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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인가? 영화의전당인가?
예술의전당인가? 영화의전당인가?
서예박물관 정체성과 관련 없는 한국영화100주년 포스터전, 서예인들 비판 줄이어 “서예와의 개연성 조명도 없고, 아무런 부제나 설명도 없는 전시는 정도 아니다” [서울문화인]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이 현재 서예박물관 2층 전관에서 열고 있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전시가 박물관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전시라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서예박물관은 지난 달 27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서 영화사에 의미 있는 자료들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 전시가 영화와는 관련이 없는,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서예계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들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번 영화포스터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개막식 또한 영화계 원로와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고 밝혔지만 정작 “서예박물관에서 ‘서예’는 실종됐다”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비판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전당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 자료의 전시 취지를 담은 전시소개 글에서도 확인된다. 전시소개 전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예술의전당은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2019년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파란만장한 영화 100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영화 포스터’라는 거울로 되돌아보며 빼앗긴 나라, 항일,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바쳐 살아온 우리 시대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단지 최초 보도자료를 내보내면서 “포스터에 쓰인 영화 제목이야말로 동시대의 서민들과 대화하는 살아있는 민체 글씨...서울서예박물관에서는 2016년 개최한 <한글 서와 라틴 타이포그라피>展을 통해 타이포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수용한데 이어, 이번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을 개최함으로써 서울서예박물관의 문턱을 낮추는 대중화 노력에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글의 중간 부분에 몇 줄이 언급돼 있다. 그러나 정작 전시 제목이나, 실제 전시 구성은 이와는 동떨어져 문제다. 이는 개막식 이후 보도자료에서 더 완연히 드러난다. 서예박물관을 관장하는 유인택 사장의 인사말 어디에도 ‘서예’나 ‘문자’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얼마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계기로 한층 더 높아진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의미를 짚고, 한국영화 100주년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내용만 강조돼 있다. 자료에는 “유인택 사장은 개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요즘,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행사를 개최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며 ’이번 전시는 온 가족이 다함께 즐기고, 우리 영화 100년사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라고 적시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서예계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임종현 한국미협 서예분과 행정이사는 “서예박물관에서 서예가 이닌 걸로 전시한다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도 민화전을 열어서 서예계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서예박물관은 서예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장르로 전시를 한다는 것에 서예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고, 어처구니 없다. 서예로 여러 좋은 전시를 해야 하는 박물관이 자신들의 직무를 다른 데다 떠넘긴다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문인화가인 박종회 선생은 “박물관 설립 목적과 맞지 않다. 후원을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회에서 했던데 이것을 왜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예협회 윤점용 이사장(서예박물관 운영위원)은 서예박물관의 기획의 빈약함을 질타했다. 윤 이사장은 “할말이 없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라면서 “영화포스터에 붓글씨 타이틀 등이 서예와 연관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결부해서 부각시켰다면 서예의 사회성과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런 부제나 설명도 없이 ‘영화포스터전’으로만 한다는 것은 정도가 아니며, 밑도끝도 없는 전시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새로온 예술의전당 사장이 영화인이라 새로운 기획을 했는데 큰 아쉬움이다. 제대로 된 서예전시가 없는 가운데 이런 전시까지 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크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울러 윤 이사장은 자신이 서예박물관의 운영위원임에도 이번 전시와 관련한 회의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 전시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이종선 서예단체총연합회 간사(서예박물관 운영위원)는 “전시를 보지 못해서 뭐라할 수는 없지만 (영화포스터전만 부각된 전시는) 전시장 운영목적과 성격에도 어긋난다” 면서 “올해 전시기획에도 전혀 없었는데 급조된 것으로, 서예관 전시계획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예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2019년도가 영화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해서 우리가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기획전을 하게 됐다” 며 “전시포스터가 하나의 시각매체인데 그 안의 텍스트 문자들이 100년을 지나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을 서예쪽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시기획자는 “전시란 기획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관객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전시에서는 영화포스터에 쓰여진 문자의 서체나 예술성 등에 대해서 전혀 설명도 없으며 관객이 전시물을 통해 문자의 변화를 느낄 어떠한 장치도 맥락도 없는 전시”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예술의전당이 보도자료를 통해 ‘타이포그라피 등을 언급한 것은 단지 자신들의 전시의도를 가리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며, 이 전시는 부산 영화의전당이나 다른 영화 관련 기관에서 여는 것이 적합한 전시”라고 덧붙였다. [출처.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기자 / sctoday.co.kr]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내가 사랑한 아리랑’ 개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내가 사랑한 아리랑’ 개최
[서울문화인]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공연 ‘내가 사랑한 아리랑’이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오는 4월 11일*(목) 오후 8시 20분 케이비에스(KBS)홀에서 열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 ‘아리랑’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나라를 잃은 슬픔과 광복의 새 희망, 분단의 아픔까지 민족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대한민국의 문화자산이자 마음의 울림이다. 이번 기념 공연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아리랑’을 통해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임시정부 수립 당시 우리 선조들이 꿈꿔온 나라를 되새겨본다. 배우 문소리의 진행으로 국악 명인, 대중가수 등 다양하고 화려한 출연진이 무대를 꾸민다.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인 두닝우 피아노 연주자, 안톤 강 비올라 연주자도 함께해 아름다운 선율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더욱 뜻 깊게 전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 한국방송공사(사장 양승동)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정성숙)이 주관한다. 이번 공연은 한국방송 2채널(KBS 2TV)에서 생중계되며, 공연 관람 신청은 오는 4월 3일까지 한국방송(KBS) 누리집(www.kbs.co.kr)에서 할 수 있으며, 관람객은 추첨으로 선정된다.
