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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어람용 의궤 297권, 11년 만에 모두 공개
[서울문화인] 2011년 프랑스에서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이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통해 모두 공개하였다. 2011년 환수당시 일부를 공개 한 적은 있지만 전체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의궤란,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 내내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어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의 특징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게 하는 대단히 의미 있는 기록물물로 왕의 결혼, 세자 책봉, 장례 등의 오례(五禮, 나라에서 지내는 다섯 가지 의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행사가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조선 왕조 519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조선 초기의 의궤들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현재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 제작된 의궤만이 남아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산용으로 구분되어 모두 5∼9부가 제작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분산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 평창 오대산, 강화도 정족산 등의 사고로 보내졌다. 특히 어람용 의궤는 구름무늬, 화려한 연꽃넝쿨무늬가 표현된 초록의 비단에 국화 모양의 장식 등 일반 서책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황으로 특별하게 제작되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또한,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전문 관원(사자관)을 선발하여 반듯한 글씨체(해서체)로 정성껏 쓴 반면에 분상용은 각종 글씨 쓰기를 담당하는 관원(서사관)이 일반 글씨체로 쓰여졌다. 그림도 분산용은 나무에 새겨 도장처럼 찍은 후 채색하였지만, 어람용은 화원이 손으로 일일이 그린 후 채색을 한 것에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어람용은 두껍고 매끈한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측에서 일부 비단 표지를 문양이 없는 비단으로 교체해 놓았다. 이 어람용 의궤는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에는 보관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1866년)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면서 의궤를 비롯하여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함께 소실되었다고 판단하였으나,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故(고) 박병선 박사가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어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들어났다. 그러나 우리에게 귀중한 이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TGV의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 에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하며,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주도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지만 패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이후 2011년 4월 14일, 1차분 75권 환수를 시작으로 2011년 5월에야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러나 환수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완의 환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의궤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그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적 문화재인 의궤를 우리의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시나 연구 등을 위해 의궤를 다른 기관에 대여하는 것 등도 프랑스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하여 진행하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은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전시로 외규장각 의궤 297책은 물론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3부로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의 조명과 함께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하며,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에서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를 3D 영상으로 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서가 형태의 전시장은 마치 외규장각 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동을 안겨주며,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의궤의 한 장면을 실제로 전시장에 펼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연의 준화樽花와 의상도 새롭게 복원해 놓았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진행되며,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억하고자 11주기가 되는 11월 21일(월)~27일(일)에는 무료관람이 실시된다. 한편, 외규장각 의궤 이외에 833종 3430책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해제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외규장각의궤 DB를 구축했고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총 6권을 발간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매혹의 명화를 수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걸작들 한국을 찾다.
[서울문화인] 최근 들어 전시의 경향은 고전 회화나 유물중심의 전시보다는 근현대 작품이나 혹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이미지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은 유럽 명화에 목말라 있던 관람객에겐 담비와 같은 전시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첫 날부터 관람객의 줄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189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조선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30주년을 기념,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전시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600년 가까이 중앙 유럽 대부분과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일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 600년 가까이 유럽사에 굉장한 영향력을 준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세 가문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가문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기를 알린 카를 5세,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트아네트,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뮤지컬로 익숙한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도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까지 근대사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친 가문이다. 참고로, 뮤지컬 속 엘리자베스(암살)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설립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이며, 루돌프 황태자(자살)는 그의 외아들이다. 