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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대의 모니터가 활용된 백남준 , 4년 만에 재가동
1003대의 모니터가 활용된 백남준 , 4년 만에 재가동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백남준 작가 <다다익선>(1988)의 기본적인 보존·복원 과정을 마치고 2022년 1월 17일부터 6개월 동안 시험 운전을 실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 건물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바로 백남준 작가 <다다익선>(1988)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미술관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와 맞물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건축 특성에 맞게 기획·제작된 상징적 작품으로 백남준(1932~2006)의 유작 중에서도 총 1003대(동양, 삼성)라는 최대 규모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활용된 작품으로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하면서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상돼 1988년 완성되어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로 2010년 4월 158대, 같은 해 11월 86대, 2012년 79대, 2013년 6월 100대, 2014년 4월 98대, 2015년 320여 대의 등 수차례 브라운관 수리 및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 그러다 모니터의 노후화에 따른 화재발생 위험 등 안전성 문제로 2018년 2월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둘 문제는 아니었다. <다다익선>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과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독일 ZKM, 미국 MoMA, 휘트니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기관 전문가 40여 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를 조사하였고, CRT 모니터를 대체 가능한 신기술의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다다익선> 보존·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6개월 동안 시험 운전을 통해 미술관은 가동시간별 작품 노후화 정도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다익선>의 수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중장기 운영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 한다. 시험 운전은 6개월간 총 3차례 진행하며, 1차는 1월 17일부터 3월 18일까지 평일에 실시한다. 먼저 1월 17일부터 1월 28일까지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가동하며, 이후 2주 단위로 2시간씩 점차 확대해 3월 7일부터 3월 18일까지는 8시간 가동된다. 2~3차 시험 운전 일정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 한다. [ 백남준 작 <다다익선> 시험운전 일정 안내 ] 작품명 위치 시험운전 일정 다다익선 과천관 램프코어 1차 1월 17일∼1월 28일 (14:00∼16:00, 2시간 가동) 2월 7일∼2월 18일 (11:00∼15:00. 4시간 가동) 2월 21일∼3월 4일 (10:00∼16:00, 6시간 가동) 3월 7일∼3월 18일 (09:30∼17:30, 8시간 가동) * 주말 및 공휴일, 설 연휴는 시험 운전 미실시 * 작품 상태 모니터링 및 응급수리 등 현장 상황에 따라 일정이 변동될 수 있음 * 시험 운전은 총 3차례 실시 예정으로 후속 일정은 추후 안내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까지 전체(1,003대) 브라운관(CRT) 모니터 및 전원부 등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 중고를 수급하여 수리·교체하였으며, 더 이상 사용이 어려운 브라운관 모니터는 기술 검토를 거쳐 모니터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제작·교체하였으며, 또한, 냉각시설 등 작품의 보존환경을 개선하고, 작품에 사용된 8가지의 영상도 디지털로 변환·복원하여 영구적인 보존을 도모하였다고 밝혔다. (CRT 모니터 735대 수리, 상단 6인치 및 10인치 총 268대 평면 디스플레이(LCD) 제작·교체) 이번 복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현재 <다다익선>은 설치된지 30년 이상 경과함에 따라 관련 기자재의 생산이 중단되고 중고품도 소진되고 있다. 미술관이 <다다익선>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 및 관계 기관과 협력하여 양질의 중고품을 수급, 진단, 수리, 사용하고 있으나, 수리에 사용된 중고품도 생산된지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 수 년이 지나 언제든 수명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허중학 기자]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에도 재활용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에도 재활용
[서울문화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그리고 파도치는 물결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조선 왕실에서는 영원불멸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일월오봉도로 장식한 병풍을 왕의 공간에 설치하였다. 그런데,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를 위한 해체 과정에서 이 병풍에서는 다른 오봉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병풍의 틀에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이 여러 장 배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병풍을 제작할 때는 오래도록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병풍의 속틀에 3겹 이상의 종이를 덧대었다. 그런데 오봉병은 왕실에 주로 배설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기물보다 그 보관과 관리가 중요시되었을 것이다. 