덕유산, 남방의 산 중에서 가장 기이한 산
덕유산, 남방의 산 중에서 가장 기이한 산
오랜 시간 잘 보존되어 온 자연만큼이나 국립공원 안에는 잘 간직해 온 문화유산이 있다. 이러한 국립공원을 옛 선조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과거의 국립공원은 우리의 선조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답은 옛 문헌 속에 있다. 솔솔부는 바람과 청명한 하늘, 다가오는 이번 가을에는 옛 문헌작품 속 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서울문화인] 덕유산은 예부터 깊고 복된 땅으로 불리어 왔다. 세상을 떠나 숨어든 수행자들이 머무르는 곳이자 도인들과 은둔자들의 비밀 성지였으며,나라의 보물을 지켜내는 방책이자 왜적을 물리칠 국토의 요충지이기도 한 곳이다. 여전히 많은 탐방객들이 사시사철마다 색다른 빛깔이 빚어낸 아름다운 덕유산국립공원을 찾고 있다. 덕유산은 역사 속 민간 백성들의 의식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조선 중기에 세상이 어두워지고 백성의 삶이 고달파지자 나라의 흥망과 개인의 안거에 관한 비결서와 예언서 등이 유행했다.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은 덕유산을 우리 국토에서 가장 중요한 10개의 승지(勝地) 중 하나로 언급했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덕유산 일대를 승지 또는 복지(福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골 바깥 쪽은 온 산에 밭이 기름져서 넉넉하게 사는 마을이 많으니, 이는 속리산 이북의 산과 비교할 바 아니다’ 이 외에도 덕유산은 <박문수전>, <갈천집> 등 옛 문학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허목의 <기언집> 28권 하편, 산수기 덕유산기(德裕山記)에 담겨진 덕유산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인 허목은 덕유산을 남방의 산 중에서 가장 기이하다고 말하며 여러 군에 걸쳐 있는 덕유산의 규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줄기는 붉고 잎은 삼나무 같으며 높이는 몇 길이 되는 특이한 향기의 사철나무가 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덕유산을 대표하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주목으로 보인다. 덕유산의 구름 속 일출. 기록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덕유산을 오르는데 주로 이용하던 두 갈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지금의 거창 신풍령(빼재)에서 구천뢰(구천동) 60리를 오르는 길이다. 빼재라는 지명은 과거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으로 수많은 전투로 인해 많은 이들이 뼈를 묻어야 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신풍령은 빼재에 포장도로가 놓이고 신풍령 휴게소가 설립되면서 불리어지게 됐다. 다른 하나는 구천동부터 주봉인 향적봉까지 오르는 길이다. 금강모치가 사는 구천동 계곡과 신라시대 고찰 백련사까지 자연과 문화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덕유산을 대표하는 탐방코스다. 편도 약 8.5㎞ 계곡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으며 구천동 33경 중, 15경 월하탄부터 33경인 향적봉까지를 품고 있다. 신라시대 고찰 백련사. 그 중 32경인 백련사는 덕유산의 중턱(920m)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한 곳에 흰 연꽃이 피어나 이곳에 백련암을 창건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옛날 구천동 계곡에는 십여 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백련사만 유일하게 남아 구천동 계곡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천년의 긴 세월을 지내며 백련사도 많은 풍파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가 1960년부터 복원돼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팔작지붕 구조의 대웅전과 수선당, 명부전, 사천왕문, 일주문, 범종각, 요사채 등이 복원됐으며 유서 깊은 예전의 백련사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됐다. 덕유산의 전경. 백련사에서는 여러 고승들이 수도했으며 수많은 선사들이 배출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내의 곳곳에 유산으로 남아 있는데 백련사계단(전라북도 기념물 42), 정관당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02), 매월당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3)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을 피한 조선 경종 3년(7323)에 주조된 범종도 잘 보존돼 있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산바람이 솔솔 불고 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는 구천동 계곡을 지나 백련사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선조들의 흔적을 따라 함께 가는 문화가 있는 산행, 역사가 있는 산행에 함께 동행하길 바란다. 덕유산국립공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