또한,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냇동생 카를 루트비히의 장남이며, 멕시코 황제로 1867년 멕시코 저항군에 의해 처형된 막시밀리안 1세도 요제프 1세의의 동생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1916년까지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최장 재위하였으나, 불행한 가족사를 그대로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10세기 무렵 스위스의 작은 백작 가문으로 시작하였으나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477년 부르고뉴 공국의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와 공국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 지방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에 편입시켰다. 1495년에는 그의 아들 필리프와 스페인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자 후아나의 결혼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부, 새롭게 발견된 아메리카 영토까지 합스부르크의 영향 하에 놓이게 하였다. 1515년에 자신의 손녀와 손자를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 계승자들과 결혼시키면서 3세대 만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 제국 이후 가장 거대한 유럽 제국을 확장하고 통합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카를 5세(1500-1558)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으로 모두 즉위하면서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Let others wage wars, but you, happy Austria shall marry."(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하라) 합스부르크 왕조가 어떻게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결혼동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가족 간의 근친혼이었다. 조카와 삼촌, 엄마 동생과 고모의 아들, 여동생 딸, 이들은 모두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결혼 상대자였다. 초기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러나 수백년 간 이어진 이런 근친혼은 결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하나로 작용했다.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흔히 합스부르크립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립 유전병의 특징은 거대한 턱과 낮은 지능, 그리고 면역력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후대에 갈수록 대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유전병으로 유아사망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대를 잇지 못하면서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물려주게 되면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이 왕가를 이었으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발이 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더 이상 근친혼이 사라지면서 합스부르크립은 점차 사리지게 되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기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 간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그들이 수집한 예술품 빈미술사박물관은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으로 1858년,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가 황실예술품 컬렉션을 수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 등 고대유물부터 19세기 회화까지 방대한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회화 방면에서는 피터르 브뤼헐 1세의 ‘바벨탑’, 램브란트의 ‘자화상’,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등 유럽의 미술관 중에서도 회화 방면에서는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하면서 놀라운 안목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라는 점이다. 이는 박물관의 수집품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4세(1605-1665)는 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문화적으로는 부흥기를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작품들은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남편인 레오폴트 1세와 아들 카를 6세에 의해 상당수 빈으로 이전되어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때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주옥같은 명화가 빈으로 오게 되었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 작품 수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또 다른 인물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다. 대공은 161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아들로 성정이 용맹하고 전략이 뛰어나 30년 전쟁을 비롯한 오랜 기간 기사단장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그는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나 일생 동안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브뤼셀에서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관심이 많아 플랑드르 지역에 머물던 시기 장르별로 최고의 17세기 명화를 수집했다. 또한, 영국 버킹엄 공작의 소장품 경매 등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회화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적극 활용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 근무를 끝내고 빈으로 귀환할 때 자신의 수집품을 빈으로 이전했다. 그 결과 그가 수집한 명화들이 대부분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단지 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의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욕심에서는 박물관의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 목록에 빠져 아쉬움이 남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얀 스테인의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등 잘 익히 잘 알려진 작품은 물론 ‘페르디난트 2세’, ‘펠리페 4세’, ‘테레사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 ‘요제프 2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왕실 장식품, 중세 갑옷 등 이번 에 소개되는 96점의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황제나 대공이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으로 어느 하나 허투루 감상할 작품이 아니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13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 갑옷과 투구를 1894년에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자하네 하크 빈미술사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서구 예술계에서 가장 명성 있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유물들 중 많은 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쿤스트캄머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와 무구와 갑옷, 투구, 태피스트리, 옛 거장들의 회화, 정교한 장식예술품, 호화로운 의복과 궁중 예복들이 포함된 소장품들은 장엄함과 화려함, 왕권의 상징과 의례들, 합스부르크 통치자들과 관련된 영예와 장관을 드러내 보여준다. 약 100여 점에 이르는 유물 중 많은 수는 막시밀리안 1세, 티롤의 페르디난트 2세 대공, 루돌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중한 컬렉션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보물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또한, 전시 도록은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에 대한 특별하고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예술로 다시 피어나다’
