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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비색의 고려청자를 통해 살펴보는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
[박물관] 비색의 고려청자를 통해 살펴보는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
[서울문화인]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翡色 天下第一)”. 중국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수중금(袖中錦)>에서, 하늘 아래 뛰어난 고려청자의 색만 한 것이 없다고 칭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과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또한 선화宣和 5년(1123)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 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는 “도기의 푸른빛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말한다(陶器色之靑者麗人爲之翡色)”는 기록과 연결해보면 “비색翡色”은 당시 고려인들이 청자의 푸른 빛깔을 표현하는 특유의 단어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청자는 동시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감 문양과 고려의 비색과 빼어난 조형을 자랑했음은 물론 현재도 세계에 당당히 자랑할 만한 우리의 명품유산이다. 그러한 이유로 고려청자를 소재로 많은 전시가 있었고, 대중들의 반응도 거기에 부응했다.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고려음高麗飮’ 도자기를 특화하여 소개하고 있는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수미)이 올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특별전으로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유관기관이 소장한 도자기 중 다구(茶具: 차를 만들고 마시기까지 필요한 도구)와 주기(酒器) 250여 점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특히, 고려 왕실 귀족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온 국립중앙박물관의 최고급 소장품을 대규모로 광주에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귀족, 사찰의 승려, 관료 문인 사이에서 차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또 왕실에서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술을 사용하고, 담당 부서를 두어 특별히 관리하는 등 술 문화도 함께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 차와 술은 중요한 문화로 자리매김 되면서 고려의 발전된 기술로 세련미 넘치는 다양한 청자 도구들도 제작되었다. 이번 특별전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서 아름다운 유산으로 소중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려청자를 ‘당시에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들도 전시함으로써 각각의 고려청자의 쓰임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전시는 차와 술 문화를 나누어 소개된다. 먼저 1부 ‘고려시대 차와 술 문화의 유행과 수입 도자기’에서는 같은 시기 중국 그림이나 벽화 자료를 참고하여 고려청자로 제작된 차와 술에 관련된 도구를 나누어 보고 그 사용법과 함께 새로운 음료 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함께 새롭게 제작된 도구들이 어떠한 쓰임새로 사용되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본다. 청자는 고려 12~13세기에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하여, 최상의 공예품으로 제작되었다. 2부 ‘고려청자, 문화를 마시다’에서는 차와 관련된 다양한 도구를 소개하고 있어 전성기를 맞은 차 문화와 다기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3부는 술 문화를 다루는 ‘고려청자, 예술에 취하다’에서는 시기적 상황과 취향에 따른 청자 주기의 흐름과 주류의 변화가 이를 담는 도구에 미친 과정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시가 새겨진 도자기’를 모아 살펴보면서 술이 담긴 병과 술잔에 적힌 문자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완성도가 뛰어난 명품들은 전시장 중앙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서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천여 년이 지난 고려청자를 아름다움을 지금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무덤의 부장품이나 해저 침몰선에서 발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부 ‘고려청자와 함께 묻히다’에서는 무덤에 함께 묻힌 차와 술에 관련된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무덤의 규모와 부장품의 종류가 달랐는데, 부장품 중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이 청자이다. 청자는 당시에도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품으로 왕릉과 귀족의 무덤에 주인과 함께 묻혔다. 개경에 위치한 고려 고분 외에 각 지역 무덤에서 확인된 차와 술 관련 부장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차와 술에 대한 생각이나 고려시대 청자가 지니는 의미와 위상을 알 수 있다. 청자로 제작된 다기茶器와 주기酒器는 비색청자, 상감청자로 제작되어 고려시대의 왕실과 귀족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최상급의 고려청자가 색과 조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차와 술을 마시는데 적합한 기능적인 면과 함께 고려시대의 차와 술 문화의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한 최명지 학예연구사는 “차와 술 문화의 두 가지 열쇳말로 청자를 바라볼 때 고려인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전시를 준비하였다.”고 하였다. 전시는 2022년 3월 20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한국 첫 단독展
[전시]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한국 첫 단독展
[서울문화인] 2008년 국내에서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그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공교롭게 한 예술가였다. 바로 그가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 1923-1997)은 앤디 워홀, 장 미쉘 바스키아 등과 함께 팝아트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 미술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통해 각인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 많은 전시에서 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앤디 워홀이나 장 미쉘 바스키아 처럼 오롯이 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전시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만을 소개하는 국내 첫 개인전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가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명작가였던 리히텐슈타인이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디즈니 만화 영화 <미키 마우스>를 보던 아들이 건넨 “아빠는 저 그림만큼 잘 그리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라는 질문에 미키 마우스를 좋아한 아들을 위해 그려준 한 점의 그림이 무명의 예술가를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이 바로 디즈니 만화 주인공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이 등장하는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 1961년)’이다. 이 작품은 실제 만화책처럼 말풍선을 그려 넣고 대사를 적어놓았고 인쇄한 것처럼 보이도록 인쇄물을 확대를 때 생기는 점(dot)까지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이 ‘벤데이 점’ 기법은 당대 예술계에 혁신을 일으켰으며, 다음 해인 1962년 뉴북 레모 카스텔리(Leo Castelli)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개막도 하기 전에 그의 작품들은 영향력 있는 소장가들에게 모조리 팔리는 일이 발생했다. ‘점’. 그의 모든 회화는 수없는 붓자국에 의해 완성된다.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특징이라면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dot)들이다. ‘벤데이 점(Benday Dot)’이라고 하는 망점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해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의한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 어떠한 개성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은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와 구별되기도 한다. 하지만 1965~1966년 사이에는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들을 제작하였다. 이후에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위시한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과 아르 데코 디자인,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정물화 등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것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작업방향이 확대되었고 표현방법도 풍부하게 더 자유로워지며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할 정도로 그의 작품의 소재는 동시대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재였다. 