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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돌을 예술로 승화시킨 백제인의 석조 테크놀로지 조명
[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돌을 예술로 승화시킨 백제인의 석조 테크놀로지 조명
[서울문화인] 고대부터 돌은 이용한 조각품은 세계 어디에서나 만나게 된다. 그중에 특히 종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동남아의 돌조각에 비해 우리의 돌조각상은 그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는 그 나라에서 흔히 존재하는 돌의 성질 때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런 단단하고 입자가 굵은 성질의 돌에 혼을 불어넣으며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백제인, 돌을 다스리다. 治石> 지난 12월,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윤형원)은 사비고고학연구회(회장 정훈진)와 공동으로 우리문화에서 다양하게 활용된 돌조각을 박물관으로 들여 ‘백제인들이 돌을 어떻게 다루었나’를 주제로 석조 테크놀로지를 조명하는 <백제인, 돌을 다스리다>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돌을) 조각하다, (돌을) 조립하다, (돌을) 다스리다’라는 3가지 주제를 통해 흔한 돌을 보석과 같이 다룬 백제인들의 시각과 뛰어난 석조 테크놀로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1부(백제인, 돌을 조각하다)에서는 백제권의 풍부한 돌 산지 정보와 돌을 가공한 도구와 함께 백제의 생활에서 사용한 다양한 돌 조각품을 다룬다. 투박하지만 단순함이 특징인 절구를 비롯해 용기와 추 등 도량형으로 표현된 척도에 이르기까지 백제인의 손에서 탄생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보여준다. 2부(백제인, 돌을 조립하다)에서는 마치 조립 블록과 같이 돌에 난 홈과 턱으로 구성된 건축 자재를 비롯하여 돌과 돌을 결구(結構)하는 데 쓰인 장치들과 세계유산인 부여 나성(羅城)을 비롯한 백제의 주요 유적이 작은 돌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코너에서는 도수관(導水管, 물을 끌어오는 장치)을 비롯하여 부여 나성에서 출토된 명문(銘文) 성돌들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3부(백제인, 돌을 다스리다)에서는 돌로 만들어진 불상(佛像)과 탑(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불상(佛像) 코너에서는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여 군수리석조여래좌상(寶物)’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다가 오랜만에 고향,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선보인다. 또한, 하나의 큰 바위의 4면에 불상을 새긴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현재 예산군 화전리에 남아 있는 불상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발굴하여 깨어진 상태로 보관 중이던 불두(佛頭) 편 등을 접합해 현대 기술인 3D 스캔과 프린팅 작업으로 원형을 재현해 선보인다. 탑(塔)을 주제로 하는 공간에서는 국립부여박물관 야외 정원에서 전시하던 부여 구아리 출토 심초석을 내부로 들여 심초석과 결합되는 석재 뚜껑을 비롯해 탑 조성에서 보이는 사리장엄구의 형태와 위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또한, 목탑(木塔)에서 석탑(石塔)으로 변화되는 기술발전 과정이 백제(百濟)에서 시작되었음을 영상으로 소개하며, 백제(百濟)의 탑 조영 테크놀로지가 신라(新羅)와 일본(倭)은 물론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석탑 조영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살펴보고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미친 ‘마티스’의 방대한 드로잉과 판화 작품 조명
[전시]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미친 ‘마티스’의 방대한 드로잉과 판화 작품 조명
[서울문화인] 야수파(포비슴) 운동을 주도한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를 떠올리면 빨강, 파랑, 초록과 같은 강렬한 색감이다. 그는 보색관계를 교묘히 살린 청결한 색면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자심만의 확고한 예술을 구축하였다. “사람은 색에서 마법에서 비롯된 것 같은 에너지를 얻는다.” “음표 하나는 곧 색채 하나이다. 음표 두 개는 화음을 이루고 삶을 이룬다.” 마티스는 색채에 앞서 대담하면서도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과 형태를 만들어내어 그를 ‘선의 연금술사’라 칭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특징은 회화는 물론 장르의 경계를 넘어 아트 북 디자인, 일러스트 등을 통해서도 드러내며 그를 20세기 그래픽 아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전파한 그래픽 아티스트로 불리게 한다. 특히 시대를 앞서 간 그의 이런 작품들은 현대의 모더니즘 디자인과 그래픽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미술사학자 윌리엄 리버만은 일러스트 분야에서 당대에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예술가는 아무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배경으로 데이비드 호크니와 재스퍼 존스, 제프 쿤스를 비롯해 현재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판화와 일러스트, 북 디자인, 섬유 디자인 등 광범위한 그의 예술세계로 인해 21세기에 들어서며 가장 중요한 예술 장르로 떠오른 일러스트와 그래픽 아트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친 드로잉, 판화, 일러스트, 아트북 등 원화 작품 소개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물도 풍경도 아닌, 인체이다. 