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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일상 속에 비친 우리의 한글
세계인의 일상 속에 비친 우리의 한글
[서울문화인] 국립한글박물관(관장 심동섭, 이하 한글박물관)이 한글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과 한글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 제1회 ‘내가 만난 한글 사진 공모전’의 수상작 30점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올해 처음 진행된 이번 공모전은 ‘일상 속에서 만난 한글’이란 주제로 한글 간판, 한글을 쓰는 모습, 한글 편지, 관광지에서 만난 한글 관련 풍경 등 일상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난 한글과 관련된 모습을 찍어서 누구나 편하게 응모할 수 있도록 기획, 지난 5월 18일부터 8월 16일까지 3개월간 진행되었다. 71개국 3,414건의 치열한 경쟁, 한글문화 확산에 기여 이번 공모전에서는 전 세계 70개국 1,300여명이 총 3,414건의 작품을 출품, 114: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이 중에는 내국인 2,100명, 외국인이 1,300여명이 응모하였다. 특히 미얀마(127명, 외국인 응모자중 9.8%), 이집트(125명, 외국인 응모자중 9.6%), 베트남(119명, 외국인 응모자중 9.2%)의 응모자가 많아 최근 이들 지역에서의 한국어 열풍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결과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순이며, 국가별로는 미얀마, 이집트,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러시아 순으로 집계되었다. 수상작중 대상으로는 한글로 디자인된 스카프를 히잡(hijab)으로 쓴 여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Nesma Ahmed Mohamed Elmously, 네스마 아흐메드 모하메드 엘무슬리, 이집트)이 선정되었다. 아웃포커싱 기법을 사용하여 일상 속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현재의 코로나 시대를 나타내는 마스크와 강렬한 여인의 시선이 인상적이라고 평가 받았다. 금상(3점)으로는 ▲치매 장모님의 한글 쓰는 모습을 통해 한글사랑의 마음을 담은 작품(노희완, 한국), ▲그림을 감상하는 여인과 메고 있는 가방에 쓰인 한글 글귀의 모습을 함께 담은 작품(Klara Petra Szabo, 클라라 페트라 재보, 헝가리), ▲한국을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한글로 쓰인 생일카드와 건강, 희망, 사랑 등을 소원하는 축원이 적혀진 종이등불로 꾸며진 생일날의 풍경을 담은 작품(Steliana Ilieva, 스텔리아나 일리에바, 불가리아)이 선정됐다. 수상작품은 한글주간이 시작되는 10월 4일부터 11월 30일까지 2개월간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에 전시되며 10월 7일부터는 한글박물관 온라인 누리집(www.내가만난한글사진전.k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한글문화가 확산의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코로나 장기화로 지쳐가는 내외국민 모두에게 일상 속에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해 내고 더불어 한글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권수진 기자]
[박물관] 황하문명의 보물, 중국 고대 청동기 유물을 만나다.
[박물관] 황하문명의 보물, 중국 고대 청동기 유물을 만나다.
중국 상하이박물관 소장 하상주에서 한나라까지 청동기 67점 소개 [서울문화인] 1928년 허난(河南)성 은허殷墟 유적에서 삼천 삼백여 년 전의 청동기가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왕궁, 사원, 대형 무덤과 종교시설이 발굴되고 청동기와 갑골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상商나라 후기(기원전 13세기~11세기)에 만든 875kg에 달하는 초대형 청동 솥이 출토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안개 속에 싸여 있던 상나라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나며, 황하문명을 세계에 처음 알리게 되었다. 이어진 발굴조사로 중국 청동기는 4천여 년 전 하夏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지난 16일부터 중국 상하이박물관(관장 양즈강杨志刚)이 소장하고 있는 기원전 18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중국 하상주에서 한나라까지 청동기 67점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에서 소개되고 있다. 1952년 개관한 상하이박물관은 102만점의 문화재를 소장한 중국 동남부의 대표하는 국가박물관으로 샨시(陝西)역사박물관과 함께 중국 3대 청동기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건물 외관도 청동 세발솥(鼎)을 모티브로 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청동기 컬렉션을 자랑한다. 상하이박물관은 195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쇠붙이 모으기 운동’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항구 도시였던 상하이에 중국에서 가장 큰 제련소가 있었고 이때 엄청나게 많은 청동기가 유입 되었다. 이 중에 고대 청동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3만 여점의 청동기가 상하이박물관으로 전달되면서 청동기 전문 박물관으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청동기의 진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후 중국 내 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상하이박물관 소장품 대부분이 진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청동기는 고대 문명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창이자 지표이다. 세계 4대 지역은 물론 고대 그리스, 우리나라 등 대부분 문명은 모두 청동기 시대를 거쳤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중국의 청동기 문화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 청동기 문화는 식기과 술그릇주기, 악기와 병기 등 제례적 성격을 띤 청동예기를 대량으로 사용하였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고대 청동기는 군사용 청동기가 많이 발견된 것에 비해 중국 초기 청동기에는 청동예기가 많이 눈에 띈다. 청동예기는 계급제도 때문에 만들어졌다. 예기는 신이나 조상에게 바치는 제례나 예절 및 의식적인 왕래, 연회나 손님을 초대하는 자리 등의 중요한 의식을 행할 때 전쟁과 같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중대사를 결정 할 때 왕이 직접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다. 이런 의식에 사용하는 청동 그릇에 들이는 정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독특한 무늬와 정교함을 자랑한다. 무서운 괴수 얼굴이 떠오르는 기괴한 무늬, 탄성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크기와 형태는 신에게 바치기 위한 제례 도구의 특징을 보여준다. 신을 위해 사용되던 청동기는 시간이 지나며 왕과 제후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철기가 사용되자 청동기는 일상용기로 쓰임새가 다시 한 번 바뀌게 된다. 이후 도자기가 문화가 들어서면서 청동기 예기는 도자기로 대치되어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세에도 청동 예기들은 여전히 제작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특별전 “중국 고대 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 기원전 18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 고대 중국의 제례 문화의 주요 특징과 고대 중국 청동 예술의 발전 과정을 따라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청동기문화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토기를 본떠서 만든 하나라 때의 초기 청동기를 전시하고 그 제작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2부 ‘신을 위한 그릇’에서는 상나라 시기 국가적인 의례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다양한 청동기를 선보인다. 3부에서는 주나라의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화된 청동그릇과 악기 사용제도를 ‘권력의 상징’이라는 주제로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철기의 등장에 따른 청동기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청동예기는 춘추시대에 변화하기 시작해 전국시대를 거쳐 진한에 이르면서 더욱 두드러져 춘추 이전의 전통적인 청동예기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준비된 AR을 이용하여 청동기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중국의 가장 유명한 청동기 유적인 은허유적의 발굴과 의미도 만화로 만들어 터치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또한 한자의 발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물의 형상이 상형문자로 바뀌는 모습을 디지털 매핑으로 소개하고 청동 악기의 소리를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연주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었다. 이 전시는 분명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의 유물과는 다른 중국의 청동기 문화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임에 틀림없다. 전시장을 나와 박물관 선사.고대관에서 우리나라 청동기 유물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나 박물관을 코로나로 방문하려면 사전신청을 하여야 한다. 전시는 11월 14일까지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한국과 중국의 민중판화의 특징을 만나보다.
[전시] 한국과 중국의 민중판화의 특징을 만나보다.