종이가 귀했던 당시, 물자를 아끼기 위해 족자나 병풍 뒷면에 고문서 및 서책 등을 뜯어 배접했던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6월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는 보관하고 있던 <곤여전도 병풍(坤輿全圖屛風)>의 ‘병풍 배접지’를 환수하여 문화재청에 기증하였는데, 이 배접지는 17세기 전북 익산 지역의 호적대장으로 추정되는 문서로 밝혀졌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이 2016년 왕실 여성이 예식을 위해 입었던 예복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활옷>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활옷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넣은 종이심을 살펴본 결과, 이는 부(賦) 과목에서 ‘選天下端士, 以衛翼之’라는 시제로 치러진 시험의 낙폭지였음이 드러났다.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는 인정전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면서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일월오봉도의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顔料)가 들뜨고, 구조를 지탱하는 병풍틀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을 입으면서 2015년 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와 2016년부터 전면 해체 보존처리를 시작해 지난 2021년 말 작업을 마쳤다.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는 과거 총 5번에 걸쳐 보수가 진행되었다. 1차는 1964년 8월(동신표구사 박동신), 2차는 1983년 7월(고려화랑 김표영), 3차는 1997년 11월(지류문화재보존연구원 김표영), 4차는 2004년 11월(강정식회화보존수복연구소 강정식), 5차는 2012년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진행한 응급보존처리이다. 이후 문화재청의 단청기록화 사업 진행 도중 일월오봉도의 열악한 보존상태가 제기되어 다시 보전처리에 들어갔다.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1960년대 신문지-시권-병풍틀의 순서로 겹쳐진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1960년대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는 조선 시대 일월오봉도의 제작 시 사용하였던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왔음을 확인하였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면 해체 후 각 재질을 분석해 병풍틀의 수종과 사용된 안료, 배접지, 바탕 화면의 재질 등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존처리에 적용하였다. 또한, 보존처리에서는 기존 병풍틀이 충해(蟲害)와 틀어짐 등의 구조적인 손상으로 인해 재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종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로 제작했다. 특히, 고문서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로 사용된 여러 장의 시권 중 총 27장이 과거 시험 답안과 관련 있는 시권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중 25장의 시권이 동일한 시험에서의 답안으로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일월오봉도는 낙폭지(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를 재활용하여 제작한다는 사실과 제작 연대가 1840년대 이후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식년감시초시(式年監試初試, 조선 시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러진 과거시험이 식년시이며,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보존처리 과정과 관련 연구 결과를 담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에 대한 그동안의 보존처리 과정과 재료 분석 내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변형에 관한 미술사적 연구와 장황의 고증, 병풍틀에 배접된 시권의 내용과 의미 등을 상세히 실었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선정 의결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선정 의결
[서울문화인]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지난 13일 오후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양주 회암사지’를 새롭게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선정할 것을 의결했다.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양주 회암사지’는 유산구역에는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등 보물 4건을 포함한 총 9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양주 회암사지’는 지난 2018년과 2020년 잠정목록 선정 심의에서는 부결된 바 있으나, 이번 심의에서 문화재위원회는 유산의 성격, 명칭, 부도군과 사찰(유적) 구역 간의 연결성과 비교 연구 등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권고하면서 <잠정목록> 선정을 의결하였다. <잠정목록> 선정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위한 국내 심의 첫 단계로 이후 <우선등재목록>, <등재신청후보>를 거쳐 <등재신청대상>이 된다. 문화재청은 2022년 상반기 중 ‘양주 회암사지’를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정식 등록할 예정이다. 이는 2017년 1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 2019년 1월 ‘가야고분군’을 확대 등록한 이후 약 3년 만의 잠정목록 등록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목록(‘22.1월 기준)에는 강진도요지(1994.9.1), 설악산 천연보호구역(1994.9.1), 남해안 일대 공룡화석지(2002.1.25.), 염전(2010.1.11), 중부내륙산성군(2010.1.11.), 우포늪(2011.1.11), 외암마을(2011.3.11), 낙안읍성(2011.3.11), 한양도성(2012.11.23),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2017.1.24), 가야고분군(2019.1.28.) 등 12건이 있다.