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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부터 12일간, 한여름 밤의 청와대 야간산책 운영
7월 20일부터 12일간, 한여름 밤의 청와대 야간산책 운영
[서울문화인] 여름 밤 정취를 느끼면서 청와대에 켜켜이 녹아있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해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 행사를 오는 7월 20일부터 8월 1일까지 총 12일간(7.26.(화) 휴무) 새롭게 선보인다. 청와대 야간 관람을 희망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기획된 이번 행사에서는 본관, 관저 등 야간 조명이 켜진 청와대의 주요 시설물들을 안내 해설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야간 안전사고 등을 고려 회당 인원은 50명으로 제한되며, 운영시간은 1일 2회[19:30, 2회차 20:10(회차당 약 90분간)] 운영된다. 행사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은 청와대에 특별하게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안내해설사가 들려주는 청와대의 역사적 사실과 장소에 얽힌 일화를 들으며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게 된다. 참가자들은 정문으로 입장한 뒤 넓게 펼쳐진 대정원을 지나 본관에서 대통령 집무실 등 내부 시설들을 관람한 다음 수궁터를 거쳐 대통령이 거주했던 관저로 이동하면 고즈넉한 한옥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작은 음악회가 펼쳐지며, 관람객들은 시원한 음료로 더위를 식히면서 관저의 야경을 감상하는 휴식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후 외국 귀빈 초청행사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상춘재와 웅장한 반송이 기다리는 녹지원을 관람하게 된다. 이번 야간 관람에서는 창호 개방을 통해 조명을 밝힌 상춘재의 내부 모습까지 공개되어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감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입장권은 6월 28일 오전 10시부터 인터파크 티켓(ticket.interpark.com)에서 1인당 2매를 무료로 사전 응모할 수 있다. 또한,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에 한해 전화(1544-1555)로도 1인당 2매의 응모가 가능하며, 7월 14일(목)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암표 거래 방지를 위해 행사 당일 현장에서는 당첨내역과 함께 신분증 등 본인 확인을 받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청와대 개방 누리집(www.청와대개방.kr)을 확인하거나 전화(1522-7760)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6월 22일 청와대 개방 4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지난 44일 간의 방문객 추이를 살펴보면, ▲(5.10.~5.22.)청와대 국민개방 특별행사 기간에 377,888명(일평균 29,068명), ▲(5.23.~6.11.)청와대 국민개방 연장기간 439,264명(일평균 21,963명 / 누적 817,152명), ▲(6.12.~현재)청와대 상시개방 기간에는 182,848명(일평균 16,622명 / 누적 1,000,000명)의 관람객이 청와대를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주말의 경우 평일 평균 관람객 수(22,755명) 보다 약 16% 많은 26,443명이 평균적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지난 6월 12일부터 1일 관람객 4만 9천명으로 확대하였으나, 오히려 관람객 수는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중학 기자]
490년 전, 한강을 배경으로 ‘실경산수화’로 그려낸  환수
490년 전, 한강을 배경으로 ‘실경산수화’로 그려낸 환수
[서울문화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사무총장 김계식)이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1531년경 한강 동호(東湖) 일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가 2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하였다. 독서당(讀書堂)은 중종 12년(1517) 한강 연안 두모포에 신축되어 사가독서에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중에 소실될 때까지 학문 연구 등의 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으로 ‘독서당계회도’는 조선시대 젊고 유능한 문신들을 선발하여 휴가를 주고 공무 대신 학문에 전념하게 한 인재 양성책인 사가독서(賜暇讀書)한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실경산수’로 제작된 것으로, 그림 하단에 실제 참석자들의 이름과 계회 당시 관직명 등을 통해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연간에 그려진 것으로 제작연도가 파악되었다. 먼저 그림의 상단에는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라는 제목이 전서체로 쓰여 있고, 중단의 화면에는 가운데 우뚝 솟은 응봉(鷹峰, 매봉산)을 중심으로 한강변의 두모포(豆毛浦)(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일대가 묘사되어 있으며, 중앙부에는 강변의 풍경과 누각이 자리잡고 있다. 강변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안개에 가려 지붕만 보이는 독서당(讀書堂, 현재 옥수동 극동아파트 부근)을 확인할 수 있고, 계회는 독서당이 바라보이는 한강에서 관복을 입은 참석자들이 흥겨운 뱃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림 하단에는 참석자 12인의 호와 이름, 본관, 생년, 사가독서한 시기, 과거 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이 기재되어 있다. 참석자들은 1516년부터 1530년 사이에 사가독서한 20~30대의 젊은 관료들이다. 