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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소장 고판화 명품, 최대규모로 선보인다.
[전시]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소장 고판화 명품, 최대규모로 선보인다.
[서울문화인] 6,000여점의 고판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의 소장품이 최대 규모로 나들이 길에 오른다. 고판화박물관은 2003년에 개관 이후 40여 차례 이상 다양한 주제의 고판화 전시회와 국립민속박물관, 해인사대장경축제, 청주 고인쇄박물관, 일본 동경국문학연구자료관, 중국 쑤저우 공예미술대학 등 국내외 초청전을 통해 이제는 접하기 어려운 우리의 고판화는 물론 아시아의 다양한 판화의 세계를 선보여 왔다. 이번 나들이전은 올 5월 부산교육청 학생예술문화회관 초대전에 이어 원주시립중앙도서관(관장 이문희)의 초청을 받아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도서관 1층 전시실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보여 왔던 전시에 비해 규모가 남다르다. 이번에 소개되는 판화자료는 고판화박물관의 소장품 6,000여점 중 고서, 고판목, 대형 고판화 까지 총망라하며, 이중에 삽화판화, 예술판화, 문양판화로 세분화하여 한국, 중국, 일본, 티벳, 베트남까지 아시아 명품 고판화 120여점의 선별하여 고판화에 대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특히 그동안 선보였던 전시 중 가장 큰 대규모 전시인 만큼 강원도 유형문화재 152호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등 총 7건의 도지정문화재가 모두 출품될 뿐 아니라, 웅장한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블록버스터급 대형 고판화와 고판목 70여점이 포함되어 있어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전시의 구성은 앞서 얘기했듯 1부 삽화판화, 2부 예술판화, 3부 문양판화 총 3부로 나눠 아시아 고판화 명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에 눈 여결 볼 작품으로는 1부 삽화판화에서는 강원도 지정문화재 7건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최고의 판화인 오륜행실도 목판을 비롯하여, 원주의 대표적인 인물로 고구마를 가져온 조엄(趙曮, 1719~1777)이 그려진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전적류와 세계적인 명품인 명나라 성화 13년(1477년) 황실 내부각본인 불정심다라니경 등을 만나볼 수 있다. 2부 예술판화에서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한국 ‘치성광여래도’, 중국의 ‘아미타래영도 대형 판목’, 고려불화를 모본하여 판각한 일본의 ‘오백나한도’ 대형 목판화 등의 불화판화와 천주교 ‘연옥도’ 판화 등 다양한 대형 종교판화를 비롯하여, 채색 ‘십장생도’·까치와 호랑이 8폭 병풍 등 한국의 민화 판화, 다색 호랑이 판화, 대형 ‘백자도’ 등 중국의 년화 판화, 고호가 특히 사랑했던 히로시게 동해도 53차 대형 병풍을 비롯하여, 호코사이의 후지산 36경등 일본 우키요에 판화들도 주목해야할 작품들이다. 또한,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된 지도판화인 금강산사대찰전도를 비롯하여 중국의 대형 오대산성경전도와 티벳의 라싸전경도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다. 3부 문양판화에서는 옛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멋을 실천하였던 능화판, 시전지 등을 비롯하여, 문자도 판화 등이 소개된다. 한선학 관장은 “고판화박물관 소장품 전시를 국립민속박물관, 일본도쿄, 중국 소주 등 국내외에서 60여차례 특별전을 개최하였으나, 이번 전시회는 가장 규모가 큰 전시회로 개최되며, 특히 고서, 고판목, 대형 고판화 명품 120여점이 전시되어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고판화의 매력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전시로 특히 그동안 전시장이 작아 고판화박물관 명품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기 어려웠던 수도권 시민들, 전국의 많은 분들과, 강원도민들이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을 자랑하는 원주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장을 찾아 주시길 희망한다.”면서 “깊은 역사를 지닌 고판화의 미감을 1,000여년 전 부터 20세기 초 까지 망라된 동 아시아의 고판화의 주요 흐름을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전시문의: 원주시립중앙도서관(033-737-4360), 명주사 고판화박물관(033-761-7885)) [허중학 기자]
[미술관] 소마미술관, ‘드로잉’을 주제로 내일전, 공모전, 소장품전 3개의 다양한 전시 선보여
[미술관] 소마미술관, ‘드로잉’을 주제로 내일전, 공모전, 소장품전 3개의 다양한 전시 선보여
[서울문화인] 소마미술관이 지난 8월 13일부터 ‘드로잉(Drawing)’을 중심 주제로 내일전, 공모전, 소장품전이라는 3가지 키워드로 세 개의 전시를 동시에 개최하고 있다. 드로잉 전문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는 소마미술관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이 운영하는 기관으로 2004년 88서울올림픽의 문화적 성과를 재조명하기 위하여 세계 제5대 조각공원 가운데 하나인 약 1,500,000㎡ 녹지의 올림픽공원 안에 연면적 10,191㎡에 지상 2층의 서울올림픽미술관으로 개관, 2006년 소마미술관(SOMA_Seoul Olympic Museum of Art)으로 개칭하여 재개관되면서 소마드로잉센터를 운영하면서 드로잉 전문미술관으로 등록 작가를 배출은 물론 드로잉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이후 2018년 9월,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며 연면적 2,995㎡에 지하 1층의 소마미술관 2관이 새롭게 개관되었다. 소마미술관은 현재 올림픽조각공원 안에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과 국제야외조각초대전에 참가한 66개국 155명의 작품을 포함하여 현대조각 작품 221점을 소장하고 있다. 내일전《Drag and Draw》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경향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내일전《Drag and Draw》은 소마드로잉센터 등록작가 10인(김인영, 류정민, 민정See, 배성희, 손민아, 심아빈, 이성미, 이정배, 임정은, 장지은)의 다양한 드로잉(Drawing) 5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내일전’이라는 타이틀은 ‘드로잉(Drawing)’라는 의미가 결과라기보다는 창작의 발상이 시작되는 지점에 더 가까운 만큼 ‘결과보다 과정’, ‘개념보다 상상’, ‘완성보다 실험’에 초점을 맞춰 창조 작업의 시발점으로 실험적인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전시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착안되고 창작의 발상이 시작되는 지점을 크게 ‘상상의 확장’, ‘일상적 사유’, ‘공간적 경험’ 이라는 주제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작가들의 창작과 실험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경희 작가 개인전 《Into Drawing42_부유하는 존재들》 공모전은 소마미술관이 매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를 통해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하여 선보이는 전시로 이제까지 15기, 총 473명의 등록 작가를 배출하고 있다. 올해 선보이는 작가는 이경희 작가로 2019년 선정(2020년 코로나19로 순연)된 3명의 작가 중 첫 번째 작가의 전시이다. 이경희(1980~) 작가는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 표면의 형태를 보고 그 용도와 성격을 규정짓는 우리의 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기존의 인식체계를 해체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계장치를 절단하거나 분해하여 새로운 시점으로 제시한다. 