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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이건희 기증관’, 결국 서울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에 건립된다.
‘(가칭)이건희 기증관’, 결국 서울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에 건립된다.
송현동 부지 내 9,787㎡ 규모로 조성…송현동 부지-국유지 교환 절차 착수 [서울문화인]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2만3천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존‧전시‧연구하기 위한 ‘(가칭)이건희 기증관’ 건립지로 종로구 송현동 부지(송현동 48-9번지 일대 9,787㎡)가 확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가칭)이건희 기증관(이하. 기증관)’ 건립 부지로서 접근성, 주변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성 등을 고려할 때 송현동 부지가 최적의 장소라는 데 뜻을 모았다. 10일(수) 오전 11시 25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시장이 「‘(가칭)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을 가졌다. 문체부는 앞서 기증관 건립부지 입지분석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했으며, ‘기증품 활용위원회’에서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송현동 부지를 최종 건립부지로 심의‧의결했다. 연구에 따르면, 용산 부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송현동 부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있어 국내 최고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과 협력하기 쉽고 접근성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산 부지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객 연 3백만여 명과 연계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고 향후 용산공원 조성 시 국가대표 박물관 단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송현동 부지의 경우에는 정치, 경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도보 10분 거리 내 20여 개의 박물관·미술관이 밀집해 있고, 경복궁, 북촌한옥마을, 인사동 등 문화·관광 기반시설이 발달해 국내외 방문객 유입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기증관 인근 부지가 도심의 녹지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어서 공원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고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 및 고도지구로 관리되고 있어 조망이 우수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반면, 송현동 부지는 서울시에서 부지취득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문체부가 건립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용산 부지는 공원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건폐율(20%)과 용적률(50%)이 낮아 가용 건축면적이 작고, 원활한 진입을 위해서는 진입로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는 점이 취약요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장소성’, ‘문화예술 연계성’, ‘접근성’, ‘부지 활용성’, ‘경관 및 조망성’ 등 6개 기준의 평가 결과 송현동이 더 적정한 부지로 평가받았다. 한편, 협약식은 송현동 부지가 내려다보이는 ‘서울공예박물관’ 교육동에서 황희 문체부 장관 오세훈 시장,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위원회’(이하 ‘기증품 활용위원회’) 김영나(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협약식에서 ‘기증관’은 송현동 부지 내에 대지면적 9,787㎡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며(송현동 부지 전체면적 37,141㎡), 올해 11월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에 들어가 내년 하반기부터 국제설계 공모절차를 추진하고, 설계와 공사를 거쳐 ’27년에 완공·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서울시와 문체부는 협약을 시작으로 기증관 건립을 위한 부지교환 절차에 착수한다. 현재 대한항공 소유인 송현동 부지 소유권이 내년 상반기 서울시로 이전될 예정이어서 이후 기증관 부지에 대해 국유지와 등가교환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사실 이 부지는 대한항공이 소유하기 이전에 삼성가의 소유였지만 주변의 고궁과 역사적인 위치로 인한 많은 제약에 활용을 못하고 방치되어 왔다. 그러다 비록 국유지로 전환되게 되었지만 다시 ‘이건희 기증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송현동 부지는 서울의 역사‧문화‧경제 중심지로서, 도보 20분 거리 내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30여 개 박물관‧미술관과 60여 개 갤러리가 밀집해 있고, 5대 고궁과 북촌한옥마을, 인사동 같은 문화‧관광 인프라가 풍부하게 갖춰진 곳이라 내국인은 물론 해외 관광객를 흡수하기에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문체부가 기증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각 지방에서도 유치를 위한 노력을 기우려왔기에 이번 결정에 불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황희 장관은 지역별도 순회전을 가질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다. 충청권에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장고로 활용하고 있는 청주관을 전라권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경북권은 구 경북도청, 경남권은 창원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최대한 문체부에서 운영하는 건물을 활용 ‘네트웍 뮤지엄’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 하지만 지역관은 상설로 운영되기 보다는 년 몇 개월 정도 순회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 언급했다. 문체부의 이런 발표에 지역은 물론 현재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아쉬움을 들어냈다. 이번 문체부의 결정은 단순히 기증품을 전시하는 것 이외에도 수장고에서 직접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황희 장관은 새로 건립되는 기증관은 수장고를 갖춘 별도의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운영이 될 계획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필요로 할 시에는 원활히 협조가 가능하도록 ‘수평적’ 기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여성화가 최욱경의 회고전