당대 미술계는 추상 표현주의가 주력이었지만 그는 만화, 광고라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두꺼운 검은 윤곽선, 과감한 색감, 의성어가 쓰여진 말풍선 등 그만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기법을 이용한 금발의 백인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은 여전히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켜 버렸다. 이번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은 스페인 아트콜렉터 Jose Luiz Ruperez의 콜렉션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유명작인 <절망 Hopeless>, <Whaam!>을 비롯하여 ‘붓 자국 회화 연작’,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협업, 공예품 등 리히텐슈타인이 작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작업했던 130여개의 작품과 함께 유명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된 작품 이 외에도 회화, 조각, 심지어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까지 탐구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티스트라 칭한다. 가장 미국적인 방식의 매스미디어를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담아내며 미국과 미국인의 전형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예술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국내 첫 단독전 ‘눈물의 향기’는 2022년 4월 3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18,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보기]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전
[전시보기]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전
[서울문화인] 꿈의 세계를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낸 화가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라 지칭되는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전은 ‘세계 3대 달리 미술관’으로 일컷는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달리 미술관(Fundació Gala-Salvador Dalí)을 중심으로,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소장품을 통해 달리의 예술세계를 회고하는 전시이다. 회고전인 만큼 이 전시는 ‘살바도르 달리’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시기별 작품을 총 10개의 주제에 따라 구성, 140 여 점의 유화와 삽화, 설치미술,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진, 멀티미디어 영상물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적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천재의 탄생 (1904-1926) “여섯살 적 나의 꿈은 요리사였다. 일곱 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후에도 나의 야심은 과대망상적 광기처럼 멈출 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살바도르 달리의 독특한 성격과 세계관에 강한 영향을 끼친 성장 배경과 고향, 가족 관계 등을 살펴본다. 당시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등을 탐구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1919) 작품은 달리가 만 15세에 얻은 첫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으로, 세 개의 거울을 곁에 두고 반사된 각도를 계산하며 정확하게 그렸다. 일찍부터 달리는 과학적인 접근법을 시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c.1919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초현실주의: 손으로 그린 꿈 속의 사진들 (1927-1939) “나는 갈라를 아끼며 그녀를 빛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나 자신보다 위할 것이다. 그녀가 없다면 모든 것은 끝일뿐이니.” 살바도르 달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 ‘갈라’. 달리와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영화 같았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달리의 작품에 갈라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초기작 <슈거 스핑크스 The Sugar Sphinx> (1933)는 등을 돌린 채 넓은 광야를 바라보는 갈라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한편, 갈라의 정면에 놓인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두 인물과 수레가 보이는데 이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작품 속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밀레의 그림을 본 순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다양한 해석과 주장을 남긴 달리의 일화는 유명하다. “초현실주의는 바로 나 자체다.” 달리는 현실과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연구한 잠재의식에 강한 충격을 받은 달리는 기이하고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화가로 거듭났다. 현실을 변형시키고 전복하고, 재해석하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편집광적 비판(Paranoian Critical Method)’기법을 제시하고 새로운 화풍의 작품들을 탄생시키며 초현실주의의 가장 열렬한 전파자가 됐다. 이 공간에서는 초현실파 주요 일원이었던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과 함께 제작한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 (1929)를 스크리닝하고 있다. 미국: 새로운 기회와 자유 (1940s) “나는 영화에서 그동안 꿈을 다루던 전통, 곧 흐릿하거나 혼란스럽거나, 아니면 화면을 흔들어 꿈을 처리하던 방식을 반드시 깨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섹션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시기의 대표작들이 소개하고 있다. 달리의 자유분방함과 도발적인 행보, 그리고 예술적 천재성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시기에 달리의 활동 범위는 장르와 매체 구분 없이 확대하였였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이중 이미지’ 기법을 다양한 작품에 적용했다. 이러한 기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품으로는 <볼테르의 흉상 Bust of Voltaire> (1941)과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s,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 등이 있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반복적으로 그려진 얼굴은 권력을 상징하는 ‘나폴레옹’이다. 어린 시절 달리의 꿈이었던 ‘나폴레옹’에 대한 강한 집착이 드러난다. 부드러운 곡선형 구조물은 스페인의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달리의 존경심을 나타낸다. 화려한 도상들로 장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 특유의 적막함과 우울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표작이다. 또한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달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많은 작품들이 핵과 연관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 스페인 신비주의적 전통이 가미된 ‘핵-신비주의(Nuclear Mysticism)’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달리는 과학의 진보와 고전의 신비함을 자신만의 예술언어로 녹여냈다. 대표적인 작품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 Dematerialization Near the Nose of Nero> (1947)에서 중력이 소멸된 듯한 풍경 속에 모든 물질의 분열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달리가 회화 소재로 즐겨 삼았던 도상들인 사이프러스 나무와 신고전주의 건물, 잉크병, 유기적인 형체의 인물 등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사상과 사건을 접목시키면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 이상한 나라에서 온 돈키호테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돈키호테 석판화는 세기의 석판화 작품이 될 것이다.” 책이나 잡지 커버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던 달리는 1920년 초부터 다양한 삽화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4가지 문학 작품인 <돈키호테 데 라만차 Don Quixote of La Mancha> (1957), <삼각모자 Le Tricorne> (1959), <셰익스피어에 대한 소동 Much Ado About Shakespeare> (196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969) 삽화 시리즈를 소개한다. 