설치와 드로잉을 비롯해 관련 작가들의 작품 248점, 비디오 아카이브 자료 2,285점, 백남준과 관련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1) 백남준, 〈TV 정원〉, 1974 (2002),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jpg
백남준, 〈TV 정원〉, 1974 (2002),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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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기념관

이곳은 2017년 3월 10일 개관한 곳으로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간의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한옥 집터로 2014년 국토교통부에서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지정한 창신숭인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는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의해 기념관으로 조성되어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념관은 28평 남짓한 단층 한옥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도록 리모델링됐고, 내부에는 전시실 외에도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백남준 작품을 감상할 수는 없지만 현대작가들이 백남준을 기억하고 헌정하는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1984년, 삼십여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한 백남준의 기억과 상상의 여정을 따라가는 형식의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전으로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방>, <백남준에의 경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53길 12-1(흥인지문역 부근) / 관람시간 화~일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설·추석연휴 휴관]

 

 

백남준기념관 외부2.JPG
백남준기념관

 

 

백남준기념관 내부 2.JPG
백남준기념관 내부

 

 

 

소마미술관 백남준 비디오아트홀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소마미술관에서는 총 6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백남준 비디오아트홀을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올림픽공원 내 몽촌해자 수변 무대 앞에는 ‘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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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olympic laser water screen 2001, 30X1.0X28 (m)/ 레이저, 분수/ 2001 [사진제공=소마미술관]

 

 

백남준 유일의 야외 설치 레이저 작품으로,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마트와 태극기의 4궤(건‧곤‧감‧리) 문양, 하늘을 운행하는 별들의 움직임과 그 흔적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분수를 스크린 삼아 첨단과학기술인 레이저로 구현되는 선들의 향연은 자연(물)과 기술(레이저)의 조화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해낸다.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인류의 번영과 화합, 평화와 공존, 특히 한반도와 한민족의 공동 번영에 대한 염원을 현란한 빛과 조명, 수막분수의 리듬에 담아냄으로써 축제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백남준과 노만 발라드의 협력자품 200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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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golden crown [180x180x300(cm)/ 모니터, 스틸, 네온/ 2004] [사진제공=소마미술관]

 

올림픽공원 내에 고대 백제의 유적지인 몽촌토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에 착안하여, 백남준은 백제 금관을 이 작품의 소재로 삼아 전통적 소재와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결합함으로써 동양과 서양,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백제 금관은 대칭적으고 단순한 신라 금관과는 달리 자유로운 구도 위에 비대칭의 절묘한 공간구성이 조화를 이루어 백제만의 우아하고 섬세한 특징을 담고 있다. 이는 전통과 현대를 잇고 문명과 테크놀러지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궁극적으로 삶과 예술을 하나로 만들고자 했던 작가적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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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트론megatron [730x390(cm)/ 모니터/ 2004] [사진제공=소마미술관]

 

메가트론은 150대의 TV모니터를 동원, 컴퓨터로 제어되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비디오와 컴퓨터 그래픽이 탁월한 합성을 연출해낸 작품이다. 150대의 모니터가 하나의 대형 화면을 만들어 내고 그 위에서 스포츠 경기의 역동적인 장면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빠르게 반복, 변화하며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영상을 보여주는 모니터들은 각각이 독립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상의 모자이크가 하나의 거대한 비디오 벽으로 표현됨으로써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 또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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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coubertin [400x550x550cm/ 모니터, 스틸, 조명/ 2004] [사진제공=소마미술관]

 

백남준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쿠베르탱을 주제로 소마미술관 옥외/옥내에 작품을 제작하였다. 쿠베르탱이 스포츠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 했다면 백남준은 예술로 그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백남준은 여러 대의 모니터를 배열하여 인물 형상을 만들고 네온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감성과 이성의 교차, 인간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는 백남준의 작업세계를 작가 특유의 위트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와 예술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세종문화회관에 상설로 전시된 백남준 작품은 혹시 이곳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셨다면 보았을 것인데 대부분 무심코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로비 좌측벽에서 수많은 모니터로 이뤄진 것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이 백남준의 ‘서울랩소디’라 작품으로 이곳에 영구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또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양쪽에는 2대의 악기 모양의 비디오 설치작품 있다. 이 작품 또한 백남준의 작품으로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1999년 새천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곳에 전시된 2점의 작품은 21세기예술경영연구소가 기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로비에 영구설치 하게 되었다. 의인화된 호랑이 모습의 월금과 첼로가 좌·우측에 세워지고 그 사이에 다양한 크기의 TV 모니터 1백여 대가 배치된 이 조형물은 한민족 문화의 상징성을 표출하고 새 생명의 탄생 등 새천년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백남준 서울랩소디 전경.jpg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백남준 서울랩소디 전경

 

‘서울랩소디’(2001)는 TV를 이용한 일종의 비디오 조각이다. 중앙 150개, 좌우 65개씩 총 280개의 모니터로 구성되었으며, 중앙 모니터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작가의 7가지의 DVD 영상이, 좌우 64개씩의 모니터에는 ‘체이스 5’, 좌우 정중앙의 1개씩의 모니터에는 ‘누드’가 상영된다. 백남준에게 TV는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로 회화의 물감처럼 작품 속 영상에서 서울의 역동적인 도상과 담겨져 있다.

