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뒤뷔페와 예술로 우정을 쌓은 자크 빌레글레를 만나다.

소마미술관 특별전《뒤뷔페》展, 2023년 1월 31일까지
기사입력 2022.10.26 20:24 조회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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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2차 대전 후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으로 대변되던 당대 세계미술 흐름 속에서 세계 미술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미술은 침체에 빠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사조인 앵포르멜미술을 개척한 뒤뷔페는 파격적인 예술실험과 독창적 스타일로 유럽의 자존심이자 당시 서구 미술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구상과 비구상을 초월하여 모든 정형을 부정하고 새로운 조형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가공되지 않은 날것, 원초적 가치를 추구하여 아르 브뤼(Art Brut,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 개념을 창시하였다. 또한, 여러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 평면적인 콜라주와 구분하기 위해 아상블라주(Assemblage)’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모으기, 집합, 조립이라는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을 말한다. 용어의 기원은 피카소로 보고 있지만, 1954년 장 뒤뷔페가 콜라주의 구별을 위해 풀 먹인 종이 와 여러 물질들로 이루어진 작은 인물상을 지칭한 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소마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와 올해 6월 향년 96세로 타계한 자크 빌레글레(Jacques Villeglé, 1926-2022) 사이의 서신교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획된 전시로 두 예술가의 편지는 2021<뒤뷔페 빌레글레, 서신교환 1975-1985. 도시전설>이라는 뒤뷔페 재단의 전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작고한 자크 빌레글레가 생전 마지막으로 준비한 회고전이기도 한 전시인 만큼 뒤뷔페의 전 생애를 조망한 작품(67)들뿐만 아니라 빌레글레(32)의 작품도 함께 소개되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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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Loreau ©Archives Fondation Dubuffet, Paris / ADAGP, Paris/SACKS, Seoul, 2022

 

나는 50년대에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열망을 포기했었다.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된 예술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고 더 이상 그 세계에 맞추려는 열정을 상실했다.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랑했고 내 유일한 욕망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예술작품이란 존재 저 깊숙한 곳에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투영이 일어날 때 비로소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예술의 창작 과정을 오직 이 아르 브뤼안에서만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장 뒤뷔페

 

뒤뷔페는 아카데믹한 교육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하며 파리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6개월간 공부한 것 외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41세까지 가업을 이어 포도주 상인으로 살다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전통적 미술 양식을 거부하고 서구문명이 맹목적으로 좇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회화 재료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어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1950년대 파리에서는 회화적 아방가르드가 추상 회화에 의해 나타났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었다.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타이포그래피와 벽보가 탐험해야 할 길처럼 보였다.”-자크 빌레글레

 

빌레글레는 1960년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 운동으로 신사실주의라 불리는 누보 리얼리즘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1947생말로에서 발견된 물체(철선, 생말로의 대서양 옹벽에서 나온 벽돌)를 수집하여 처음으로 미술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4912, 그는 거리에서 찢어진 광고 포스터에 그의 작품을 집중, 거리의 마구 찢어진 포스터들을 수집해 <벽의 외피> 작업의 핵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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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뷔페와 빌레글레

 

 

1974, 뒤뷔페와 빌레글레와의 만남

뒤뷔페가 1975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CNAC에서의 자신의 전시를 위해 디자인한 포스터가 훗날 퐁피두 센터가 세워지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 자크 빌레글레는 동네를 산책하다가 장 뒤뷔페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비회화속의 회화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그의 포스터 한 장을 떼어냈다. 그는 19752월과 12월 사이에 제작된 40여개의 찢어진 포스터를 제작하며 뒤뷔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물이 된다. 이 포스터는 빌레글레가 10년 후인 1985년에 렌느 도시의 문화회관에서 <우를루프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게 되면서 연결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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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자크 빌레글레, 모리스 컹탕 광장1975년 4월 4일 Place Maurice Quentin Franois Poivret / (우)장 뒤뷔페, 시골에서 걷기 Marche en campagne, 1974_ 1975년 전시포스터에 사용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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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뒤뷔페의 앵포르멜 시기의 초기작부터 그의 일생 최대 프로젝트인 우를루프연작은 물론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잘 알려진 쿠쿠바자까지 5(<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우를루프(L’Hourloupe)‘ 연작>, <우를루프의 귀환, 뒤뷔페와 빌레글레의 만남>, <우를루프의 귀환, 뒤뷔페와 빌레글레의 만남>, <앵포르멜의 선구자 장 뒤뷔페>,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 뒤뷔페의 이야기>)로 나눠서 소개한다. 특히 그의 작업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포스터 도안가 뒤뷔페를 다루면서 어떻게 뒤뷔페의 포스터 중 하나가 25세 어린 자크 빌레글레의 고유한 시리즈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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