각 삽화는 주어진 주제에 맞게 달리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기법, 예술관이 적절히 녹아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달리의 작업물은 그가 회화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독창적인 행보와 자유로운 표현 방법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 Don Quixote of La Mancha> (1957) 1957년, 살바도르 달리는 프랑스에서 소설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삽화를 의뢰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12개의 삽화를 소개한다. 이 시기에 달리는 처음으로 석판화를 시도한다. 오래된 석회암에 그림을 그려 작업했던 달리는 연필과 물감이 아닌 획기적인 재료와 방식을 찾고자 했다. 잉크 탄을 채운 공기총을 쏘는가 하면, 물감을 묻힌 달팽이를 활용하는 등 우연적인 요소가 어떻게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창조하는지 보여주었다. 나의 영원한 왕국, 포트이가트 (1950s) “르네상스의 고요한 완성미에 견줄 수 있는 이미지로 진정한 삶의 경지에 도달한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바로 내가 기적같은 행운으로 선택한 나의 아내 갈라이다.” 8년간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포트이가트로 돌아간 시기이다.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보아왔던 포트이가트 풍경을 미국에서 탐구한 핵과 신비주의 주제와 접목시켜 새로운 화풍을 제시한다. 달리는 종교적 주제와 핵융합, 핵분열 같은 과학적 개념을 담아냈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르네상스 회화 기법과 새롭게 발견한 세계관을 융합하여 이색적인 회화를 선보인다. 시각적 환상에 대한 탐구 (1960-1970s) “체계적으로 혼란을 창조해야 더욱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모순적인 모든 것들이 삶을 창조한다.” 달리는 수학과 과학을 탐구하면서 기존의 착시 기법을 넘어서는 실험에 몰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편집광적-비판 기법, 이중 형상, 스테레오스코피, 홀로그래피, 4차원의 탐구와 같은 다양한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에 설치된 스테레오스코피 체험 공간의 설계를 똑같이 재현하여, 착시효과를 이용해 평면의 입체화를 직접 겪어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가장 특징적인 표현방법은 현대 과학과 고전주의 미술의 융합이다. 그러한 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작으로 <후안 데 에레라의 “입방체 연구”에 대하여 About the “Speech on the Cubic Form” of Juan de Herrera> (1960)를 꼽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리가 깊이 존경했던 벨라스케즈부터 미켈란젤로까지 대가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달리의 꿈속으로 떠나는 여정 미국 플로리다의 달리 미술관에서 특별 제작한 <달리의 꿈 Dreams of Dali> (2016) 예술과 기술의 놀라운 결합으로 펼쳐지는 멀티미디어 영상 작품이다. 달리의 작품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1935) 을 중심으로 재해석 된 다양한 상징물 사이를 떠다니듯이 유영하는 초현실적 경험을 선사한다. 달리는 건축가 오스카 투스케츠와 협업하여 정확한 설계에 따른 설치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초현실적인 대형 설치작품 메이 웨스트(Mae West)는 1920년대~30년대 당시 극장과 할리우드에서 관능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이다. 달리는 그녀의 매력을 높이 칭송, 신문에 실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콜라주를 활용해 입체적인 방처럼 탈바꿈시켰다. 보는 이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서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들은 온전한 메이 웨스트의 얼굴로 모여지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전설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 Dali, the Legend “평균 이상의 내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은 그의 삶 전반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달리는 자기 자신에게 한계점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매체와 장르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달리의 폭발적인 창조성과 상상력은 캔버스 밖에서도 무한대로 펼쳐졌다.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 감독, 배우, 가구 디자이너 등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과 협업을 이어나갔다. 상업적인 예술가라는 비판적인 견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늘 획기적인 이슈를 만들며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실험했다. [허중학 기자]
[살바도르 달리전] 초현실주의 대표하는 달리의 예술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다.
[살바도르 달리전] 초현실주의 대표하는 달리의 예술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다.
[서울문화인]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페인 초현실주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전 전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추운 날씨임에도 전시 관람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다. 초현실주의의 작가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작가라면 아마 많은 분들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를 떠올려질 것이다. 그는 분명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작가이다. 그러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기행으로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받으면서도 동시에 기상천외한 괴짜 취급을 받았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여야 한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형으로 인해 상심한 부모는 달리를 죽은 형의 환생으로 여겼다. 이는 달리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안겼고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정신 분열 증상인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갖게 했다. 달리는 온전한 자신으로 인정받길 원했으며, 그 열망을 온갖 기행과 일탈로 표출했다. 그리고 평생 시달린 불안감과 광기는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표현시켰다. 대표적으로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기록하는 ‘자동기술법(Automatisme)’과 어떠한 사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거나 응시할 때 나타나는 왜곡을 표현한 ‘편집광적 비판(Paranoiac Critic)’ 기법이 있다. 달리는 비이성적인 환각 상태를 객관화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정통적인 회화기법과 정밀한 소묘, 오차 없는 원근법을 이용해 완성한 몽환적이고 기묘한 그림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달리는 “그림이란 비합리적인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천연색 사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전: Imagination and Reality>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이 초현실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 한다면, 이 전시는 우리에게 각인된 초현실주의 작가를 대표할 만한 ‘달리’에 주목한 전시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보여 온 화가들의 전시는 보통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만을 오롯이 나열, 관람하는 전시였다면 10개의 섹션을 통해 달리가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시기별 작품 특성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그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과 개인적인 순간들이 함께 소개되어 예술가로서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불어 오랫동안 유럽, 특히 프랑스의 미술을 국내에 소개해온 ㈜지엔씨미디어(GNC Media)가 미술전시에도 요즘 전시의 트렌드를 반영, 젊은 세대에게도 서양미술을 자연스럽게 어필할 수 있게 꾸몄다는 점이다. 회고전으로 선보이는 만큼 이번 전시는 소개되고 있는 작품은 달리의 전 생애를 걸친 유화, 삽화, 대형 설치작품은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140여 점이 소개되는 전시로 ‘세계 3대 달리 미술관’으로 일컷는 스페인 피게레스에 위치한 달리 미술관(Fundació Gala-Salvador Dalí)을 중심으로,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소장품으로 구성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이자 기행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오늘날 현대사회 예술문화 전반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달리의 내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살바도르 달리전: Imagination and Reality>전은 2022년 3월 20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티켓은 성인(만 19-64세)은 20,000원, 청소년(만 13-18세)은 15,000원이며, 어린이(7-12세)는 13,000원이다. 온라인 예매처인 인터파크 티켓과 네이버, 29CM, 야놀자 채널을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박물관] 경복궁 발굴·복원 30년史을 그려내다.