[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여성화가 최욱경의 회고전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 과천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인 여성화가 최욱경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를 선보이고 있다. 최욱경(1940~1985)은 1940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예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63년에 도미(渡美), 미국 유학 후 현지에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1965년에는 『작은 돌들(Small Stones)』이라는 영문 시집을 출간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처음 드러내었다. 1970년대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작품 창작과 강의를 병행했고, 「앨리스의 고양이」를 비롯한 시 45편을 수록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5년 작고할 때 까지는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산과 섬을 주제로 한 회화 작업 제작에 몰두했다. 최욱경은 1980년대에 《상파울루 비엔날레》(1981), 뉴욕에서 《한국 현대 드로잉전》(1981), 교토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전》(1982), 파리의 《살롱 도톤》(1982) 등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에 다수 참여하면서 당대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작고 이후에도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갤러리 등에서 작가를 추모하는 회고전(1987)이 개최된 바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된《여성 추상미술가들(Women in Abstraction)》(2021.5) 전시가 10월 22일부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순회 전시되고 있고, 모교인 미국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전시(《1932년 이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With Eyes Opened: Cranbrook Academy of Art Since 1932)》)에도 출품되는 등 최근 해외에서도 시대를 앞섰던 추상표현주의 여성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미술가, 교육자,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욱경은 주로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수용한 미국적인 화가’ 혹은 ‘요절한 비극적인 여성 작가’로 인식되어 왔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그의 작업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작가의 시집 등 미술이 문학과 연계하여 주목, 그의 작업 전반을 펼쳐내었다. 전시는 크게 4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 3개의 주제 공간은 연대기별로, 마지막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화상 작품 및 기록물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공간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는 작가가 1963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유학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와 후기 회화적 추상에서 팝아트와 네오 다다에 이르기까지 미국 동시대 미술을 폭넓게 수용한 시기이다. 그가 미국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1968년 뉴햄프셔에 위치한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다. 같은 해에 그는 <평화>와 같은 구상 작업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동조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1960년대의 작업에서 절규하는 <화난 여인>(1966)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발언하는 <평화> 속의 단호한 여성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그가 유학생에서 교수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미국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공간에서는 <화난 여인>(1966),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 등 표현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추상 회화 및 흑백 회화 등을 선보인다. 두 번째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에서는 작가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했던 시기로 그는 표현적인 추상미술에서 벗어나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독자적인 200호 이상의 대규모 추상미술 작업을 제작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에는 꽃과 산, 새와 동물을 연상케 하는 유기적 형태들이 뒤얽혀 있으며, 회전하면서 군무를 추거나 날아오르듯 부유하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들이 주를 이룬다. 최욱경은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있어 영감을 준 요인으로 뉴멕시코의 풍경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언급한 바 있다. 이 공간에서는 <줄타기>(1977), <마사 그래함>(1977)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는 1979년에 귀국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상도 지역 산들의 능선, 거제도 등 남해의 섬과 물빛에서 얻은 감동, 태양 광선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색채 유희 등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것이 1980년대 작업의 변화를 야기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원색의 강렬한 대비와 표현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대작을 많이 그려내었던 이 시기에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에 다수 참여하면서 당대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 공간에서는 1970년대의 작업과 달리,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절제된 선과 구성을 강조하는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1984), <빨간 꽃>(1984)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네 번째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195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작가가 제작한 자화상을 선보이고 있다. 최욱경은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 역시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그 기초가 된 것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바라본 거울 속 모습이 다채로운 자화상를 남겼는데, 그의 자화상은 전시용 작품이라기보다 시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던 것처럼, 자화상을 그리던 시기의 자신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기록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이번 전시를 보면 최욱경은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을 지속했음은 물론 문학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는 확인해 볼 수 있다. 전시는 2022년 2월 13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경복궁 향원정, 건립 초기 때의 모습으로 복원
경복궁 향원정, 건립 초기 때의 모습으로 복원