나로서는 인체를 그리는 것이 삶에 대한 나 자신의 특이한 종교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전은 면(面)과 색(色)의 예술적 확장을 통해 오늘날의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친 앙리 마티스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망해 보는 전시로 특히 방대한 드로잉과 판화 원작을 집중 조명, 200여 점의 마티스 원작을 통해 그가 꽃피운 모더니즘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나는 본질적인 선을 긋는 것으로써 우리의 육체가 가진 의미를 응축하려고 노력한다.” 1941년 십이지장 암 수술 이후 두 차례의 폐색전증을 이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티스는 병상에서도 예술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 수술의 부작용으로 위하수증을 앓게 된 마티스는 오래 서있는 것이 불가능해져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북 일러스트 작업은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주었다. 일러스트 작업은 육체적으로 덜 힘들 뿐만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됐다. 1943년부터 1947년까지 마티스는 ‘Visage’, ‘리플리(Repli)’, ‘포르투갈에서의 편지(Lettres Portugises)’,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과 피에르 드 롱사르와 챨스 드 오를레앙의 시집과 루이 아라공 시집의 일러스트를 제작했다. 18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그래픽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은 그의 예술 타임라인에 있어 중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작품 활동은 20세기 시각 예술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북 작품이자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인 ‘재즈’(JAZZ)의 원본이 국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재즈’는 마티스가 암과 투병하면서 발견하게 된 종이 오리기 기법(Découpage·데쿠파주)의 정수가 담긴 한정판 아트북 형태의 작품으로 1947년 첫 선을 보인 ‘재즈’에는 마티스가 직접 제작한 스텐실 판화 20점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스텐실 판화가 수록된 페이지 전체를 공개해 원작의 느낌과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영상, 미디어아트, 사진 등 다채로운 구성의 복합 전시 전시에는 방대한 앙리 마티스의 원작과 함께 영상, 미디어아트, 사진, 다양한 프로그램이 곁들여졌다. 먼저 전시의 인트로에서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해 주목 받고 있는 재불 영화감독 장유록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치유를 선사하고자 했던 앙리 마티스의 숨결을 프랑스 니스 바닷가의 파도 소리, 앙리 마티스의 고향 평원의 바람 소리 등으로 담아내었으며,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아텍의 미디어아트는 앙리 마티스의 방대한 작품들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학습하여 재해석 한 미디어아트는 마티스의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작가로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한국 전통 도예의 정수를 알려온 지산 이종능 작가와 나전 칠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해 온 옻칠작가 이용선은 마티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 뮤지션 정재형이 전시를 위해 작곡한 신곡 선보여 더불어 뮤지션 정재형은 이번 전시의 음악감독을 맡아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곡을 통해 마티스가 있던 시절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더해 오디오 도슨트도 맡아 낭만적인 목소리를 전한다. ‘색채의 황홀-마리 로랑생’ ‘매그넘 인 파리’전에 이어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세 번째 프렌치 아티스트 시리즈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022년 4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입장료: 일반 20,000원 / 청소년 15,000원 / 어린이 13,000원) [허중학 기자]
중국 최초로 소수민족인 선비족 중원에 세운 국가 ‘북위’의 역사 조명
중국 최초로 소수민족인 선비족 중원에 세운 국가 ‘북위’의 역사 조명