이 중에는 청백리이자 백운동서원(현,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소수서원)을 설립하여 서원의 시초를 이룬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을 비롯하여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았으며 『규암집(圭菴集)』을 저술한 송인수(宋麟壽, 1499-1547), 약 50년 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시문에 뛰어났던 송순(宋純, 1493-1582) 등의 관료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독서당계회도에 기록된 참석자들의 관직은 그림의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송인수와 허항(許沆, 1497-1537)은 1531년과 1532년 초에 각각 새로운 관직에 임명되었는데, 좌목에는 이들이 1531년 지냈던 관직명이 기재되어 있어 이 작품이 1531년경에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현재 조선시대 계회도는 18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중 15∼16세기 계회도는 50점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러나 ‘독서당계회도’는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동호계회도’(1545년), 서울대박물관 소장 ‘독서당계회도’(1570년경)까지 모두 3점이며, 모두 16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돌아온 작품은 “현전하는 16세기 독서당계회도 3점 중에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남아있는 계회도 중 국보는 없고, 서울대박물관 소장 ‘독서당계회도’을 포함하여 12건 19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날 공개회에서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는 ‘독서당계회도’ “현전하는 작품이 적은 조선 전기의 기년작(紀年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함께 16세기 독서당계회도 3점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실경산수로 그려진 계회도로 아름다운 청색 안료가 칠해져 있는 등 다른 작품과 비교해 표현 수준이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독서당계회도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회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당대 대표작으로서 향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돌아온 독서당계회도는 이미 국내 학계에서는 알려져 있던 유물로, 국외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초 소장자이던 간다 기이치로(동양학자, 교토 국립박물관 관장 역임)의 사망 이후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다른 소장자가 가지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은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3월,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매입하게 되었다. 강혜승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부장은 “국내 학계에서 이 작품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 행방을 정확히 몰랐는데, 뉴욕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을 재단에서 파악한 후 경매에 입찰했다. 하지만 경매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으나, 다행히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문화재가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490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온 독서당계회도는 오는 7월 7일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최되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2022. 7. 7.〜9. 25.) 전시를 통해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새긴, 통일신라 ‘화조도’ 금박유물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새긴, 통일신라 ‘화조도’ 금박유물
[서울문화인]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유물 중에서는 가장 정교한 세공술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금박이 16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첫 언론 공개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공개된 금박에 새겨진 문양은 매우 가늘어 육안으로는 문양 판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여서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서 문양을 확인인 가능할 정도로 8세기 통일신라시대 장인의 뛰어난 금속 세공술을 물론 미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공개된 금박 유물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가 2016년 11월 동궁과 월지 ‘나’지구 북편 발굴조사 중에 출토한 유물로 건물지와 회랑지 주변 유물포함층에서 두 점이 형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구겨진 채 20m 가량 서로 떨어진 채로 출토되었는데,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두 점이 당초에는 접합된 한 개체임을 확인되었다. 금박은 순도 99.99%의 정선된 순금 0.3g(한 돈은 3.75g임)을 두께 0.04mm로 얇게 펴서 만들었으며, 가로 3.6cm, 세로 1.17cm 크기의 평면에 새와 꽃을 조밀하게 새겼다. 금박에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0.08mm)보다도 가는 0.05mm 이하 굵기의 선으로 좌·우측에 새 두 마리, 중앙부와 새 주위에는 단화(團華, 여러 문양요소를 원형이나 그에 가까운 형태로 늘어놓아 꽃을 위에서 본 형태를 연상시키는 의장)를 조금(彫金, 금속 공예기술의 일종, 금속의 정이나 끌 등 도구를 이용하여 문양이나 글씨를 새기는 기법)했다. 금박에 새긴 새는 형태나 관련 전문가 의견 등을 고려할 때 멧비둘기로 추정되며, 단화는 경주 구황동 원지 출토 금동경통장식, 황룡사 서편 폐사지 출토 금동제 봉황장식 등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시대 장식 문양 중 하나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를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으로 명명하면서 “금박에 담긴 단화쌍조문은 형식화된 서역의 단화쌍조문과는 달리 매우 사실적으로 꽃과 새를 묘사한 것으로 보아 서역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문양에 있어서는 신라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박에 새겨진 두 마리 새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으로 오른편에 새긴 새를 왼편의 것보다 깃털 표현을 다채롭게 한 점이나, 몸집의 크기와 꼬리 깃털 형태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특징 등으로 보아 암·수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보인다.