[서울문화인]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영수)이 2016년부터 박물관 소장 자료를 예술 창작의 소재로 활용, 예술 및 산업 콘텐츠로서의 한글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한글실험프로젝트의 4번째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 한글 연구소> 특별전을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2016년 첫 전시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에 이어 2017년 <소리×글자: 한글디자인>, 2019년 <한글디자인: 형태의 전환>에 이어, 올해는 근대 시기 한글 자료를 예술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근대는 한글이 쓰이는 방법과 한글 문헌의 형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어문 규정의 토대가 다져진 시기이다. 1894년 고종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선포한 ‘국문선포’로 인해 한글은 창제 이후 약 450년 만에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글이 공식 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정리와 한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불러일으키며 한글 연구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글 연구자들에 의해 가로 쓰기, 띄어쓰기, 한글 전용 글쓰기 등 한글 사용에 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고, 출판물을 인쇄에 사용하는 한글 납활자도 활발히 생산되었으며 각종 서적에 특색 있는 한글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제작 바탕이 된 박물관의 소장 자료는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와 국어 문법서 『말의 소리』, 지석영이 편찬한 외국어 교재 『아학편』, 프랑스인 선교사가 편찬한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한글 띄어쓰기를 선구적으로 적용한 「독립신문」 등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번 한글실험프로젝트는 시각 분야 7명과 1팀, 제품·공예 분야 7명, 패션 분야 4명, 리서치프로젝트 2팀, 음악 분야 1명과 1팀, 영상 분야 1명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협업을 통해 한글문화의 외연을 더욱 확장했다. 특히 올해 음악 분야와 첫 협업을 시도했다. 국악 아카펠라그룹 토리스는 판소리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판소리 <흥부가> 중 흥부에게 은혜를 입은 제비가 강남에 갔다가 이듬해 봄, 박씨를 물고 흥부네 집으로 날아오는 여정을 주제로 한 소리 대목)를 불렀으며, 작곡가 김백찬은 근대 한글 연구자 주시경을 기리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근대 한글 연구소’라는 공간을 설정하여 4개의 연구실로 구성되었다. 1부 ‘동서말글연구실’에는 근대 시기 한글과 서양 언어의 소통이 반영된 『한어문전』 등의 자료를 재해석한 작품을, 2부 ‘한글맵시연구실’에는 가로쓰기, 풀어쓰기 등 근대 한글 사용 방법의 변화를 작가의 시각에서 새로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3부 ‘우리소리실험실’에서는 근대 시기 대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판소리계 납활자본 고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4부 ‘한글출판연구실’에서는 근대 한글 출판물을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한글실험프로젝트는 2023년 1월 29일(일)까지 진행 이후, 국내외를 순회하며 한글의 문자적·미적 가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알릴 예정이라 한다. [허중학 기자]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추억으로 떠나는 골목길 공연
[서울문화인] 경향신문사 맞은 편 경희궁 옆 골목 안쪽,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일컫는 ‘돈의문(敦義門)’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는 이름만으로 남게 되었다. 돈의문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이지만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대에 서전문(西箭門: 서살문)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옛 돈의문을 갓 지은 ‘새문’이었을 때 그 안쪽에 있다고 해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60년대엔 경기고 등 인근 명문고 진학을 위해 가정집을 개조한 과외방이 성행했고, 강북삼성병원 같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는 골목식당 집결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건물과 옛 골목길을 간직한 이 작은 마을은 지난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전면 철거될 뻔 했지만 ‘15년 서울시가 삶과 기억이 잘 보존된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재생하기로 하면서 ‘17년 마을 내 건물을 최대한 살린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조성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마을 내의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하였으며,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면서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많은 시민이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다양한 추억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하였다. 처음에는 예술가를 위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돼 왔지만, 2019년 4월부터 전시·행사·체험 등이 열리는 시민참여형 공간(마을전시관(16개동), 체험교육관(9개동), 마을창작소(9개동))으로 재탄생하였다. 지난 9월 30일부터 이곳에서는 관객이 직접 배우가 되고, 마을 전체가 무대가 되는 ‘관객참여형 공연’ <백 년의 밤>이 진행되고 있다. <백 년의 밤>은 박(博), 문(門), 영(影),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지난 50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중, 장년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세대의 서울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백 년의 밤>은 ‘서울 100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 서울을 시민과 예술이 일상 속에서 가깝게 호흡하는 ‘시민문화향유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공연인 만큼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져 잔치에 손님으로 참여하거나, 준비된 의상을 입고 거리를 걷는 등 공연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또한, 공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원하는 만큼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스스로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제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좁은 골목길,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지만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고즈넉한 밤, 마을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연은 공연장 무대에서 만나는 작품과는 사뭇 다른 애틋한 향수를 가득 안겨준다. 5명의 배우와 함께하는 <백 년의 밤>은 오는 12월 2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시간 내외로 진행되며, 매 공연마다 15명의 관객만이 함께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은 돈의문박물관마을 누리집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티켓은 전석 1만원이다. 한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공연과 더불어 친환경 벼룩시장 <돈의문 시장>, 서대문 주변 직장인들의 퇴근 후 자기계발을 공략한 강좌 프로그램인 <돈의문 야학당>을 함께 개최된다. 또한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한옥에서는 전통 공예 프로그램 <예술가의 시간> 등, 다양한 문화 행사 와 프로그램을 운영되고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뒤뷔페와 예술로 우정을 쌓은 자크 빌레글레를 만나다.
[전시]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뒤뷔페와 예술로 우정을 쌓은 자크 빌레글레를 만나다.