[박물관] 경복궁 발굴·복원 30년史을 그려내다.
[서울문화인]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은 1394년(태조 3년) 신도궁궐조성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를 시작으로 1395년 9월에 궁궐 조성되었다. 하지만 정종이 즉위하면서는 도읍을 개성으로 다시 옮겨가게 되었다. 태종대에 들어서는 경복궁으로 이어 하지는 않았으나 경복궁 수리에 관심을 두어 경회루를 지었고, 세종 때에는 집현전과 보루각을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을 짓는 등 경복궁을 수리하였고, 문과 다리에는 이름을 명명하였다. 1553년(명종 8년) 궁내에 화재 발생하여 근정전만 남긴 채 편전과 침전 권역의 건물이 모두 소실, 이듬해에 강녕전·교태전·연생전·흠경각·사정전 등을 복원하였지만 임진왜란(1592)으로 궁은 전소되어 폐허로 변했다. 선조 1606년 때 궁궐영건도감을 설치하여 중건을 단행하려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가 황폐화 되고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 대대적인 중건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광해군 한 때 경복궁 중건의 뜻을 보였으나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70여 년이 지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5년 중건이 시작되어 1867년에 완료되었다. 그러나 경복궁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1873년의 화재로 400여 칸, 1876년의 화재로 830여 칸이 소실, 이후 아관파천과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면서 경회루·근정전 등의 일부 건물을 제외한 4천여 칸을 민간에 방매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광화문이 소실되고, 경회루 층계·석주·하층천장이 파손되는 등 여러 건물이 피폭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뤄진 복원 사업은 1968년 일제강점기 현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겨졌던 광화문이 당시 중앙청 정문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변형ㆍ훼철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원형대로 복원·정비하여 역사성 회복 및 문화관광자원화 하고자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조선왕궁 복원정화에 따른 관리개선 보고(1984. 5. 22, 대통령재가)를 시작으로 90년부터 경복궁 1차 복원 기본계획 추진(1990~2010, 예산 1,571억원)되었으며, 현재 경복궁 2차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년 ;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월 16일부터 2022년 3월 27일)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월 1일(수)부터 2022년 2월 27일)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월 17일부터 2022년 2월 28일)을 진행한다. 국립고궁박물관 「고궁연화古宮年華」 특별전 ‘고궁연화古宮年華’는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 하여 조선의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다시 생명력 넘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까지의 발굴과 복원 노력을 조명하는 전시로 고궁연화는 ‘年華(빛나는 해)’, ‘煙花(봄의 경치)’ 두 가지 중의적인 뜻으로 경복궁 복원이 끝나고 맞이하게 될 경복궁의 찬란한 시간이자 봄을 의미한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았던 발굴 현장 기록 일지, 발굴 실측 도면과 복원도면 등 20여 점의 원본 자료를 통해 경복궁 발굴·복원사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시의 소재가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고 아름다움과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건축물의 복원을 그리고 있어 대중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가 아닌 만큼, 전시장에는 실감 콘텐츠로 제작된 인터뷰 영상과 미디어파사드 기법이 접목된 3면 영상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또한, 복원한 전각 4곳에 사계절을 역순으로 투영시키고 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구성해 전각들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는 복원의 의미를 구현하였다. 전시는 ▲ 도입부 ‘적심(積心)’, ▲ 1부 ‘바람이 문에를 처도’, ▲ 2부 ‘진흙속에 묻혀눕은’, ▲ 3부 ‘오백년 거륵한 공’, ▲ 4부 ‘봄어름 처음녹고’, 총 4부로 구성하였다. 각 부제(副題)는 1927년 잡지 <동광>에 실린 시인 시목(詩牧)의 고궁단영(古宮短詠)에서 따 온 것으로, 일제강점기 훼손된 경복궁의 모습을 노래한 시다. 도입부 ‘적심(積心)’은 건물의 구조와 규모를 보여주는 기초 부분이자 복원의 실마리로서, 발굴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이곳은 박진우 작가가 적심이라는 단어를 기반으로 여러 마음이 쌓여 만들어지는 경복궁 건물의 토대가 되는 적심을 주제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린 적심을 궁궐 전각처럼 배치하여 재해석된 경복궁을 유영하듯 감상하게 했다. 1부 ‘바람이 문에를 처도’에서는 복원된 흥복전 내부에서 창문 밖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정원이 된 겨울의 흥복전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공간을 연출하였다. 맞은편에는 훼철(헐어서 치워버림)된 경복궁을 주제로 한 조지훈(1920-1968)의 <봉황수> 등이 소개되고 있다. <봉황수>는 고궁을 보며 망국의 비애를 노래한 산문시로 당대 문학인들이 느꼈을 무력한 마음을 그리고 있다. 고궁단영 수수한 봄바람에 옛 궁전 찾아드니 광화문 간 곳 없고 돌집 하나 높아 있네 낯설은 길손 하나만 눈물짓고 가더라 신라적 옛 불상과 고려적 도기들은 기리고 기린 자취 (나를) 보라 하건마는 보아도 보지 못하니 그를 설워 하노라 근정전 앞을 두고 뒷문 좇아 들어가니 진흙 속에 묻혀 누운 무심한 돌해태야. 오백년 거룩한 공을 너는 알까 하노라. 경회루 깊은 못에 봄 얼음 처음 녹고 소나무 빈 정자에 까마귀와 까치만 지저귄다. 바람이 문을 쳐도 애끊는 듯하여라. -3월 14일 경복궁 안에서- 2부 ‘진흙속에 묻혀눕은’에서는 사시사철 현장을 지키는 발굴조사단의 모습을 단풍이 무르익고 노동의 결실을 맺는 가을로 비유하였다. 전면부에는 경복궁 출토 도자기 파편과 발굴 일기, 유물 조사 카드 등을 토층도(土層圖, 흙의 층위를 그린 그림)로 연출하여 유적의 느낌을 살렸다. 후면부에는 소주방지(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출토 도자기, 기와, 철제 생활용구 등을 상부에 전시하여 ‘사람’에 의해 매장 문화재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표현하였다. 경복궁 터를 직접 발굴했던 전직ㆍ현직 조사단 3인과 전시담당자의 인터뷰에서는 숨겨진 발굴 이야기가 실감 콘텐츠로 표현된다. 3부 ‘오백년 거륵한 공’은 약 높이 4m, 너비 15m의 대형 미디어월에 복원 도면을 라인그래픽(줄선으로 형상을 그리는 기법)으로 제작하여 궁궐 건축의 촘촘한 설계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다. 경복궁 복원 건축 도면은 발굴 성과를 토대로 고지도, 문헌사료, 실측도면 등을 종합하여 만든 발굴·복원의 집합체이다. 도면 영상 맞은편에는 경복궁 밤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여름밤 궁궐을 거니는 느낌을 받도록 꾸몄다. 또한, 영상 원본인 너비 약 1-2m에 육박하는 강녕전, 교태전 정면도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4부 ‘봄어름 처음녹고’에서는 2045년 경복궁 복원이 마무리 된 후 맞이할 경복궁의 봄을 3면 대형 영상으로 구현했다. 복원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 별무리로 북궐도형(北闕圖形, 1865년 경복궁 중건 후 19세기말에 제작된 경복궁 평면 배치도로 경복궁 복원 정비 사업의 기초 자료로 활용)을 그려 디지털 상량문으로 재해석하였다. 또한, 복원공사에서 사용한 공구와 근정전, 향원정 보수 시 교체된 부재들을 함께 전시하여 경복궁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보수방법과 노력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가 지난 발굴의 역사를 담은 만큼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온라인 콘텐츠로 경복궁의 사계절을 담은 타임랩스, 전시 해설 등 관련 영상이 문화재청과 박물관 유튜브로 제공되고 있으며, 전시실 전경, 유물설명, 사진을 담은 가상현실(VR) 콘텐츠도 향후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1년간 발굴 현장과 복원 공사 모습과 경복궁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집도 내년 초 발간된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광화문광장 이전의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로 떠나는 여행