타이틀 《부유하는 존재들》이란 풍물시장이나 기계 상가에서 중고로 거래되는 물건들은 생산된 시점이 오래되었을 뿐 분명 지금, 현재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옛것으로 취급되어 버리는 사물들을 작가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 존재들’로 보고 작가는 이처럼 시간성을 간직한 사물들을 ‘절단’과 ‘분해’라는 방식을 통해 사물의 외형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관념을 해체시키고 그 속에 내재된 미적 본질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절단과 분해의 방법은 오래되고 낯선 것에서 미적 단면을 찾아내는 작업이자 작가가 과거와 현재 속에 부유하고 있는 존재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듯, 삶의 다양한 단면을 다층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의 변속기, 엔진 등의 소재를 분해한 사진, 탁본은 현대적 드로잉의 확장된 의미로 담아내었다. 이 전시는 9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소장품전 《드로잉 박스》 1관 1전시실에 진행하는 소장품전 《드로잉 박스》는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가 동시대미술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수집한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로 이번 전시에서는 수집한 작품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나무 크레이트 박스(Crate Box)를 개조하여 전시 속의 전시, 공간 속의 공간의 형태로 선보이는 전시로 류인, 김병호, 허윤희, 임선이 등 12명의 회화, 드로잉 및 입체 14점을 소개하고 있다. 소마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형태에 대해 작품을 변형과 조합이 가능한 구조물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 방식의 변화를 통해 향후 다양한 장소를 순회하면서 드로잉의 저변을 확대를 위한 시범적 형태로 선보이는 전시라 말한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허중학 기자]
[박물관] 고려주자(高麗注子),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속에 깃든 고려인의 삶을 엿보다.
[박물관] 고려주자(高麗注子),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속에 깃든 고려인의 삶을 엿보다.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G20 정상회의와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했던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특별전(2010), 1989년 <천하제일 비색청자-고려청자명품>특별전,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고려청자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2012),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였던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2018)은 개인적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한국문화재를 주제로 한 전시에 있어 손꼽을 정도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전시이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 ‘고려시대’의 예술을 조망한 전시라는 점이다. 당시 <고려불화전>은 전 세계 흩어져 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으로 손꼽히는 ‘고려불화’를 한자리에 만날 수 있었던 전시가 끝나고 전문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언제 ‘최고의 예술작품’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음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전시로 기억되며, <천하제일 비색청자-고려청자명품>전은 속된말로 현대의 주부들이 왜 아름다운 식기에 빠지는지를 알게 함은 물론 말 그대로 중국에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 비색청자’라 평가한 그 의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시였다. 특히 <대고려>특별전은 특별했다. 88일 동안의 전시 기간 동안 17만 2천여 명의 관람객이 고려의 명품을 찾았다. 이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 문화재를 주제로 한 전시의 하루 평균 관람객이 957명이었지만 이 특별전은 하루 평균 1,955명이 전시를 관람하여 관람객 수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록을 갱신했다. 그만큼 우리국민들은 정교하고 세밀한 공예 문화의 절정기로 평가받는 고려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시기의 예술품보다 크다고 하겠다. 서두를 길게 한 것은 ‘고려청자’로 대변되는 고려 ‘자기(瓷器)’의 아름다움과 당시의 삶을 마주볼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함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전시는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신사 분관에서 2021년 두 번째 기획전시이자 고려주자(高麗注子)를 소개하는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주전자(酒煎子)’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옛 문헌에는 ‘주자(注子)’라는 단어가 주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 사전에서 주자는 ‘술 따위를 담아 잔에 따르게 만든 주전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주자나 주전자는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담아 따르기 위한 그릇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이러한 기능을 가진 주자가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게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고려는 주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고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와 뛰어난 제작기술이 뒷받침되었다. 이번 기획전시에는 다양한 재질의 고려주자 133건과 주자와 함께 사용된 술잔과 찻잔 등 전시 보조 작품 85건, 중국의 백자주자 9건 등 모두 210여 건이 선보이는 전시로 국내에서 고려시대 주자를 주제로 선보이는 전시로는 최대 규모로 특히 소개되는 절반이 넘는 작품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물들이다. 전시의 주제인 주자는 액체를 담아 따르는 그릇을 통칭하는 말로 이러한 용도의 토기 혹은 도기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했지만 옛 문헌 기록에 의하면 주자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9세기 초반 당(唐)나라 때이다. 그 이전에는 술을 담아 따를 때 항아리[樽]과 국자[杓]를 썼다. 술을 담아 따르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 주자라 할 수 있다. 주자는 고려 이전에도 이후에도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만큼은 아니었다. 고려 때는 국가, 사원, 개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술을 빚을 만큼 술이 보편화되면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제향(祭享)이 있을 때, 왕이 신료와 연회를 베풀 때, 사원이나 개인이 손님을 맞이하여 접대할 때 중요하게 소비되었다. 그러나 주자는 다른 그릇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여 만들기가 까다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며 시기에 따라 형태와 장식도 다채로웠다. 고려청자의 또 다른 아이콘인 매병(梅甁)과 비교해도 유행 기간도 훨씬 길다. 또 주자의 형태 또한 금속기를 본 떠 만든 것에서부터 과형(瓜形)‧구형(球形)‧표형(瓢形)‧병형(甁形)‧상형(象形) 등 훨씬 다양하여 당시 청자제작기술의 최고 정점에 주자가 있다고 해도 손색없다. 