[서울문화인] 왕과 왕비의 휴식처인 경복궁 향원지(香遠池)의 향원정(香遠亭)과 취향교(醉香橋) 복원을 3년 만에 완료했다. 이번 복원공사는 향원정 전체 해체보수, 취향교 제자리 복원, 이완된 기단 해체 후 재설치 등에 대한 복원이 진행되었으며, 총 31억 3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경복궁 향원정(보물 제1761호)은 경복궁 후원 영역에 네모난 연못을 파서 가운데 섬을 만들고 조성된 상징적인 2층 정자 건물로, 2층의 익공식(翼工式,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곳에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가 새날개처럼 뾰족하게 처리된 것) 육각형 정자로 일반적인 정자와는 다르게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정확한 창건연대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1887년(고종 24년)의 ‘승정원일기’에 ‘향원정’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면서 건립 시점을 1887년 이전으로 추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복원공사에서 실시한 목재 연륜연대조사를 통해 1881년과 188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채된 목재가 사용된 것이 확인되어 건립 시기를 추정하는 근거가 마련되면서 향원정 건립 시기는 1885년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은 1395년 창건됐고,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됐다.(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시작, 고종 4년(1867), 경복궁 중건 완료, 고종 10년(1873), 건청궁을 새로 건립, 고종 13년(1876), 화재로 830여 칸 소실, 고종 25년(1888),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 등 다시 건립)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강녕전, 교태전 등 많은 건물이 훼철돼 옛 모습을 잃었다. 경북궁 복원은 광화문 복원(1968년)을 시작으로 영추문 복원, 동정문 건립(1975년), 강녕전, 교태전 일곽 복원(1994년), 흠경각 복원(1995년)을 이어 오다가 199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 철거 하면서 시작한 중, 장기 복원 작업을 발표하면서 동궁(자선당, 비현각) 복원(1995년), 흥례문, 유화문, 영제교 복원(2001년), 근정정 보수(2001년), 경회루 동편담장, 태원전 복원(2005년), 건청궁 일곽 복원(2006년), 함화당, 집경당 보수 및 주변 행각 복원(2008년), 광화문 재복원(2010년) 등 36동에 불과하던 경복궁 건물은 146동으로 늘었다. 고종 때의 중건 당시 경복궁 모습으로 되돌리는 복원은 2045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향원정은 해방 이후 몇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계속해서 기울어짐과 뒤틀림 현상이 발생되어 해체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8년 11월부터 해체보수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번 복원에서 가장 시선이 가는 것은 취향교이다. 취향교는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향원정의 북쪽에 세워진 다리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고 나서는 1953년 관람 편의를 위하여 본래 위치(향원정 북쪽)가 아닌 향원정 남쪽에 세워졌다가 이번에 원래의 자리를 찾아 복원되었다. 또한, 이전에는 석교 교각에, 목재 난간을 갖춘 평교형태였다가 이번에 아치형 목교로 제 모습을 찾았다. 그런데 처음 멀리서 봤을 때 ‘왠 철재 다리로 복원을 하였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치 철로 만든 것 같은 질감의 하얀색 아치형 목교는 주변과 너무 어울리지 않은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고증에 따른 것이었다. 1901년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촬영한 사진, 1903년 미국 장교 그레이브스가 촬영한 사진에 모두 이 ‘하얀색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이번 복원은 이 옛 사진에 대한 3D모델링을 거쳐 크기와 모양을 복원한 것이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시는 서양 문물이 급격하게 들어오던 시기라 서양 문물의 도입에 큰 거부감이 없었던 고종이 전통 양식과 서양 양식을 결합해 지은 것이 아닌가”라는 평가를 했다. 이는 향원정 건립 이후, 1885년과 1901년 사이 취향교에 대한 중수 기록이 없어 현재로는 사진에 남아 있는 모습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번 복원작업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구들의 구체적인 형태와 연도(煙道, 연기가 나가는 통로)의 위치도 확인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구를 그대로 활용하여 향원지 호안석축(護岸石築, 강이나 바닥기슭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돌로 만든 벽) 외부와 연결된 낮은 형태의 굴뚝을 복원하였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특이하게 굴뚝이 아궁이보다 낮은 형태로 나타났는데 배연실험으로 아궁이에서 연도를 통해 연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것도 확인하면서 그대로 복원하였다. 더불어, 향원정의 6개 기둥 중 동남방향 초석(楚石, 주춧돌)에 대한 조사를 통해 건물 기울어짐의 주요원인이 초석을 받치는 초반석의 균열로 인한 초석 침하현상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에 복원과정에서 전통방식의 말뚝기초 시공을 통해 지반을 보강하였으며, 향원지 영역의 옛 사진을 분석하여 변형·훼손된 절병통(모임지붕 상부 꼭지점에 올리는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창호, 능화지, 외부 난간대 등을 복원했다. 또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향원정의 원형 단청도 확인하였지만 그대로 두는 것으로 복원을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향후 단청안료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이번에 취향교 복원과 향원정 보수가 진행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건청궁 앞은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깃불을 사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본과 중국보다도 2년 정도 빠른 동양 최초이기도 하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지 7년 만이다. 전기가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유학생 유길준이 조선으로 돌아와서 고종에게 이를 소개하였다. 고종은 어두운 밤을 대낮같이 밝게 해주는 전구에 탄복하였고, 고종이 직접 에디슨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처음 전기를 도입하게 되었다. 당시 발전기의 냉각수는 향원정 연못의 물을 갖다 썼으며, 향원정 주변에도 가로등이 설치됐다고 한다. (건청궁 앞에는 ‘한국의 전기 발상지’라고 새긴 표지석을 세워져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러한 역사적 바탕으로 향원정 부근에 설치되었던 전기등도 복원할 계획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복원된 향원정 내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지난 6월 인사동 발굴,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면모를 볼 수 있는 유물 일체 공개
[전시] 지난 6월 인사동 발굴,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면모를 볼 수 있는 유물 일체 공개