[서울문화인] 동 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고판화를 국내외에서 60여 차례 특별전을 통해 다양한 아시아의 고판화를 소개해온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한 중 민중 판화’ 특별전을 9월 25일부터 선보인다. ‘판화’의 등장은 현대의 인터넷의 등장과 맞먹는 혁명이었을 것이다. 정보의 전달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속인쇄술의 발전으로 ‘판화’는 정보의 전달이라는 한 축과 함께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과거의 장점이 현대 미술계에서는 오히려 투자의 가치가 떨어져 외면 받는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판화가 대중들에게 각인되던 때가 있었다. 바로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판화는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필리핀, 태국, 타이완, 인도네시아 등 군사정권과 민주화 운동을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아시아에서 60년대부터 등장했다. 이를 우리는 민중판화라 일컷는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아시아의 판화는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차원에서 사회 계몽과 공산당 홍보와 사상운동에 활용되었다.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한국의 민중판화는 목판화의 굵고 거친 선과 단순한 배경이 주는 강렬한 표현이 걸개그림이나, 삽화 전단 등에 활용되면서 민중미술이 추구했던 정신을 극대화 하는 예술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반해 중국민중판화는 독일의 콜비치와 일본의 창작판화에 영향을 받았던 루쉰에 의해 신흥 목각 판화 운동으로 시작되어 봉건주의를 타도하는 사회 계몽운동으로, 중일 전쟁 시에 항일에 기치를 높였으며, 공산당 시대에는 중국 전통 년화에 접목하여, 공산당 홍보와 사상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중국에서는 현대 판화가 화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고판화박물관의 ‘한.중 민중 판화’ 특별전에는 소장품 6,000여 점 중 한 중 민중판화 60여점을 비롯하여 민중판화 관련 아카이브 자료 40여점 등 100여점을 선별해 선보인다. 먼저 한국 민중판화에는 대형 판화의 형태로 30여점이 주제별로 소개되고 있다. 동학을 주제로 하는 이철수의 ‘기민 행열 2’와 김준권의 ‘전봉준의 새야 새야’가 소개되고 있으며, 광주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홍성담의 ‘대동세상’, ‘북 춤’과 이기정의 ‘통일의 노래를 부르세’, 최병수의 ‘대나무’, 이인철의 ‘민주 언론’ 김경주의 ‘삼재부’ 등 굵은 선과 날카로운 칼 맛을 느낄 수 있는 흑백판화로 소개되고 있다. 다색판화로는 홍선웅의 ‘민족통일도’, 김봉준의 ‘통일해원도’와 남궁산의 ‘봄처녀’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며, 오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춘무인.추무의’가 사후 TP(Test Print)판으로 소개된다. 더불어 중국 민중판화도 3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주목할 작품으로는 신흥판화의 개산조인 루쉰의 다양한 초상판화를 비롯하여, 중일전쟁 시 항일의 의지를 불태운 호일천의 ‘전선으로 나아가자’와 우문의 ‘탈포’,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에 중국 저명 판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 년화 중 1950년에 발표되었던 고원의 ‘모주석 농민담화’ 비롯한 10여점을 새롭게 발굴하여, 이번 전시회에 최초로 소개된다. 더불어 문혁시대판화와 경제부흥을 선도하는 공업판화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채색판화도 소개된다. 60여점의 한, 중 민중판화와 더불어 아카이브 자료 40여점도 소개된다. 아카이브 자료로는 중국에서 발행된 ‘판화’잡지 창간호를 비롯하여, 다양한 한국과 중국판화 아카이브가 소개되어 한 중 근 현대 판화를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 있도다. 또한 중국 공업판화에 사용되었던 베니어판 판목을 비롯하여, 다수의 판목도 만나볼 수 있다. 고판화박물관 한선학관장은 ‘지금까지 동 아시아 고판화 특별전을 국내외에서 60여 차례 개최하였으나, 고판화의 전통이 이어져 온 근, 현대 판화를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을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근대 사회계몽 운동과 큰 궤를 같이 하였던 근, 현대 한·중 민중판화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전이 개막되는 9월 25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12차 원주세계고판화문화제가 함께 열려 국제 판화학술대회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판화체험 행사를 비롯하여, 전통판화의 계승하는 제9차 원주 전통판화 인출경연대회도 열린다. 특히 이날에는 현대판화와 고판화가 콜라보레이션이 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고판화박물관 명품특별전인 ‘인쇄문화의 꽃-고판화’특별전을 참관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1월 15일 까지 진행되며, 자세한 내용은 고판화박물관(033-761-7885)에 문의하면 된다. [허중학 기자]
국립고궁박물관, 벨기에에서 온 고려 공예품 8점 소개
국립고궁박물관, 벨기에에서 온 고려 공예품 8점 소개
[서울문화인] 한국과 벨기에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친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Royal Museums of Art and History, Belgium) 소장 고려 시대 공예품 8점을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에서 「고려 미美·색色-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특별전을 통해 오는 10월 17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보존처리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의 ‘국외 소재 문화재 보존·복원 지원 사업’의 하나로, 보존처리한 유물은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시대 상감 청자 6점과 금속 공예 2점 등 총 8점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에서 약 8개월간 보존처리한 후 소장처인 벨기에로 돌려보내기 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상감 청자 6점은 고려청자 장식 기법 중에서도 장식적 효과가 뛰어난 상감 기법으로 무늬를 표현한 작품들로, 제작 시기는 모두 고려 후기로 판단된다. 6점에 장식된 무늬는 고려 시대에 널리 유행한 유형으로, 버드나무·갈대·연꽃 등과 새가 어우러진 물가 풍경 무늬, 구름과 학을 표현한 운학(雲鶴) 무늬, 포도 넝쿨과 어린아이(동자, 童子)가 함께 있는 포도 동자 무늬로 나눌 수 있다. 6점 중 14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발>을 제외한 나머지 5점은 1888년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주(駐) 조선 프랑스 공사(公使)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의 수집품이다. 그 후 다른 소장처를 거쳐 1946~1947년 사이에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변색된 부분, 깨진 조각들 사이에 틀어져 있던 부분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다시 붙이는 것을 기본으로 청자 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발> 2점은 각각 과거에 일본식 금칠 수리기법(긴쓰기(金継ぎ), 파손된 조각을 옻 혼합 접착제로 붙인 후 이음매를 금가루 등으로 채색·마감하는 기법)으로 접합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해체 후 유물에 손상 없이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는 성질의 접착제로 다시 붙였다.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발>은 과거에 20여 조각 이상으로 파손되어 석고로 붙여놨던 것을 해체 후 제거 가능한 재료를 이용하여 다시 접합하였다. <청자 상감 포도 동자 무늬 표주박 모양 주자>는 과거에 벨기에에서 복원한 손잡이와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가 현재 남아 있는 고려청자 표주박 모양 주자들의 형태·각도·크기·무늬 등과 종합하여 비교한 결과,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국내외 청자 관련 자료를 3차원 이미지로 비교·분석하여 주구와 꼬임 모양 손잡이로 다시 복원하였으며 물이 들어가는 수구(水口)와 뚜껑도 새로 복원해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병>은 기존에 보존처리 된 병 입구 두 군데가 변색하여, 색만 지워내고 원래의 색감과 이질감이 들지 않게 색을 맞춤하였다. <청자 상감 물가 풍경 무늬 표주박 모양 병>은 석고로 복원된 병 입구 일부의 변색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형태 복원하여 색 맞춤하였다. <금동 침통>과 <청동 정병>은 ‘국외 소재 문화재 보존·복원 지원 사업’ 중 금속 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보존처리된 작품들이다. 금속 공예품의 보존처리 기본 방향은 원형을 보존하고 부식이 지속되는 것을 최대한 늦춰 안정화하는 것이라서, 2점 모두 표면 부식물 제거, 안정화와 강화처리를 하였다. <금동 침통>은 연꽃과 넝쿨 등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작품으로 접합선의 은땜 재료가 부식되면서 생성된 검은 부식물을 제거하였으며, <청동 정병>은 물을 넣고 빼는 첨대(尖臺)의 꼭지 일부가 깨져 없어진 상태라, 복원 조각을 만들어 언제든 탈부착할 수 있도록 접합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존·복원 처리를 통해 온전한 미(美)와 색(色)을 되찾은 고려 시대 공예품 8점은 9월 17일부터는 온라인으로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VR) 콘텐츠도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과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 전시유물 보존·복원 과정과 전시해설 인터뷰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 문화재청 유튜브: https://youtube.com/chluvu *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 www.gogung.go.kr *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https://youtube.com/gogungmuseum 더불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전시와 연계하여 유물의 소장기관인 벨기에 왕립예술역사 박물관 관계자, 학계의 역사·미술사 전문가, 이번 보존·복원에 참가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문가 등이 참여해 벨기에에서 온 고려 공예품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 그동안의 보존처리 과정을 설명하는 온라인 국제 학술행사(9월 7일 ∼ 10월 8일)를 개최하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 계정: https://www.youtube.com/user/okchf 특별전 관람을 위해서는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사전예약을 해야 하지만 일부 현장접수로도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국립고궁박물관, 상상속 궁궐 그린 한궁도 5점 공개