이러한 이유로 주자는 오늘날은 훌륭한 감상의 대상인 예술작품이자,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호림박물관은 자기(磁器) 제작기술이 보편화된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에 더 많은 주자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면 고려 사람들은 주자에 무얼 담아 사용했을까?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준비되었으며, 주자는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窓)이라고 보고 주자가 가진 본래적 기능 즉 술과 차를 담아 따르는 용도 이외에도 그것을 사용하는 행위에 주목하였다.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高麗注子”전 첫 번째 전시공간(4층)은 ‘고려 공예의 꽃, 주자注子’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 초기인 10세기 무렵부터 고려 말기인 14세기까지 고려청자 주자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15세기 상감분청사기와 백자 주자를 한 공간에 전시되어 고려의 주자 전통이 조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하겠다. 전시의 대표작으로는 보물 1453호 <청자주자>(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를 시작으로, 중국 월요청자의 영향이 보이는 10세기 무렵의 <청자주자>, 고려 특유의 비색과 상감 문양이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12세기)와 보물 1451호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13세기), 고려 후기 청자주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와 <청자상감연학문병형주자>(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들로 구성하여 주자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동시에 전개 과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전시실 마지막 코너에서는 보물 1540호 <청자표형주자>와 국보 281호 <백자주자>(조선 15세기)를 나란히 전시하여 고려와 조선 주자의 조형적 특징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전시공간(3층)은 ‘주자, 술[酒]을 따르다’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주자 가운데 주기(酒器)로 사용된 유물들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고려 왕실을 중심으로 국가 의례에 용된 주자들을 선보인다. 특히 고려 때에는 조선과 달리 개인은 물로 사원과 국가에서 주점(酒店)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에 전시실 안에 주기로 사용된 각종 청자들을 선별하여 고려시대 주점의 풍경의 재현과 더불어 술잔으로 사용된 각양각색의 청자잔들을 고려 때의 주시(酒詩)와 함께 선보여 관람객들이 당시 고려의 술 문화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전시의 대표작에는 12세기 무렵 고려 왕실이 의례에서 사용한 <청자 음각반룡문 주자>와 <청자 상감국화문 신선장식 주자와 승반>(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을 비롯하여 술과 관련된 시(詩)가 새겨진 <청자표형주자>(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 호화스러웠던 고려시대의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전시공간(2층)은 ‘주자, 차茶를 따르다’라는 소주제 아래에 고려주자 가운데 다기(茶器)로 사용된 유물들을 통해 고려의 수준 높았던 차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전시의 대표작품으로는 고려의 대문호인 이규보(李奎報)가 ‘남쪽 사람이 보낸 철병(鐵甁)을 얻어서 차(茶)를 끓여보다’라는 시(센 불이 강한 쇠 녹여 내어 / 속을 파 둔하고 단단한 것 만들었다 / 긴 부리는 학이 돌아보는 듯 / 불룩한 배는 개구리가 벌떡거리는 듯 / 자라는 뱀 꼬리 굽은 듯 / 모가지는 오리 목에 혹이 난 듯 / 입 작은 항아리처럼 우묵하고 / 다린 긴 솥보다 안전하다)에서 노래한 철병을 연상시키는 청동주자(11세기~12세기)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다양한 신분 계층의 사람들이 주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인 청자‧흑자‧도기 등 다양한 재질의 주자가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백자주자를 통해서 고려주자의 독창적인 조형미를 살펴볼 수도 있다.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전 한편,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전의 연계 전시로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전은 ‘소통’의 현대적 해석으로 백남준과 이수경의 작품을 선정, 백남준의 <W3>(1994년 작)와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2012년 작)을 소개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연결’과 ‘소통’이다. <W3>는 www(월드 와이 웹), 즉 인터넷 세상을 의미하는 뜻이자, 주역의 64괘를 상징하는 64대의 모니터를 2개의 X자 모양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또한,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는 버려진 도자기 파편들을 화려한 금(金)으로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원래의 모습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깨어진 조각은 작가의 번역과 해석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어 관람객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옛 유물의 가치는 그 유물 자체가 가진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 시대를 읽고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대게 연구자의 몫이라 생각하며 대중들은 예술적 아름다움에 심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한 틀에서 그 유물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색다르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전시라 하겠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공연] 음유시인 故김현식의 명곡에 취하다. 창작뮤지컬
[공연] 음유시인 故김현식의 명곡에 취하다. 창작뮤지컬
[서울문화인] 사랑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故김현식의 주옥같은 명곡들로 이루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기획/제작 ㈜호박덩쿨)가 8월 14일(토)부터 10월 31일(일)까지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중년인 나에게 흔히 가객(歌客)이라 불리는 故김현식(1958-1990), 김광석(1964-1996)의 노래는 젊은 날의 추억과 같은 존재이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지금도 이들의 노래는 여전히 나의 애창곡으로 자리하며 젊은 시절 요절하였지만 노래로 여전히 삶을 함께 있다. 이 두 가객의 특징이라면 독특한 창법과 서정적이면서도 가슴에 깊이 파고드는 노랫말이다. 이후 서태지를 비롯하여 요즘 젊은 층은 물론 세대를 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BTS의 노랫말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변덕쟁이’, ‘비처럼 음악처럼’, ‘넋두리’ 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수많은 故김현식 명곡의 향연으로 짙은 노스텔지어를 선사. 