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가야문화권에서 처음 5세기 중국제 최고급 연꽃무늬 청자 출토

기사입력 2021.11.15 16:29 조회수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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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말이산고분군 75호분 출토 중국제 연꽃문양 청자.jpg
함안 말이산고분군 75호분 출토 중국제 연꽃문양 청자

 

 

 

[서울문화인] 함안 말이산고분군 75호분의 발굴조사(조사기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중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연꽃무늬 청자그릇이 발굴되었다. 가야문화 내에서 중국제 청자가 발굴된 것은 처음으로 백제문화권과 가까운 남원 월산리 고분군에서 계수호(鷄首壺, 닭머리 모양을 본뜬 주둥이가 달린 동진 시대 그릇)가 발견된 예는 있지만, 특히 가야의 중심권역에서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발굴이다.

 

이번 발굴조사는 말이산 고분군의 체계적 정비와 보존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가지 능선 끝자락에 있는 75호분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는데, 지름 20.8m, 높이 3.5m의 봉분을 걷고 11매의 덮개돌을 들어내자 길이 8.24m, 너비 1.55m, 높이 1.91m의 대형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동서로 긴 사각형 형태의 돌덧널무덤은 가운데 무덤 주인의 공간을 기준으로 서쪽에 유물 부장공간을, 동쪽에는 순장자를 배치하는 말이산 고분군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매장주체부 노출 상태(덮개석 제거 전).jpg
매장주체부 노출 상태(덮개석 제거 전)

 

 

유물 출토 현장 모습.jpg
유물 출토 현장 모습

 

 


연꽃무늬 청자는 서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무너진 돌덧널무덤의 벽석(얇은 널빤지로 다듬은 장식용 돌)을 들어내자 구경 16.3cm, 높이 8.9cm, 저경(底徑, 그릇의 밑바닥 지름) 7.9cm 크기의 거의 완형에 가까운 형태로 출토됐다.

 

안쪽 8, 바깥쪽 8개의 연꽃잎이 겹쳐져 청자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오목새김과 돋을새김(음각·양각기법)을 모두 사용하여 입체감이 있으며, 이러한 형태는 5세기 중국 유송(劉宋)대 청자 그릇의 대표 형태로 중국 출토품과 비교해도 최상품으로 여겨진다. 국내 유사 사례로 천안 용원리 고분군 C지구 1호 석실분에서도 출토된 바가 있다.

 

 

천안 용원리 C-1호 석실분 01.jpg
천안 용원리 C-1호 석실분

 

 

풍납토성 197번지 다-38호 수혈 01.jpg
풍납토성 197번지 다-38호 수혈

 

 


또한, 중국에서 출토된 남조의 송()402(영초 원년(永初 元年) 출토품과 474(원미(元微) 2) 출토품과 비교·분석한 결과 제작 시기는 474년을 전후한 시기인 5세기 중후반 경인 것으로 추정했다.

 

 

남조 송(宋) 영초 원년(420년) 출토(위),  원미 2년(474년) 출토(아래).jpg
남조 송(宋) 영초 원년(420년) 출토(위), 원미 2년(474년) 출토(아래)

 


이와 함께 돌덧널무덤의 북쪽 장벽에서는 말이산 고분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인 목가구시설(돌덧널무덤의 장벽과 단벽에 나무기둥을 걸어 무덤 내부를 보강하는 시설)의 흔적도 확인되었고, 큰 칼 2, 쇠창, 쇠도끼, 금동장식 화살통, 화살 등의 무기류와 말갑옷, 등자(鐙子, 발걸이), 안교(안장), 기꽂이 등의 말갖춤새 일괄, 금동제 허리띠장식, 큰항아리,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 50여 점의 토기류도 함께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과 유구를 볼 때 무덤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라가야 최고지배층 묘역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중국 남조(南朝) 최고급 청자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5세기 후반 중국 남조(南朝)와 아라가야가 교류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가라국왕 하지가 남제(南齊, 479~502)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고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작위를 받았다는 <남제서(南齊書)>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기록에서 기존의 대가야를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라국왕 하지(加羅國王 荷知)’를 아라가야 왕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본다.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아라가야의 위상과 가야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굴됨에 따라 가야사 조사연구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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