국립고궁박물관, 상상속 궁궐 그린 한궁도 5점 공개
[서울문화인] 국립고궁박물관이 전시관 지하 1층에 자리한 ‘궁중서화실’에 ‘한궁도’, ‘곽분양행락도’, ‘책가도’ 등 총 7점의 유물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한궁도(漢宮圖)’ 5점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에 새롭게 출현한 ‘한궁도’는 왕실의 장수와 복록(福祿)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 실재하는 조선의 궁궐이 아닌 상상의 중국풍 궁궐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이국적이고 화려한 전각들을 계화(界畵, 자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회화 기법)로 그려내었다. 이번에 공개된 5점의 ‘한궁도’는 상상의 궁궐과 신비스러운 느낌의 산수가 조화를 이루어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중에서 서양 화법이 극대화된 작품도 있어 보기 드문 구도와 화려하고도 이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탑의 표현이나 난간, 건물의 명암 표현이 특이하다. ‘한궁도’와 더불어 국립고궁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책가도’와 2021년에 새롭게 입수한 ‘곽분양행락도’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곽분양행락도’는 다복한 삶을 누렸던 중국 당(唐)나라 무장(武將) 곽자의(郭子儀)의 생일잔치 장면을 그린 그림이며, ‘책가도’는 높은 서가에 책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그림으로 실제 서가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 병풍이다. 곽분양은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말한다.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평정하고 그 공으로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으로 불리었다. 곽분양은 그의 삶과 관련하여 부귀와 복록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곽분양행락도》는 8폭 병풍으로 진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제1폭과 제2폭은 정자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제3폭, 제4폭, 제5폭은 곽자의가 차일 아래에 앉아 무희ㆍ기녀들의 춤과 연주를 감상하고 있고, 그 주위에 아들ㆍ사위ㆍ신하들이 기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제6폭, 제7폭, 제8폭은 곽자의 집안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이 노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병풍은 2014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었던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입하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 책가도 10폭 병풍, 19세기~20세기 초책가(冊架), 즉 서가(書架)와 같은 가구를 중심으로 책은 물론 각종 고동기물(古銅器物)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그린 그림이다. ‘책가’라는 단어는 정조 연간에 시행된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녹취재(祿取才) 중 문방(文房) 화문(畵門) 화제의 하나로서 처음 등장한다. 책가도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그 중 하나는 이 병풍 그림처럼 서가에 오직 서책만 쌓아 놓은 형식이다. 서책은 포갑(包匣)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며, 서책 이외의 다른 기물들을 묘사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서가로 구획한 공간에 책과 고동기물, 문방구, 화훼 등을 함께 배치한 형식이다. 이러한 책과 기물은 학문과 배움, 문방청완(文房淸玩)의 취미를 상징한다. 이 형식은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낭세녕(郎世寧, 1688~1766)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다보격도多寶格圖>처럼 청대에서 유행한 다보격(多寶格)이나 다보각(多寶閣)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는 4종의 책가도 병풍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이번에 공개한 병풍은 기물이 없이 오직 서책만 쌓아 놓은 형식의 병풍이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은 ‘한궁도’ 속 인상적인 장면을 담은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박물관 누리집의 ‘궁중서화실’ 안내 공간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https://gogung.go.kr/perm.do?viewName=perm_ex08) [허중학 기자]
아니 그것도 백남준 작품이었어?
아니 그것도 백남준 작품이었어?
[서울문화인] 흔히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백남준은 사실 해외에서 유명세로 인해 국내에 소개된 작가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때는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에게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 가운데 백남준이 아마 최고 적임자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백남준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80년대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좌우간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길 바란다.” (백남준, 1964) 우리가 백남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백남준도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처음에는 재밌겠지만, 나중에는 지루해질 것이다” 그래서 견딜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의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나 자신도 무수히 방문했던 곳인데 그 작품이 백남준의 작품인지 인지를 못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혹시 이 글을 보게 되면 백남준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쉽게 혹은 상설로 볼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그동안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 본다. 백남준 작품을 가장 깊이 있게 관람하려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하면 좋겠지만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도 백남준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상설로 볼 수 있는 백남준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백남준 작품을 가장 깊이 있게 관람하려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곳은 당연 인지를 하고 방문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2008년 10월에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는 2001년, 백남준과 경기도가 아트센터 건립을 논의 하게 되었고, 백남준이 생전에 그의 이름을 딴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하고 개관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비디오 설치와 드로잉을 비롯해 관련 작가들의 작품 248점, 비디오 아카이브 자료 2,285점, 백남준과 관련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작품 https://njp.ggcf.kr/%ec%86%8c%ec%9e%a5%ed%92%88/?doing_wp_cron=1631088244.9595990180969238281250 백남준기념관 이곳은 2017년 3월 10일 개관한 곳으로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간의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한옥 집터로 2014년 국토교통부에서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지정한 창신숭인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는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의해 기념관으로 조성되어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념관은 28평 남짓한 단층 한옥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도록 리모델링됐고, 내부에는 전시실 외에도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백남준 작품을 감상할 수는 없지만 현대작가들이 백남준을 기억하고 헌정하는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1984년, 삼십여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한 백남준의 기억과 상상의 여정을 따라가는 형식의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전으로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방>, <백남준에의 경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53길 12-1(흥인지문역 부근) / 관람시간 화~일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설·추석연휴 휴관] 소마미술관 백남준 비디오아트홀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소마미술관에서는 총 6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백남준 비디오아트홀을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올림픽공원 내 몽촌해자 수변 무대 앞에는 ‘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이 설치되어 있다. 