[서울문화인] 다퉁 윈강석굴, 뤄양 룽먼석굴, 둔황막고굴은 중국 3대 불교 석굴(石窟)로 꼽히는 곳으로 이 중에 다퉁 윈강석굴, 뤄양 룽먼석굴은 중국 역사상 유례없이 독실한 불교 국가였던 ‘북위’(北魏, 386~535) 때 지어진 석굴이다. ‘북위’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중국의 한 국가이지만 5호 16국 시대 선비족의 한 갈래인 탁발선비(拓跋鮮卑)가 세운 왕조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수나라의 통일과 당나라의 발전에 모태가 되는 나라였다. 수도는 지금의 다퉁이었다가 효문제 때 낙양으로 바뀌게 된다. 북위는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국가로, 특히 북위의 융성한 불교문화가 한반도의 불교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백제를 무려 세 차례나 침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주로 기마 부대로 편성된 유목민 군대가 육로로 침공했다면 왜 고구려가 길을 열어줬는지 의문이고, 해상으로도 가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 침공의 진위 여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한성백제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 공동 기획 국제교류전 “북위” 중국에서 남북조시대를 알렸던 ‘북위’와 동시대 함께 공존했던 ‘백제’ 문화를 다루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과 한성백제박물관이 중국 뤄양박물관, 중국 다퉁시박물관, 중국 후룬베이얼박물원 5개 기관이 2019년에 전시교류 협약을 맺고 먼저 2019년 중국 뤄양박물관에서 개최된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 <우호로 맺은 20년, 보존과학>에 대한 상호 교류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되었다. 전시는 양국의 박물관이 3년을 준비한 전시로 먼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진행(2021. 10. 19-11. 28)에 이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진행(21.12.17~22.2.27)되는 전시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중원에서 발원한 왕조보다는 주변의 민족이 세운 왕조일수록 외부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85건 97점의 전시품은 중국 후룬베이얼박물원, 다퉁시박물관, 뤄양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이를 통해서도 선비인의 문화가 한인의 문화, 아울러 서역의 문화와 공존해 나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북위의 수도였던 평성平城(현 산시성 다퉁시)과 낙양洛陽(현 허난성 뤄양시) 무덤에서 출토된 도용은 북방 유목민족과 중국 한족의 복식, 서역인들의 모습, 낙타, 황소, 말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융합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북위의 융성했던 불교문화는 운강석굴, 용문석굴, 영녕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 남조와 활발하게 교류했던 백제가 또 다른 이웃 나라 북위와는 어떤 문화적 교류를 하였는지를 조명해 보는 영상 공간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 3관은 《한국인의 일생》을 주제로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선보이던 공간으로 주제는 같지만 2021년 12월 28일, 새롭게 개편을 마치고 관람객에게 공개하였다. 현대까지 시대 확장 개편한 3관 《한국인의 일생》은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놀이–수연례–치유–상례–제례 등 10개의 소주제로 분류, 시대를 현대까지 확장하여 시대별 일생 속에 담고 있는 가치체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과거에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삼신상에 차려놓았던 쌀과 미역으로 첫 밥국을 해줬다면, 오늘날 병원 출산이 늘면서 금줄도 삼신상도 사라지게 되었다. 혼례에는 과거의 중요한 혼수물품이 ‘색실첩’이라면 1970년대는 ‘재봉틀’이 대신하였고, 여성의 혼례복도 과거의 원삼과 활옷이 현대에는 웨딩드레스로 변화되었다. 상례 때 죽은 사람의 친속 관계의 가까운 정도에 따라 가족 친지가 입어야 하는 상복에 대한 ‘복차服次’, 수의 명칭과 재질 등을 기록한 ‘수의척수발기壽衣尺數件記’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에 의해 상복과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3관은 돌잡이, 태블릿과 AR을 활용한 폐백 장면, 퀴즈로 풀어보는 폐백 상차림, 칠교놀이(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 인물, 동물, 식물, 건축물, 지형, 글자 등 온갖 사물을 만들며 노는 놀이)와 고누놀이(두 사람이 말판에 말을 벌여놓고, 서로 많이 따먹거나 상대의 집을 차지하기를 겨루면서 노는 민속놀이) 등 다양한 체험공간을 비롯하여 민간요법의 내용을 해석하여 텍스트 및 그래픽 콘텐츠화했다. 또한, 탈놀이, 굿청 콘텐츠는 보존회의 시연을 통해 촬영·제작하여 전시의 이해도와 완성도를 높였다. 아울러 서당의 문자도 그리기와 재미있는 공부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체험 공간도 있어 즐거운 전시 경험을 선사하며, 근현대 전시품인 ‘우리들은 1학년’ ‘국어와 산수 교과서’, ‘종합장’, ‘가방’, ‘건강기록부’ 등을 통해 관람객의 기억 속의 가까운 과거를 소환해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스팟 영상’과 전시품의 자세한 내용 검색 공간인 ‘라키비움화’ 등 새로운 전시기법 도입 *라키비움(larchiveum): 도서관+기록관+박물관의 합성어, 복합문화공간 개편된 상설전시관 3에서는 각부 도입부마다 패널과 함께 대표 이미지 ‘스팟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 동선 유도 및 관람 후에도 스팟 영상을 통해 대표되는 이미지가 전시 내용에 대한 잔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또한, 전시 주제와 연계하여 그동안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연구 성과물과 민속대백과사전, 아카이브 등 결과물을 활용한 검색 공간을 마련하였다. 특히, 2014년에 발간한 ‘한국일생의례사전’을 편집하여 출생부터 제례까지 부별 주제에 검색 공간을 배치하여, 전시품의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였다. 3관의 자료 영상은 국립민속박물관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개 수집한 홈비디오 자료를 활용했다. 