[박물관] 광화문광장 이전의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로 떠나는 여행
광화문을 중심으로 현재의 세종로 일대는 조선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공간이다. 광화문이 세워진지 600년을 맞아,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협력전으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서울역사문화특별전 ‘광화문 600년 ; 세 가지 이야기’를 세 박물관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진행한다.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은 ‘육조거리’를 주제로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11월 16일부터 2022년 3월 27일)를,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하여 ‘경복궁 발굴복원’을 주제로 “고궁연화古宮年華”특별전(12월 1일(수)부터 2022년 2월 27일)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현대사로 보는 광화문’을 주제로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12월 17일부터 2022년 2월 28일)을 진행한다. [서울문화인] 육조거리는 오늘날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에 이르는 대로는 말한다. 조선왕조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건설하면서부터 그 앞의 육조거리에는 의정부, 사헌부, 한성부를 비롯하여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자리하면서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가로서 주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이외에도 주변으로 궁궐에 물품을 조달하거나 핵심 관청을 지원하는 하급 관청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육조거리는 한양 최대의 관청가로 관원들의 출퇴근길이자 업무 공간이었다. 또한, 육조거리는 백성이 왕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폭이 약 60m에 달했던 육조거리에 행해진 왕의 행차와 사신을 위한 행사 등은 백성의 호기심을 자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백성을 위해 신문고가 설치되고, 격쟁과 상언이 이뤄지는 등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조선왕조의 주요한 중앙 관청들이 자리하여 500여 년간 국가권력을 상징했던 ‘육조거리’는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 이후 식민통치를 위한 ‘광화문통’으로 바뀌는 질곡의 역사를 겪었다. 광복 이후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세종로’로 개명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서도 여전히 국가권력의 중심이었고, 다양한 국가 행사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80년대 민주화 시위의 장소로도 이용되었었지만 세종로가 국가의 상징거리에서 오늘날 시민의 광장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4년 지구의 날 행사를 시작으로 시민들에게 점차 개방되었고, 199년 의정부 터 자리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이 문을 열었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온 국민이 하나 되는 길거리 응원의 무대가, 2016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시위를 비롯하여 국민들이 정치적 주장을 펼치던 중심적인 공간으로 오랫동안 광장의 기능을 했다. 현재 광화문광장으로 바뀐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이래 국가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이 되어 온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고층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땅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진행하는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특별전은 600여 년 전 한양이 조성된 이래 핵심 관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온 육조거리와 그 사이를 오고 간 관원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 구성은 〈파트1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파트2 조선을 움직이는 육조거리의 관청들〉, 〈파트3 육조거리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에서는 한양의 건설과 함께 조성된 육조거리의 모습과 임진왜란 이후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육조거리 모형으로 제작한 ‘하늘에서 본 육조거리의 관청들’ 영상방(4×6m)에서는 육조거리의 관청들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다. 육조의 관청이 광화문 앞 좌우로 길게 들어서게 된 것은 1413년(태종 13)이다. 이는 중국 주나라의 관직제도가 후대 중국 왕조의 도성 건설의 기본이 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파괴되면서 17세기 이후 왕의 거처가 창덕궁과 경희궁으로 옮겨지면서 많은 관청들도 궁궐로 옮겨 갔다. 그러나 육조거리의의 관청들은 광해군 때 본래 위치로 복구되었다. ‘조선을 움직이는 육조거리의 관청들’에서는 육조거리에 위치했던 핵심 관청들과 각 관청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경국대전> ‘경관직’을 기준으로 보면 한양에는 중앙 관청이 총 84개가 있다고 나온다. 이중에 육조거리에는 국정 운영의 핵심 관청이 자리했다. 이들 관청의 형태는 최근 발굴 조사된 삼군부 외행랑과 의정부 내행랑의 유구를 통해 관청의 내부는 크게 세 영역으로 확인되었다. 먼저 진입 영역인 대분은 육조거리를 향해 나 있었으며, 중문 안에 들어서면 업무 공간인 당상대청(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근무하는 건물)과 아방(관원들의 공간) 등이 배치되었고, 세 번째 영역은 휴식과 접객의 영역으로 연못과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에 세종이 “행랑은 10간마다, 개인집은 5간마다 우물 하나씩을 파고, 각 관청 안에는 우물 두 개씩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둘 것”을 전교하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연못은 목조 건축물의 방화수를 비축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 공간에서는 육조의 업무역할을 살펴본다. 특히 코너 호조의 방에서는 속사의 업무를 자세히 살펴보고, 휴식공간인 불염정에서 청렴함이 요구되었던 관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관원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육조거리로 출근하는 사람들’에서는 관원의 출퇴근 시간과 휴가, 녹봉, 숙직, 모임 등을 통해 조선시대 관원의 일과를 살펴본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관원들의 출퇴근 시간은 ‘묘사유파(卯仕酉罷)’, 즉 묘시(오전 5시~7시 사이)에 출근하여 유시(저녁 5시~7시 사이)에 퇴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따라서 관원들은 원칙적으로 하루 12시간을 관청에 나와서 근무를 해야 했다. 