백남준 유일의 야외 설치 레이저 작품으로,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마트와 태극기의 4궤(건‧곤‧감‧리) 문양, 하늘을 운행하는 별들의 움직임과 그 흔적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분수를 스크린 삼아 첨단과학기술인 레이저로 구현되는 선들의 향연은 자연(물)과 기술(레이저)의 조화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해낸다.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인류의 번영과 화합, 평화와 공존, 특히 한반도와 한민족의 공동 번영에 대한 염원을 현란한 빛과 조명, 수막분수의 리듬에 담아냄으로써 축제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백남준과 노만 발라드의 협력자품 2001/2012) 올림픽공원 내에 고대 백제의 유적지인 몽촌토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에 착안하여, 백남준은 백제 금관을 이 작품의 소재로 삼아 전통적 소재와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결합함으로써 동양과 서양,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백제 금관은 대칭적으고 단순한 신라 금관과는 달리 자유로운 구도 위에 비대칭의 절묘한 공간구성이 조화를 이루어 백제만의 우아하고 섬세한 특징을 담고 있다. 이는 전통과 현대를 잇고 문명과 테크놀러지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궁극적으로 삶과 예술을 하나로 만들고자 했던 작가적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메가트론은 150대의 TV모니터를 동원, 컴퓨터로 제어되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비디오와 컴퓨터 그래픽이 탁월한 합성을 연출해낸 작품이다. 150대의 모니터가 하나의 대형 화면을 만들어 내고 그 위에서 스포츠 경기의 역동적인 장면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빠르게 반복, 변화하며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영상을 보여주는 모니터들은 각각이 독립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상의 모자이크가 하나의 거대한 비디오 벽으로 표현됨으로써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 또한 담고 있다. 백남준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쿠베르탱을 주제로 소마미술관 옥외/옥내에 작품을 제작하였다. 쿠베르탱이 스포츠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 했다면 백남준은 예술로 그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백남준은 여러 대의 모니터를 배열하여 인물 형상을 만들고 네온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감성과 이성의 교차, 인간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하는 백남준의 작업세계를 작가 특유의 위트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와 예술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세종문화회관에 상설로 전시된 백남준 작품은 혹시 이곳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셨다면 보았을 것인데 대부분 무심코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로비 좌측벽에서 수많은 모니터로 이뤄진 것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이 백남준의 ‘서울랩소디’라 작품으로 이곳에 영구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또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양쪽에는 2대의 악기 모양의 비디오 설치작품 있다. 이 작품 또한 백남준의 작품으로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1999년 새천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곳에 전시된 2점의 작품은 21세기예술경영연구소가 기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로비에 영구설치 하게 되었다. 의인화된 호랑이 모습의 월금과 첼로가 좌·우측에 세워지고 그 사이에 다양한 크기의 TV 모니터 1백여 대가 배치된 이 조형물은 한민족 문화의 상징성을 표출하고 새 생명의 탄생 등 새천년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울랩소디’(2001)는 TV를 이용한 일종의 비디오 조각이다. 중앙 150개, 좌우 65개씩 총 280개의 모니터로 구성되었으며, 중앙 모니터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작가의 7가지의 DVD 영상이, 좌우 64개씩의 모니터에는 ‘체이스 5’, 좌우 정중앙의 1개씩의 모니터에는 ‘누드’가 상영된다. 백남준에게 TV는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로 회화의 물감처럼 작품 속 영상에서 서울의 역동적인 도상과 담겨져 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세계 73개국 방송사가 공동 제작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2000 Today’에 MBC가 소개한 한국을 대표하는 영상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한국의 프로젝트 제목은 ‘DMZ 2000’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이 프로젝트에서 백남준은 “한국인들이여, 호랑이처럼 강하고 자신 있게 새 세기를, 새 밀레니엄을 맞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제작하였다. 당시 백남준은 21세기의 디지털 혁명과 통일 한국에 대한 전망과 기원을 담은 글을 특별 기고할 정도로 이 작품 제작에 큰 의미를 두었다. 총 45분 분량의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밤 12시 정각에 임진각 평화의 종이 21번 울리고 난 직후에 평화누리 공원에서 상영되었다. 그 영상이 바로 이 비파와 첼로를 형상화 한 멀티모니터로 된 2점의 대형 비디오 조각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방송을 통해 송신된 분량은 국내 14분, 세계 3분으로 압축되어 전 세계의 방송과 인터넷으로 소개되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관 3부에는 지난 2일부터 소장품인 <로봇>과 <제1장이 제 11장보다 낫다> 2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로봇>은 텔레비전을 주로 이용하여 만든 기존의 로봇 시리즈와는 다르게 아이들의 장난감인 로봇 피규어로 만들어져, 다른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백남준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위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제1장이 제 11장보다 낫다>는 2019년도 초까지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다다익선>이다. 지금은 복원 중이여서 볼 수는 없다. <다다익선>은 백남준(1932~2006)의 유작 중에서도 최대 규모(시알티(CRT:Cathode Ray Tube)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동양, 삼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자 논란 아닌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하면서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상돼 1988년 완성되어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에 따른 화재발생 위험 등 안전성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고 있다. 가동 중단 이전에도 2010년 4월 158대, 같은 해 11월 86대, 2012년 79대, 2013년 6월 100대, 2014년 4월 98대, 2015년 320여 대의 등 9차례 브라운관 수리 및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2월 <다다익선> 상영을 중단한 이후, <다다익선>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지대하고,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독일 ZKM, 미국 MoMA, 휘트니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기관 전문가 40여 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를 조사하였고, CRT 모니터를 대체 가능한 신기술의 적용 여부도 검토했지만 의견은 분분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 끝에 2019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탑재된 원형 유지를 기본 방향으로 보존하며, 2022년 전시 재개를 목표로 3개년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방향을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닙니다. 세기적인 예술가입니다.” 2002년 무렵 경기문화재단에 보낸 친필 편지에서 백남준(1932-2006)은 1956년 일본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과 음악학, 미술사를 수학했다. 