뮤지컬 <사랑했어요>는 대한민국 가요史에 한 획을 그은 싱어송라이터 故김현식의 명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뜨겁게 사랑을 노래한 가객(歌客)으로 불리는 김현식만의 섬세한 노랫말과 가슴을 울리는 진한 사랑의 감성이 현대적 감각에 맞춰 각색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뮤지컬 <사랑했어요>는 서로 사랑하지만 다른 공간 속에서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연인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까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故김현식의 노래로 말하며 위로를 건네는 작품으로 작품명과 동명의 히트곡이자 김현식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랑했어요’를 비롯하여 ‘비처럼 음악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추억 만들기’, ‘변덕쟁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비롯하여 이번 공연에 는 ‘내 사랑 내 곁에’와 ‘넋두리’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특히 ‘내 사랑 내 곁에’는 故김현식의 유작 앨범인 정규 6집(1991년)의 곡으로 당시 엄청났던 인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들 명곡들은 원곡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최대한 살려내어 원곡의 향수를 전하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다채롭게 편곡된 무대를 통해 김현식의 음악을 즐겼던 세대는 물론, 청춘을 지내온 모든 세대에게 공감과 함께 깊은 감동을 전한다. 특히 1막 오프닝을 장식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한국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곡을 세련 되게 편곡하여 색다른 매력을 선사하며, 1막 엔딩곡인 ‘어둠, 그 별빛’은 무심히 툭툭 내뱉는 창법의 ‘과거 이준혁’의 목소리와 전체 배우의 합창이 어우러지며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가 돋보이는 웅장하고 화려한 클라이막스의 감동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키보드와 기타, 베이스, 드럼, 플룻, 클라리넷/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등으로 구성된 14인조의 오케스트라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사운드로 故김현식의 개성 있는 음악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것으로 기대하게 한다. 강수진 음악감독은 “뮤지컬은 ‘서사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필요로 하기에 더욱 편곡에 심혈을 기울여 원곡의 감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에서 드라마의 상황과 캐릭터를 제일 우선으로 작업했다.”고 전했다. 이번 시즌에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사랑’의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전달하고 심도 있게 캐릭터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이준혁’ 캐릭터를 1996년 ‘과거 이준혁’과 2021년 ‘현재 이준혁’으로 나누는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두 캐릭터 사이에 존재하는 25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현재 이준혁’이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과거 이준혁’의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그의 깊은 정서를 함께 느끼고 공감하며 뜨거운 청춘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무엇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관객들에겐 이미 검증되고 알려진 곡들로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편곡자와 배우들에겐 자칫하면 명곡을 망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캐릭터의 변화만큼 이번 시즌 배우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여린 감성을 지닌 고독한 싱어송라이터로 50대 후반의 성공한 대한민국의 가수 ‘현재 이준혁’ 역으로는 가수 조장혁과 팝페라 가수 정세훈, 뮤지컬배우 성기윤이, 음악이 세상의 전부인 아웃사이더로 현재 준혁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과거 이준혁’ 역에는 락발라드 가수 고유진, 만능 엔터테인먼트 홍경인을 비롯하여 가수 김용진이 처음 뮤지컬에 도전한다. 준혁의 절친한 동생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경영학도이자 비엔나에서 만난 영혼을 사로잡는 사랑 앞에 인생의 모든 걸 거는 ‘윤기철’ 역에는 세븐과 아이돌 그룹 빅톤의 메인 보컬 강승식,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을 통해 데뷔하여 주목받고 있는 박정혁, 아이돌 그룹 업텐션의 메인 보컬 선율이 순수한 모습의 ‘기철’로 분해 풋풋한 매력을 선보인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며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김은주’ 역에는 신고은이 이번에 다시 합류하였고 박규리가 10년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또한 엠넷 프로듀스 101을 통해 결성된 그룹 I.O.I의 리더였던 임나영이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도전한다. 비엔나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다 준혁을 만나 그의 매니저가 되는 ‘안호준’ 역에는 다수의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위양호와 고혜성, 비엔나에서 하숙집과 카페를 운영하다 훗날 준혁의 코디가 되는 ‘최미애’ 역에는 김미려, 김나희가 감초 역할을 맡았다. [허중학 기자]
[전시] 빛, 바람이 그려낸 우리 삶의 주변을 섬세한 붓터치로 담아낸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전시] 빛, 바람이 그려낸 우리 삶의 주변을 섬세한 붓터치로 담아낸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서울문화인] 구상미술은 르네상스시기에 확립되어 4세기 이상에 걸쳐 서구 미술의 주된 표현방법으로 쓰였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입체파 미학의 성립과 더불어 미술이 추상적인 경향으로 치달음에 따라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이후 서구 미술은 모더니즘의 쇠미 현상과 함께 미니멀리즘을 정점으로 추상 미술의 전반적인 퇴조기를 맞게 되면서 신구상 회화, 신표현주의, 신환영주의, 뉴이미지 회화 등 새로운 형태의 구상미술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실주의 구상미술은 여전히 미술관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구상미술을 떠올리면 대표적인 화가라면 인상파 화가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자연의 빛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다보니 인상파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끊임없이 자연으로 나갔다. 대지 위에 작렬하는 빛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향연을 캔버스에 담아내었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나 고흐의 작품을 보면 빛이 만들어낸 대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태와 빛을 분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하지만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빛에 의해 만들어낸 그 이미지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우리는 일상에서 눈여겨보지 못했던 생활의 일부분을 다시 한 번 관조하게 만든다. 빛, 물 그리고 바람을 섬세한 붓터치로 담아내다. 