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금속공예의 영역을 넘어 통일신라시대 회화의 영역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금박의 문양은 목재 받침 등에 금박을 고정한 뒤 새긴 것으로, 따로 매달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용도는 어떤 기물에 직접 부착한 장식물로 추정했으며, 금박의 사용처와 기능은 현재로선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지만 유물의 형태로 볼 때 사다리꼴 단면을 가진 기물의 마구리로 추정하면서도, 사람의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힘들 만큼 도안이 미세하여 장식적 요소를 넘어 신에게 봉헌하기 위한 기능일 가능성도 있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송란 덕성여대 교수는 금박 유물에 대해 “신라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금박에 표현한 듯하다.”면서 “매우 정교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5∼6세기 신라 금속공예품은 많지만, 삼국 통일 이후에는 금속 유물은 적고 순금 제품은 더 적은 편”이라며 “신라의 전성기 금속 가공 기술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공개한 ‘선각단화쌍조문금박’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에서 <3cm에 담긴, 금빛 화조도>특별 전를 통해 일반 공개되며, 더불어 금박의 세밀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누리집(https://nrich.go.kr/gyeongju)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기가픽셀 이미지 뷰어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한국의 채색화를 조명하는 특별전 《생의 찬미》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한국의 채색화를 조명하는 특별전 《생의 찬미》
[서울문화인] 현대미술이 단순 ‘그리고(drawing)’, ‘칠하다(painting)’는 개념을 넘어 ‘개념미술(conceptual art)’로 확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감상자의 입장에서 회화 작품을 바라볼 때, 중요한 부분이 색감, 색의 조화이다. ‘그리다’라는 기술적인 것과 달리 ‘색감’은 감각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색은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는 것도 있지만 평면을 입체화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동.서양을 불문하고 채색화의 역사는 매우 깊다. 한국의 채색화로 가장 오랜 된 것이라면 고구려 고분벽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고려 불화는 우리나라 채색화의 높은 수준을 인식케 한다. 하지만 한국화하면 채색화보다는 수묵화가 먼저 인식된다. 이는 박물관에서 만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화로 대부분 수묵화나 수묵담채화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유교 문화가 주를 이루던 조선 시대에 수묵문인화 중심으로 편재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수묵화나 수묵담채화가 주로 문인들에 의해 그려진 반면, 전통 채색화는 화원 등의 직업화가들이 그린 장식화나 궁중기록화, 초상화, 불화(佛畵), 민화 등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수묵문인화 중심인 조선 시대에도 궁중회화를 통해 채색화는 그 맥을 이어왔다. 조선 후기에는 기록화, 민화 등을 통해서 다시 부활을 맞이한다. 특히 궁중회화는 물론 한국의 채색화는 대부분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복을 불러들이거나(길상), 교훈을 전하고(문자도) 중요한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자 하는(기록화) 등의 역할을 하는 작품을 통해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들은 순수예술이라기보다는 장식과 기복의 ‘역할’을 지닌 회화로 보는 것이 커 오랫동안 채색화는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현대에서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채색화를 재조명하는 전시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생의 찬미》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는 전시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지만 작품의 규모보다는 크기만으로 압도하는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주요 작가로는 제15대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60여 명의 작가와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이 중에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하여 13점은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 등 네 가지 주제, 6개 섹션으로 구분하여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한 스톤 존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로 전시를 ‘마중’한다. 어어 두 번째(문 앞에서: 벽사) 길상의 첫 역할인 벽사의 의미를 담은 도상들로 시작된다. 신상호 작가의 <Totem(토템상)>을 시작으로 <욕불구룡도>와 <오방신도>, <호작도>,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의 <수기맹호도>와 같은 전통적인 도상들이 한애규의 <기둥들>, 오윤의 <칼노래> 등이 펼쳐진다. 세 번째(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는 <십장생도> 병풍과 함께 김혜경의 영상 작품 <길상>, 전혁림의 <백낙병>, 김종학의 <현대모란도>, 손유영의 <모란숲>, 홍지윤의 <접시꽃 들판에 서서> 등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말 작품부터 길상 도상의 의미와 표현의 확장을 모색해 온 최근의 회화와 영상까지 ‘길상’을 중심으로 선보이고 있다. 네 번째(오방색)는 모두 오방색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김신일의 설치작품 <오색사이>와 이정교의 거대한 네 마리 호랑이 작품 <사·방·호>가 높은 층고의 열린 공간 중앙홀에 설치되었다. 