조지 마키우나스, 요제프 보이스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플럭서스 운동에 가담해 퍼포먼스를 펼쳤고,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을 모색하다가 1963년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비디오아트를 시작했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비디오를 조각, 설치 작품으로 결합해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982년 《백남준》(휘트니미술관, 뉴욕, 미국), 1992년 《백남준·비디오 때·비디오 땅》(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0년 《백남준의 세계》(구겐하임미술관, 뉴욕, 미국), 2001년 《백남준의 세계》(구겐하임미술관, 빌바오, 스페인), 2019년 《백남준》(테이트모던, 런던, 영국) 등의 개인전 및 회고전이 열렸다. 1981년 베를린 미술 아카이브가 제정한 빌 그로만 상을 수상했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1999년 독일 저널 『카피탈』 선정 세계 100대 작가 중 8위에 선정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00년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대 중반 발병한 뇌졸중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이어가다가 2006년 마이애미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비디오아트지만, 그가 시대를 초월해 지속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만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안에서는 인간과 기술, 음악과 미술, 신체와 미디어, 관념과 행위 등 여러 대립항들이 경계 없이 뒤엉킨다. 그는 퍼포먼스 작업을 기록한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고, 비디오 작품이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처럼 위성기술을 이용한 TV 생방송으로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고자 했다. 타고난 감각과 도전정신에 글로벌한 시각과 경험이 더해져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백남준은 예술을 통해 전 지구적 소통을 추구한 선구자로서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허중학 기자]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24개국 100명의 작가 ‘공생의 도구’ 주제로 제시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24개국 100명의 작가 ‘공생의 도구’ 주제로 제시
[서울문화인] 공예 분야 세계 최초‧최대 규모의 행사인 청주공예비엔날레, 그 열두 번째 여정은 오는 9월 8일부터 10월 17일까지 40일간으로 청주 문화제조창과 청주시 일원에서 본전시, 초대국가관, 국제공예공모전, 공예마켓, 충북공예워크숍 등 다양한 공예 콘텐츠로 진행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공생의 도구’이다. 이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를 비판하며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도구에 성장의 한계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저서 ⌜공생을 위한 도구 Tools for Conviviality, 1973)⌟에서 차용되었다. 지난해 7월 위촉된 임미선 예술감독은 ‘공생의 도구’를 주제를 설정하고 키워드로 ‘노동’, ‘생명’, ‘언어’를 선정하고 미국, 체코, 이스라엘, 태국, 일본, 핀란드, 남아공 등 24개국 100명의 작가와 함께 공생공락의 공예를 제시할 예정이다. ◈ 23개국 100명의 작가가 ‘정직한 노동’으로 그릴 ‘생명’의 ‘언어’, 공생공락 본전시는 ▷1부. 노동_사물의 고고학 ▷2부. 생명_일상의 미학 ▷3부. 언어_감성의 분할 ▷4부. 아카이브_도구의 재배치 총 4개의 기획으로 진행되며 동시대 공예의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와 폭넓은 스펙트럼을 조명한다. <1부. 노동_사물의 고고학>에서는 ‘정직한 노동’의 산물로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을 담아내는 18명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국내에서는 손목 위의 우주라 불리는 숙련의 결정체 태엽시계 제작자 현광훈 금속공예가, 수천 번의 두드림과 수백차례의 털 고름 과정을 거쳐 한 필의 붓을 매는 필장 유필무, 금속공예와 목공예의 기술을 결합해 소리를 빚어내는 젊은 장인 한성재 등을 비롯해 해외작가로는 남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일랄라 야자잎을 활용해 독특한 패턴의 줄루바구니를 선보이는 ‘뷰티 바셈빌레 응옹고’, 보석세공과 금속공예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놀랍도록 아름답고 섬세한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영국의 프레임빌더 ‘카렌 하틀리’등 정직한 노동으로 쌓은 숙련된 기량의 결정체로 관람객을 만난다. <2부. 생명_일상의 미학>에서는 공예의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 기능인 ‘도구’로서의 실용성에 방점을 두고, 라이프 스타일의 경향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는 취향과 기호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공예를 국내외 68명의 작가가 제안한다. 테이블웨어 디자인부터 건축도자와 설치미술까지 아우르며 스펙트럼을 확장해온 벨기에의 산업도자 디자이너 ‘피엣 스톡만’, 이탈리아의 저명한 디자이너 멘디니와의 협업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조각보 장인 강금성, 생각하는 손의 가치가 깃든 도예작품을 선보이는 김덕호, 이인화를 비롯해 네덜란드의 혁신적인 디자인 세대를 연 ‘세바스티안 브라이코빅’까지, 사람 곁에서 더욱 미감을 발하는 공예의 일상미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과잉생산으로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사물들의 업사이클을 통해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부여하는 공예가와 스튜디오들이 합류해 지속가능한 사물로서 공예의 가치를 관람객과 함께 고찰한다. <3부. 언어_감성의 분할>은 공예가 어떻게 문화‧사회‧정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수단이 되는지 조명하며 공예의 주제의식을 확인하는 자리로 코바늘 뜨개질(크로셰) 기법으로 질감 있는 바다세계를 창조하며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으로 ‘공생’의 의미까지 담아내는 인도네시아의 작가 ‘물야나’ 등 국내외 13명의 작가가 공유재로서 공예의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조명한다. <4부. 아카이브_도구의 재배치>에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도구로의 이행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공예기법은 물론 과학기술사와 생활문화사, 사회경제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국내외 변화와 흐름을 고찰한다. ◈ 온라인으로 즐기는 비엔날레, 경험하는 비엔날레–공예문화향유 프로젝트 특히 이번 비엔날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확장하여 진행된다. 본전시 주제영상을 비롯해 각 전시장 VR 또는 드론 투어, 참여 아티스트 별 작품 및 인터뷰, 온라인 갤러리 등의 실제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위는 온라인만으로는 비엔날레의 진정한 면모와 색깔을 모두 만족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랜선의 갈증을 해소할 ‘경험하는 공예의 즐거움’을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로 꼽았다. 먼저 본전시 1부~3부와 연계한 공예문화향유 프로젝트로 전시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홈 튜토리얼 공예키트’로 직접 작가의 작업과정을 따라 작품을 제작해보는 ▷공예가 되기, 비엔날레 현장에 설치된 투명한 글래스 랩(lab)에서 라이브 워크숍으로 ‘공예연회’와 ‘업사이클링’을 즐기는 ▷비 마이 게스트(Be My Guest), 인도네시아 섬유작가 물야나의 대규모 손뜨개 설치작품과 한국작가 한성재의 음향설치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한 ‘공감 놀이터’를 운영하는 ▷공예탐험 –바닷속으로, 총 3개의 전시연계 프로젝트이다. ‘홈 튜토리얼 공예키트’로 직접 작가의 작업과정을 따라 작품을 제작해보는 <공예가 되기>는 오는 31일(화)까지 티켓링크에서 사전 신청 받는다. ◈프렌치 감성 가득한 ‘초대국가관’ 이번에 처음 주빈국관을 운영된다. 첫 주빈국으로 프랑스가 선정되어 주빈국의 주제와 참여작가군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조직위는 프랑스의 대표 공예가협회 ‘아뜰리에 아트 드 프랑스’와 협약을 맺고 <오브제–타블로 ; 감촉의 프랑스>를 주제로 전시를 선보인다. 사물의 의미를 가진 ‘오브제’와 하나의 풍경 혹은 그림을 뜻하는 ‘타블로’가 조합된 주제처럼 하나의 오브제이자 요소로서 고유의 물성과 형태, 목적을 가진 작품들이 조화 혹은 대비를 이루며 여러 미쟝센을 프랑스가 주목하는 35명의 작가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더불어 비엔날레 기간에 ‘초대국가의 날’행사도 진행된다. ◈ 제11회 청주국제공예공모전 공예부문 대상 발표 개막에 앞서 세계 공예의 트렌드를 제시하고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를 발굴하는 선보이는 청주국제공예공모전의 11번째 수상자 10인도 공개되었다. 이번 공예부문 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작품은 정다혜 작가의 <말총-빗살무늬>로, 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인 말총을 사용한 소재의 선택부터 한 줄씩 짜서 쌓아올린 섬세한 기술력과 집요한 장인정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현대적인 감각까지 국내외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얻었다. 이어 금상에는 이선미 작가의 <안경알 땅빛 육각문 항아리>가 선정됐으며, 은상은 켄지 혼마(Kenji Honma) 작가의 <Five-tiered Box of Japanese Big Leaf Magnolia>와 박영호 작가의 <Memory Drop>, 오석천 작가의 <Metal+Metal>이 각각 차지했다. 