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창건 시기를 알려 주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발굴된 유물에 나타난 명문을 통해 늦어도 고려 중기 이전에는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기와, 자기(瓷器), 도기(陶器), 소조품(塑造品), 금속품, 석제품 등 다양하면서도 품질 또한 최고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막새류를 중심으로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제작 기법이 우수할 뿐 아니라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기와도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궁궐이나 왕실 관련 사찰에서만 사용된 청기와를 비롯하여 궁궐 건축물의 지붕 추녀마루에 올리는 용두(龍頭)나 잡상(雜像), 최고급 도자기와 금속 공예품 등은 당시 회암사의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색(李穡)이 지은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와 김수온(金守溫)이 찬한 「회암사 중창기(檜巖寺重創記)」에는 ‘인도 출신의 원나라 승려 지공선사(指空禪師)가 1326년 3월경 개경의 감로사(甘露寺)에 도착하여 1328년 9월 돌아갈 때까지 통도사(通度寺)와 화장사(華藏寺) 등 전국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다가 회암사의 지형이 인도의 아란타사(阿蘭陀寺)와 같아 가람을 이룩하면 불법이 크게 흥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 뒤에 제자인 나옹(懶翁) 등이 크게 중창하였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기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나옹은 선각왕사 혜근(禪覺王師 惠勤, 1320~1376)으로, 원나라에 가서 지공선사로부터 수학하여 법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나옹이 회암사의 전당(殿堂) 확장 공사를 끝냈을 때에는 262칸의 전각이 있었으며, 1376년 4월 낙성 법회 개최 때에는 전국의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대거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 말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원증국사 보우(圓證國師 普愚, 1301~1382)도 제자인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년)와 함께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당시 회암사가 크게 발전하자 유생들은 백성들이 회암사에 가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국왕에게 주청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회암사는 더더욱 부각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물려주고 스승으로 삼았던 무학대사가 회암사에 머물 때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으며, 불심이 깊었던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전국의 여러 불사를 직접 관장하거나 후원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회암사 중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게 하였다고 전하며, 문정왕후(文定王后)는 보우(普雨)로 하여금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케 하여 전국 제일의 사찰로 중흥을 꾀하기도 하였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보물 제2130호)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불탑(佛塔)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의 각 면에 다양한 장엄이 새겨져 있는데 용과 기린, 초화문(草花紋), 당초문(唐草紋), 팔부신중이 하층기단 대석으로부터 상층기단 갑석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조식되어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 ‘내방가사’을 소재로 한 최초의 전시
[박물관]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 ‘내방가사’을 소재로 한 최초의 전시
[서울문화인] 한글이 대중화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지식층의 사대부나 선비가 아니라 조선시대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학문과 문자교육은 한문·한자 일변도여서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있던 대부분의 학자·문인들은 한글을 천대시 되었던 문자였지만 상대적으로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당시의 정통적인 문자교육이던 한문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던 여성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한글이다. 이처럼 당시 학자와 문인은 훈민정음(한글)을 천대했지만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에게 두루 보급되면서 우리글의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사대부들의 노래 중에 우리말 위주로 창작되는 가사 문학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고 여성의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살린 시가(詩歌)가 속속 창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방가사이다. 한글을 익히 부녀자들은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에서 맺혔던 정한을 절절히 노래하게 되다보니 사대부의 가사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바로 관념이 아니라 봉건적 인습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실제의 생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방가사는 현대 우리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내방가사는 영·정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져서 일제 강점기 시절과 해방 직후까지 약 6,000여 편의 내방가사가 창작되었다고 한다. 