[서울문화인] 2차 대전 후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으로 대변되던 당대 세계미술 흐름 속에서 세계 미술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미술은 침체에 빠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사조인 ‘앵포르멜’ 미술을 개척한 뒤뷔페는 파격적인 예술실험과 독창적 스타일로 유럽의 자존심이자 당시 서구 미술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구상과 비구상을 초월하여 모든 정형을 부정하고 새로운 조형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가공되지 않은 날것, 원초적 가치를 추구하여 ‘아르 브뤼(Art Brut,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 개념을 창시하였다. 또한, 여러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 평면적인 콜라주와 구분하기 위해 ‘아상블라주(Assemblage)’ 개념을 만들어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모으기, 집합, 조립’ 이라는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을 말한다. 용어의 기원은 피카소로 보고 있지만, 1954년 장 뒤뷔페가 콜라주의 구별을 위해 풀 먹인 종이 와 여러 물질들로 이루어진 작은 인물상을 지칭한 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소마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와 올해 6월 향년 96세로 타계한 자크 빌레글레(Jacques Villeglé, 1926-2022) 사이의 서신교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획된 전시로 두 예술가의 편지는 2021년 <뒤뷔페 빌레글레, 서신교환 1975-1985. 도시전설>이라는 뒤뷔페 재단의 전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작고한 자크 빌레글레가 생전 마지막으로 준비한 회고전이기도 한 전시인 만큼 뒤뷔페의 전 생애를 조망한 작품(67점)들뿐만 아니라 빌레글레(32점)의 작품도 함께 소개되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나는 50년대에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열망을 포기했었다.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된 예술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고 더 이상 그 세계에 맞추려는 열정을 상실했다.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랑했고 내 유일한 욕망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예술작품이란 존재 저 깊숙한 곳에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투영이 일어날 때 비로소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예술의 창작 과정을 오직 이 ‘아르 브뤼’ 안에서만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장 뒤뷔페 뒤뷔페는 ‘아카데믹한 교육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하며 파리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6개월간 공부한 것 외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41세까지 가업을 이어 포도주 상인으로 살다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전통적 미술 양식을 거부하고 서구문명이 맹목적으로 좇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회화 재료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어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1950년대 파리에서는 회화적 아방가르드가 추상 회화에 의해 나타났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었다.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타이포그래피와 벽보가 탐험해야 할 길처럼 보였다.”-자크 빌레글레 빌레글레는 1960년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 운동으로 ‘신사실주의’라 불리는 ‘누보 리얼리즘’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1947년 생말로에서 발견된 물체(철선, 생말로의 대서양 옹벽에서 나온 벽돌)를 수집하여 처음으로 미술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49년 12월, 그는 거리에서 찢어진 광고 포스터에 그의 작품을 집중, 거리의 마구 찢어진 포스터들을 수집해 <벽의 외피> 작업의 핵심으로 삼았다. 1974, 뒤뷔페와 빌레글레와의 만남 뒤뷔페가 1975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CNAC에서의 자신의 전시를 위해 디자인한 포스터가 훗날 퐁피두 센터가 세워지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 자크 빌레글레는 동네를 산책하다가 장 뒤뷔페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비회화속의 회화’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그의 포스터 한 장을 떼어냈다. 그는 1975년 2월과 12월 사이에 제작된 40여개의 찢어진 포스터를 제작하며 뒤뷔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물이 된다. 이 포스터는 빌레글레가 10년 후인 1985년에 렌느 도시의 문화회관에서 <우를루프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게 되면서 연결점이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뒤뷔페의 앵포르멜 시기의 초기작부터 그의 일생 최대 프로젝트인 ‘우를루프’ 연작은 물론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잘 알려진 ‘쿠쿠바자’까지 5부(<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우를루프(L’Hourloupe)‘ 연작>, <우를루프의 귀환, 뒤뷔페와 빌레글레의 만남>, <우를루프의 귀환, 뒤뷔페와 빌레글레의 만남>, <앵포르멜의 선구자 장 뒤뷔페>,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 뒤뷔페의 이야기>)로 나눠서 소개한다. 특히 그의 작업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포스터 도안가 뒤뷔페’를 다루면서 어떻게 뒤뷔페의 포스터 중 하나가 25세 어린 자크 빌레글레의 고유한 시리즈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허중학 기자]