다섯 번째(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는 정원을 지나 들어간 어느 서가에서 만난 책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들로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문자도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격변의 시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록화들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은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마지막(담 너머, 저 산: 산수화)은 다른 채색화 분야와는 다르게 감상화로 분류되어 중앙화단에서도 크게 유행했던 산수화의 다양한 변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실제 전시장 관람이 어려운 전국 각지의 관람객들이 집에서 PC나 개인 휴대폰으로도 전시를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초로 온라인상에 현실과 동일한 디지털트윈전시 공간을 구축, 단순한 온라인 전시 관람을 넘어 시공간에 제한이 없는 특화된 디지털 미술관으로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오는 9월 25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워커힐 시어터, ‘빛의 시리즈’ 몰입형 예술 전시관 ‘빛의 시어터’로 재탄생
[전시] 워커힐 시어터, ‘빛의 시리즈’ 몰입형 예술 전시관 ‘빛의 시어터’로 재탄생
[서울문화인] 제주 ‘빛의 벙커’에 이어 ㈜티모넷(대표 박진우)가 선보이는 몰입형 예술 전시 ‘빛의 시리즈’ 두 번째 프로젝트 ‘빛의 시어터’가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선보이는 ‘빛의 시어터’는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퍼시픽 홀’에 구현되었다. 이곳은 1963년 개관 이후 오랜 기간 공연 문화계의 상징적 역할을 해온 곳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던 파격적인 ‘하니비 쇼’를 선보였던 곳이다. 1978년, ‘워커힐 시어터(구 가야금 홀)’로 신축된 이후로는 민속 공연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 ‘할리우드 쇼’, 프랑스 ‘리도 쇼’, 영국 ‘런던스 피카딜리 쇼’ 등 세계 최정상급의 외국 쇼를 초청하여 워커힐 쇼를 세계적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로 만들며 누적 관람객 962만이라는 수치를 기록하였지만 현재는 서울에 다양한 공연장이 생기면서 대중들에겐 잊혀진 공간이다. 빛과 음악을 활용하여 관람객에게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몰입형 예술 전시(Immersive Art Exhibition)는 2012년 프랑스 남부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의 폐채석장을 개조해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s Lumières)’이란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지만 현재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몰입형 전시가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어 이제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선 전시가 아니다.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는 ‘빛의 시어터’는 제주 ‘빛의 벙커’ 개관전을 통해 100만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 주인공으로 Long Show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Gustav Klimt, Gold in Motion)’(40분)을 중심으로 Short Show ‘이브 클랭, 인피니트 블루(Yves Klein, Infinite Blue)’(10분), Contemporary Show ‘벌스 (Verse)’(14분), ‘메모리즈 (Memories)’(4분)까지 4개의 테마로 약 60분 간 진행된다. 워커힐에서 선보이는 ‘빛의 시어터’는 조명과 무대장치 등 기존 워커힐 시어터의 공간적 특색과 총면적 3,400㎡, 최대높이 21m의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규모에서 펼쳐지는 공간적 특징이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관람객은 기존의 몰입형 전시장과는 달리 1층은 물론 2층 높이의 ‘브릿지’를 따라 색다른 뷰 포인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지안프랑코 이안누치(Gianfranco Iannuzzi)’ 아트 디렉터는 주요 요소인 이미지, 소리, 빛을 기반으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에게 수동적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전시실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즐기는 자유 관람을 제시하였다. 또한, 20세기 황금빛 색채의 화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작품을 빛과 음악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전시라고 하지만 클림트와 함께 빈에서 활약한 거장,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1840-1884), 건축가 오토 바그너(Otto Wagner1841-1918),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등의 동시대의 서양 명화, 장식화는 물론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을 대표하는 이브 클랭(1928-1962)의 모노크롬 회화, 컨템포러리 아트 작품인 ‘벌스’와 ‘메모리즈’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번 전시에는 3,000개 이상의 고화질 라이선스 이미지가 20곡이 넘는 사운드 트렉이 어우러져 마치 IMAX 영화관의 웅장함을 고스란히 느끼는 듯하다. 무엇보다, 몰입형 예술 전시는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이 다양한 공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되살아남으로써 작품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작품을 온전히 느끼며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미술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 관람객도 작품을 쉽게 접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지난 5월 27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은 2023년 3월 5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조선 왕실의 이념이 담긴 궁중 현판을 한자리에 선보이다.
[박물관] 조선 왕실의 이념이 담긴 궁중 현판을 한자리에 선보이다.
