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2008년 국내에서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그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공교롭게 한 예술가였다. 바로 그가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 1923-1997)은 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 등과 함께 팝아트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 미술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통해 각인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 많은 전시에서 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앤디 워홀이나 장 미쉘 바스키아 처럼 오롯이 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전시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국내 첫 개인전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가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명작가였던 리히텐슈타인이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디즈니 만화 영화 <미키 마우스>를 보던 아들이 건넨 “아빠는 저 그림만큼 잘 그리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라는 질문에
미키 마우스를 좋아한 아들을 위해 그려준 한 점의 그림이 무명의 예술가를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이 바로 디즈니 만화 주인공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이 등장하는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 1961년)’이다. 이 작품은 실제 만화책처럼 말풍선을 그려 넣고 대사를 적어놓았고 인쇄한 것처럼 보이도록 인쇄물을 확대를 때 생기는 점(dot)까지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이 ‘벤데이 점’ 기법은 당대 예술계에 혁신을 일으켰으며, 다음 해인 1962년 뉴북 레모 카스텔리(Leo Castelli)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개막도 하기 전에 그의 작품들은 영향력 있는 소장가들에게 모조리 팔리는 일이 발생했다.
‘점’. 그의 모든 회화는 수없는 붓자국에 의해 완성된다.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특징이라면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dot)들이다.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하는 망점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해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의한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 어떠한 개성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은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와 구별되기도 한다.
하지만 1965~1966년 사이에는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들을 제작하였다. 이후에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위시한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과 아르 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것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작업방향이 확대되었고 표현방법도 풍부하게 더 자유로워지며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할 정도로 그의 작품의 소재는 동시대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재였다. 당대 미술계는 추상 표현주의가 주력이었지만 그는 만화, 광고라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두꺼운 검은 윤곽선, 과감한 색감, 의성어가 쓰여진 말풍선 등 그만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기법을 이용한 금발의 백인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은 여전히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켜 버렸다.
이번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은 스페인 아트콜렉터 Jose Luiz Ruperez의 콜렉션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유명작인 <절망 Hopeless>, <Whaam!>을 비롯하여 ‘붓 자국 회화 연작’,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협업, 공예품 등 리히텐슈타인이 작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작업했던 130여개의 작품과 함께 유명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된 작품 이 외에도 회화, 조각, 심지어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까지 탐구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티스트라 칭한다. 가장 미국적인 방식의 매스미디어를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담아내며 미국과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예술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국내 첫 단독전 ‘눈물의 향기’는 2022년 4월 3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1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