[서울문화인]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에서는 조선 전기 우리나라 과학 기술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 해와 별을 관측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일성정시의’, 자동 물시계 부속품, 총통이다. 이 유물 중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로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사용된 ㅭ, ㆆ, ㅸ 등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국가 주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의 실체를 보여 주는 유물들이지만 왜 인사동에서 출토되었는지, 온전한 모습은 어떠했는지는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인사동 발굴 유물들이 출토 5개월 만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그 일체(1,755점)가 3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전시는 1부 ‘인사동 발굴로 드러난 조선 전기 금속활자’, 2부 ‘일성정시의와 조선 전기 천문학’ 등 총 2부로 구성되었으며, 전시에는 발굴 유물은 물론 관련 자료들도 함께 전시되어 이해를 돕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한 점의 깨진 도기항아리가 등장하는데, 발굴 당시에 금속활자들이 담겨져 있던 그릇이다. 그릇을 지나면 제작 시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1,300여 점의 활자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맞은편에는 주조 시기가 밝혀진 304점의 갑인자와 을해자, 을유자 활자가 전시되어 있다. * 갑인자: 1434년(세종 16) 경연에 있던『효순사실(孝順事實)』등 서책의 글자를 자본(字本)으로 삼고, 부족한 글자는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모사한 글자로 보충하여 만든 20여 만자 금속활자 * 을해자: 1455년(세조 1) 강희안(姜希顔, 1418-1465)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함 * 을유자: 1465년(세조 11)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함 이 중 주조시기를 알 수 있는 활자는 갑인자(1434, 세종 16년) 48점, 을해자(1455, 세조 1년) 42점, 을유자(1465, 세조 11년) 214점이다. 활자 중 ‘火’(화)·‘陰’(음) 두 글자는 갑인자로 찍은『근사록(近思錄)』(1435, 보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에서 확인되었으며, 을해자는 『능엄경』(1461, 보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을유자는 『원각경』(1465, 보물, 호림박물관 소장)에 찍힌 글자를 통해 확인되었다. 더불어 전시된 금속활자를 관람객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전시장 여러 곳에 확대경과 사진을 담은 휴대용컴퓨터를 비치되었으며, 주조를 담당했던 ‘주자소 현판’과 조선 시대 활자 주조의 연혁이 적혀 있는 ‘주자사실 현판’도 이번 전시를 통하여 볼 수 있다.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유물들을 소개하는 2부에서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다. 1437년(세종 19)에 국왕의 명으로 처음 제작된 주야겸용 시계로 중국에서 전래된 혼천의와 간의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크기를 소형화한 시계다. 낮에는 해 그림자로, 밤에는 별을 관측하여 시간을 측정하던 기구로, 그동안 기록으로만 확인되다가 처음으로 실물이 출토되었다. 비록 3개의 고리 중 한 개는 일부만 출토되었지만, 다행히도 전체 모습은 알 수 있다. 또한, 일성정시의의 사용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박물관 소장품인 ‘소일영’(小日影)을 전시하였다. 해시계인 소일영은 눈금표가 새겨진 둥근 고리와 받침대, 석제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를 한꺼번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받침대 일영대에는 영조의 어제 시가 새겨져 있어 제작시기를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직사각형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자동 물시계 부속품인 ‘일전(一箭)’은 시간을 알리는 인형을 작동하게 하는 구슬을 방출하는 부분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관련 사료에는 물시계의 구슬 방출 기구와 동판을 ‘주전箭’이라 기록하였는데, 출토된 유물에 ‘일전’이 음각되어 있어 물시계 부품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자동 물시계로는 경복궁 보루각 자격루와 경복궁 흠경각 옥루가 있는데 이 중 어느 물시계의 부품인지는 알 수 없다. 『세종실록』에 수록된 김돈金敏(1385~1440년)의 ‘보루각기’에는 자동 물시계의 원리와 부품 설명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동 물시계는 일정하게 흐르는 물이 원통형항아리(수수호)로 모이면서 작동한다. 항아리 내부에는 긴 막대기가 연결된 부표가 있어 물이 차면 긴 막대기가 함께 떠오른다. 항아리 위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슬을 꽂아 넣을 수 있는 틀이 있어, 내부의 긴 막대기가 떠오르면서 구슬을 차례로 방출한다. 방출된 구슬은 종, 북, 징을 쳐 시간을 알리는 인형을 작동하게 한다. ‘일전’은 바로 그 인형을 작동시키는 구슬을 방출하는 부품이다. 이 일전이 자동물시계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를 담은 영상도 만나 볼 수다. 그러나 이 외에 발견된 부품은 연구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현재 박물관에 복원된 ‘자격루’에서는 이 부속이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개유물 가운데 제작 연대가 확실한 유물은 승자총통(1583년, 선조 16년) 1점과 소승자총통(1588년, 선조 21년) 7점과 동종銅鐘(1535년, 중종 30년) 파편이다. 일반적으로 총통의 손잡이 부분에는 음각으로 제작연도, 총통의 이름, 무게, 제작한 장인의 이름, 화약량, 탄환 수량이 적혀 있다. 이번에 발굴된 승자총통에도 ‘癸未□冬匠□金계미동삽장금이라 쓰여 있어 1583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발굴된 7점의 소승자총통에는 ‘萬曆戊子만력무자’의 명문이 공통적으로 적혀 있어 1588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장인의 이름으로 김헌金獻과 말똥末此同, 희손希孫을 확인할 수 있다. 총통은 탄환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무기로 조선 전기 여진, 일본과의 전쟁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승자총통은 선조(재위 1567~1608년) 때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역임한 김지(생몰년 미상)가 개발하였다. 기존의 무기에 비해 화력과 사정거리가 증대되었고 장전 시간을 단축시켰을 뿐만 아니라 탄환을 넣어 휴대하기에도 효율적이었다. 소승자총통은 승자총통을 개량하여 만든 총통으로 승자총통에 비해 화약량과 철환 수를 줄여 화력은 떨어졌지만 안정적으로 몸에 붙일 수 있는 개머리판과 정확한 조준을 위한 가늠자와 가늠쇠가 있어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였다. 출토된 소승자총통은 개머리판 없이 총통만 발굴되었다. 동종에는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비록 파편으로 발견되었지만 16세기 범종은 전해지는 유물이 많지 않아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정륭원보, 조선통보 등 금속화폐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인사동 발굴 현장의 하루와 발굴 참여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영상과 음악가 박다울이 이번 전시를 위해 출토 유물과 유적의 의미를 담은 곡을 직접 작곡하여 공개하고 있다. 또한,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록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내려 받을 수 있으며, 11월 둘째 주부터는 인사동 발굴 이야기를 담은 영상, 전시해설 영상, 박다울이 전시실에서 직접 연주한 영상이 문화재청과 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전시실 전경, 유물설명, 사진을 제공하는 가상현실(VR) 콘텐츠도 제작하여 공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인사동에서 발굴한 유물 1,755점을 모두 선보이는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은 12월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Ⅱ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제42회 청룡영화상, 총 17편 한국영화 후보작 선정, 무료 상영회