지난 7월 24일부터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선보이고 있는 리얼리즘 기법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을 소개하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에서 만나는 그녀의 작품은 분명 과거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과 그 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나 고흐의 작품을 보면 빛이 만들어낸 대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태와 빛을 분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녀는 빛에 의해 만들어낸 그 이미지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우리는 일상에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생활의 일부분을 다시 한 번 관조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현대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전 국민이 사진작가라고 불리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간과하고 놓쳤던 앵글을 과감하게 그의 캔버스에 옮겨다 놓았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한 리얼리즘 기법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1939년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 댄빌에서 태어나 뉴욕 주 이타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구름이 많이 끼는 이타카의 느지막이 뜨는 햇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작가의 큰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에 당시 예술계를 평정하던 뉴욕 중심부로 이사하게 되면서 소호의 여러 갤러리에 전시된 포토리얼리즘 작품을 접하였고, 지금의 극사실주의 화풍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로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두 요소가 만나는 장면 속에 드리운 빛을 탐구하고 있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공립도서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고 있다. 앨리스의 그림들의 배경들은 대부분 작가가 삶의 반경에서 직접 빛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찾아낸 주택들이 모델이다. 그녀는 1960년대 화가의 길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주로 주택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주제로 작업하였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건물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경계로 시선을 옮겼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렸다. 그러나 2000년 뉴욕 무역센터의 테러 참사를 바로 지척에서 경험하면서, 평화와 상실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면서 이 시기부터 그녀의 작품에는 물의 형상이 주요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등장하는 물가의 풍경은 앨리스 부모님의 별장있던 이타카에 있는 카유가 호수(Cayuga Lake)를 배경으로 한다. 바다처럼 장대한 카유가 호수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명확히는 구분되지 않는 물가를 모티프로 한 그녀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이후 이런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신비로운 물가가 등장하는 작품들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 이전에 제작한 “여름 바람”(1995)과 같은 여름 바람이 부는 창가를 여러 번 그려낸 앨리스는 이 시기 이후로, 물가의 풍경을 더 전면적으로 드러내게 되고, 이는 점차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지게 되는 “느지막이 부는 바람”(2012)과 같이 광활한 물가에 펄럭이는 커튼 한 자락을 그리는 것으로 작품의 세계관을 확장하게 된다. 당시 작가가 예순에 접어든 시기로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풍경이 그녀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 되어 그녀가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때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커튼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인상주의 화가가 아니더라도 빛은 예술의 원천이다. 빛은 사물의 그림자를 통해 역동성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 드러난 빛은 어쩌면 굉장히 정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난 역동성은 보이지 않는 바람이다. 그것이 커튼의 펄럭임을 통해 무채색의 그림자와 대비감을 주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그녀의 50년간 작가의 삶을 시대별로 드러난 특징을 4개의 섹션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마지막 섹션에는 이전의 색체감과 다른 ‘이탈리아 시리즈’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소개되는 작품에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미스티’, ‘비밀의 숲’ 등에 아트 프린트가 소개되어 인기몰이를 한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의 오리지널 유화 작품 등 작가의 5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작품 80여점이 소개된다. 특히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으로 제작한 신작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2021) 3점은 습작과 함께 배치되어 비교하면 만나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또한, 8월 작가의 방한이 예정되어 있어, 한국 관람객들은 처음으로 앨리스 달튼 브라운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10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입장료 18,000원) [허중학 기자]
[전시] 자신의 반려견을 ‘뮤즈’로 작업하고 있는 윌리엄 웨그만 사진전
[전시] 자신의 반려견을 ‘뮤즈’로 작업하고 있는 윌리엄 웨그만 사진전
[서울문화인] 예술가에게 뮤즈는 집착과도 같은 끈질긴 관찰의 대상에서 비롯되어 자신만의 예술의 원천이자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위대한 예술가에게서 특정한 뮤즈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 뮤즈는 특정한 인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인물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물이 되기도 한다. 뮤즈(Muse), 본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춤과 노래ㆍ음악ㆍ연극ㆍ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들을 말하는데, 고대인들에게 뮤즈는 그 자체가 예술적 영감이나 학문적 재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 사진의 거장인 윌리엄 웨그만(William Wegman)에게 뮤즈는 그의 반려견이다. 윌리엄 웨그만은 1970년 서부 개념미술을 이끈 주요 인물이며 초창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독창성을 인정받은 예술계 거장으로 이처럼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 드로잉, 영화, 비디오, 서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명성을 축적한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예술의 중심에는 반려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반려견이 웨그만의 뮤즈가 된 것은 50여 년 전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된 바이마라너(Weimaraner, 수렵견의 한 품종으로 독일 바이마르 궁정의 독일 귀족들이 19세기 초에 개량했다.) 