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덕목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가 만들어낸 ‘문자도’와 오늘날의 문자도

현대화랑,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기사입력 2021.10.05 11:36 조회수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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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우리의 민화를 알리기 위해 지난 2018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에서 화조를 재조명해, 민화계와 일반 애호가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 현대화랑이 그 후속 전시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 <>과 같이 한자와 사물을 합하여 그린 문자그림이 대부분 존재한다. 하지만 유교 이념의 덕목인 조선시대에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8자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이처럼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문자도는 18세기에 성행하며 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런 문자도는 19세기 후반에는 장식화의 경향을 보이며 점차 조선 시대 생활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각 지방의 문화와 결합되어 지방의 예술로 확산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유교의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를 그린 독특한 문자도에 주목, 빼어난 조선 시대 문자도 11점과 함께 문자도를 새롭게 재해석한 현대미술가 박방영, 손동현, 신제현 3인의 작품 13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대부분 작자미상으로 알려진 민화 중에서도 갑오춘서(1894)’라는 제작시기와 조선의주에 사는 장인선이라는 제작자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어 주목받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로 시작한다. ()자와 수()자를 번갈아 100번을 반복해 구성한 이 작품은 오래 사시고 복을 누리시라는 수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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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 갑오춘서라 명명된 백수백복도는 교화목적의 옛 이야기가 획과 어우러진 문자그림들은 세종 13년(1431) 왕명에 의해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와 유교의 전유물인 ‘시경(詩經)’ 속 소재들의 세련된 승화이자, 누구나 지켜야 했던 당대의 규율양식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8폭 병풍, 종이에 채색, 각 61×36cm.jpg
19세기 후반, 8폭 병풍, 종이에 채색, 각 61×36cm

 

   

 

2층 공간에는 제주도의 자연과 토속적인 문화가 적극 반영된 <제주문자도>를 모아 선보이고 있다. 제주도식으로 변용된 제주문자도는 조선시대 유교문자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각 지역의 토속적인 문화와 결합하여 지방예술로 자리매김한 양상을 보여준다. 상단과 하단에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담긴 건물 및 기물이, 중앙에는 새나 물고기의 형상을 띤 문자가 바다++하늘을 연상시키는 3단 구성을 취하는 배치가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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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자도, 19세기 말-20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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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자도, 20세기 전반

 

 

문자도의 지역별 유행에 대해 정병모 교수(한국민화학교 교장 / 경주대 특임교수)문자도는 유교문화가 발달한 서울, 강원도(강릉을 중심으로 삼척, 동해), 경상도(안동을 중심으로 춘양, 영주, 봉화) 등에서 성행했는데, 무속신앙이 강한 제주에 유교문화가 뿌리내리면서 문자도 병풍이 유행했다.”고 한다.

 

또한, 문자도의 창의적인 해석을 모색한 33색의 현대작품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방영은 인간 삶의 이야기를 일필휘지의 필법과 상형그림으로 그려내었고, 손동현은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소재와 그라피티와 같은 현대적인 주제를 결합시켜 동양화의 관습적인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또한, 신제현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화조문자도를 오마주한 민화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민화의 소재에서 오는 해학성과 자유로움을 단순히 모방의 단계를 뛰어넘어, 형식(소재주의)이 아닌 창작과정 그 자체의 미학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박방영, 인연, 2019, 장지에 혼합제료, 200×290cm.jpg
박방영 <인연>, 2019, 장지에 혼합제료, 200×290cm / 우리가 만난 동식물과 인간관계의 정초를 ‘하늘의 연[天緣]’으로 해석한 상형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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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의 ‘I.O.P(Ink on Paper)’ 연작들은 전통회화의 재료인 먹을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캘리그래피 잉크와 아크릴릭 잉크로 대체시킴으로써, 보이는 시선 뒤에 감추어진 창작의 어제와 오늘을 인물화라는 텍스트로 녹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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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현 <문자경>, 2019, 캔버스에 아크릴 / 유려한 디자인과 세련된 양식 사이를 오간 한 천재민화가의 작품을 병풍에서 떼어낸 ‘일종의 오마주 문자도’로 재해석 하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문자도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prototype)에서 대상을 생략하거나 과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표현이 풍부하다. 이번 전시는 문자도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던 방식을 탈피하여, 눈의 직관에 따라 근대미술의 독특한 미감을 보여주는 창의적 스타일을 강조한 형태와 재미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비하고 독특한 개성미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과거 민화, 문자도에 나타난 다양한 표현들이 시대양식으로 읽히기보다 비주류 미술사로 폄하되었다. 그러나 민화의 예술성을 먼저 알아본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그는 조선민화는 현대미학이론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가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림같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미지의 미의 세계가 있다. 이 그림이 세계에 알려지는 날이 오면 세상은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인식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초기 민화연구자들(조자용, 이우환 등)의 노력으로 80년대 민중미술 · 민족운동의 부흥과 함께 가시화되어 민화야 말로 참된 우리 그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조선 시대 민화임에도 현대적인 화조화 패턴의 타이포그래피를 연상시키는 문자도를 통해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민화의 시대성과 예술성은 물론 한국 현대미술의 모태로서의 민화를 재확인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1031일까지 진행된다. (입장료 3천원)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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