제42회 청룡영화상, 총 17편 한국영화 후보작 선정, 무료 상영회
[서울문화인]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 제42회 청룡영화상이 최종 후보작(자)을 발표되었다. 총 18개 부문을 시상하는 제42회 청룡영화상에서 이번에 발표된 후보작(자)은 청정원 인기스타상과 청정원 단편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제외한 15개 부문이다. 후보작은 2020년 10월 30일부터 2021년 10월 14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영화인 및 영화 관계자들과 일반 관객이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선정됐다. 올해 주목받는 작품은 <모가디슈>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스태프상 등 총 10개 부문(13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자산어보>가 9개 부문(10개 후보), <승리호>가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치열한 경합을 예고한다. 이어 <기적>, <내가 죽던 날>, <콜>이 6개 부문에 올랐으며, <낙원의 밤>이 5개 부문에 후보를 배출했다. 뒤이어 <세자매>, <인질>이 4개 부문(5개 후보)에 올랐고 <발신제한>, <싱크홀>, <최선의 삶>이 2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낫아웃>, <어른들은 몰라요>, <애비규환>, <잔칫날>, <혼자 사는 사람들>은 1개 부문 후보로 낙점됐다.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를 가리는 최우수작품상 부문에는 <내가 죽던 날>, <모가디슈>, <승리호>, <인질>, <자산어보> 5개 작품이 후보에 올라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우수작품상 : <내가 죽던 날>, <모가디슈>, <승리호>, <인질>, <자산어보> 감독상 : 류승완 <모가디슈>, 박훈정 <낙원의 밤>, 이승원 <세자매> 이준익 <자산어보>, 조성희 <승리호> 남우주연상 : 김윤석 <모가디슈>, 변요한 <자산어보>, 설경구 <자산어보>, 송중기 <승리호>, 조인성 <모가디슈> 여우주연상 : 김혜수 <내가 죽던 날>, 문소리 <세자매>, 임윤아<기적>, 전여빈 <낙원의 밤>, 전종서 <콜> 남우조연상 : 구교환 <모가디슈>, 이광수 <싱크홀>, 이성민 <기적>, 진선규 <승리호>, 허준호 <모가디슈> 여우조연상 : 김선영 <세자매>, 이수경 <기적>, 이엘 <콜>, 이정은 <내가 죽던 날>, 장윤주 <세자매> 신인남우상 : 김재범 <인질>, 남다름 <싱크홀>, 류경수 <인질>, 정재광 <낫아웃>, 하준 <잔칫날> 신인여우상 : 공승연 <혼자 사는 사람들>, 노정의 <내가 죽던 날>, 방민아 <최선의 삶>, 이유미 <어른들은 몰라요>, 정수정 <애비규환> 신인감독상 : 김창주 <발신제한>, 박지완 <내가 죽던 날>, 이우정 <최선의 삶>, 이충현 <콜>, 필감성 <인질> 각본상 : <기적>, <내가 죽던 날>, <모가디슈>, <세자매>, <자산어보> 촬영조명상 : <낙원의 밤>, <모가디슈>, <승리호>, <자산어보>, <콜> 편집상 : <모가디슈>, <발신제한>, <승리호>, <인질>, <자산어보> 음악상 : <기적>, <낙원의 밤>, <모가디슈>, <자산어보>, <콜> 미술상 : <기적>, <모가디슈>, <승리호>, <자산어보>, <콜> 기술상 : <낙원의 밤>무술, <모가디슈>스턴트, <모가디슈>특수효과, <승리호>VFX, <자산어보>의상 총 17편 후보작 무료 상영회 한편, 제42회 청룡영화상 본시상식에 앞서 청룡영화상 후보작을 한자리에서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후보작 상영제’가 오는 11월 8일(월)부터 11월 16일(화)까지 CGV여의도 2관에서 개최된다. 제42회 청룡영화상 ‘후보작 상영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모두 17편이다. 10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다 노미네이트된 <모가디슈>와 9개 부문에 오른 <자산어보>, 8개 부문 <승리호>를 비롯하여 <기적>, <내가 죽던 날>, <콜>, <낙원의 밤>, <세자매>, <인질>, <발신제한>, <싱크홀>, <최선의 삶>, <낫아웃>, <어른들은 몰라요>, <애비규환>, <잔칫날>, <혼자 사는 사람들>까지 한국영화를 빛낸 쟁쟁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후보작 상영제’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청룡영화상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을 출력하거나 모바일로 다운로드 받아 CGV여의도 2관 앞 청룡영화상 안내 데스크에 제시하면 선착순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관람 횟수에 제한은 없으며, 상영 시간표 및 자세한 참여 방법은 청룡영화상 홈페이지(www.blueaward.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 제42회 청룡영화상은 오는 11월 26일(금) 여의도 KBS홀에서 개최되며 KBS에서 생중계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예술가, 기업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색다른 전시
[전시] 예술가, 기업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색다른 전시
[서울문화인] 미디어, 대중과 소통의 장르가 한정적일 때에는 광고는 연예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과 아티스트가 협력하여 제품 개발과 생산, 홍보 마케팅, 판매 등 모든 영업 활동 전반에 협력하는 ‘아트 콜라보’가 활발하다. 최근 압구정 도산공원 근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꼴라보하우스에서 ‘아트 콜라보’를 선보이는 전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일반적으로 광고주인 기업이 유명 아티스트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아티스트가 스스로 콜라보 하고 싶은 브랜드를 선택하고 상품에 자기 작품을 입혀보는 가상의 콜라보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에는 지난 6월, 공모를 진행 지원한 80여명의 아티스트들 중 심사를 거쳐 선발된 25인이 기존의 제품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재탄생시킨 커스텀 작품을 선보인다. 오혁진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이 시대의 작가로서 컨버스화에 ‘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재해석하여 모두가 자신만의 특색 있는 빛을 내는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은 드로잉들로 더욱 빛날 우리의 자유로움을 표현하였다. 작가 김바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 김바르의 스마일과 피스꽃으로 달콤함을 시각적으로 더욱 극대화하였다. 단순히 맛있기만 한 도넛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도넛,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은 도넛, MZ세대에 가장 잘 맞는 브랜드 홍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 없어지는 도넛이 아니라, 소장하고 싶고 예쁘고 귀여워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도넛. 맛있는 도넛에 김바르의 팝스럽고 힙한 심볼들을 넣어 특별하게 맛있는 도넛을 만들었다. 더불어 전시에 소개되는 커스텀 작품들은 직접 구매도 가능하며, 실제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좋을 아티스트와 브랜드를 매칭하여 주는 고객에게는 추첨을 통해 3인에게 아티스트의 콜라보 작품을 증정하는 현장 투표 이벤트를 진행하며, 네이버에서 예약 후 관람 시, 꼴라보하우스 아메리카노 1잔을 무료로 증정한다. 기업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 꼴라보M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10월 22일부터 11월 28일까지 약 5주간 진행되며,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한편, 꼴라보하우스는 1층은 커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꼴라보카페, 2층은 전시, 아트페어 등 예술행사가 상시 열리는 갤러리, 그리고 3층은 캠핑 감성의 루프탑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공간이다. [허중학 기자]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염원을 담긴 근대 ‘태극기’ 유물 3건 보물로 지정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염원을 담긴 근대 ‘태극기’ 유물 3건 보물로 지정
