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기사입력 2022.11.01 15:13 조회수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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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트 ㅣ제 르브룅 작, 1778년.jpg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작, 1778년

 

 

 

[서울문화인] 최근 들어 전시의 경향은 고전 회화나 유물중심의 전시보다는 근현대 작품이나 혹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이미지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 매혹의 걸작들특별전은 유럽 명화에 목말라 있던 관람객에겐 담비와 같은 전시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첫 날부터 관람객의 줄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189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조선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30주년을 기념,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전시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600년 가까이 중앙 유럽 대부분과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일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

600년 가까이 유럽사에 굉장한 영향력을 준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세 가문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가문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를 알린 카를 5,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트아네트,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뮤지컬로 익숙한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도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까지 근대사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다.

 

 

막시밀리안 1세 초상.jpg
막시밀리안 1세 초상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스 황후.jpg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스 황후

 

 

참고로, 뮤지컬 속 엘리자베스(암살)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설립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이며, 루돌프 황태자(자살)는 그의 외아들이다. 또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냇동생 카를 루트비히의 장남이며, 멕시코 황제로 1867년 멕시코 저항군에 의해 처형된 막시밀리안 1세도 요제프 1세의의 동생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1916년까지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최장 재위하였으나, 불행한 가족사를 그대로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0세기 무렵 스위스의 작은 백작 가문으로 시작하였으나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와 공국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 지방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에 편입시켰다. 1495년에는 그의 아들 필리프와 스페인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자 후아나의 결혼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 새롭게 발견된 아메리카 영토까지 합스부르크의 영향 하에 놓이게 하였다. 1515년에 자신의 손녀와 손자를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 계승자들과 결혼시키면서 3세대 만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 제국 이후 가장 거대한 유럽 제국을 확장하고 통합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카를 5(1500-1558)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면서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Let others wage wars, but you, happy Austria shall marry."(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하라)

 

합스부르크 왕조가 어떻게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결혼동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가족 간의 근친혼이었다. 조카와 삼촌, 엄마 동생과 고모의 아들, 여동생 딸, 이들은 모두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결혼 상대자였다. 초기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러나 수백년 간 이어진 이런 근친혼은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하나로 작용했다.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흔히 합스부르크립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립 유전병의 특징은 거대한 턱과 낮은 지능, 그리고 면역력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후대에 갈수록 대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유전병으로 유아사망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대를 잇지 못하면서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물려주게 되면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이 왕가를 이었으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발이 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더 이상 근친혼이 사라지면서 합스부르크립은 점차 사리지게 되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기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 간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그들이 수집한 예술품

빈미술사박물관은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으로 1858, 프란츠 요제프 1(1830-1916)가 황실예술품 컬렉션을 수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 등 고대유물부터 19세기 회화까지 방대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회화 방면에서는 피터르 브뤼헐 1세의 바벨탑’, 램브란트의 자화상’,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등 유럽의 미술관 중에서도 회화 방면에서는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하면서 놀라운 안목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라는 점이다. 이는 박물관의 수집품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4(1605-1665)는 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문화적으로는 부흥기를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작품들은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남편인 레오폴트 1세와 아들 카를 6세에 의해 상당수 빈으로 이전되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때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주옥같은 명화가 빈으로 오게 되었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 작품 수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또 다른 인물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다. 대공은 161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아들로 성정이 용맹하고 전략이 뛰어나 30년 전쟁을 비롯한 오랜 기간 기사단장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그는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나 일생 동안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브뤼셀에서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였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얀 판 덴 후커, 1642년경.jpg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얀 판 덴 후커, 1642년경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관심이 많아 플랑드르 지역에 머물던 시기 장르별로 최고의 17세기 명화를 수집했다. 또한, 영국 버킹엄 공작의 소장품 경매 등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회화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적극 활용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 근무를 끝내고 빈으로 귀환할 때 자신의 수집품을 빈으로 이전했다. 그 결과 그가 수집한 명화들이 대부분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단지 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욕심에서는 박물관의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 목록에 빠져 아쉬움이 남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얀 스테인의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등 잘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페르디난트 2’, ‘펠리페 4’, ‘테레사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프 2’, ‘마리 앙투아네트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왕실 장식품, 중세 갑옷 등 이번 에 소개되는 96점의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황제나 대공이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감상할 작품이 아니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620-25년경.jpg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620-25년경

 

 

투구와 갑옷, 조선, 1890-94년경.jpg
투구와 갑옷, 조선, 1890-94년경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1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 갑옷과 투구를 1894년에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해오고 있다.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jpg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서구 예술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유물들 중 많은 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쿤스트캄머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와 무구와 갑옷, 투구, 태피스트리, 옛 거장들의 회화, 정교한 장식예술품, 호화로운 의복과 궁중 예복들이 포함된 소장품들은 장엄함과 화려함, 왕권의 상징과 의례들, 합스부르크 통치자들과 관련된 영예와 장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100여 점에 이르는 유물 중 많은 수는 막시밀리안 1, 티롤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 루돌프 2,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중한 컬렉션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보물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한, 전시 도록은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에 대한 특별하고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3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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