[서울문화인] 궁궐을 방문하면 모든 건물마다 마주하는 것이 현판이다. 조선의 궁궐에는 건물의 성격과 기능을 알 수 있도록 좋은 글귀를 따와 이름을 짓고 현판으로 걸었다. 현판에는 건물을 세운 목적과 과정에 대한 기록을 새겨 건물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왕이 신하에게 내린 명령과 지침, 이상적 군주인 성군이 되기 위한 도리와 노력, 백성을 위했던 마음,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 등 교훈과 경계의 글을 새겨 게시판 역할을 했다. 관청 업무 정보 및 소속 관리 명단, 업무 분장, 국가 행사 날짜를 새긴 현판은 나라 운영에 필요한 공문서와 같은 역할도 하였다. 또한, 현판의 글씨는 왕에서부터 당대 명필가와 내시에 이르는 등 다양한 서체로 이뤄졌다. 현판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궁궐을 비롯해 종묘,왕릉, 행궁 등 조선 왕실 관련 건물에 걸린 현판에는 조선이 지향한 유교적 이상 사회에 대한모습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유교 경전에 전거를 두어 해당 건물의 성격과 건립 목적에 어울리는 글귀와 좋은 뜻을 담아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시대 궁중 현판은 궁궐을 세울 때, 화재나 전쟁 등으로 궁궐을 보수할 때, 다른 궁궐의 건물을 헐어 옮겨 지을 때 제작 · 수리되어 궁궐 건축에 걸렸다. 제작 과정에서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뜻과 소망을 담기도 했다. 그 예로, 고종高宗(재위 1863~1907년)은 나라가 위태하던 1906년, 화재로 덕수궁을 수리하면서 본래 있던 대안문 현판을 내리고 ‘큰 하늘’이라는 뜻의 ‘대한大漢’에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대한제국의 소망을 담은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꿔 달도록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1910~1945년) 때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던 다섯 궁궐이 관광지, 오락시설, 박람회장으로 전락, 훼손되면서 현판 대다수는 제자리를 잃고 떠돌아야 했다. 건물에서 내려온 현판은 원래의 기능을 잃고, 제실박물관(이후 이왕가李王家박물관) 전시실로 사용됐던 창경궁昌慶宮의 명정전明政殿과 명정전 회랑, 경춘전景春殿, 환경전歡慶殿 등에 진열되었다. 해방 이후 1963년에는 624점의 현판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전시되었다. 경복궁에 보관되던 700점이 넘는 현판은 1982년 창경궁에, 1986년 창덕궁昌德宮에 보관되다가 1992년 덕수궁宮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면서 옮겨졌고, 이후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이전 개관하면서 다시 이동되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궁중 현판 775점은 조선 상실 문화를 의미를 담은 소중한 유물이자 또한, 역사 · 건축 ·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은 조선 왕실이 궁중 현판을 통해 널리 내걸고자했던 유교적 이상과 가치를 조명하고자 박물관 소장 현판 가운데 81점의 궁중 현판을 한자리에 공개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에는 조선 궁궐의 현판과 더불어 1719년(숙종 45)에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만든 첩 형태의 책 『기사계첩(耆社契帖)』(국보) 등 관련 유물을 포함해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이 사용하는 작업 도구 등 총 100여 점의 전시품을 선보인다. 전시에 소개되는 현판으로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판(124x374cm) 가운데 가장 큰 현판이자 근대사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던 경운궁(현 덕수궁)의 정문에 걸렸던 ‘대안문(大安門) 현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현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현판이자 당대 명필인 한호(韓濩, 1543~1605년)가 쓴 ‘의열사기(義烈祠記) 현판(1582년 제작, 백제 의자왕 때와 고려 공민왕 때 충신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의 내력을 새긴 현판)’을 비롯하여 왕의 개인적인 감회나 경험을 읊은 시를 새긴 현판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현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나오는 「홍화문사미도(弘化門賜米圖)」 그림과 관련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앞에서 왕이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던 장면 등을 만화영상으로 마날 수 있으며, 창덕궁과 창경궁의 배치도인 <동궐도>를 배경으로 관람객이 직접 현판의 글씨를 디지털 기술로 써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그 의미를 되새겨 보기 힘들었던 궁궐의 현판을 한자리에 관람함과 동시에 현판에 담긴 조선 왕실의 정치이념과 소망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한양을 대표할 수 있는 명품 유물 100여 점을 만나다.
[박물관] 한양을 대표할 수 있는 명품 유물 100여 점을 만나다.