[서울문화인]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ㆍ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작년에 ‘말모이 원고’ 등 한글 관련 문화재 2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최근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 조사대상 선정 국가등록문화재는 ①데니 태극기(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 ②김구 서명문 태극기(제388호), ③불원복(不遠復) 태극기(제394호), ④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제458호), ⑤말모이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⑥조선말 큰사전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⑦윤동주 친필 원고(제712호), ⑧이봉창 의사 선서문(제745-1호) 이상. 데니 태극기 보물로 지정된 ‘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태극기의 존재는 1977년 미국인 역사학자 로버트 R. 스워타우트(Robert R. Swartout) 교수에 의해 오리건 대학교에 보관된 ‘데니문서’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데니는 1877년 중국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를 시작으로 1880년 중국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 중, 1886년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을 받아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하고자 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8년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공개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고종이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 깊은 사료이다. 제작기법 측면에서도 근대문물이 밀려오던 19세기 말 서양 국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즉, ▲전통적인 손바느질이 아닌 상하 90cm 정도 크기의 넓은 폭의 면직물을 바탕재료로 하여 재봉틀을 사용해 박음질했으며, ▲청색․홍색 태극과 청색의 4괘(四卦)를 부착하는 데 있어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시각적 효과를 꾀한 점 등 초창기 국기 제작법을 적용해 매우 정교하고 정성껏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데니 태극기’는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은 물론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한 미국인 외교관 가문이 90여년 넘게 간직해 오다 우리 정부에 기증함으로써 진정한 호혜(互惠, 서로 동등하게 혜택을 누림)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태극기라는 점 등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보물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1941년 경 매우사 신부는 선교사로서 중국 충칭(中慶)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선교를 위해 미국으로 가기 전 김구 선생이 태극기에 글을 써서 주며 미국에 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함. ‘김구 서명문 태극기’의 전래에 얽힌 일화는 미주 한인들이 발간한 신문인 『신한민보』1942년 3월 19일자(3면)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이 태극기는 세로 44.3cm, 가로 62cm 크기의 비단 천에 청색과 홍색의 천으로 태극을 만들어 붙이고, 흑색 천으로 4괘를 덧대어 제작한 소형 태극기로 깃대는 오른쪽에 천을 덧대어 만들었으며, 괘는 가로 상단에 건괘(乾卦)와 감괘(坎卦), 하단에 이괘(離卦)와 곤괘(坤卦)가 배치되어 있다. 깃대와 괘의 사이에는 김구 선생의 친필로 묵서 4줄 143자가 쓰여 있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겨진 작고 네모난 인장이 찍혀 있다. 무엇보다 이 태극기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서명문에서 김구는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광복군을 도와줄 것을 강하게 호소하였다. 김구 서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있다는 점,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앞면)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 '신대한(新大韓)', '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경고문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제30호)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신대한(제1호)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이 1011년에 창건한 고찰로 이성계가 건국 과정의 살육을 참회하기 위해 수륙재를 베풀었던 사찰이었다. 서울근교 4대 명찰의 하나였던 이 절은 6·25 전란으로 나한전(羅漢殿), 칠성각(七星閣), 독성전(獨聖殿) 세 동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소했다. 구한말 중창한 칠성각을 2009년 보수하던 중 독립운동 사료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진관사 수륙제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라고 추정하고 있다. 백초월은 3.1만세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인물이다. 또한 태극기가 싸고 있던 자료들이 1919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되어 국내에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를 감추기 위해 태극기에 싸서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 4괘는 임시정부가 제정한 4괘와 동일하나 현재의 태극기와는 배치 위치가 다르다. 태극의 색깔은 현행 태극기와 같지만, 1890년 고종이 데니 외교고문관에게 하사한 태극기와 같이 굴곡이 매우 심하며 그 위치도 현재의 국기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데니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바탕천에서 태극 부분을 도려내고 다른 천으로 만든 태극을 정교하게 박음질해 덧붙였다. 무엇보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이처럼 ‘진관사 태극기’는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 ▲항일 정신을 형태상으로 강력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과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를 통해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번에 지정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자,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허중학 기자]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 보물 지정