특히 고위관원들은 각종 국가 의례와 왕실 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는데, 이런 날은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궁궐로 출근해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관원들은 말을 타고 출근을 했으며, 출근길에는 구종(驅從)이라는 관청 노비 한 명과 집안 노비 한두 명이 동행하였는데, 이때 구종은 큰 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외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관청들은 일제강점기 때 고층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면서 땅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지난 2016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의정부 주요 건물의 배치와 규모가 최초로 확인되었고, 이어 2019년부터 진행된 조사에서는 삼군부와 사헌부 등 또 다른 관청의 유구가 드러나면서 육조거리의 흔적들이 100여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육조거리의 관청들은 오늘날 광화문광장으로 탈바꿈되어 사라졌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간으로 여전히 서울의 중심부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공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시에 앞서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최근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광화문 앞 의정부 터가 작년에 사적 제558호로 지정되었고,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 속에서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내년 4월에 마무리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광화문광장의 유구한 역사성을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및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중학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띠 해 특별전 《호랑이 나라》
국립민속박물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띠 해 특별전 《호랑이 나라》
[서울문화인] 2022년은 임인년 호랑이띠 해이다. 호랑이해를 맞이하며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이 기획전시실 2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 동물로 자리매김한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호랑이 나라》 특별전을 선보인다. “조선 사람들은 반 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 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 약 120년 전에 출간된 여행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1897)에서 저자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조선 사람들은 반 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 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고 하며, 조선에는 많은 수의 호랑이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호랑이와 관련해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1,000건 이상의 설화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700건 이상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호랑이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이가 우리의 삶과 함께했다는 증거이다. 산신(山神)으로 좌정(坐定)한 호랑이 호랑이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단군신화이다. 환웅의 배필 자리를 놓고 호랑이와 곰이 경쟁을 벌여 곰이 승자가 되었지만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가 곰보다 월등하게 많이 등장한다. 이는 구술과 기록에 나타난 수많은 호환(虎患)의 흔적으로 유추해 봤을 때,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호랑이는 우리 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대문 위에 걸린 호랑이 또한,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져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여졌다. 새해 첫날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는 세화(歲畫), 단오에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드는 애호(艾虎) 등은 모두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풍속이었다. 이 외에도 호랑이를 신으로 삼고 제사를 지낸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의 기록,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부르며 무당이 진산(鎭山)에 도당제를 올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기록 등 호랑이는 우리 땅에서 산신(山神), 산군, 산신령(山神靈) 등으로 불리며 신으로 섬겨져 왔다. 이번 특별전은 호랑이에 관한 상징과 문화상을 조명하는 자리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에서 썼던 산신도(山神圖)’를 비롯해 초창기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宋錫夏, 1904~1948)가 일제강점기에 수집한 ‘산신도․산신당(山神堂) 흑백 사진’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산신으로 섬겨온 호랑이의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세화와 애호의 풍속을 확인할 수 있고, 더불어 삼재를 막기 위해 만든 ‘삼재부적판(三災符籍板)’, ‘작호도(鵲虎圖)’ 등을 통해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막고자 했던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범굿’을 지냈는데, 대표적으로 포항의 ‘강사리 범굿’을 들 수 있다. “이 범을 잡아야 될거라야 그 놈 참 머 험하기도 험하다”(호랑이의 포악함을 표현한 무가 내용)라는 무가(巫歌)로 시작해 “옛날에 모두 옛조상들데 논 이 호랑이굿을 이래 불러 주고 위해줍니다.”(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범굿을 지냈다는 내용을 알리는 무가 내용)라는 무가로 범굿을 마치는데, 이를 통해 호환의 두려움과 오래전부터 범굿이 전승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굿’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수남(金秀男, 1949~2006)이 1981년에 촬영한 강사리 범굿의 사진을 슬라이드 쇼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호랑이로 상징되는 호랑이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현대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제행사의 마스코트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의 엠블럼에서가 아닐까 싶다. 88서울올림픽, 평창동계올림픽 등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서 호랑이는 대회 마스코트로 활용되었고,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유니폼에는 호랑이가 엠블럼 형태로 부착되어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모두 이번 전시에 선보이며,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축구공’, ‘남아공 월드컵 기념 티셔츠’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위상을 떨치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넥슨코리아와 협업해 현대 게임 산업에서도 호랑이가 활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는 동시에 모바일 게임 ‘바람의나라: 연’에서는 ‘은혜 갚은 호랑이’ 설화의 줄거리를 차용해 만든 인게임 이벤트를 진행하고, 전시실 내에서는 ‘호건’ 등 전시 유물을 활용해 만든 강력한 게임 아이템 쿠폰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임인년 새해에는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 온 국민이 코로나19를 모두 극복하고, 가내 평안함을 가득 누릴 수 있는 한 해는 물론 호랑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22일(수)부터 내년 3월 1일(화)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남산의 정취를 느끼면서 즐기는 빛 축제