내방가사가 영남 지방에서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는 영남 지방에 한글을 깨우치고 교양을 갖춘 부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방가사의 주요 내용을 분류해 보면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노래한 작품, 시집간 딸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노래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사친가」, 자신의 환경을 탄식하는 「여탄가」, 「여자탄식가」 등 봉건적 인습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내방가사라고 해서 현실이나 환경을 한탄하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전가」나 「향원행락가」와 같이 때로는 여성들이 지닌 취미라든가 놀이도 노래로 지어 불렸고 당시의 문물이나 풍속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한글로 꽃피운 여성의 문화 ‘내방가사’ 국립한글박물관(관장 황준석)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창작․계승되고 있는 여성 가사문학인 내방가사를 대상으로 한 기획전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를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한글박물관이 그간 조선시대 여성의 문화를 다루는 전시에서 내방가사가 간헐적으로 선보였지만,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이라는 점을 앞세워 가사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방가사는 가사문학 중에서 가장 늦게 학계의 주목을 받은 장르이다. 이번 전시에는 12편의 신자료를 대거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로는 내방가사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남성을 화자로 한 계녀가 <계녀통론>과 함께, 변형된 계녀가(시집가는 딸을 가르치는 노래)인 <모녀 서로 이별하기 애석한 노래라>가 있으며 먼저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잊지 못할 내 딸이라> 등 문학성이 풍부한 가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현전하는 가장 긴 14m 길이의 내방가사 <헌수가>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네 번 결혼하고 불에 덴 아이를 홀로 키우는 덴동어미의 비극적 삶을 그린 <뎬동어미화전가>는 화전놀이에서 뎬동어미를 비롯한 여성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해하는 연대감을 묘사한 내방가사의 백미로, 전시실에서 화사한 벽면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창작되고 있는 90여 편의 내방가사와 더불어, 각종 여성 생활사 유물, 여성 잡지, 여성 교과서 등 총 172건 260점의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장은 1부 ‘내방 안에서’, 2부 ‘세상 밖으로’, 3부 ‘소망을 담아’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어머니의 아들자랑,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 시누이-올케의 갈등 등 다양한 내방가사를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근대와 식민지라는 격동의 시대에 직면한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다. 남녀평등과 학교교육을 주장하는 <해방가>, <위모사>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여성들의 역사교육 교과서였던 수종의 <한양가>를 볼 수 있다. 3부는 가족이 잘되길 기원하는 여성의 마음과,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창작되고 있는 내방가사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내방가사 창작과 향유를 이어가는 내방가사 작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와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내방가사의 전승은 낭독과 필사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 여성문화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물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한글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과 애환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에 주목하여 2019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과 국립한글박물관은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협력 중에 있다. 국립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4월 1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호랑이 기운을 담은 컴퓨터, 핸드폰 배경화면용 호랑이 그림달력
호랑이 기운을 담은 컴퓨터, 핸드폰 배경화면용 호랑이 그림달력
[서울문화인]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이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1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인검(寅劒)’을 정해 국립고궁박물관 상설전시장 ’과학문화실‘에서 소개함과 더불어 소장품 속 호랑이를 경쾌하게 해석한 그림을 담은 달력을 제작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제공하고 있다. 인검은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자가 들어가는 때에 제작한 의례용 칼이다. 인은 양기를 뜻함과 동시에 의(義)를 상징하여 나쁜 기운을 막고,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나타낸다. 때문에 인검은 왕실에서만 만들었던 칼로 사인검과 삼인검, 두 종류가 있다. 사인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네 시기에 맞춰 제작하고 삼인검은 세 시기를 맞춰 만든 칼이다. 이렇게 인검은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오래된 철을 사용했고, 특별히 선정된 장인만 제작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총 22점의 인검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인검 중 사인검은 검날 한 면에는 사인검이라는 명칭과 27자의 한자와 다수의 산스크리트어 주문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 면에는 북두칠성과 28개의 별자리가 금으로 새겨져있다. 삼인검 역시 한 면에는 삼인검이라는 명칭이, 다른 면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왕실에서는 인검 제작과 소장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힘을 빌려 벽사의 기능 뿐 아니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군신간의 도리를 강조하고자 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품 속 호랑이 이미지를 담아 제작한 달력은 컴퓨터와 핸드폰의 배경화면으로 사용할 수는 두 종류로 제작되었다. 달력 속 호랑이는 치아교정기를 하거나 요가를 하며, 드론과 액션카메라를 사용하는 현재 우리의 삶을 누리는 경쾌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호랑이 이미지를 담은 달력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예술’과 ‘스포츠’를 결합한 콜라보 전시