동상은 카주히로 토야마(Kazuhiro Toyama) 작가의 <Biophilia;Ephemeral Bowl>, 강우림 작가의 <Organic Relation>, 강형자 작가의 <아기장수>, 김두봉 작가의 <2020_WaveⅢ>, 황아람 작가의 <틈새의 그릇>이 선정돼 지난 2019년과 마찬가지로 국내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내외 7인의 심사위원들은 “과거의 조형 일변도에서 벗어나 실용에 기초한 조형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미술을 넘어 삶의 문화를 보듬으라는 공예를 향한 문화대중의 준엄한 요청을 수용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는 심사평을 전했다. 또한 “2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공모전의 연륜과 위상을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이 여실히 증명했다”호평하며,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상징적인 공예 축제”라고 입을 모았다. 수상자들에게는 ▷대상 5,000만원, ▷금상 2,000만원, ▷은상 1,000만원, ▷동상 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후속 연계 전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시상식은 오는 9월 7일 비엔날레 개막 전야제에서 진행되며, 대상을 비롯한 입상작 115점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문화제조창 본관 3층 갤러리2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공모전에는 지난 2019년보다 71점 많은 874점이 출품되었으며, 조직위는 응모작을 대상으로 지난 6월 1차 심사를 진행했으며, 지난 3일과 4일 국내외 심사위원들의 2차 온오프라인 실물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을 결정했다. ◈ 온라인으로 즐기는 Pre & Free 비엔날레 특히 이번 비엔날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확장하여 진행된다. 본전시 주제영상을 비롯해 각 전시장 VR 또는 드론 투어, 참여 아티스트 별 작품 및 인터뷰, 온라인 갤러리 등의 실제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콘텐츠들로 온라인 비엔날레를 구축 중인 조직위는, 그러나 온라인만으로는 비엔날레의 진정한 면모와 색깔을 모두 만족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랜선의 갈증을 해소할 ‘경험하는 공예의 즐거움’을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로 꼽았다. 다양한 공예 콘텐츠를 선보이는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오는 9월 8일 문화제조창 및 청주시 일원, 온라인으로 동시 개막하며 10월 17일까지 ‘공생의 도구’를 주제로 40일간의 대장정을 펼치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올해는 온라인으로 확장하여 펼쳐질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조선 서원터에서 발견된 고려 사찰유물 및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보물지정
[문화재] 조선 서원터에서 발견된 고려 사찰유물 및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보물지정
[서울문화인] 고려 시대 금속공예 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을 비롯해 조선 초기 음식조리서인 ‘수운잡방’, 불경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 등 총 3건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서원터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사찰유물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는 조선 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되었다.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총 67건 79점 출토된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이 중 매장환경을 알려주거나 명문이 있어 제작시기가 뚜렷한 것,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을 선별한 결과, 금동금강저(金銅金剛杵) 1점, 금동금강령(金銅金剛鈴) 1점, 청동현향로(靑銅懸香爐) 1점, 청동향합(靑銅香盒) 1점, 청동숟가락 3점, 청동굽다리 그릇 1점, 청동유개호(靑銅有蓋壺) 1점, 청동동이(靑銅缸) 1점 등 총 10점을 지정하기로 하였다. 지정된 10점은 명문을 통해 유물의 사용처와 사용 방식, 중량, 제작시기, 시주자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릇의 굽다리에 새겨진 ‘계림공시(雞林公施, 계림공이 시주함)’라는 명문은 1077년∼1095년 사이에 내려준 ‘계림공’의 작위명을 통해 고려 숙종(肅宗, 1054∼1105)이 시주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출토유물의 시대적 편년과 더불어 고려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역사‧예술‧학술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또한, 이 유물들은 출토지가 확실하고 완형의 묶음으로 발견된 불교의식구인 금동금강저와 금동금강령은 주조기술이 정교하고 세부 조형도 탁월해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 시대 금강저와 금강령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공예품으로 꼽힌다. 특히 금강령의 부속품인 물고기 모양의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속에 둔 단단한 물건)은 국내 유일한 사례이자, 금강령 몸체 상단에 새긴 오대명왕(五大明王)과 하단의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과 사천왕(四天王) 등 11존상의 배치 또한 그동안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로서 우리나라 밀교(密敎) 의식법구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 오대명왕(五大明王): 불교의 종파인 밀교(密敎)에서 숭상하는 다섯 명왕(明王). 중앙의 부동명왕(不動明王), 동방의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남방의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서방의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북방의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을 일컬음 한편, 영국사지는 원래 조선 시대 도봉서원 터라고 알려졌으나, 2017년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도중 고려 초기 고승 혜거국사(慧炬國師) 홍소(弘炤, 899∼974)의 비석(碑石) 파편이 발견되었고, 비문의 내용 중 ‘도봉산 영국사’(道峯山 寧國寺)라는 명문이 판독됨에 따라 이 지역이 고려 시대 사찰 ‘영국사(寧國寺)’의 터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로써 도봉서원이 영국사 터에 건립되었다는 사실과 발굴지에서 수습된 금속공예품은 바로 영국사에서 사용한 고려 불교의식용 공예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88자의 비문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1668)에 탁본으로 전해오면서 실물은 확인되지 않던 혜거국사비의 비편을 판독한 결과, 비석에 쓰인(비명, 碑銘) ‘견주도봉산영국사(見州道峯山寧國寺)~’글자는 지금까지 영동지륵산영국사로 잘못 알려졌던 혜거국사비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고려 시대 하층유구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의 기와(중판선문 기와)와 건물지 기단으로 보아 영국사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국사 혜거국사(慧炬)가 갈양사 혜거국사(惠居, 고려 최초의 국사)와 동일인물로 혼용되어 왔으나 동시대를 함께한 동명이인인 것도 명확해졌다.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55)에서부터 그의 손자 김영(金坽, 1577∼1641)에 이르기까지 3대가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조리서로 ‘수운잡방’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로, 음식 조리서가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첫 사례이다. *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周易)』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즉 수괘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회를 베풀어 즐긴다는 의미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와 관련 내용이 수록되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沈菜,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조과(造菓, 과자류) 및 당류(糖類, 사탕류) 5종, 찬물류 6종, 탕류 6종, 두부 1종, 타락(駝酪, 우유) 1종, 면류 2종, 채소와 과일의 파종과 저장법 7종이다. 중국이나 조선의 다른 요리서를 참조한 예도 있지만, ‘오천양법(烏川釀法, 안동 오천지방의 술 빚는 법)’ 등 조선 시대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법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수운잡방’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받드는 문화인 ‘봉제사(奉祭祀)’와 손님을 모시는 문화인 ‘접빈객(接賓客)’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자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저장법의 기원과 역사, 조선 초‧중기 음식 관련 용어 등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의가 있다. 