[전시] 서울공예박물관, 한국 대표 금속공예가 故유리지 기증작 327점 소개
[전시] 서울공예박물관, 한국 대표 금속공예가 故유리지 기증작 327점 소개
[서울문화인]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이 개관 이후 첫 번째 기증특별전으로 한국 현대 금속공예 발전에 헌신한 故유리지(1945-2013) 작가의 전 생애 대표작품 327점의 기증작을 선보이는 기증특별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유리지는 한국 현대공예를 대표하는 1세대 작가로서 1970년대 미국 유학 이후 국내 현대 금속공예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 크게 기여한 공예가이자 교육자, 미술관인으로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인 유영국(1916-2002)의 장녀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서정적 풍경을 표현한 금속공예 작품을 비롯하여 장신구, 환경조형물, 장례용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작품 활동과 함께 198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전공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4년 우리나라 최초 금속공예 전문 미술관인 ‘치우금속공예관’을 설립해 2010년부터는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금속공예를 연구·전시하고 차세대 공예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 힘쓰다. 2013년 2월 백혈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개관 준비 단계부터 현대 금속공예 대표작가인 유리지의 위상과 그가 남긴 작품과 자료의 가치에 주목해왔다고 한다. 유리지가 세상을 떠난 후, 유족은 그를 기리고자 미술관의 명칭을 ‘유리지공예관’으로 바꾸어 현재까지 운영하며 유지를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2022년 여름, 유리지의 작품과 자료를 관리해 온 유족이 숙고 끝에 유리지의 전 생애 주요작품 총 126건 327점(37억 28백만원 상당)에 이르는 작품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번 기증작품에는 유리지의 시대별 대표작품과 더불어 유리지와의 협업으로 유자야(여동생, 섬유공예가, 前 고은보석 대표, 現 유리지공예관 관장)가 제작·판매하였던 귀금속 장신구와 칠보은기, 황금찻잔 등의 고급 금속공예 제품 컬렉션도 함께 기증되었다. 전시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를 타이틀로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에서 총 4부로 구성되어 유리지의 전 생애 작품과 우리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예가의 역할을 살펴보고 있다. 기증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에 이어 유족들은 한국 공예발전에 깊은 뜻을 가졌던 故유리지의 유지를 이어 ‘서울시 공예상’ 제정과 운영에 후원 의사를 밝혀 향후 ‘서울시 공예상’에 귀추가 주목된다. 기증자(유족)은 서울시 공예상 제정을 위한 총 6억 규모의 상금을 기부하여, 이에 서울시는 한국 공예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노력한 유리지의 뜻을 기려 향후 20년간 우수한 한국공예가를 선정·시상하는 ‘공예분야 작가상’ 제정, 공예 재료분야별 1인 격년 시상(’23년 하반기 제정 목표)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은 기중자의 컬렉션이 아닌가 싶다. 현재 박물관에는 옛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1926~2018)∙박영숙의 기증컬렉션관을 상설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서울시에 무상 기증한 공예품은 무려 4,241건(5,129점)에 이른다. 기증품에는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자수병풍, 보자기 등 1천여 점 비롯해 자수공예 및 복식 등 각종 직물공예품, 장신구, 함, 바늘과 같은 침선구를 망라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국가지정 보물 제653호인 4폭 병풍 <자수사계분경도>와 국가민속문화재 41호 <운봉수 향낭>, 국가 민속문화재 42호 <일월수다라니 주머니>, 국가 민속문화재 43호 <오조룡 왕비보> 3건도 포함돼 있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이번 기증특별전시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한국 현대공예를 대표하는 유리지의 주요 작품을 감상하며 일상을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공예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시길 바라고, 동시에 박물관의 현대금속공예 컬렉션을 국내외에 적극 홍보하여 우리 공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교류의 기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유리지의 기증 작품을 비롯하여 개관 전후 서울공예박물관에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기증한 이봉주(국가 무형문화재 유기장 명예보유자) 등 금속공예가 9인(김승희(1947-), 김여옥(1945-), 서도식(1956-), 신혜림(1971-), 이봉주(1926-), 정영관(1958-2020), 정용진(1965-), 조성혜(1953-), 최현칠(1939-))의 작품도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국 현대 금속공예 발전에 헌신한 故유리지 작가의 전 생애 대표작품 만나볼 수 있는 이번 기증특별전은 서울공예박물관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1월 27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회화의 추상주의와 미니멀리즘을 사진으로 담아내다. ‘프랑코 폰타나’ 회고전
[전시] 회화의 추상주의와 미니멀리즘을 사진으로 담아내다. ‘프랑코 폰타나’ 회고전