[미술관] ‘예술’과 ‘스포츠’를 결합한 콜라보 전시
[서울문화인]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소마미술관이 진행하는 스포츠아트전 《스포츠x아트 스테이션》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과 함께 관람객이 스포츠를 예술적 시각으로 보고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전시이다. 이처럼 이 전시는 ‘스포츠’와 ‘아트’를 결합한 ‘스포츠아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전시로 변대용, 안성석, 윤상윤, 이연숙, 정형대, 조민서, 지희킴 7명의 평면 및 설치작업 30여점과 스포츠선수와 함께하는 다양한 퍼포먼스 및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스테이션’은 스포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경기장처럼 관객들이 모여드는 장소이자, 작가와 관객, 스포츠 선수를 이어주는 접점을 뜻하고 있다. 7인의 작가는 스포츠라는 소재로 변대용은 ‘선수의 순간’, 윤상윤은 ‘감각적 활력’, 이연숙은 ‘유영하는 공간’, 조민서는 ‘놀이하는 사물’, 정형대은 ‘감정의 전율’, 지희킴는 ‘몸의 변주’, 안성석은 ‘신체의 확장’이라는 저마다의 키워드로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관객들은 이 7개의 스테이션 따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감상하고 체험도 할 수 있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소마미술관 조형물 공모 프로젝트, ‘S 프로젝트’
[미술관] 소마미술관 조형물 공모 프로젝트, ‘S 프로젝트’
[서울문화인] 서울 올림픽공원에는 88서울올림픽대회 당시 문화예술축전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66개국 155명의 작가들의 200여 점과 서울올림픽 개최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야외조각 심포지엄을 통해 조성된 12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올림픽공원은 1986년 완공) 또한, 공원 내에는 서울올림픽의 문화유산인 조각공원을 모태로 하는 소마미술관(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이 2004년 건립되었다. 소마미술관은 지상 1, 2층으로 이루어진 1관과 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 역이 생기면서 박물관과 연결된 통로인 지하공간에 2018년 새롭게 2관이 만들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백남준은 이를 기념하여 <다다익선>(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88)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서울올림픽 기념 판화를 다수 제작하였는데 소마미술관은 12점의 판화를 소장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올림픽미술관(현 소마미술관) 건립 당시 백남준은 올림픽과 스포츠, 한성백제 등을 주제로 서울 올림픽미술관의 특성을 살린 <메가트론>, <쿠베르탱>, <금관> 등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들은 현재 소마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소마미술관은 예술창작의 기본이자 시발점인 드로잉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드로잉의 개념 및 영역의 확장, 발전시키고자 설립된 국내 최초의 드로잉센터로 드로잉을 특화하여 연 2-3회의 공모전을 통한 전시와 함께 기획 전시 및 소장 조각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소마미술관 조형물 공모 프로젝트, ‘S 프로젝트’ ‘S 프로젝트’는 소마미술관의 설립근간인 스포츠, 올림피즘, 조각공원을 대중 참여형 예술쉼터를 구현과 올림픽의 유산인 조각공원을 명소화와 소마미술관의 전시 공간 내·외부를 활성화 화기 위한 조형물 공모 프로젝트로 격년단위로 시행되고 있다. 2015년과 2017년에 이어 2021년 3회 차로 2관 개관 3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야외공간을 활용했던 이전과 달리 올해는 2관의 유휴공간 ‘멀티홀’(소마미술관 2관 로비와 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역이 연결되는 22.8m 길이의 일자형 통로)을 프로젝트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S 프로젝트’는 조각 작품을 주로 다뤄왔던 기존의 형식적, 장르적 한계를 탈피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찬주 작가의 《Connected Tunnel》 2021년 ‘S 프로젝트’에 선정된 이찬주 작가의 《Connected Tunnel》은 지하철과 미술관을 연결하는 공간적 특성상 ‘장소적 연결’, ‘일상과 예술의 연결’,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이라는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설치작품이지만, 한편 건축 구조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각재를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하고 흰 선을 부분적으로 배치하여 역동성과 운동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조명을 활용하여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을 연출하였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역병을 물리치는 아시아의 호랑이 부적 판화
[박물관] 역병을 물리치는 아시아의 호랑이 부적 판화