수집 당시 VHS 비디오테잎 등 다양한 매체의 원본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하여 아카이브 자료로 보관했다. 수집한 자료의 대부분이 기념일 등 일반인의 일생의례를 촬영한 홈비디오여서 관람객이 자료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관람객 자신, 친구 혹은 아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자세히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제작한 디지털레이블에는 일반 설명레이블이 크기의 한계로 담을 수 없는 내용과 내부를 볼 수 없는 전시품 등 세부 자료를 추가하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하였으며, 디지털을 이용한 검색과 동시에 종이책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되었다. 관람 약자를 위한 다양한 전시물 배치 또한, 2관처럼 진열장에 저반사유리를 사용하여 시각적인 편안하게 조성하였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점자패널, 촉각물을 제작, 노인이나 저시력자를 위해 사진과 전시품 설명을 크게 인쇄한 책자를 비치했다. 촉각물은 소주제별로 대표되는 전시품을 크기에 따라 비율을 조절하고 입체(3D)프린터로 제작하여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다양한 의례는 비록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변화했지만, 오래 살고 복을 바라는 마음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이다. 상설전시관 3관 《한국인의 일생》은 삶의 중요한 의례와 그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허중학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2관, 《한국인의 일 년》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2관, 《한국인의 일 년》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 2관은 2021년 3월, 《한국인의 일상》에서 《한국인의 일 년》으로 개편, 일 년을 주기로 되풀이된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관 《한국인의 일 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른 세시풍속, 생업과 신앙, 의식주 생활상을 전통 시기와 근현대 시기로 나눠 자료와 사진, 영상을 함께 배치하여 풍속 변화상을 한눈에 읽어볼 수 있다. 여름 ‘더위나기’ 주제에는 전통 시대 부채와 죽부인, 그리고 20세기의 선풍기와 빙수기계가 함께 전시되어 여름철 풍속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겨울의 ‘난방과 방한’ 주제에는 조선 후기의 화로와 20세기의 연탄난로, 석유난로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겨울철 난방기구의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게 꾸며, 전통 시기에 머물지 않고 기억 속의 가까운 과거를 소환하며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경직도 병풍과 이를 입체(3D)맵핑 영상으로 만든 실감형 영상이 관람객을 맞이하며, 전시장 곳곳은 사계절 풍경 영상을 배경으로 자료와 사진, 자료 영상이 펼쳐진다. 전시장은 민속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연출되었다. 특히 위도띠뱃놀이와 제주 영등굿에 등장하는 ‘띠배’와 ‘배방선’, 동해안의 미역 채취에 쓰이는 ‘떼배’를 전시한 공간은 이들 자료와 바다, 파도를 실감 영상으로 표현해 마치 바다에 떠있는 듯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추석 차례상은 기존 모형 방식에서 탈피해,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육례홀기六禮笏記』를 바탕으로 제물 진설 모습을 영상으로 연출했다. 또한, 새해 운수를 보는 윷점과 청참聽讖, 설 아침 밖으로 나가 처음 듣는 짐승의 소리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체험 코너도 있다. 체험과 장애인을 배려한 전시 기법 특히, 2관에서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전시 기법이 다양하게 시도, 각 부의 주제를 설명하는 패널에는 점자를 포함한 촉지도점자 배치도를 함께 배치해 시각장애인의 관람을 돕고 있다. 또한, ‘고써레’, ‘키’ 등의 자료를 입체(3D)프린터로 제작한 촉각 전시물을 배치해 시각장애인이 전시품을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이 밖에 전시품 설명과 사진을 크게 인쇄한 책자를 통해 노인이나 저시력자를 배려했다. 지난날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 년을 떠올리는 전시 2관은 물론 상설전시관에서 가장 볼거리는 전시장 후반부의 실감형 전시관 〈한옥에서의 사계절 풍경과 삶〉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경북 경주 양동마을에서 옮겨온 한옥을 배경으로 주변 벽면에 양동마을에서 현지 촬영한 풍경을 바탕으로 사계절 정취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한국인의 일 년 모습과 의미는 변했지만, 상설 2관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 관통하는 가치를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1관, 《한국인의 하루》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1관, 《한국인의 하루》