[서울문화인] 마이아트뮤지엄이 지난 9월 30일부터 컬러 사진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사진작가 프랑코 폰타나의 한국 최초 회고전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를 선보이고 있다. 프랑코 폰타나는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경이로운 추상적 색채 풍경으로 세계적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로 흑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에 컬러 사진을 탐구한 색의 선구자이자 동시에 도시와 건축의 풍경 및 멀리 있는 인간피사체와 같은 장르의 선구자이다. 프랑코 폰타나(b.1933년 이탈리아, 모데나)는 사진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던 그는 28세가 되던 1961년이 되어서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65년 토리노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독일, 스위스, 미국, 스페인 등 세계의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400회 이상의 개인전 및 그룹전에 출품하는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성장해나갔다. 그의 작품은 뉴욕 모마 미술관,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 토리노 근현대 시민 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 등에서 선보였으며, 세계적인 브랜드인 캐논, 소니, 페라리, 볼보, 돌체앤가바나, 베르사체, 코닥 등과도 협업하였다. 뉴욕과 도쿄에서 다수의 컨퍼런스와 워크숍을 개최했고, 미국 보그, 프랑스 보그, 뉴욕 타임스 등의 패션잡지와 언론지에도 폰타나의 사진이 담겼다. 그는 1960년대 초반에 흑백 사진의 관습을 벗어난 순수 예술 사진작가가 거의 없었을 때부터 컬러 필름을 받아들였고 사진의 투명도를 과소 노출하여 한 폭의 회화 작품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들었다. 기존 스타일과 관행으로부터의 단절은 전후 이탈리아 사진 역사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발단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1960년대 회화의 추상주의와 미니멀리즘의 형태와 색상에 집중, 이를 흡수해 사진에 담아내며, 그만의 특유의 추상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마치 회화 작품을 연상케 하면서도 독특한 기하학적 구성을 형성하며 놀라운 시적 감각을 전달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은 폰타나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고찰하는 예술적 주제이자 그의 인생 철학이 담긴 삶의 풍경 122점을 선보인다. 자연, 도심, 인물, 도로가 피사체가 되어 ‘랜드스케이프’, ‘어반스케이프’, ‘휴먼스케이프’, ‘아스팔토’라는 이름의 네 가지의 섹션으로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 섹션 <랜드스케이프>는 작가가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여행 다니며 담은 경이롭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 섹션의 작품들은 그림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평면적이다. 강렬한 색감의 대비와 간결한 구도는 평면성에 신비감을 더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원래 모습이 맞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폰타나는 늘 사진을 찍으러갈 때 혼자 가지 않고, 네다섯의 친구들과 동행하였다고 한다. 모두 같은 장소를 탐색하지만, 폰타나만이 조금 더 특별하고 경이로운 장면을 포착하고 담아냈다. 두 번째 섹션 <어반스케이프>는 우리 주변의 도시 풍경과 사물을 특별한 시점과 해석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건물, 표면, 물체 및 색상 등이 모두 폰타나에게는 영감이 되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이미지가 아닌, 공간의 차원에서 접근, 건물이나 물체의 전체 형태를 담기보다는 그것들이 겹쳐지는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그 안에 있는 공간, 부피 및 조형적 관계와 상호작용에 집중하였다. 마치 디지털 합성이라도 한 듯한 비현실적으로 평면적인 풍경이지만 폰타나는 오롯이 현실 그대로만 담아내었다. 세 번째 섹션 <휴먼스케이프>에서는 앞 섹션의 주제와 맥락을 이어가지만, 사람을 피사체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피사체가 벌거벗은 사람이든 나무이든 큰 주제와 예술관은 동일하다. 표현의 방법적인 시도는 달라졌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을 조금 색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네 번째 섹션 <아스팔티>는 폰타나의 ‘아스팔티’ 시리즈와 ‘아우토스트라다’ 시리즈로 구성된 섹션으로 ‘아스팔티’는 아스팔트의 이탈리아식 발음이며, ‘아우토스트라다’는 현대의 고속도로 개념을 가장 일찍 도입한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고속도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아스팔트와 고속도로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그 당시 폰타나에게는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풍경의 등장으로 폰타나에게 새로운 풍경을 그려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영감이자 표현적 요소가 되었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피사체와 새로운 건축 재료인 아스팔트 위에 도로 기호, 페인트선과 깨진 틈 등 부가적으로 생겨난 요소를 촬영하였다. 특히, 셔터 속도와 피사체의 움직임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낸 묘하게 뭉개진 형상과 색의 블렌딩은 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개체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법이라 하겠다. 폰타나에게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모습이다. 일상의 모든 찰나가 그에게는 풍경이 되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이 폰타나의 예술이다. 특히 대상이 사물, 장소 혹은 사람이든 삶의 풍경 속에서 매혹적인 부분과 대비를 발견할 줄 알고 그것을 색과 구도의 관계로 정제하였다. 전시는 2023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통성과 독창성의 공존을 보여주는 ‘제43회 서울무용제’, 11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전통성과 독창성의 공존을 보여주는 ‘제43회 서울무용제’, 11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서울문화인] 올해로 43회를 맞이하는 ‘서울무용제’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오는 11월 11일부터 11월 27일까지 17일 동안 다양한 장르의 춤의 여정을 펼친다. 