-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이래 20년간의 유물 수집 결과를 시민과 공유 -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를 함께 펼쳐낸 최초 사례 - 한양을 대표할 수 있는 보물 15건, 유형문화재 25건을 포함한 명품 유물 100여 점 [서울문화인]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양은 수선(首善), 곧 최고의 땅으로서 각종 명품과 명물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조선팔도의 수재(秀才)들이 한양에 모여 서로의 지식과 재주를 견주었고, 기술이 뛰어난 장인(匠人)들은 궁궐과 관청에 소속되어 세분화된 공정으로 최고의 물품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유물들은 국립박물관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있었지만 서울시 산하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박물관이 그동안 유물 수집의 결실을 시민과 공유하고자 서울역사문화특별전 ‘명품도시 한양 보물100선’을 지난 5월 20일(금)부터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도 《대동여지도》, 《용비어천가》, 청진동 출토 항아리와 같이 한양을 대표할 수 있는 보물 15건, 유형문화재 25건을 포함한 유물 100여 점을 엄선하여 분야별로 총망라한 전시로 조선 시대 한양의 사대부와 기술관, 장인들에 의해 생산된 것은 물론 한양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특산공예품을 포함하고 있다. ‘명품도시 한양 보물100선’에서는 명품이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으뜸 도시 한양의 풍경을 지도·서화·고문서·전적·공예의 순서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구성은 다음과 같다.〈지도_땅을 그린 그림〉, 〈서화_한양의 글씨와 그림〉, 〈고문서_한양의 옛 문서〉, 〈전적_한양에서 출판된 옛 책〉, 〈공예_경공장이 선도한 문화〉로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동안 박물관에서도 쉽게 마나기 어려웠던 보물로 지정된 김정호의《대동여지도》(목판본, 21첩)와 함께 《동여도》(필사본, 23첩)이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는 조선 시대 최고의 지도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축척(1:16만) 지도로 휴대와 열람이 편리하도록 분첩절첩식으로 제작되었고 조선전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지도이다. 모두 펼쳐 연결하면 가로 4미터, 세로 7미터에 달하는 《대동여지도》와 《동여도》가 함께 공개된 것은 최초이자 목판본과 필사본 지도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대동여지도》는 22첩으로 구성된 절첩식 목판본 지도로 김정호가 1861년 간행했다. 그리고 《동여도》는 학자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지만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제작했던 것으로 보는 전국지도로 ‘대동여지도’와 달리 약 7천여 개의 지명이 더 수록되어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이 외에도 서울대 규장각,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에도 동일 계열의 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17세기 대표적인 세계지도 천하여지도(보물), 페르비스트가 1674년 제작한 ‘곤여전도’를 1860년에 조선에서 중간한 《곤여전도》를 비롯하여 한양 도성을 그린 다양한 지도를 만나볼 수 있다. <서화_한양의 글씨와 그림>에는 궁중 화원이 그린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보물)와 사자관(寫字官)인 한호의 글씨가 담긴 《석봉한호해서첩》(보물)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고문서_한양의 옛 문서>에는 가장 오래된 한성부 입안은 물론 조선 초기에 발급된 희귀한 임명문서부터 명문·분재기·소지 등 한양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일상적인 문서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적_한양에서 출판된 옛 책>에는 세종 때 목판본으로 제작된 《용비어천가》(보물)를 비롯하여 경자자로 인쇄된 조선 최초의《자치통감강목》과 초주갑인자로 인쇄된 조선 최초의《자치통감》등의 보물 전적들이 <공예_경공장이 선도한 문화>에서는 경공장의 솜씨가 담긴 청진동 출토 백자 항아리(보물)와 대장경궤 등 조선 시대 공예 문화를 확인해볼 수 있다. 개막에 앞서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조선 왕실과 한양 양반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담아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한양에서 소비되었던 명품들을 감상하면서, 우리 조상의 지혜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며 “시민의 자산인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해서도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박물관은 이번 특별전과 연계한 이벤트와 교육 프로그램 <사라진 한양의 보물을 찾아라>를 진행한다. 먼저 전시 연계 관람 SNS 이벤트는 6월 28일(화)부터 진행될 예정이며, 이벤트에 참여한 관람객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이 증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6월 중 서울역사박물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6월 7일(화)부터 8월 6일(토)까지 초등학생(3학년 이상) 동반 가족, 또는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이번 전시는 8월 7일(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및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중학 기자]
미국 시카고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병풍, 국내에서 보존처리
미국 시카고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병풍, 국내에서 보존처리
[서울문화인] 미국 시카고미술관(관장 제임스 론도, James Rondeau) 소장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가 국내에서 보존처리를 마치고 30일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번 보존처리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사무총장 김계식)이 진행하고 있는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가 지난 2021년 8월부터 10개월간 진행하였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노년의 분양왕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팔순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 회화이다. 그는 무장으로서 성공했고, 무병장수를 누렸다. 