반려견 한 마리가 카메라 앞에서 능숙한 모델의 자질과 열정을 뽐내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의 반려견은 작품의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었고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이름을 본 따 반려견의 이름을 ‘만 레이(Man Ray)’로 지었다. 이후 만 레이는 생기 있는 모습을 자랑하는 웨그만의 첫 번째 반려견 뮤즈가 되었다. 웨그만은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 레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반려견을 모델로 한 상징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대형 폴라로이드(61 x 51cm) 사진으로 매체를 확장하여 여러 마리의 바이마라너 모델을 꾸준히 프레임에 담고 있다. 또한, 그의 독특한 유머 세계를 반영한 비디오 작업은 NBC 방송국의 ‘생방송 토요일 밤(Saturday Night Live)’과 PBS 방송국의 ‘세서미 스트리스(Sesame Street)’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성인은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십 수 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한 웨그만의 다채로운 작품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쿨린 미술관, 스미소소니언 미술관 등 전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되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웨그만은 <Being Human 비잉 휴먼> 전시를 통해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 세계 각지의 관람객에게 유쾌하고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웨그만은 1970년대 후반 완벽한 크기, 강렬한 색상, 즉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상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즉흥적이고 우연한 순간의 포착을 작품에 담았다. 폴라로이드 시대가 저물자 웨그만은 디지털 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새로운 매체에서도 사진 크기, 뚜렷한 색상, 스튜디오 촬영 등 폴라로이드 작업의 필수 요소를 재탐구하고 있다. 지난 7월 8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제7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는 <윌리엄 웨그만 BEING HUMAN 비잉 휴먼>展은 그의 뮤즈인 반려견과 함께 진행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전시에 등장하는 반려견은 주부, 우주 비행사, 변호사, 성직자, 농부, 도그 워커 등 각양각색의 의인화하여 우리 모두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웨그만의 뮤즈로 유명세를 떨친 바이마라너 반려견의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바이마라너 반려견의 새끼들이 대를 이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윌리엄 웨그만 특별전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한국을 잇는 전 세계 순회전으로 윌리엄 웨그만이 자신의 반려견을 찍은 초기의 대표 작품을 비롯하여 희소성이 높은 대형 폴라로이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연출된 약 10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특히 지금까지 대중에게 공개된 작품 외에 작가가 직접 선정한 50점 이상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며, 반려견을 모델로 하여 패션잡지 보그와 콜라보레이션 한 샤넬, 디올, 입생로랑, 마크 제이콥스 외 막스마라, 아크네 등 유명 브랜드와 함께했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하여 윌리엄 웨그만과 FEP 재단의 수석 큐레이터가 특별히 영어로 작품 해설을 녹음하였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녹음은 방송인 박수홍이 참여하였다. 자신의 반려견을 모델로 삼아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한 현대사진의 거장, 윌리엄 웨그만. 작가 특유의 연출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9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성인(만19-64세) : 15,000원 / 청소년(만 13-18세) : 12,000원 / 어린이(36개월이상-만12세) : 10,000원) [허중학 기자]
[창작발레 안중근] 관객의 박수 소리에 안 의사 “천국에서 춤추며 만세를 부르셨으면”
[창작발레 안중근] 관객의 박수 소리에 안 의사 “천국에서 춤추며 만세를 부르셨으면”
[서울문화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웅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려낸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안무 문병남, 대본 및 연출 양영은)이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8월 13일(금)부터 8월 15일(일)까지 3일간 공연에 앞서 11일 프레스공연을 가졌다. 이 작품은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모티브 삼아 안중근의 삶과 독립에 대한 염원을 전막 발레로 창작한 작품으로 M발레단(예술감독 문병남)이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어 초연한 바 있는 작품이지만 이번에 예술의전당의 창작 진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새롭게 업그레이드되어 선보인다. 문병남은 국립발레단 전 부예술감독이자 상임안무가로 <왕자호동>, <오월바람> 등 한국적 창작발레의 모델을 꾸준히 제시하며 한국 발레계의 창작 레퍼토리 활성화에 기여해 온 안무가이며, 양영은은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로, 다수의 창작 레퍼토리에서 대본 및 연출, 안무 등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문병남은 이 작품은 “사형을 언도받은 안중근 의사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밝히면서, 초연과 다른 점은 ‘의병부대 전투 장면과 하얼빈 역 장면과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대폭 확장하여 스토리 전개를 보다 탄탄하게 다듬고, 새롭게 작사, 편곡된 음악을 대폭 추가하여 음악의 변화는 물론, 웅장하고 역동적인 안무와 무대, 의상까지 새롭게 제작해 작품성을 높였다.’고 하였는데 특히,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면모를 더욱 부각시키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 내려고 하였다.”고 밝혔다. 특히 음악과 안무로 이루어진 발레 극에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님 조마리아께서 죽음을, 사형을 앞둔 옥중에 있는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쓴 편지의 “장한 아들아 보아라.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닌 한국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라는 이 글이 낭독될 때는 마치 뮤지컬 ‘영웅’의 감동이 몰려오는 듯 했다. 이 작품의 볼거리는 또 하나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캐스팅이다.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무용수들을 비롯해 다양한 발레단의 무용수가 이 작품을 위해 모였다는 점이다. 이는 발레 팬들에게는 더 없는 기회이다. 먼저 영웅의 깊은 고뇌와 갈등을 표현해내야 하는 ‘안중근’ 역에는 전 루마니아국립오페라발레단 주역무용수로 다양한 무대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펼쳤던 발레리노 윤전일(현 윤전일 Dance Emotion 예술감독)과 명실상부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 수석무용수 이동탁이 출연하며, 가슴 아픈 사랑을 호소력 넘치게 선보일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역에는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김지영과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예은이 맡았다. 