서울무용제는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로 출발 한국무용, 현대무용은 물론 발레 등 무용 전 장르의 공연을 만날 수 있는 무용제로 그동안 경연을 중심으로 진행됐으나, 2017년부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4마리 백조 페스티벌’ 등을 신설해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상명대학교 공연예술경영학과 교수)은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변화의 바람, 서울무용제와 함께!’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경연 부문에서 특히 큰 변화를 줬다.”라고 밝혔다. 그 변화는 올해 기존 8개 팀이 참가했던 경연대상 부문의 참가 팀을 4개로 줄이는 대신 각 참가작의 길이를 기존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렸다. 이와 함께 창작지원금도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확대하였다. 안병주 서울무용제 운영위원장은 “그동안에 짧은 공연시간에 안무가들이 제대로 공연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선정 팀을 줄이는 대신 공연 시간을 확장해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선정된 4명의 안무자(팀)들은 수상 여부를 떠나 무용분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올해 경연을 통해 선정된 4팀은 ▲가림다 댄스 컴퍼니 ‘블루 아워’(안무 이지희), ▲시스템 온 퍼블릭 아이 ‘이너 그루밍’(안무 김영진), ▲조성민 무용단 ‘울, 음’(안무 조성민), ▲안덕기 움직임 연구소 ‘바다는 내게’(안무 안덕기)가 선정되었으며, 4팀은 11월 18일부터 4일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경연을 펼친다. 또한, 경연부문 중 올해 ‘Seoul Dance Lab’ 부문이 신설되었다. 신설부문은 “전염의 무도-코로나 시대에서의 춤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현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예술 담론을 가장 혁신적으로 표현하며 대한민국 안무의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하는 창작작품을 선정하는 경연으로 올해 12명의 안무자들이 참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1월 22일(김재권, 김강민, 윤명인, 조현도, 김시연, 박영대), 11월 24일(김단우, 조혜정, 양병현, 방지선, 임우빈, 최종원)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Seoul Dance Lab’부문 최우수작에는 1,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축제를 알리는 11월 11일(금)에는 서울무용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콘텐츠가 펼쳐진다. 우리나라 무용 역사 속에 큰 자취를 남긴 춤의 거장과 대중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무용계 스타들의 구성으로 감동의 무대를 선사하는 <무.념.무.상(舞.念.舞.想)Ⅰ,Ⅱ>과 개막식이 함께한다. 조남규 이사장은 “올해 무용계의 ‘레전드’라고 할 분들을 어렵게 모셨으며, 일반 대중도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일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전국 각지에 숨어있는 우수한 작품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인 <명작무극장>에는 ‘타악, 리듬으로 노닐다’로 새롭게 기획하여 11월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두드림 소리로 채울 예정이며, 무용계를 대표하는 젊은 무용가들의 열정이 발하는 <열정춤판>, 중견의 세련됨과 노련함이 돋보이는 <남판여판춤판>을 통해서는 무용계에 이제 막 입문한, 그리고 관록 있고 안정된 작품을 선보이는 무용가들의 춤사위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감동의 ‘춤판 시리즈’ 무대가 펼쳐진다. 부대행사로 무용계의 밝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전국 33개 대학교 무용전공생들의 열정의 무대 <대학무용축제>가 10월 27일(목)부터 10월 31일(월)까지 5일간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진행되며, 작년에 반응이 뜨거웠던 대상 상금 500만 원을 두고 사전에 진행된 <4마리 백조 페스티벌 – 춤추는 Reelswan>의 Best 10이 오는 11월 7일(월)에 선정될 예정이며, 1등을 한 대상 작품은 11월 27일(일) 시상식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무용제는 11월 11일(금) 개막식에 앞서 무용교육혁신위원회와 함께 대한민국 무용교육의 미래 “응답하라 2025!”라는 주제로 ‘2022 대한민국 무용교육 포럼’이 개최된다. 한편, 올해 서울무용제에는 가수, 배우를 넘나들며 아시아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겸 배우 박정민과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성장하고 있는 트로트 가수 조정민이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제43회 서울무용제와 함께한다. 무용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서울무용제가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장르를 대상으로 하거나 다른 무용을 주제로 하는 축제에 비해 인지도가 크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올해 서울무용제의 ‘변화의 바람’이 대중성을 위한 변화가 아닌 내부의 사정에 의한 변화의 바람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너무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과연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중의 관심을 잃은 장르는 언제나 그들만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다. [허중학 기자]
세계 고급음식과 관객참여로 즐길 수 있는 공연,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
세계 고급음식과 관객참여로 즐길 수 있는 공연,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