아울러 저자가 직접 쓴 원고본이고 후대의 전사본(傳寫本, 베낀 글)도 알려지지 않은 유일본으로서 서지적 가치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담고 있어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문화 기원을 찾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예념미타도량참법’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아미타부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모든 죄업을 참회하며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집) 권1∼5(禮念彌陀道場懺法 卷一∼五)’는 부산 고불사(古佛寺) 소장으로, 1474년(성종 5년)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발원으로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개판한 왕실판본(王室版本) 불경이다. 10권 2책의 완질 중 권1∼5의 1책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가장 오랜 판본은 1376년(고려 우왕 2년)에 고려의 승려 혜랑(慧朗) 등이 간행한 책이 전하며, 이번 지정된 고불사 소장본은 1474년경에 찍은 판본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은 간행 이후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모태가 되는 자료로서 조선 전기 불교사상과 인쇄문화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자료이다. 고불사 소장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는 인수대비와 인혜대비를 비롯해 공주, 숙의(淑儀), 상궁(尙宮) 등 여인들과 월산대군(月山大君)‧제안대군(齊安大君) 등 왕실 인사들,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 등 당대 중요 고승들이 참여한 정황이 명확하고, 판각과 인쇄에 참여한 장인들의 이름이 모두 나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적인 불경 간행사업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책 앞머리에 수록된 과거‧현재‧미래 삼세불(三世佛) 도상은 화원(畵員) 백종린(白終麟)과 이장손(李長孫)이 그린 것으로, 연대와 작가가 확실한 조선 초기 판화라는 점에서 당시 불교사, 인쇄사, 회화사 연구에도 의의가 크다. [허중학 기자]
2019년 미국에서 환수한  ‘국새 대군주보’ 등 국새 4과 보물 지정
2019년 미국에서 환수한 ‘국새 대군주보’ 등 국새 4과 보물 지정
[서울문화인] 2019년 미국에서 환수한 19세기 ‘국새 대군주보’를 비롯해 1946년 일본에서 환수한 대한제국기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 등 4과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특히 이들 4과는 모두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로서, 보물로서의 역사적 상징성과 조형성을 인정받았다. ‘국새 대군주보(國璽 大君主寶)’는 외교, 고위 관원 위임장, 사령장, 대군주의 명으로 반포되는 법령 등에 날인한 국새로, 1882년(고종 19년) 7월 1일 제작된 것으로, 높이 7.9cm, 길이 12.7cm 크기로 은색의 거북이 모양 손잡이(귀뉴 龜鈕)와 도장 몸체(인판 印板)로 구성된 정사각형 형태의 인장이다. 보면(寶面)에는 구첩전(九疊篆, 글자의 획을 여러 번 구부려 쓴 전서체)으로 대조선국의 대군주라는 의미를 지닌 ‘大君主寶(대군주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국새 대군주보’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19세기 말 급변하던 국제정세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선왕실의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당시 고종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고종은 국가의 상징물인 국기(國旗)와 국새(國璽)를 함께 만들도록 명했으며, 무위영(武衛營, 고종대 궁궐 수비를 맡은 관청)에서 호조의 예산을 지원 받아 완성하였다. 즉, 이 국새는 고종이 대외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표시하는 용도로 국가 간 비준이나 공식 문서에 자주독립국을 지향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당시 총 6과의 국새가 만들어졌지만 이 ‘국새 대군주보’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1897년 10월 11일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국호(國號)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국새도 ‘대한국새(大韓國璽)’로 바뀌었음. 이에 1899년 1월부터 ‘대한국새’를 사용하면서 ‘대군주보’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국새 대군주보’는 이처럼 갑오개혁을 전후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방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유물이다. 또한, 서체, 형태 재질, 주물방식 등 대한제국 이전 고종 대 국새제작 방식이 담겨진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알려진 유물이다. 2019년 12월 미국의 재미교포로부터 기증받아 환수되어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는 모두 대한제국기(1897~1910)에 제작된 것으로,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6개월 후인 1911년 3월 약탈되어 일본 궁내청(宮內廳)으로 들어간 수모를 겪기도 했다. 광복 후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궁내청에서 환수해 총무처(1940~1960년대 국무총리 소속 아래 설치되었던 중앙행정기관)에 인계한 후 1954년 6월 28일 총무처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다시 인계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국새 3과 모두 1897년(광무 1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 또는 임명장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대한제국 국새 중 일부로, 왕실 인장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보장(寶匠) 전흥길(全興吉) 등이 주도해 제작하였다. * 전흥길은 1851년부터 1897년까지 47년간 금보(金寶) 제작에 있어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장인으로, 전수명(全壽命), 전억만(全億萬), 전일만(全一萬) 등과 더불어 인장 제작 분야에 전문적 가업(家業)을 계승해 19세기 대표적 보장(寶匠) 가문을 형성한 인물 ‘국새 제고지보(國璽 制誥之寶)’는 3과 중 시기가 가장 이른 1897년 9월 19일 완성된 인장으로 ‘제고(制誥)’는 ‘황제의 명령’을 뜻하기 때문에 대한제국시기 사용한 국새임을 알 수 있다. 형상을 보면 손잡이는 용 모양이고 등은 위로 솟구쳐 반원형으로 용의 정수리에는 점문(點紋,점 모양의 무늬)과 비늘이 있고, 머리에는 녹각뿔이 솟아있다. 코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 일종의 구름형상의 문양)이 새겨졌고, 입을 벌리고 이빨 2개가 아래로 돌출되었으며, 입 주위로 상서로운 문양이 새겨있고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상상의 동물을 매우 생동감 있게 자세히 묘사하였고 도금(鍍金)이 벗겨지지 않아 황금빛이 잘 남아 있다. 또한, ‘국새 제고지보’는 대한제국 국새로서 조선 왕실 어보(御寶)와 형식적으로 구별된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조선왕실 어보가 거북형 귀뉴(龜鈕)인데 반해 대한제국 국새는 용뉴(龍鈕, 용모양의 손잡이)인 점, 용뉴의 받침대를 마련했다는 점, 보면(寶面)의 크기가 조선왕실 보인(寶印, 왕과 왕비, 왕세자의 인장)에 비해 사방 2cm 정도 크다는 점, 보면의 글씨체가 조선 어보의 구첩전(九疊篆)에서 소전(小篆, 서체의 일종으로 대전(大篆)에 비해 획이 가늘고 단정한 서풍(書風)이 특징)으로 바뀐 점 등 여러 면에서 대한제국기 국새의 조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유물로 공예, 서예, 전각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적 역량이 담긴 문화재다. ‘국새 칙명지보(國璽 勅命之寶)’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하면서 문서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대한제국 국새 10과 중 하나로, 1898년 윤3월 19일에 제작되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제의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였고 그 결과 1897년 9월 17일~19일 동안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命之寶)’, ‘명헌태후지보(明憲太后之寶)’, ‘황후지보(皇后之寶)’, ‘황태자보(皇太子寶)’, ‘황태자비지보(皇太子妃之寶)’ 10과를 완성하였다. * 칙명(勅命)은 황제가 관료에게 내린 명령이라는 의미로, 대한제국 이전에는 ‘왕지(王旨)’ 또는 ‘교지(敎旨)’라고 불렀음 이번에 지정된 것은 1897년 9월에 제작된 ‘칙명지보’가 아닌 이듬해 1898년 윤3월 19일에 좀 더 작은 크기로 만든 것으로 용뉴와 보신(寶身)으로 구성되었고 발톱을 세우고 웅크린 형상, 몸통 전체에 덮인 비늘 문양, 머리에 솟은 뿔, 얼굴 주변의 상서로운 기운 등 신비감과 동시에 제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듯하다. ‘국새 대원수보(國璽 大元帥寶)’는 군인 임명서 등에 날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1899년(광무 3) 6월 22일 대한제국이 육해군을 통솔하는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대원수보(大元帥寶)’ 1과, ‘원수지보(元帥之寶)’ 1과, ‘원수부인(元帥府印)’ 1과를 만든 것 중 하나이다. 대원수(大元帥)는 원수부의 우두머리로, 국가의 전군(全軍)을 통솔하는 최고 계급을 지칭한다. 용모양의 손잡이인 용뉴(龍鈕)와 유대(鈕臺, 얕은 받침), 보신(寶身)으로 구성되었고, 서체는 소전체로 단정하고 정갈하다. 시간이 흘러 일부 변색되거나 탈색된 부분이 있지만 제작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용뉴와 보면(寶面)의 문자 또한, 훼손 없이 잘 남아 있다. 용뉴의 받침을 갖춘 대한제국 국새로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고, 고종황제가 군사적 실권을 갖고 강력한 군사력 강화를 통해 자주적인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유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대한제국 국새 3과는 『대례의궤(大禮儀軌)』 등 관련 문헌에 형태와 재료, 치수 등이 상세히 수록되었고 당시 발행된 공식문서에 실제 사용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외세로 인해 혼란했던 시기에 국가의 운명과 수난을 함께 겪은 역사상징물이자 희소성이 크다. 대한제국 국새 3과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제도의 권위에 도전하는 뱅크시의 ‘거리 예술’ 그래피티, 서울을 찾아오다.