남산의 정취를 느끼면서 즐기는 빛 축제
[서울문화인] 최근 이어지는 매서운 한파로 야간에 외출을 나서기 쉽지 않지만 날씨가 풀리는 저녁 남산아래 자리 잡은 국립극장을 찾으면 빛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남산은 서울 어느 곳 보다도 새해 해맞이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다. 남산을 오르는 자락에 자리한 국립극장이 연말연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꿈과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고자 선보이는 빛 축제가 올해 2회를 맞아 ‘빛을 담은 정원’을 주제로 지난 12월 23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올해 축제에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5명(김창겸·한호·곽인상·김유석·이재형)의 작가가 ▲대형 LED 조형물, ▲증강현실, ▲반응형 미디어 장치 등 각자의 개성으로 미래의 희망을 표현하는 작품을 국립극장 문화광장 일대에 펼쳐내었다.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이재형 작가의 ‘달맞이’다. 안내견 형상을 한 6m 높이의 이 작품은 10,000여 개의 LED 픽셀을 활용해 표면을 화려하고 다채로운 영상으로 물들인다. 광장 중앙에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의 산수 ‘몽유도원도’를 회화와 빛이 결합된 6.8m 폭의 조형물로 재구성한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21세기 신 몽유도원도’가 자리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국립극장과 남산의 모습에 빗대고 우리의 꿈을 빛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한 곽인상 작가의 ‘증강현실 해오름’을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한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증강현실 해오름'은 2021년 9월 재개관한 해오름극장과 국립극장의 공연에서 영감을 받은 그래픽 콘텐츠이다. 광장에서 하늘극장 방향으로 이동하면 LED스크린에 한겨울 추위 속에 만개한 꽃을 영상으로 시각화한 김창겸 작가의 ‘봄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문화광장을 둘러싼 무지개 쉼터와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다양한 모양의 경관조명과 LED 조형물을 한 공간에 배치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재형 작가의 ‘빛의 정원’으로 시작해 서정적인 음악 선율에 맞춰 반응형 미디어가 형형색색으로 변화하는 김유석 작가의 ‘빛 요정과 숲길’과 ‘염원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공간은 오로라 필름을 부착한 삼각형 배치의 조명 구조물로 빛을 통해 초현실적 분위기로 탈바꿈한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새해 염원을 기원하는 시간이다. 한편,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지만 코로나 예방을 위해 보다 안전한 축제 관람을 위해 국립극장은 관람 동선에 따라 작품 및 작가 소개, 배경음악 등 다양한 관람 정보를 개인 휴대폰과 태블릿를 활용한 ‘비대면 GPS 음성 도슨트’로 제공한다. 도슨트는 국립극장 홈페이지 또는 배포되는 안내지에 제공된 QR코드로 접속하면 현장에서 음성 안내와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남산의 정취를 느끼면서 감상할 수 있는 국립극장 빛 축제 ‘빛을 담은 정원’은 2022년 1월 23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5시 부터 10시까지 진행되며, 별도 신청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① ‘달맞이’ 이재형 : 안내견 형상의 6m 높이 LED 조형물 ② ‘영원한 빛 – 21세기 신 몽유도원도’ 한호 : 빛과 회화를 결합한 6.8m 폭의 조형물 ③ ‘증강현실 해오름‘ 곽인상 : 증강현실 그래픽(어플리케이션 활용형) ④ ‘봄의 향연’ 김창겸 : LED 스크린에 상영되는 3분 길이 영상 ⑤ ‘빛의 정원’ 이재형 : 분수대 주변에 설치된 LED 조형물과 조명 ⑥ ‘빛 요정과 숲길’ 김유석 : 음악에 따라 변화하는 반응형 미디어 ⑦ ‘염원의 공간‘ 김유석 : 오로라 필름 부착한 삼각 배치 구조물
미술관을 찾은 듯 볼거리 가득한 2021 서울아트쇼
미술관을 찾은 듯 볼거리 가득한 2021 서울아트쇼
[서울문화인] 지난해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코로나19로 지난해 개최하지 못했던 서울아트쇼가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12월의 끝자락인 지난 22일 코엑스 1층 A홀에서 150여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오픈, 미술애호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실 미술시장은 코로나 이전에 불황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 세계미술시장은 의외로 성장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그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아트페어에 판매실적이나 반응이 인파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런 세계적인 현상에 미술계는 “과거 2021년의 미술시장처럼 들썩이고 폭풍처럼 광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이다. 그 모양새나 흐름이 마치 올 한해의 미술시장은 2007-8년의 미술시장의 호황기처럼 닮아있고 뜨거웠다.” 더불어 “보통과거에는 인기작가와 유명작가들이 그 중심이었지만, 이번에는 청년, 신진, 중견 일부 원로 작가까지 굵직한 아트페어 오프닝 전시마다 그림 사는 컬렉터들로 붐볐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개막과 동시에 아트페어에는 평일 낮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지만 방역 문제로 입장이 늦어지자 긴 대기 줄을 이뤘다. 특히 최근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2~30대 젊은 컬렉터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화랑에서는 이들의 취향에 맞춤적인 작가들이 과거보다 많이 등장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장르적으로 확대되고 다양해졌다고는 볼 수 없어 이는 미술계가 고민해야할 점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아트쇼는 여느 아트페어보다 볼거리가 많다. 