[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 1관은 《한민족 생활사》을 주제로 선보이다가 지난 2018년 12월, 《한국인의 하루》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기존 《한민족 생활사》 전시관은 1993년 2월 개관 이후 2007년에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 개편되어 50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꾸며졌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긴 시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민속(民俗)’의 정체성에 부합한 주제를 찾기 위해 학계의 연구 동향과 사회의 흐름을 살펴 ‘민(民)’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일상을 전시로 담아내는《한국인의 하루》라는 주제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조들의 소소한 하루 일상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衣冠을 가지런히 하고 태도를 존엄하 게 하기 위함이다. -『사소절士小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인시寅時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침구를 정돈한다(寅時乃興).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정제한다(盥櫛衣冠). 부모의 처소에 가서 아침 인사를 한다(適父母之所晨). 사당에 가서 배알한다(詣祠堂晨謁). 가솔들을 불러 하루의 사무를 정리하여 고지한다(招家衆整理事務). 서실에 나아가 단정히 앉아 독서한다(就書室 靜坐讀書). - 『일용지결日用指訣』중「매상昧爽」, 윤최식尹最植, 생몰연대 미상 1관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동안에 집에서부터 거리와 마을, 들판에서 만나는 선비와 농부, 장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 동안에 겪는 의식주, 생업, 신앙, 놀이와 같은 소소한 일상을 유물과 영상, 체험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이른 새벽 세수로 잠을 깨며 몸가짐을 고르고 자기 수양을 하면서 손님을 맞는 선비, 마을을 시찰하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관리,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냇물에 빨래하는 여인, 농사일에 힘쓰는 농부와 공방에서 생활용품을 만드는 장인,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 물가에서 고기 잡는 사람, 저녁상을 준비하는 아낙 등 집과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를 열고 마무리하는,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근현대의 하루’를 소개하고 있다. 자명종, 재봉틀, 라디오 등 전통 사회와 대비되는 생활용품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변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하루’가 지닌 변하지 않는 일상의 가치를 찾도록 여운을 남긴다. 새롭게 개편하면서 영상과 체험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마을 주변을 흐르는 냇물과 빨래터, 겨울 호수와 얼음낚시 풍경 등 선조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마을을 방문해 마치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더불어, ‘밤의 공간’에서 만나는 인터랙티브 영상을 통해 꿈 해몽 내용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속 별자리들의 환상적인 모습을 첨단 기술로 완성하였으며, 국수틀에서 국수를 뽑아 겨울 별미인 냉면을 만드는 증강 현실(AR) 체험을 할 수 있다. ‘철따라 변하는 하루’, 상설전시관의 새로운 실험 무엇보다 1관은 전시품과 내용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한국인의 순환적인 일상을 지속적으로 반영, 새로운 공간 연출을 통해 ‘상설전시는 늘 같은 내용이므로 한 번만 보면 되는 전시’라는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박물관을 다시 찾게 만들고, 한국인의 변화무쌍한 일상생활을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다. 1관에는 조선 후기 선조들의 하루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의관정제衣冠整齊도구와 ‘하피첩(霞帔帖, 보물 제1683-2호)’,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 보물 제1318호)’, ‘장영직,1861~1944유품(국가민속문화재 제241호)’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나전 포도문 관복함’ 등 국립민속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3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행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
[미술관] 행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