[전시] 제도의 권위에 도전하는 뱅크시의 ‘거리 예술’ 그래피티, 서울을 찾아오다.
[서울문화인] 비밀스러운 활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영국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지난 20일부터 성수동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선보이고 있다. 하위문화로 취급받던 ‘거리의 예술’, 스튜디오라는 환경에 안착 공공 도로·건물·공중 화장실의 벽 등 비어있는 벽에 그리는 그림을 총칭하는 그래피티(graffiti) 아트는 이제 공공전시장에서도 전시할 정도로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한강으로 이어지는 일명 토끼굴 등 야외에서 그래피티 작품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훼손하는 행위(반달리즘vandalism)가 처벌의 대상이라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실내공간에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로 심심찮게 소개되고 있다. 20세기 들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이해도보다도 빨리 예술의 한 장르로 편입되어 수많은 거장들을 탄생시키며 이제는 미술관에서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주류 장르가 되었다. 그래피티를 이제 현대미술의 한 장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외에 공간에 그려지던 예술이 실내에 전시를 목적으로 판넬이나 액자 속에서 만나는 작품을 과연 그래피티 아트라고 불려지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팝아트와 크게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낙서를 뜻하는 그래피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대미술보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특성상 오랫동안 공공의 미관을 어지럽히는 하위문화로 취급받으며 예술의 한 장르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게 예술의 장르에 포함이 되었지만, 21세기 변화된 환경 속에 무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더 이상 과거처럼 공공적인 장소에 몰래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그래피티를 드러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 제도의 권위에 도전 그럼에도 뱅크시가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그의 작품들이 가진 예술적 미학은 아닐 것이다. 그래피티가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사랑받게 된 풍자와 저항의 메시지, 그것을 지금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뱅크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93년 벽에 손으로 낙서를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그를 유명세로 이끈 것은 아니다. 바로 그의 작품이 가지는 풍자와 메시지다. 미학적인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아티스는 많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비꼬는 듯한 기발함과 은밀함을 지닌 그래피티를 설치예술과 접목시켜 선보이는 작품은 물론 예술의 상업성을 꼬집는 행위일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비단 그래피티 아티스트라는 영역을 넘어 2010년 자신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다큐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2010)를 통해서도 전시 예술의 상업성을 꼬집으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에 초정되었으며, 국내에도 개봉되었다.) 뱅크시는 작품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예술가로도 유명하다. 대중에게 알려진 뱅크시라는 이름은 가명으로 로버트 뱅크스가 본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출생으로 추정만 될 뿐 현재도 얼굴을 공개하는 일은 거의 없이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예술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2010년 ‘타임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일화는 다양하다.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잠입해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해두고 도망가기도 했는데 며칠 동안 사람들은 그게 가짜인지 몰랐다고 한다. 2018년 10월 5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그의 대표 소재라 할 수 있는 ‘풍선과 소녀’이 140만달러(약 15억원)에 낙찰되자마자 저절로 파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매 진행자가 낙찰봉을 내려친 순간 그림의 캔버스천이 액자 밑으로 내려오며 세로로 잘려나갔다. 뱅크시는 자신이 벌인 일이라고 밝히면서 “몇 년 전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며 “파괴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의 충동”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파쇄된 그림에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 있다’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였다. 2003년에 열린 전시회 〈영역 다툼 Turf War〉에서 살아 있는 돼지의 몸에 그림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에드워드 호퍼의 유명 작품들을 패러디한 모조품 전시를 특징으로 삼아 2005년 런던에서 열린 〈원유 Crude Oils〉라는 전시회에서, 그는 살아 있는 쥐 200마리를 풀어놓았으며, 2005년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한 뉴욕 및 런던에 있는 대형 미술관에 숨어 들어가 벽에 그의 작품들을 걸어놓는 도둑 전시를 하기도 했다. 2006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창고에서 있었던 전시회〈거의 합법적이지 않은 Barely Legal〉에서는 살아 있는 코끼리에 벽지와 같은 페인트를 칠해 전시 공간에 세워놓았으며, 2006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그는 공공 가족계획병원 담장에 창틀에 매달려 있는 나체 남성을 그려 노란이 되기도 했지만 지역민들은 투표를 통해 그 벽화를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이처럼 뱅크시는 작품은 좌파와 우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의 정치적·예술적 제도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질 높은 예술 파괴자’로 표현한다. 낙서의 생명력은 은밀함과 신속성으로 담아낸 메시지 낙서가 지금은 ‘그래피티’라는 이름으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 공개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전에 낙서의 생명력은 역시 은밀함과 신속성이다. 특히 사회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그 방법에는 역시 스텐실 기법이 최적일 것이다. 스텐실, “글자를 찍는다”는 의미의 옛 프랑스 어인 “에스텐세라”에서 유래된 판화 기법의 일종으로 원하는 무늬를 두꺼운 종이나 필름에 옮겨 그려 칼로 오려 낸 후 천이나 종이, 나무 등에 올려놓고 물감(스프레이)을 사용해 찍어 내는 것. 뱅크시의 작품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유의 스텐실 기술로 어두운 유머와 그래피티를 결합,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등 공간, 소재에 구애 받지 않고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쥐와 경찰관 같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에 대한 독특한 도상학(iconography)을 개발,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반권위주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그의 작품 속에는 반권위주의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 그를 반사회적 예술가로 평가하고 있다. 서울을 찾은 뱅크시의 그래피티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이번 서울을 찾은 <아트 오브 뱅크시(The Art of Banksy - Without Limits)> 전은 2016년 1월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멜버른 등 유럽과 호주 11개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하고 서울에 상륙한 전시로, 전시의 테마는 ‘뱅크시의 작품과 메시지’를 중심으로 각 도시의 특성에 맞게 일부 큐레이션을 달리하여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 투어 전시의 테마는 ‘디즈멀랜드’이다. ‘디즈멀랜드’는 ‘Dismal(음울하다)’과 ‘디즈니랜드’를 합쳐 이름 붙여진 ‘우울한 놀이공원’이라는 뜻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슬로건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있는 디즈니랜드를 풍자하기 위해 뱅크시가 만든 테마파크다. 베들레헴에 위치한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과 더불어 뱅크시의 가치관이 물리적으로 집약된 장소로 유명하다. 2015년 8월 잉글랜드 서머싯주 웨스턴슈퍼메어에서 단 5주 동안 한정적으로 운영된 ‘디즈멀랜드’는 신데렐라 성을 무너져 내리는 모습의 연출과, 사고로 인해 뒤집힌 마차 밖으로 튕겨져 나온 신데렐라의 모습을 파파라치들이 쉴 틈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고 취재하는 모습(다이애나 왕세자비 사고를 풍자한 작품), 인어공주가 있을 것 같은 물가에 난민이 탄 보트를 전시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이 꼭 꿈과 환상만으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15만여 명의 방문자는 물론 3000만개 이상의 트윗과 8만6500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1100여 개의 유튜브 영상이 만들어질 만큼 등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처럼 뱅크시의 ‘디즈멀랜드’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디즈멀랜드’는 당시의 전시와는 다른 새로운 연출로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지폐, 카탈로그, 풍선, 난민 보트 등 150여 점의 다양한 소품과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전시는 뱅크시가 오랫동안 전하고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특히 150여 점은 투어 중 가장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