[서울문화인]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 분명 공연장에서 진행하는 것이니 공연이거니 하겠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타이틀로 선보이는 이 작품은 여전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이 극의 스토리를 바꾸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지고 있는 관객 몰입형 공연을 흔히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er)’ 공연이라 한다. 여기에 고급 식당을 의미하는 ‘파인 다이닝(Fine-dining)’이 결합된 형태의 공연을 ‘이머시브 다이닝’이라 일컫는다. 흔히 연말에 볼 수 있는 디너쇼가 ‘이머시브 다이닝’이라 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콘서트에 가깝다. 이 ‘이머시브 다이닝’은 최근 몇 년 사이 영미 문화권에서 신개념 공연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grand expedition)’은 여행을 테마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010년부터 12년간 영국 최고의 이머시브 다이닝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진저라인(GINGERLINE)이 2018년 초연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당시 유료 객석 점유율 90%를 넘는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선보이는 ‘그랜드 엑스페디션’은 관객이 열기구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되어 각 나라를 방문한다는 내용이다. 먼저 공연장에 도착하면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 같은 동화책을 만나게 된다. 거대한 동화책을 통해 공연장을 들어선 관객은 이륙 준비 중인 열기구 콘셉트의 테이블에 착석한 뒤 바람의 요정 정령 ‘실프’가 안내하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열기구에 탑승해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으로 떠나는 120분의 여정은 영국 그리니치,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시베리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쳐 우주까지 향한다. 각 나라에 도착하면 해당 도시를 테마로 한 감각적인 영상을 비롯해 그곳의 옷으로 갈아입은 배우들이 특색에 맞는 음식을 나르고, 객석 사이를 돌아다닌다. 공연만큼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공연 중에 제공되는 음식은 세계 각지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테크닉으로 한국의 식재료와 음식을 재해석한 테이스팅 메뉴로 2020년 미쉐린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된 후 3년 연속 1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레스토랑 EVETT(에빗)의 쉐프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가 참여했다. 조셉은 “지난 4년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번 공연의 메뉴를 설계할 때도 한국인만의 오묘한 고유의 입맛을 잘 접목하도록 최고로 염두했다.”고 밝혔다. ‘그랜드 엑스페디션’은 감상 위주인 공연 관람의 통념을 탈피한 퍼포먼스와 관객의 미각을 자극하는 공연인 만큼 관객의 자유로운 참여도 중요하다. 배우들이 정해진 움직임만 반복하지 않고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공연인 만큼 관객 본인이 즐기는 만큼 즐거워질 수 있다고 하겠다. 진저라인의 프로듀서 수즈 마운트포트 “작품을 개발할 때는 이야기나 음식을 먼저 정하기보다는 관객이 하게 될 경험이 무엇일지를 정한 뒤에 그에 맞춰 이야기와 음식을 채워나간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보려는 관객은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한 쇼”라며 그만큼 음식과 공연, 관객이 모두 합쳐질 때 완성되는 작품이라고 밝혔는데 이경윤 캡틴 퍼포머는 “외국인들은 이렇게 되게 개방적인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부끄럽고 수줍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공연에 막상 들어와 보니까 되게 잘 즐기시더라고요”고 밝혔다. 여행, 요리 그리고 공연까지 함께하는 이머시브 다이닝 ‘그랜드 엑스페디션’은 2023년 3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된다. 한편, 이번 한국 공연의 기획/제작에는 공연 제작사 아이엠컬처와 NCC(뉴컨텐츠컴퍼니)가 참여하였다. [허중학 기자]
세계샤머니즘포럼 창설 “샤머니즘 국제학술 및 콘텐츠 활용 도모”
세계샤머니즘포럼 창설 “샤머니즘 국제학술 및 콘텐츠 활용 도모”
[서울문화인] 인류 역사상 오래된 보편적 신앙이자 국가 및 지역, 생태마다 다양한 샤머니즘에 대해 국제적 학술 교류와 콘텐츠 활용을 도모을 목적으로 지난 10월 6일 서울 금성당·샤머니즘박물에서 세계샤머니즘포럼이 출범했다. 이날 창립식에서 금성당·샤머니즘박물관 관장인 양종승 박사가 포럼의 초대회장에 추대됐으며, 금성당·샤머니즘박물관은 앞으로 본부 역할을 맡게 됐다. 포럼의 고문에는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 로렐 켄달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교수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내외 학자와 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자문위원 등에 임명됐다. 양 박사는 “샤머니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종교로써 삶의 이성과 감성을 다스리며 영적 가치, 문화예술의 계승을 발전시켜 온 세계 종교문화”라며 “앞으로 ▲샤머니즘의 학술조사 및 연구 ▲유무형문화 보존 및 계승 ▲아카이브 기록 및 공유, 교육 및 연수 ▲국제교류 및 공연예술문화콘텐츠 개발 및 활용 ▲국제저널 및 학술지 발간, 샤머니즘상 및 공로상 시상 등 사업을 통해 샤머니즘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샤머니즘(Shamanism)이란 샤먼이 신(神)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대행자와 중재자로 자리잡아 집단의 중심이 되는 원시종교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한국에선 무속신앙이 이에 속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샤머니즘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앙, 몽골과 북아시아 일대의 텡그리 신앙이 있다. 한반도에도 일찍이 불교가 전래되어 국가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그 맥이 유지되고 있는 반면 유럽에서는 오랜 박해로 인해 현재는 거의 남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샤머니즘 신앙인 무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북방 유목민족의 샤머니즘인 텡그리 신앙과 한반도의 자생적인 원시 종교가 섞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