[서울문화인]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술가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그리고 예술가에게는 ‘표현의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은 분명 그것을 판별하는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생명의 중요한 특성, 인간으로서의 특성은 더 이상 없게 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이다. 이 가치는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가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답변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중국인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첫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작가를 설명하지면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살게끔 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또한,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당시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조사단을 구성하여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작가는 중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 2015년부터 유럽에 체류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회화,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의 역설이라 하겠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미술관 마당에서는 높이 6m의 대형 설치 작품 <나무>(2015)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무>는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 녹나무, 삼나무 등 죽은 나무 가지와 뿌리, 그루터기 등을 조합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구하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 천장, 그리고 미술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부터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확인할 수 있는 작품까지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과 학예사의 노력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 그의 작품을 재면하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예술적 역량을 드러내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을 비롯해 베니스의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의 베렌고 공방과 협업하여 제작한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검은 샹들리에>(2017-2021), 중국 도자기 생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의 도자기로 제작된 <여의>(2012),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12m 크기의 대나무 구조물 <옥의>(2015),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로힝야>(2021),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까지, 관람객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120여 점을 통해 작가가 걸어온 여정을 따라 걷다보면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6전시실에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웅장한 작품 중 하나인 <옥의>(2015)이다. 이 작품은 중국 한나라 시대 황제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으로 된 갑옷(玉衣)’에서 유래한 작품으로,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됐다. 아이 웨이웨이는 <옥의>를 비롯해 신석기 시대 토기, 옥, 징더전의 도자기 등 중국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현대미술과 결합시킨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7전시실에서는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을 선보인다.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가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에서 수집한 것이다.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하여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된 <빨래방>은 지금 여기, 부재한 사람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환기시킨다. 미디어랩에서는 <대리석 헬멧>(2015), <대리석 포장용기>(2015)와 같이 대리석으로 제작된 작품과, 도자기로 만든 작품 <민물 게>(2011) 등을 볼 수 있다. <민물 게>는 2010년 상하이 시에서 작가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철거했을 때 작가가 인근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상하이 명물인 민물 게 요리를 대접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이를 기념한 작품이다. 작가는 민물 게(河蟹, he xie)의 발음이 중국 정부 슬로건인 ‘화해(和諧, he xie)’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품을 통해 국가 권력과 검열 상황을 풍자한다. 복도공간에서는 그의 폭넓은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카이브 공간에는 작품과 관련된 사진 및 영상 자료, 아이 웨이웨이의 신간도서 『천년의 기쁨과 슬픔』(1000 Years of Joys and Sorrows, Crown, 2021)을 포함한 관련 도서 30여 권 등이 소개되고 있어 자유롭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다.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다.