[서울문화인] 조선 17세기 조각승(彫刻僧)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총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색난은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여러 선배 조각승들을 이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대표적 조각승으로 대부분의 동시대 조각승들처럼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여러 기록을 통해 1640년 전후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조각승들의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약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색난은 동시기 조각승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보통 유명 조각승이 평생 10건 내외의 작품을 남긴 것에 비해 색난의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 건에 이른다. 또한,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는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도 불렸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난이 만든 불상을 선호했고 그의 조각 기술을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보물로 지정된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光州 德林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빨라 그의 작품세계에서 상징성이 큰 작품이다.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40대(1680년/숙종 6)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이다. 또한, 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존상(尊像)의 손실이 없고, 작품성도 뛰어나 17세기 후반 명부전 불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시왕(十王)은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구체적으로 ① 진광대왕(秦廣大王), ② 초강대왕(初江大王), ③ 송제대왕(宋帝大王), ④ 오관대왕(五官大王), ⑤ 염라대왕(閻羅大王), ⑥ 변성대왕(變成大王), ⑦ 태산대왕(泰山大王), ⑧ 평등대왕(平等大王), ⑨ 도시대왕(都市大王), ⑩ 전륜대왕(轉輪大王)을 말한다. 보물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高興 楞伽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은 능가사 응진당(應眞堂, 사찰에서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불교건축물. 보통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일괄로,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洪陽縣) 팔영산(八影山,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楞伽寺) 승려 상기(尙機)가 발원하였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주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고흥 능가사는 색난의 본사(本寺)이자 활동의 본거지로서, 이번에 지정된 보물은 그가 오래도록 머문 사찰에서 대단위 불사를 진행하고 남긴 작품이라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1698년 능가사 범종 시주, 1707년 능가사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간행 시주, 1730년 능가사 기와 시주 등 이곳의 다양한 불사(佛事)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 고려 후기 승려 각운(覺雲)이 스승인 혜심(慧諶)의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중요한 용어를 발췌해 풀이한 불교 주석서 능가사의 보물은 주요 존상이 결실되지 않아 구성이 거의 완전하고, 나한상의 표정과 몸짓이 지물(持物, 불보살 등이 손에 지닌 물건)과 잘 어우러져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어 예술성도 탁월하다. 색난 조각의 형성과 발전, 그의 사승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물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金海 銀河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1687년(숙종 18) 제작되어 김해 신어산(神魚山) ‘서림사(西林寺) 시왕전(十王殿)’에 봉안된 불상으로, 서림사 시왕전은 현재의 은하사 명부전을 가리킨다. 은하사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주로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데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존상의 완전성과 창의적인 도상(圖像), 그리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학술·예술적 중요성이 크며,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색난의 전성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왕실발원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을 통해 7존(尊)의 불보살상은 수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1703년 협업해 만들었다.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여래좌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雄遠),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秋朋), 지적보살상(智積菩薩像, 다보여래를 따라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자리에 왔다가 문수보살과 성불(成佛)하는 일은 논한 보살)은 추평(秋平)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하였고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과 그 제자들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반증한다.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40여 년 동안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는 물론 법화신앙 바탕의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을 최초로 조각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4건의 작품은 ▲ 관련 자료를 통해 조성시기와 배경, 제작자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 ▲ 동일작가작품 중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다는 점, ▲ 주요 존상의 결손이나 변형이 적어 완전성이 뛰어나고 작품성도 우수하다는 점, ▲ 제작 당시부터 원봉안처를 벗어나지 않아 유래가 뚜렷하다는 점 등에서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편,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으로 2008년 보물로 지정되어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은 지난 6월 국보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奉安)된 3구(軀)의 좌상은 1635년(인조 13년) 당대 유명한 조각승인 청헌(淸軒 또는 淸憲)과 응원(應元), 인균(印均)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만든 17세기의 대표적인 불교조각으로 모두 3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앞도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최근 발견된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1630∼1636),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시기(1634∼1635년)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 [허중학 기자]