또한 슬하의 8난 8녀의 자손들도 번창하여 세속에서의 복을 마음껏 누린 인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사대부층과 왕실에서 부귀와 다복, 다산을 소망하며 ‘곽분양행락도’를 만들어 소장하며, 혼례나 잔치 때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현재 파악된 국내외 ‘곽분양행락도’는 총 47점으로 그중 국외소재 작품은 총 11점으로, 미국(8점), 독일(2점) 프랑스(1점)에 각각 흩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카고미술관의 <곽분양행락도>는 8폭 병풍으로 19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현존하는 ‘곽분양행락도’ 가운데에서도 필치가 고르고 매우 우수하며, 색채도 잘 남아 있는 편에 속한다. 화면의 전체적인 구도, 제재를 화면에 구성하는 방식, 채색의 색감, 인물 묘법, 각종 장식적인 요소들의 표현 등을 보면 이 작품은 왕실에서 사용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격식과 수준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8폭 중, 4폭은 여성의 생활상이 2폭에는 남성과 상류사회의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다. 시카고미술관의 <곽분양행락도>는 중국에서 특사로 근무했던 변호사 윌리엄 캘훈(1848-1916)의 유족이 1940년 시카고미술관에 기증하였으나 한 번도 일반에게 공개되지 못하고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지연수 시카고미술관 한국미술큐레이터가 컬렉션을 조사하는 과정에 상태가 좋지 않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 사업에 신청하여 보존 저리가 이뤄지게 되었다. 80년 동안 먼지 앉고 색이바랜 <곽분양행락도>는 클리닝을 거쳤고, 벌레 먹은 부분은 수작업으로 꼼꼼히 메워졌다. 또한, 병풍 옆면의 금속 장식인 장석도 당시 함량 비율대로 다시 만들어 붙여졌다. 보존처리를 주도한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박지선 교수는 “보존처리를 통해 필치와 색상이 더 선명하게 살아나 작품의 훌륭함이 잘 드러나게 되어 조선시대 병풍 연구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더불어 보존처리 과정에서 비단의 그림 뒤에 덧댄 배접지에서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다양한 조선시대 행정문서들이 확인되었다. 그중 ‘증산현갑자식남정안(甑山縣甲子式男正案)’(1864), ‘정묘사월군색소식(丁卯四月軍色消息)’(1867) 등 문서 일부가 확인되었다. ‘증산현갑자식남정안’은 1864년 평안남도 증산현에 거주하는 남정들의 군역을 조사한 호구 단자로 품관, 성명, 나이, 출생년 등이 수록된 지방 공식문서에 해당하는 문서로 이를 통해 <곽분양행락도>의 제작시기가 1867년 이후라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였다고 한다. 한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해외에서 자체 보존처리 할 수 없는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을 통해 총 9개국 26개 기관을 대상으로 이번 <곽분양행락도>를 포함하여 총 105점의 국외소재문화재를 보존처리하여 국내에서 일반에게 공개 이후 현지에서 전시되거나 활용되도록 했다. 이번 <곽분양행락도>의 국내에서 별도공개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 7월부터 현지에서 일반 공개될 예정이며, 보존처리 비용은 9천만 원이 소요되었으며, 운송비와 보험료는 소장처에서 부담하였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국내 처음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박물관] 국내 처음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태양의 아들, 잉카’(2009년), ‘마야 2012’(2012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2018년)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스테카 문명을 살펴보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우리가 흔히 아즈텍이라 불렀던 '아스테카(Aztecs)'는 18~19세기경 유럽에서 생겨난 단어로, 아스테카 신화에 등장하는 기원의 장소인 '아스틀란(Aztlan)'에서 유래한 용어로 아스테카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Mexica)' 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오늘날 멕시코 공화국의 이름이 유래했다. 아스테카를 소재로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 이번 전시는 과거에 개최된 아스테카 문명에 관한 전시와는 달리,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아스테카의 예술품과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과 공동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이 도렐라(Doris Kurella) 박사의 지도하에 기획된 전시로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문화재 208점을 소개하고 있다.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아스테카의 문화와 종교 등 여러 분야를 지배하였던 그들의 독특하고 복잡한 세계관과 신화를 설명한 뒤,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 및 정치, 경제 체제를 소개한다. 그리고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과 그 가운데의 핵심적인 건축물인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 대해 만나볼 수 있다. 먼저 1부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에서는 아스테카 최고의 조각품인 <태양의 돌>을 통해 아스테카 사람들이 이해한 세상의 모습과 그들의 신비로운 신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25톤에 달하는 태양의 돌을 3D데이터로 정교하게 제작한 재현품 위에 펼쳐지는 영상을 통해 아스테카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2부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은 다양한 생태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갔던 아스테카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을 살펴본다. 특히 원주민 그림문자로 제작한 ‘멘도사 고문서’ 속 이미지를 활용하여 아스테카의 문화를 생동감 있게 소개한다. 공물은 먼 거리의 도시국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는 통치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생태환경의 다양한 물자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여 멕시코 전역을 연결했다. 3부 ‘정복과 공물로 세운 아스테카’는 멕시코 전역을 하나로 연결한 아스테카의 활발한 정복전쟁과 공물 징수 체계를 살펴보고 있다. 