특히 박예은은 일본군 장교 ‘이시다’의 여인 ‘사쿠라’ 역으로도 출연해 완전히 상반된 느낌의 움직임과 연기를 선보인다.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조마리아’ 역에는 초연 당시에도 같은 역할로 출연했던 전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 김순정 교수(성신여자대학교 무용학과)와 M발레단 부예술감독인 민혜진이 출연한다. 여기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민우와 우루과이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했던 윤별이 일본군 장교 ‘이시다’ 역을 맡아 안중근과 대립하는 악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시다의 여인 ‘사쿠라’ 역에는 박예은과 함께 국립발레단의 떠오르는 신성 곽화경이 출연해 화려한 춤사위를 펼쳐내어 작품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이처럼 우리나라 양대 발레단의 전·현직 수석무용수와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는 무용수의 만남은 특별한 관람 포인트이다. 더불어 여러 차례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기량 넘치는 20명이 넘는 남녀 무용수들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군무도 놓칠 수 없다. 대부분 발레하면 떠오르는 것이 서양의 고전드라마 발레를 떠올린다. 이들 작품은 이미 유럽, 특히 러시아의 유서 깊은 발레단이 오래전부터 수없이 공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이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작품이 가진 스토리의 힘과 작품에 대한 투자이다. 그만큼 드라마발레 한 편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반증하듯 국내에 수많은 발레단이 존재하지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전막 발레를 올릴 수 있는 발레단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이 유일할 정도이다. 요즘에는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 <허난설헌-수월경화>, <호이 랑>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발레 춘향> 등 우리나라 고전이나 인물을 창작 전막발레를 개발하여 종종 무대에 올리면서 대중들에게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도 익숙한 <백조의 호수>, <지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비하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학습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서양에서 우리의 창극을 그들이 배워서 무대에 올린다고 가정하면 이는 비교의 대상을 넘어 우리나라 발레의 수준이 결코 부족하다 말할 수 없다. 요점은 이 작품을 그것들과 비교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 작품이 가진 안중근의 영웅적인 서사가 우리 DNA를 자극하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발레단 무용수의 조합이 큰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면에서는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던 단원들과의 호흡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의 부족함에서 오는 단점으로 작용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전발레의 익숙한 안무에서 벗어난 안무는 분명 새로운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과거 ‘창극’하면 떠오르던 인상은 거의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작품들만 수십 년째 반복적으로 공연을 하다시피 하니 고정된 인식으로 일부러 찾아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립창극단이 같은 작품을 장르가 다른 연출가, 해외 연출가에게 연출을 의뢰하여 탄생한 파격적인 작품은 단순 파격을 넘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창극’을 찾지 않던 젊은이들을 공연장을 찾게 하였다. 물론 일부 정극을 하던 분들에게서 불만도 있었다. 그렇다고 작품이 가진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예술가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학습된 지식’이 아닐까 싶다. 19세기 작품이 여전히 아직도 사랑받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만큼 예술적 진보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적 모티브에 새로운 우리만의 발레가 많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이 작품이 이번 한 번으로 사장되지 않고 조금씩 업그레이드되어 관객들이 먼저 찾고 싶어 하는 작품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그때 안중근 의사는 배우들의 땀과 관객의 큰 박수 소리에 천국에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티켓 가격은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이지만 백신 예방접종자에게는 20% 할인 혜택도 있다. 문의 및 예매는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콜센터(02-580-1300),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한국 영화관의 상징의 한 곳인 서울극장마저 이제 추억 속으로
한국 영화관의 상징의 한 곳인 서울극장마저 이제 추억 속으로
[서울문화인] 지금은 영화관하면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떠오르지만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영화관하면 많은 분들은 을지로의 대한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국도극장 그리고 종로의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허리우드 등을 떠올린다. 이들 극장은 바로 우리나라 영화관 전성기를 이끌며 한국영화계의 메카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영화관이기도 하다. 1990년 겨울 약속 때문에 종로3가 지하철을 나오니 지하철 출구부터 수많은 관객들이 운집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을 헤치고 상황을 확인하니 영화 ‘장군의 아들’이 단성사에서 6개월간 상영하면서 서울에서만 관객 60만 명을 동원(개봉 당시 관객동원 최고기록)하며 그것을 기념하던 행사였다. 90년대만 해도 흥행작을 보려면 그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암표도 등장했다. 이런 시스템으로 80년대 지방의 영화관은 대부분 개봉관에서 상영 이후 시간차를 두고 상영되어 많은 극장이 동시상영관으로 운영되어 두 편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이는 서울도 종로, 을지로 유서 깊은 영화관을 제외한 대부분 영화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90년대 영화관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이런 영화의 시스템은 80년대 홍콩 느와르와 허리우드의 액션영화들이 국내에서 큰 히트를 치면서 국내 영화보다는 이들 해외 영화를 수입하기 위한 국내 극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엄청 높은 가격으로 수입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영화잡지도 이 당시 큰 인기였다. 이처럼 해외 영화가 국내에서 큰 인기인데 비해 국내 영화는 스크린쿼터 제도로 그나마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물밑으로 스크린쿼터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이에 90년대 중반 우리 배우들은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대중들도 찬반양론이 팽배했다. 