[전시] 표현주의와 민화, 표현주의적 조선민화와 현대민화
[전시] 표현주의와 민화, 표현주의적 조선민화와 현대민화
[서울문화인]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사대부의 세련미나 격조 높은 문인화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격외적인 것은 외래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민중들이 그린 민화는 일명 속화(俗畵)라 불리운 것처럼 다른 회화 장르에 비해 그동안 박물관에서는 외면 받아 온 장르였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에 비해 다양한 곳에서 민화를 접할 수 있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소장품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화의 비상, ‘민화 그리고 표현주의’》展은 우리가 보아왔던 민화전과 조금 다른 전시라 하겠다. 《민화의 비상》展은 국내 최초 민화 전문 박물관인 조선민화박물관이 진행하는 전시로 2019년 두 번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전시이다. 조선민화박물관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2000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2015년에는 강진에 제 2관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이곳에는 어해도와 화조도, 까치와 호랑이 등소박한 서민적 정서가 담긴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화 5,00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조선시대 민화 180여점과 현대민화 100여점 그리고 춘화 50여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는 2,000여 평의 야생화 공원과 학생 민화 공모전 수상작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예전의 민화를 수집하여 전시하는 것을 넘어 개관 이후 매년 ‘전국민화공모전’를 개최하여 현대민화의 나가야 할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 이번 전시가 기존에 보아온 민화전과 차이점은 ‘민화 그리고 표현주의’라는 소주제에서 알 수 있듯,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박물관 소장품 5,000여점의 민화 중 표현주의가 관찰되는 작품 20여 점과 함께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표현주의가 극대화된 현대민화 작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보이는 현대민화가 단지 과거의 민화를 모사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시를 기획한 한국민화뮤지엄 오슬기 부관장은 올해 주제인 표현주의를 현대민화에 접목하고자 2020년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전시에 참여할 작가를 모집했다. 첫해였던 2019년에 민수회(조선민화박물관의 분관인 강진의 한국민화뮤지엄이 주최하는 ‘대한민국민화대전’ 우수상 이상 수상작가들의 단체로 100여 명의 회원이 활동)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던 것에서 확장시켜 현대민화 작가 전체를 모집 대상으로 진행 총 29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이글을 대상으로 주제에 대한 교육을 통해 완성된 29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주제, 형태의 표현의 방법은 물론 석채, 분채, 봉채, 한국화 물감 등 현대민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재료 이 외에도 유화, 템페라, 아크릴 등 재료의 사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민화가 가진 특징은 잃지 않고 한국적 미술의 토대 속에 21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민화의 비상(飛上)》전이 그 타이틀만큼이나 과거 전통민화와 차별적 변화가 21세기 현대미술시장에서도 비상하여 새롭게 자리매김할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된다.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된다.
[서울문화인] 오는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가 재현된다. ‘진작례’란 왕실의 특별한 날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의식으로 이번에 진행하는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는 순조 무자년(1828년 음력 6월)에 효명세자가 모친인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순조비)의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연경당에서 마련한 왕실잔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소장 문영철)에 의하면 이번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부설 세계민족무용연구소(소장 서정록)가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의 문헌기록을 학술적으로 고증하고 재현하는 행사로 기록에 근거해 춤, 음악, 노래, 복식, 음식, 의물 등을 재현한다. 이번 행사는 2006년 첫 공연 이후 올해 일곱 번째로 진행하는 행사로, 의례와 함께 영지무(影池舞), 향령무(響鈴舞), 박접무(撲蝶舞), 춘앵전(春鶯囀),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등의 정재춤이 무대에 오른다. 영지무(影池舞)는 네모난 연못 가운데 학, 사슴, 탑등을 올린 산을 만들고, 둘레는 연꽃으로 장식하여 그 주변에서 춤을 추는 궁중무용이며, 향령무(響鈴舞)는 두 손에 방울을 들고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추는 춤, 박접무(撲蝶舞)는 나비가 날개짓 하듯 춤추는 향악정재이다. 또한, 춘앵전(春鶯囀)은 1828년(순조 28년)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창제한 향악정재 봄날 아침,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되어 이를 무용화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은 송나라 악무 10대 중 하나로서 ‘홍생색체(紅生色砌)옷을 입고 금봉관을 쓴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을 꺾는다’라는 내용의 춤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정기 악기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허영일 명예 교수가 관련 문헌을 고증하여 새로 제작한 영지(影池)가 무대에 올라 더욱 의미가 깊다. 첫 날인 11월 3일에는 영상기록을 위한 시연과 촬영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되며, 4일과 5일에는 오후 1시부터 각각 한 차례씩 공연되며, 창덕궁 후원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라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유튜브로도 생중계 된다. [허중학 기자] (https://youtube.com/channel/UCQWeOnBtsoNoxz9UujXy0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