[서울문화인] 1946년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전통 생활문화를 조사, 연구,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전시와 보고서, 강연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전에는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상위권에 들어가는 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1993년 현재의 경복궁 내 자리로 이전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2007년에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 개편되었지만 오랫동안 같은 주제로 선보여 왔었다. 이후, 10년 이상 같은 주제를 유지하던 상설전시관이 2018년 10월, 순차적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가장먼저 상설전시관 1관을 새롭게 개편하여 선보였다. 1관의 주제는 《한민족 생활사》에서 《한국인의 하루》로 전면 개편했다. 전시관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동안에 집에서부터 거리와 마을, 들판에서 만나는 선비와 농부, 장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 동안에 겪는 의식주, 생업, 신앙, 놀이 등 한국인의 변화무쌍한 일상생활을 만나볼 수 있게 꾸몄다. 특히 1관은 전시품과 내용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한국인의 순환적인 일상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어 상설전시관 2관은 2021년 3월, 《한국인의 일상》에서 《한국인의 일 년》으로 개편하여 선보였다. 2관은 기존의 전시 주제와 공간, 전시품을 전면 개편해 일 년을 주기로 되풀이된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른 세시풍속, 생업과 신앙, 의식주 등의 생활상을 펼쳐내었다. 그리고 2021년 12월 28일, 상설전시관 3관이 새롭게 리모델링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했다. 3관의 주제는 《한국인의 일생》으로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놀이–수연례–치유–상례–제례 등 10개의 소주제로 구성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하루(1관), 일 년(2관), 그리고 일생(3관)을 통해 한국인의 삶 전반을 다룬 상설전시관을 완성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2개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박물관은 각 전시실은 2년 단위로 새로운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다. 또한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기 힘든 어린이를 위해 찾아가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야외 신화동물놀이터에는 우리 신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곰, 호랑이, 말, 닭, 용 등 다섯 동물을 만나면서 소리체험, 빛체험, 크라이밍체험, 동굴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야외에는 ‘추억의 거리’, 한옥 ‘오촌댁’ 등 옛 추억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매년 지금은 사라져가는 절기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이처럼 국립민속박물관은 5000년에 걸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함은 물론 다양한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통해 내국인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을 외국인에게는 한국인의 삶을 이해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 광화문과 세종로의 역사
[박물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목격자이자 주인공' 광화문과 세종로의 역사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년 ;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월 16일부터 2022년 3월 27일)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월 1일(수)부터 2022년 2월 27일)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월 17일부터 2022년 3월 31일)을 개최한다. Tip. tp 개의 박물관 전시를 둘러보고 도장을 받고 각 박물관이 준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참고, 선물은 마지막 관람한 박물관에서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 특별전 [서울문화인] 광화문 공간은 해방 이후,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이었고,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열정이 표출되었고, 또한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남희숙)의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 특별전은 대한민국 대표 상징 공간 광화문이 품은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과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전시이다. 광화(光化),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 -서경(書痙) 광화문에서 만나게 되는 건물은 어느 곳 보다도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를 품은 건물로 가득하다. 정부신청사(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와 유솜(USOM, 미국대외원조기관, 현재의 미국대사관) 건물이 광화문 공간 현대화의 상징 건물로 1961년 건축된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으로 건축되던 우남회관은 4·19혁명 이후 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건립되었고, 1972년 화재로 소실되자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신축된다. 현재, 광화문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상징적으로 세워져 있지만, 1964년 세종로 중앙에 애국선현 동상이 37개가 설치되었었다. 그러나 내구성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여론에 1966년에 철거된다. 이후 1968년 4월 17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종로에 세워진다. 배경에는 애국선열 동상 인물 지정을 논의하는 중에 세종로와 태평로가 뚫려 있어 남쪽의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온다는 풍수지리학자의 주장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물인 이순신 장군을 동상의 대상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2009년 홍익대학교 교수이자 조각가 김영원이 설계한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다. 강남개발과 서울올림픽 유치로 정부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하면서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하고 고층 대형빌딩 건설을 독려한다. 이때 교보빌딩과 국제통신센터(현 KT 광화문 지사)가 건설되고,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사업으로 중앙청이라 불리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가 1995년 광복절에 철거된다. 또한 광화문은 1968년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콘크리트 구조물 복원이라는 비판을 받아 오다가, 2010년에 목조 건물로 복원된다. 4·19혁명 이후, 광화문 공간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현장으로 등장, 대중이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광장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1965년 한일회담 비준반대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00년대 촛불 집회 등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로 한국사회의 정치적 열망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대표적 장소가 되었다. 