테노츠티틀란은 15~16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이곳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도시의 규모와 발전 수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부 ‘번영의 도시 테노츠티틀란’에서는 아스테카의 중심 도시인 테노츠티틀란의 발전상을 살펴본다. <독수리 머리> 석상과 같이 도시 곳곳을 꾸몄던 아름다운 건축 장식과 귀족들이 사용한 고급 물품과 토기는 테노츠티틀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5부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는 테노츠티틀란의 신성 구역에서 벌어진 다양한 제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 등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 일대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잔혹한 인신공양이 사실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변 정치집단을 통치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성 구역과 피라미드 신전의 모형, 그 위에 적용한 AR 및 디지털 매핑 영상은 아스테카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8월 28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국내 처음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박물관] 국내 처음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태양의 아들, 잉카’(2009년), ‘마야 2012’(2012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2018년)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스테카 문명을 살펴보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우리가 흔히 아즈텍이라 불렀던 '아스테카(Aztecs)'는 18~19세기경 유럽에서 생겨난 단어로, 아스테카 신화에 등장하는 기원의 장소인 '아스틀란(Aztlan)'에서 유래한 용어로 아스테카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Mexica)' 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오늘날 멕시코 공화국의 이름이 유래했다. 메소아메리카는 유카탄반도를 포함한 멕시코 북부의 일부 지역과 멕시코 중부와 남부 전체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전체와 온두라스 서부, 니카라과의 서해안, 코스타리카 북서부 지역도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파울 키르히호프(Paul Kirchhoff)가 1943년에 이 지리적, 문화적 지역을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라고 명명하며 그 지리적 범위를 정하고 이 지역에 거주했던 다양한 종족 집단을 설명했다. 메소아메리카 동남부 열대 우림지대에는 도시국가 티칼, 치첸이사, 마야판 등으로 대표되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야 문명이 융성하였으며, 현대 멕시코시티와 그 주변 지역의 건조한 멕시코 중앙 고원지대에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테오티우아칸, 톨레카, 그리고 아스테카가 차례로 번성하였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1,500년경 올메카 문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가 꽃피우고, 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인 특성과 관습을 찾아냈다. 문자 체계, 집약적 농업, 계단식 피라미드 건축, 흑요석 날이 있는 도구와 무기 제조, 정교한 토기 생산, 두 종류의 고유 달력 사용, 메소아메리카 지역 내외에서의 장거리 무역, 그리고 인신공양 제의 등이 그것이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 사령관이 멕시코 만에 상륙했을 때, 당시 메소아메리카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정치체는 아스테카였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이래, 아스테카의 테노츠티틀란은 메소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가 되었고, 테노츠티틀란은 멕시코시티로 이어져 현대 멕시코의 수도가 된 것에서 당시 북·중앙아메리카 내 아스테카의 정치·경제·사회적 위상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현대 멕시코의 국명과 국기 등이 아스테카의 또 다른 이름 ‘메시카’에서 유래된 점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스테카는 마야와 함께 메소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스테카는 스페인 정복으로 1521년에 메소아메리카는 종말을 맞았다. 스페인군이 테노츠티틀란 외곽에 도달했을 때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를 본 이들은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놀라운 것들을 본 순간부터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우리 앞에 펼쳐진 모습을 어떻게 믿어야 할 지 몰랐다. 육지 한 편에 거대한 도시들이 있었고 호수 위에도 수많은 도시가 가득했다. 호수는 카누로 붐볐으며 둑길에는 간격을 두고 많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우리 앞에 멕시코의 위대한 도시가 펼쳐진 것이다.”(Díaz del Castillo 1943).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들을 통해 아스테카 인들의 문화가 서양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토착 문화와 유럽 문화 간 융합이 시작되었으나 이들은 이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보다는 정복전쟁에 집중한 결과, 아직도 아스테카의 문명은 연구의 대상이다. 아스테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크게 두 가지 자료에 의지하고 있다. 첫 번째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이다. 이들의 기록에서는 사건과 상황을 묘사하고 강조하는 방식이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두 번째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이다. 특히 멕시코시티 중심부 및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 주변에서 진행하고 있는 조사에서 새로운 유물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어 아스테카에 대한 지식도 깊어지고 있다. 아스테카를 소재로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 이번 전시는 과거에 개최된 아스테카 문명에 관한 전시와는 달리,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아스테카의 예술품과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과 공동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이 도렐라(Doris Kurella) 박사의 지도하에 기획된 전시로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문화재 208점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아스테카지만 우리에겐 전쟁과 인신공양의 잔혹한 이미지와 스페인 정복자를 자신의 신으로 오해한 멸망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와 발굴조사 결과, 이러한 아스테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아메리카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종교를 강요하였던 유럽 정복자의 과장과 왜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스테카 역사와 문화의 본 모습은 물론 우리가 잔혹함으로 치부하였던 인신공양과 정복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8월 28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