 

 

  
왼쪽, 호랑이는 살아있다. (동양 전통악기 월금) 오른쪽, 호랑이는 살아있다.jpg
(좌)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월금)>, 237x571cm, 비디오설치, 2000 (우)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첼로)>, 200x567cm, 비디오설치,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세계 73개국 방송사가 공동 제작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2000 Today’에 MBC가 소개한 한국을 대표하는 영상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한국의 프로젝트 제목은 ‘DMZ 2000’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이 프로젝트에서 백남준은 “한국인들이여, 호랑이처럼 강하고 자신 있게 새 세기를, 새 밀레니엄을 맞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제작하였다. 당시 백남준은 21세기의 디지털 혁명과 통일 한국에 대한 전망과 기원을 담은 글을 특별 기고할 정도로 이 작품 제작에 큰 의미를 두었다. 총 45분 분량의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밤 12시 정각에 임진각 평화의 종이 21번 울리고 난 직후에 평화누리 공원에서 상영되었다. 그 영상이 바로 이 비파와 첼로를 형상화 한 멀티모니터로 된 2점의 대형 비디오 조각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방송을 통해 송신된 분량은 국내 14분, 세계 3분으로 압축되어 전 세계의 방송과 인터넷으로 소개되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관 3부에는 지난 2일부터 소장품인 <로봇>과 <제1장이 제 11장보다 낫다> 2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로봇>은 텔레비전을 주로 이용하여 만든 기존의 로봇 시리즈와는 다르게 아이들의 장난감인 로봇 피규어로 만들어져, 다른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백남준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위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제1장이 제 11장보다 낫다>는 2019년도 초까지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로봇, 제1장이 제11장보다 낫다.jpg
<로봇> 가로 150.0, 높이 190.0, 세로 43.0(cm) 백남준(白南準)이 로봇 피규어와 텔레비전을 소재로 제작한 예술 작품 / <제1장이 제11장보다 낫다> 가로 66.0, 높이 175.0, 세로 66.0(cm) 백남준의 자연친화적 작품 중 하나로 생명을 상징하는 원형인 달걀을 소재로 함 [사진제공=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다다익선>이다. 지금은 복원 중이여서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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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다다익선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은 백남준(1932~2006)의 유작 중에서도 최대 규모(시알티(CRT:Cathode Ray Tube)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동양, 삼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자 논란 아닌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하면서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상돼 1988년 완성되어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에 따른 화재발생 위험 등 안전성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가동 중단 이전에도 2010년 4월 158대, 같은 해 11월 86대, 2012년 79대, 2013년 6월 100대, 2014년 4월 98대, 2015년 320여 대의 등 9차례 브라운관 수리 및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

 

 

다다익선 설치를 구상하는 백남준 (1987).jpg
다다익선 설치를 구상하는 백남준 (1987)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기공식에서 이경성과 백남준(1986년).jpg
다다익선 기공식에서 이경성과 백남준(1986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2월 <다다익선> 상영을 중단한 이후, <다다익선>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지대하고,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독일 ZKM, 미국 MoMA, 휘트니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기관 전문가 40여 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를 조사하였고, CRT 모니터를 대체 가능한 신기술의 적용 여부도 검토했지만 의견은 분분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 끝에 2019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탑재된 원형 유지를 기본 방향으로 보존하며, 2022년 전시 재개를 목표로 3개년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방향을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방명록에 남긴 백남준의  서명.jpg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방명록에 남긴 백남준의 서명 [제공=국립현대미술관]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적인 예술가입니다.” 2002년 무렵 경기문화재단에 보낸 친필 편지에서

백남준(1932-2006)은 1956년 일본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과 음악학, 미술사를 수학했다. 조지 마키우나스, 요제프 보이스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플럭서스 운동에 가담해 퍼포먼스를 펼쳤고,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을 모색하다가 1963년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비디오아트를 시작했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비디오를 조각, 설치 작품으로 결합해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982년 《백남준》(휘트니미술관, 뉴욕, 미국), 1992년 《백남준·비디오 때·비디오 땅》(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0년 《백남준의 세계》(구겐하임미술관, 뉴욕, 미국), 2001년 《백남준의 세계》(구겐하임미술관, 빌바오, 스페인), 2019년 《백남준》(테이트모던, 런던, 영국) 등의 개인전 및 회고전이 열렸다. 1981년 베를린 미술 아카이브가 제정한 빌 그로만 상을 수상했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1999년 독일 저널 『카피탈』 선정 세계 100대 작가 중 8위에 선정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00년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대 중반 발병한 뇌졸중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이어가다가 2006년 마이애미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비디오아트지만, 그가 시대를 초월해 지속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만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안에서는 인간과 기술, 음악과 미술, 신체와 미디어, 관념과 행위 등 여러 대립항들이 경계 없이 뒤엉킨다. 그는 퍼포먼스 작업을 기록한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고, 비디오 작품이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처럼 위성기술을 이용한 TV 생방송으로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고자 했다. 타고난 감각과 도전정신에 글로벌한 시각과 경험이 더해져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백남준은 예술을 통해 전 지구적 소통을 추구한 선구자로서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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