[서울문화인] 임인년 호랑이해 설날을 앞두고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이 23일부터 호랑이 관련 판화 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역병을 물리치는 동 아시아 호랑이 판화”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일본을 비롯해 티베트· 베트남 등지의 목판화로 제작된 호랑이 관련 판화와 판목은 물론 호랑이 부적, 종이오리기로 만들어진 호랑이 전지, 호랑이 관련 우키요에와 호랑이 관련 전적 류 등 150여 점을 만나볼 수 대규모 호랑이 판화 특별전이다. 호랑이는 산악 국가인 한국에서는 산에는 불가사의한 어떤 위대한 힘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의인화하여 그림이나, 판화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집안의 대문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각종 재난과 역병, 나쁜 기운이나, 귀신을 막아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재난을 막아주고 역병을 퇴치하는데 사용된 호랑이는 주로, 호랑이와 매를 결합하여, 부적을 만들어 삼재를 극복하고자한 삼재부로 만들어졌다. 이는 도교의 부적인 ‘천사진택天師震澤’(부적)과 ‘금란장구부적’ 등에 많이 나타나며, 민화의 한 형태인 세화로도 발전하여 악을 막아주는 호랑이와 희망의 전령사인 까치가 결합한 형태인 호작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천사진택’은 ‘장천사 진택’을 줄인 말로 중국 도교의 창시자인 장도릉이 호랑이를 타고 칼을 든 모습으로 모든 역병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한국과 중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호랑이를 통한 문화 교류가 다양하게 펼쳐온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 부적판화는 이처럼 한국 뿐 만아니라 중국에서는 정초에 집안이나 대문에 붙이는 풍속인 년화에 사용되어 유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 티벳 베트남 등에서도 정초에 대문이나 집안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악을 막아주고 역병을 퇴치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번 전시 유물 중에는 고판화박물관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희귀 조선시대 민화 호작도와 중국의 청 시대 전지 육필 호랑이 년화를 비롯해 새로 수집된 30여점의 다양한 호랑이 판화가 포함돼 눈길을 끈다. 또한, 장천사 진택 등 중국 호랑이 관련자료가 40여점이나 소개되어 한국의 호랑이 판화는 물론 채색으로 표현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호랑이 판화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호랑이 미술의 공통점은 모두 호랑이가 수호신, 군자(君子), 전쟁과 무용(武勇)을 상징하고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호랑이의 주요 덕목이 되어,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호랑이 신화와 설화가 많았던 한국의 미술에서는 신통력을 지닌 기백 있는 영물(靈物)로, 또 해학적이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친구로 등장해, 맹호도에서부터 호작도(虎鵲圖)와 같은 희화화(戲畫化)된 호랑이 민화(民畫)가 크게 사랑받았다. 그에 반해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의 경우, 선종(禪宗) 사원으로 유입된 중국 송대(宋代, 960~1279) 용호도(龍虎圖)의 영향으로 용호도 형식이 유행했다. 특히 불교 또는 도교의 존상(尊像)과 용, 호랑이를 결합시킨 용호도는 일본 호랑이 미술만의 특징이다.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은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놓고 있는 코로나 19를 이겨내고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 된 지구촌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선조들이 마음의 백신으로 삼았던 호랑이 부적을 희망의 불씨로 삼아 역병을 물리치고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한 해를 기원하고자 동 아시아인 이 사랑했던 호랑이 관련 부적과 세화를 모아 전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회 기간 전시교육 프로그램으로 호랑이 함께하는 템플스테이와 다양한 전통판화 교육도 마련되며, 새해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호랑이 판화 인출체험도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4월 10일까지 이어진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디지털로 복원된, 조선 사람들이 꿈꾸었던 삶을 그린
[박물관] 디지털로 복원된, 조선 사람들이 꿈꾸었던 삶을 그린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이 조선시대 사람들이 꿈꾸었던 인생의 8가지 장면을 보여주는 <평생도>(비단에 채색, 화가 미상, 19세기, 총 8폭, 각 39.4×75.1㎝) 8폭 병풍이 디지털로 복원되어 박물관 누리집를 통해 공개하였다. 이번에 공개하는 웹페이지는 디지털 복원 콘텐츠를 바탕으로 <평생도> 작품 정보와 디지털 복원 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평생도>의 심화 학술 정보를 포함한다. 8폭의 <평생도>는 조선시대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을 보내면서 소원했던 가장 경사스러운 순간을 그린 것이다. 8폭의 그림은 돌잔치부터 혼인하여 과거에 급제한 후, 관직생활에서 승승장구하여 정1품 최고 품계인 정승에 올라 회혼식까지 치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배필을 만나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명예로운 자리에 올라 영화와 장수를 누리는 모습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요즘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사업에서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림 중 떨어져 나간 부분을 디지털로 채워 넣었을 뿐 아니라, 제작 이후 변색되고 오염된 부분까지 원래의 색에 가깝게 디지털로 복원하여 방문객들이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디지털 복원은 복원 시점의 연구 성과나 관점에 따라 몇 번이고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이번 웹페이지를 통해 이용자들은 직접 디지털 복원에 참여해 그 효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복원 전후의 그림을 확대하여 세부를 상세히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웹페이지의 주요 감상 포인트 중 하나이다. 