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보존처리로 되살아난 성제묘의 서울유형문화재 ‘관우 부부 초상’

서울역사박물관,‘성제묘 무신도-관운장 부부 초상’원형 복원
기사입력 2022.01.04 14:15 조회수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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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동묘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는 관우(關羽)의 영을 모신 사당이다. 관우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지만 중국의 장수를 모신 사당이 우리나라에 세워진 것은 임진왜란 때 관우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 군을 도왔다 하여 명나라 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하여 1601(선조 34)년에 준공되었다. 단층 정자형(丁字形)의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이 사당은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관왕묘 전경.jpg
동관왕묘 전경

 

 

동관왕묘 관우장비유비 목제좌상(전경).jpg
동관왕묘 관우장비유비 목제좌상(전경)

 

 


이처럼 관우신앙은 임진왜란 시 명군을 통해 유입되어 선조대에 관우의 사당인 남관왕묘와 동관왕묘가 세워졌고, 이후 관왕묘가 안동, 성주, 강진 등 여러 지방에도 세워졌다. 고종 대에는 전주, 강화 등은 물론 한양의 북관왕묘와 서관왕묘가 세워졌다. 이곳에는 왕이 직접 의례에 참여하였고, 고종년간에 이르면 국가제사에 편재되었다. 20세기 초부터는 기복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민간에 확산되어 관왕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성제묘 무신도관운장 부부 초상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된 성제묘무신도관운장 부부 초상(聖帝廟 巫神圖關雲長 夫婦 肖像)’이 종이의 산성화, 오염물질에 의한 얼룩, 장황의 일부가 개장 현상이 들어나 이에 대한 정밀조사를 시작, 1년여 간의 과학적 보존처리를 거쳐 제작 당시의 원형으로 최근 복원을 완료했다.

 

성제묘 무신도관운장 부부 초상’(이하, 관운장 부부 초상)은 서울특별시 중구 방산동에 위치한 관우(關羽)의 사당인 성제묘에 있던 무신도 중 한 점으로 관우신앙이 절정에 달한 19세기 말에 궁중화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성제묘 무신도는 모두 10점으로, 201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된 후, 2018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성제묘 무신도의 장기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수립하고자 2019년에 성제묘 무신도의 보존상태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방산시장_성제묘 제사.jpg
방산시장_성제묘 제사

 

 


성제묘 무신도관운장 부부 초상의 가치와 특징

 

국가주도의 관우신앙이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관우도는 10여 점 내외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관운장 부부 초상은 종이에 천연안료로 채색되어 있는 초상으로 관우는 붉은 얼굴, 긴 수염, 길게 찢어진 눈으로 표현되었으며,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익선관, 붉은 곤룡포를 입고 부인과 함께 한 화폭에 그려졌다. 특이한 구도와 화려한 채색 기법 등이 돋보이는 유물이자 조선시대 관우신앙 무신도를 이해할 수 있는 민속학과 미술학적 가치도 높은 유물이다.

 

 

보존처리 전.jpg
보존처리 전

 

 

보존처리 후.jpg
보존처리 후

 

 


과학적 보존처리를 통해 원형 복원

 

관운장 부부 초상은 인수 당시 종이의 산성화, 가로방향으로 꺾임이 많이 확인되었으며, 오염물질에 의한 얼룩과 촛농 부착, 접착제 약화로 인한 들뜸 현상 등이 있었다. 특히, 장황의 일부가 개장되어서 긴급한 보존처리와 제작 당시의 원형으로 복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리고 안료 분석 결과 회화 중 다소 격이 낮은 무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채색 재료 중 고급 안료인 석록과 석청이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석록과 석청은 고가의 안료로 주로 궁궐과 관련된 채색화나 양반들의 초상화 채색에 주로 사용된 안료로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그 시기의 최고급 안료가 사용된 것은 궁중화원에 의해 그려진 것이 추정이 아닌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권수진 기자]

 

 

 

 

 

 

 

 

 

[권수진 기자 ksj93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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