보다 폭 넓은 문화 향유를 관람자와 공유하고자 처음 개최 할 때부터 전시장 면적의 25% 정도를 특별전으로 기획해 타 아트페어와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2021 서울아트쇼에는 먼저 우리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기획되어, 오랜 세월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활동을 전개하며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만 65세 이상 작가의 작품전 ‘한국미술의 오리지널리티전’에는 권순철, 김기린, 김보중, 안창홍, 이일호, 제정자, 지석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며, 만 40-50대 작가 중 작품세계가 뚜렷하고 완성도 있는 작가를 조명하여 한국미술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작품전 ‘플래시 아트’에는 국대호, 박진희, 박현주, 안세권, 이계원, 정규리, 정상곤, 정직성, 차주만, 홍세연 작가가 참여, 한국미술의 현주소와 경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전 ‘서울아트쇼 초대 작가전’에는 권현진, 미나, 박미숙, 서동욱, 송지연, 오경아, 이목을, 전지연, 정지현, 조영대, 지근욱, 차유림, 차민영 작가가 참여했으며, 만 40세미만 10인의 젊은 작가로 구성해 서울아트쇼가 발굴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지원 육성하는 전시 ‘블루인 아트’에는 가수정, 김민영, 김태연, 루시드로잉, 류한솔, 박세린, 박제경, 보라리, 이오성, 이주원, 이진석, 이흠, 장진영, 한상윤 작가가 참여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아트페어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설치미술전도 준비되어 있다. ‘설치미술전’에는 국경오, 버룬 포크렐, 사토코 나가시마, 이승택, 이현정, 차주만, 한진수 등 국내외 미술가 7인의 설치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술계의 흐름을 감상해볼 수 있는 2021 서울아트쇼는 12월 26일(일) 오후5시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한반도을 넘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고대 문화재들
[박물관] 한반도을 넘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고대 문화재들
[서울문화인] 경주 계림로에서 발견된 일명 황금보검, 터번을 쓰고 매부리코에 곱슬 수염을 한 원성왕릉(괘릉) 무인석, 창원 현동에서 발굴된 낙타모양 토기, 경주 용강동에서 발굴된 서역인 흙인형(土俑)은 분명 고대 한반도의 유물과는 다른 형태와 제작기법을 가진 유물들로 이를 통해 고대에도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처럼 고대 한국 사회에도 다양한 이질적 문화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외래계 문물’이다. ‘외래계’란 토착, 재지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예전부터 있어 온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와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보편적이고 불안정적이며 낯선 것들을 말한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은 신라가 아닌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빚어낸 교류의 산물인 외래계 문물을 소개하는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특별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 출토 황금보검을 비롯하여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서역인을 닮은 토우(흙인형), 창원 현동에서 발굴된 낙타 모양 토기, 평양 석암리에서 나온 대모(바다거북 등껍데기) 장신구, 김해 양동리의 목걸이, 사천 늑도에서 나온 일본 야요이(彌生)계 토기, 천안 용원리에서 나온 중국제 계수호(鷄首壺·닭머리 모양 주둥이 항아리), 고조선시대 중국 화폐와 삼한시대 요령식 동검 등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 멀게는 동부 지중해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외래계 문물 172건 253점(국보 2건(황남대총 금목걸이, 구미 봉안동 금동보살입상), 보물 6건)의 유물을 통해 고대 한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 ‘다른 문화’가 만들어낸 우리 역사 속 다양성을 살펴본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과거 지역간 교류의 형태는 선사시대는 환경적 요인에 의한 이주가 중심이 되었다면, 이후 국(國)이라는 형태로 각자의 경계가 형성되면서 교류의 모습도 변화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입구에 터번을 쓰고 매부리코에 곱슬 수염을 한 높이 2.5m가 넘는 대형 석상 두 점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 이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원성왕릉(괘릉) 무인석으로 석상을 옮겨 올 수 없어 복제품을 전시장 앞에 들여다 놓았다. 제1부 ‘낯선 만남’은 외래계 문물을 이해하는 배경을 설명하는 인트로 부분으로 이국적 외모를 지닌 사람들의 이미지를 담은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고대 한반도에 사는 이들이 경험했을 낯선 만남의 느낌을 재현했다. 더불어 외래계 문물이 나타나는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교류’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델화하여 함께 전달하고 있다. 제2부 ‘스며들다’에서는 국가들의 정치ㆍ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교류가 구체화, 다양화되어 우리 역사에 스며드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요령식동검을 특징으로 하는 고조선 사회에 철기문화를 가진 수많은 중국계 유민들이 이주하고, 한군현이 설치되는 등 서서히 시작되는 전쟁과 갈등, 망명과 신기술의 전파로 나타나는 다양화된 교류 내용을 각종 금속기와 토기자료로 설명하고 있다. 제3부 ‘외연을 넓히다’에서는 삼한시기 초원과 바닷길을 넘어 본격적으로 외연을 넓혀가는 문물교류의 양상을 북방 유목민족의 동물장식, 중국과의 교역품, 동남아시아의 유리구슬, 한반도 남부 해안지역의 일본계 유물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로써 정치, 외교, 각종 민간 무역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지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세계의 국제적 교류활동이 본격적인 문화 다양성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제4부 ‘다양성을 말하다’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 내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각국의 정치, 외교 활동과 한층 복잡해진 교류의 양상을 각종 외래계 문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는 통일신라의 양상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시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연출적 요소 또한 ‘다양성’이라는 전시 컨셉에 맞추어 원웨이(One-way) 강제동선이 아닌 자유동선을 채택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여 단순한 역사정보의 전달이 아닌 휴식의 공간,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야외 LED 전광판에는 다양한 이주민들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이한희 애니메이션 감독의 영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전달, 전시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관 학예연구사는 “영산강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경 제조된 일본식 원통 토기인 '야요이 토기'가 80%이상 나온 것은 단순히 토기만 유입된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넘어와 함께 정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시대 중국 화폐와 삼한시대 요령식 동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뒤로 화살쏘는 모습 등 외래 문화 영향의 증거를 한자리에 모였다.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보검이나 낙타 조각, 서역인 인형 등이 멀리 중앙아시아 문화가 엿보이며, 금동 신발은 백제에서 자주 출토되는 유물로 백제에서 만들어 신라에 선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중국과 일본, 멀게는 동부 지중해 문화가 깃든 유물을 통해 이미 고대 시대에 한반도에 전해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전시는 2022년 3월 20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