광화문 거리는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대부분의 행정 건물이 철거되었지만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 다시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지로 그리고 현재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시민들의 문화활동의 중심지로 각인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신청사 이전(사진), 정부종합청사 신축안내서,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명패,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모형), 국제극장(사진), 조선총독부청사 철거(사진), 국제전신전화국 구청사철거 문서, 복원된 광화문(사진), 지구의 날 행사(사진), 다양한 집회 자료와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총 4개 공간으로 광화문의 현대사를 만나볼 수 있다. ▲ 1부 ‘다시 찾은 광화문’에서는 광복 이후 광화문 거리가 한국 현대사 출발의 중심이었음을 설명하며, ▲ 2부 ‘광화문 거리 개발과 건설’에서는 광화문 공간이 경제개발을 위한 정치행정 중심기관 건설과 함께 국가행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고, 유동인구 및 차량 증가 속에서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 3부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재구성’에서는 남북간 체제 경쟁과 강남개발, 도심재개발과 1980년대 올림픽 유치 속에서 진행된 광화문 공간의 현대적 건설을 설펴본다. ▲ 4부‘광화문 공간의 전환’에서는 광화문 거리의 역사적 상징화 작업과 2000년대 광화문 공간의 주체가 국가에서 시민으로 변화되는 모습과 광화문 광장의 출현을 소개한다. 더불어 전시장에는 광화문 변천사를 영상(3면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31일(목)까지 기획전시실(3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성서를 주제를 만나는 샤갈, 마이아트뮤지엄
[전시] 성서를 주제를 만나는 샤갈, 마이아트뮤지엄
[서울문화인] 19세기 중반 이후 미술은 르네상스 이후에 계속되었던 전통적인 미술을 거부하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언어, 재료, 기법과 매체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예술이 시각적 아름다움 보다는 개념적 미술로 변화하면서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려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20세기 이후 대세가 된 추상미술 속에서도 회화에서 색은 여전히 미술에서 가장 기본이고 그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어떤 위치의 화가인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샤갈은 작품 속 대상보다 원색의 색채가 먼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원색의 색채로 자신의 삶과 관심사를 녹여내었고 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며, 20세기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한 가지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일찍이 피카소는 샤갈을 두고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 르누아르 이래 샤갈처럼 빛을 잘 이해한 화가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샤갈하면 떠 올리는 수식어는 ‘색채의 마술사’이다.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도시였던 비테스크의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스물네 살이던 1911년 처음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르는 모더니즘 회화를 습득하였고, 이름 또한 프랑스식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하며 파리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파리 유학 도중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고국 러시아로 돌아와 8년간 우울하게 보내다가, 1922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이 때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색채의 마술사’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샤갈은 90년을 넘게 장수하며 수천 장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이 많은 만큼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는 많이 개최되었고 전시 때에는 그 어느 작가보다 많은 작품이 소개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남긴 작품에 비하면 여전히 일부분이라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소개된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화’에 비해 ‘판화’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는데 그는 판화에도 뛰어나 판화에서도 회화 못지않은 색채감을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성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많이 남겼다. 샤갈이 들려주는 성서의 메시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하는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은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지만 그간 국내에선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 진행하는 전시이다. 샤갈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지만 ‘전쟁’, ‘사랑’, 그리고 ‘종교’는 가장 큰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생전 두 번의 전쟁과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겪은 샤갈의 인생은 전쟁과 피난의 연속이었다. 또한, 아내를 향한 그의 헌신적이고 사랑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어 생의 마지막까지 화폭에 담아내었다. 샤갈이 ‘성서’를 주제로 그리게 된 것은 1930년 처음 성서 작업을 의뢰 받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성서에 대한 주제로 작업을 이어간다. 이를 시작으로 샤갈은 유대인의 운명과 고난에 대한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말년을 성당을 위한 스태인드글래스, 태피스트리, 발레 무대세트와 의상 그리고 석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보냈다. 특히 1973년 자신의 86살 생일에 성서적 메시지를 주제로 한, 국립샤갈 미술관을 니스에 건립하면서 그의 평생의 꿈을 실현했다. 샤갈은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전쟁과 학살로부터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펼쳤다고 한다. 이번 전시가 ‘성서’라는 단일 주제로 소개하는 전시이지만 소개되는 작품은 굉장히 방대하다.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 과슈를 포함한 19점의 명작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및 독일 Kunstmuseum Pablo Picasso Münster 소장품 총까지 220여점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을 사랑한 샤갈의 시와 함께 이를 표현한 서사적인 판화 시리즈 등 이전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샤갈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미이아트뮤지엄 이태근 대표는 “이번 전시는 샤갈의 작품 중 ‘성서’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전시다. 앞으로 또 다른 주제로 샤갈의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4월 10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기준 2만원이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