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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번영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에서 번영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허강 유역의 황허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른 문명의 발상지보다 접근이 쉽지가 않는 곳이다.
이는 그 지역의 정치적 상황도 있지만 기후의 변화로 사막화로 인해 다른 지역과 달리 현재까지 그 문명의 꽃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유물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국내에서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었다.
지난 22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최초로 상설전시관에 많은 유물은 아니지만 ‘메소포타미아실’을 신설하게 되어 인류 최초의 문명의 발상지의 귀중한 유물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19년에서 2022년까지 운영한 이집트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인 세계도자실에 이어 개최하는 세 번째 주제관 전시로 ‘이집트실’이 미국 브루클린박물관 소장품으로 개최된 전시였다면 이번 ‘메소포타미아실’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최근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국내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전 인류 최초의 문명의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맡은 주역이 수메르 인이다. 이들은 도시화에 필요한 내화도 점토 벽돌의 발명하였으며, 농업을 위한 쟁기, 수레바퀴가 발명되었고 곱셈과 나눗셈,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을 알아내는 등 수학 분야를 비롯하여 여러 법과 제도가 이 지역에서 출발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문자(쐐기 문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 문자가 19세기 해독되면서 우리는 6000년 전 문명화된 첫 인류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해독된 문자에 의하며, 그 시대의 삶이 지금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이번 메소포타미아실은 기원전 3000년 초기 수메르 인이 이룩한 문명의 유물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 이전 500년대까지 유물을 아우르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만큼 당시 생활, 상업, 관계수로 등을 기록한 쐐기문자 점토판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신과 신전 건축, 의례 행위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 사용되는 지명과 인명은 한국고대근동학회와 협력하여 악카드어 원어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되어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달라 익숙하지 않지만 글 또한 전시에 맞춰서 작성하였다. 참고로 악카드어는 수메르 시대 이후 이곳을 지배한 셈족이 쓰던 언어로 이후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용어로 사용된 언어이다.
전시는 총 3부로 1부 ‘문화 혁신’에서는 메소포타미아가 이룬 대표적인 문화 혁신인 쐐기문자의 창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이 발명한 문자는 교역과 거래의 내용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문자 창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원통형 인장도 발명되었다. 전시에는 13점의 쐐기문자 점토판 문서와 11점의 인장을 만마볼 수 있으며, 더불어 각 점토판의 내용과 해설을 담은 키오스크(터치스크린)가 설치되어 작은 점토판에 빽빽이 담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읽어볼 수 있다.
2부 ‘예술과 정체성’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인장 역시 인장의 소지자가 섬기는 신과 글을 도안에 넣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우르의 왕실 묘에서 발굴된 장신구들은 착용자의 신분을 드러내거나 죽은 자가 지하세계에 내려갔을 때 힘을 보태기 위해 고가의 수입 재료를 포함한 재료의 물성에 따라 맞는 형태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3부 ‘제국의 시대’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두 제국인 신-앗슈르(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약 911~612년)과 신-바빌리(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약 626~539년)의 대표적인 예술을 다루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반기에 등장한 두 제국은 정복 전쟁과 강력한 통치력 못지않게 왕성한 예술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신-앗슈르 제국은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지역에 등장했던 히타이트로부터 재빨리 철기 문화를 받아들여 우수한 철제 무기와 기마대로 시리아 · 팔레스타인 지방을 거쳐 이집트에 이르는 오리엔트 전 지역을 통합하며,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 가장 큰 제국을 이뤘지만 정복지의 백성을 가혹하게 다뤄 수많은 저항에 부딪쳐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는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 군인> 등 당시의 그들의 정복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석판 부조를 만나볼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기억되는 고-바빌리(기원전 1895년~기원전 1595년)을 계승한 신-바빌리(신-바빌로니아)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시기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바빌로의 공중 정원’, 성경 속 바벨탑의 모델인 ‘마르두크의 지구라트’, 영화 ‘이터널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쉬타르의 문’까지 벽돌 제작 기술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도 바빌리(바빌론)에 당시 세계가 경탄할 만한 건축물을 세웠다.
이번 전시에 가장 볼거리라면 메소포타미아 바로 이쉬타르 문의 행렬 길을 장식했던 <사자 벽돌 패널> 2점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에 소개되는 이 두 문명이 이룩한 건축과 석판 부조의 예술은 뒤이어 등장한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손바닥 안의 작은 점토판에 세밀하고 집요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그들의 삶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오늘의 우리 이야기와 놀랄 만큼 닮아 있어 수천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기록의 중요성을 세삼 느끼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 세계문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24년 1월 28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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