웹페이지는 박물관 누리집 ‘온라인 전시관’에 국문과 영문으로 각각 게시되고 해외문화홍보원 <한국문화축제>와 7개국 한국문화원 홈페이지에 각국의 언어로 동시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웹페이지를 시작으로 2022년 상반기에는 해외 전시용 미디어병풍을 개발하여 향후 우리문화재 국외전시와 외국박물관 한국실, 그리고 한국문화원을 대상으로 활용할 계획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실감영상관 제2관 영상으로도 탑재하여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도 곧 <평생도> 콘텐츠를 공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박물관의 이번 디지털 복원 사업은 국외 출품이 어려웠던 회화 문화재를 국내․외 이용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여줌으로써 우리 문화를 대중적으로 효과적인 홍보의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중학 기자] “조선 사람들의 꿈, 평생도”는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www.museum.go.kr/site/main/exhiOnline/list
[사진전] 게티이미지 아카이브로 만나는 현대 현대사의 장면들
[사진전] 게티이미지 아카이브로 만나는 현대 현대사의 장면들
[서울문화인] 누구나 이미지 기록과 편집이 자유로운 오늘날은 영상이라는 매체가 세상소식을 전달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장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이 발명된 1839년 이후 약 180년 동안 사진을 향유하는 형태에도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 사진은 인화 과정을 거쳐 전통적인 액자 프레임으로 소수만을 만났다면, 현재는 광범위한 대중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온라인을 통해 이미지를 바로바로 전 세계에 전달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콘텐츠 아카이브인 게티이미지(Getty Images) 컬렉션을 통해 현대 역사를 보다. 우리는 그동안 퓰리처상 사진전, 매그넘 사진전, 로이터 사진전, 라이프 사진전, AP사진전 등을 통해 20세기 전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인간사를 기록한 모습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게티이미지 사진전>은 이들 사진전의 종합편이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진 콘텐츠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마크 게티(Mark Getty)와 조너선 클레인(Jonathan Klein)이 1995년 런던에서 ‘게티 인베스트먼트 LLC(Getty Investment LLC)’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이후 개별 저작권은 물론 헐튼(Hulton), 코비스(Corbis) 등 의미 있는 아카이브들을 인수하며 인류의 기록을 이미지와 영상 매체로 보관과 함께 오리지널 빈티지 필름을 아카이빙하고 고화질로 복원해 소개하고 있다. 이번 <게티이미지 사진전>은 게티이미지가 보유한 4억 장 이상의 아카이브 중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330여 점을 엄선해, 세대와 성별, 국적을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사진들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전시는 크게 2개관, 5개 섹션(아키비스트의 저장고, 현대르포의 세계, 기록의 시대, 연대의 연대기, 일상으로의 초대))으로 구성, 인류가 20세기에 겪은 수많은 사건, 사고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먼저 1관에서는 게티이미지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소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가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역사적 사진들은 물론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종군기자들의 사진까지, 사진으로 기록해온 과거와 현재를 만나본다. 2관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세상을 연결하는 사진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들은 그 시간과 인물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감정을 담아 서로를 연결한다. “단순 시각적 기록을 넘어, 비주얼 아카이빙을 구현하다” 최근 사진전은 과거와 달리 공간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공간은 ‘아카이빙(기록)의 변천사’를 주제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사진이 변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으로 구현했다. 클래식한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는 공간부터 미디어아트와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까지 관람객들이 사진을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살펴보는 1관은 ‘사진’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구성으로 사진의 클래식한 멋을 살리는 인화 방식과 낮은 조도를 적용한 공간 연출로 온전히 이미지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면, 1관과 2관을 연결하는 공간에서는 높은 층고를 활용, ‘게티이미지’ 워터마크로 연출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과정의 감각적 임팩트를 준다. 2관은 디지털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작품을 주제별로 배열하였으며, 디지털 장비를 활용한 다양한 이미지 전환 방식을 차용해 이미지의 울림을 더한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은 체험 공간으로, 아날로그 방식의 페이퍼 아카이브와 디지털 아카이브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장단점이라면 그동안 보도사진전을 많이 본 관객들에겐 익숙한 사진이 많다는 점이고 그렇지 않은 관람객에는 그동안 못 본 사진들을 종합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또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구성된 만큼 역사적인 순간들은 물론 그 이면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 사진전 – 세상을 연결하다>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오는 3월 27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