대중예술은 대중이 판단할 장르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들이 그만큼 홍콩이나 미국영화를 좋아한 것에는 한국 영화가 그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제는 당시 스크린쿼터제가 현재의 한국영화를 살려낸 만병통치약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한국영화계가 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까지 영화관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들 영화관들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같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등장하면서 단관이던 이들 극장도 각자의 생존을 모색하며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국도극장(1913년 개관)이 1999년 호텔로 변모를 시작으로, 스카라극장(1935년 개관)이 2005년에 폐관,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인 단성사(1907년 개관)는 2010년 리모델링 공사로 임시 휴관 이후 이제는 더 이상 극장 영업을 하지 않고 있으며, 허리우드(1969년 개관)은 2005년에 폐관, 지금은 노인 전용 극장으로 새로이 탈바꿈하였으며, 명보극장(1957년 개관) 또한 2008년 폐관, 현재는 (재)신영균 예술문화재단에서 ‘명보아트홀’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예술 공연과 ‘실버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피카디리극장은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를 거쳐 지금은 CGV직영(CGV 피카디리1958)점이 되었다.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근무하던 때 스카라극장에서는 그해 청룡영화상 후보작을 심사위원은 물론 일반인들도 참여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5년 11월 11일 문화재청이 스카라극장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문화재 등록하겠다는 예고를 했지만 한 달 뒤인 12월 6일 건물주가 갑작스레 건물을 철거하였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건물주가 스카라극장의 문화재 등록을 피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한 것이라 밝혔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 외에도 지역의 영화관도 하나둘 사라지고 50대인 나에게도 이젠 그 기억도 가물가물 추억인 된 가운데 그나마 충무로의 대한극장(1958년 개관)이 2000년, 멀티플렉스 설치를 위해 잠시 폐관하였다가, 2001년 12월 15일에 재개관하여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종로의 서울극장(세기극장(1964년 개관))을 1978년에 합동영화주식회사가 인수하고 1979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관, 2013년에는 ‘미래 문화유산’으로 선정)는 1989년부터 단관에서 국내 최초로 복합 멀티상영관을 도입하며 점차 총 11개의 상영관을 갖추며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자리매김하고 최근에는 고전 영화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하여 상설공연장까지 운영하고 있었으나 지난 7월 2일(금),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8월 31일(화)를 마지막으로 서울극장의 모든 영업을 종료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과거 영화 메카의 또 한 곳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종로 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 서울극장은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으로 활동했던 ‘합동영화사’의 故곽정환 회장이 1978년, 종로 세기극장을 인수하고 이름을 바꾸어 탄생시킨 극장으로 ‘합동영화사’는 1964년 영화 <주유천하>를 시작으로 247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한 한국의 역사 깊은 대표 영화제작사이기도 하다. 서울극장은 최근까지도 최신 개봉작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예술 영화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영화계는 코로나19로 인한 관객수 급감과 이로 인해 발생된 비대면 문화와 더불어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플랫폼의 약진 등의 생태 변화 속에 영화관의 경영악화가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 원인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자리하고 있는 전체적 환경과 과거 영화관의 현재 환경도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합동영화사는 “다시 뵙겠습니다!”라는 말로 비록 서울극장의 영업을 종료하지만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밝혔다. “고맙습니다.” 서울극장이 드리는 마지막 감사의 인사 8월 11일(수) ~ 8월31일(화) 3주간의 무료 상영회 개최! 40년 이상 종로의 문화중심지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던 서울극장이 오는 8월 31일 극장 영업 종료를 앞두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마지막 인사로,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진행한다. 8월 11일(수)부터 8월 31일(화)까지 3주간 진행 예정인 이 상영회는 하루 제한된 인원에게 선착순 무료 티켓을 제공한다. 라인업은 일반 개봉 영화와 하반기 개봉 예정인 프리미어 상영작, 그리고 그간 서울극장의 다양한 기획전에 상영 검토되다가 아쉽게 누락되었던 명작 영화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라인업에는 올 여름 텐트폴 영화들이 상영회 영화로 개봉일에 맞춰 예매 오픈 될 예정으로 최고의 기대작이자 류승완 감독의 1991년 소말리아 내전 생존기 <모가디슈>와 대한민국 탑배우 황정민이 납치되는 리얼리티 액션 스릴러 <인질> 등 8월 극장가 화제작들이 무료 상영회로 진행된다. 두 번째 라인업은 주로 2021년 하반기 개봉 예정인 4편의 상영작을 프리미어로 만나볼 수 있다. 남편의 죽음 후 맞이하게 되는 두 여자의 감정선을 유려하게 담아낸 수작 <사랑 후의 두 여자>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어 연출작이자 틸다 스윈튼의 열연이 돋보이는 <휴먼 보이스>가 상영 예정이다. 그리고 <아멜리에>를 이을 동화 같은 유럽발 로맨틱 코미디 <아웃 오브 마이 리그>와 2020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이자 까이에 뒤 시네마 TOP5에 이름을 올린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이 상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다양성 영화들은 시네필들을 위해 준비되었다. 세 번째 라인업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퇴색되지 않을 명작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그간 서울극장의 다양한 기획전에 상영 검토되다가 아쉽게 누락된 영화들로 제 67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실화 바탕의 스릴러 영화 <폭스캐처>, <결혼 이야기> 감독의 노아 바움백이 연출하고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주연으로 나선 매력적인 흑백 청춘영화 <프란시스 하>가 상영회의 문을 연다. ‘가족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힐링 가족 영화 <걸어도 걸어도>, ‘여름’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잔혹 동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가수 ‘로드리게즈’의 정체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 아름다운 자연과 삶에 관한 성찰을 담아낸 수작 <흐르는 강물처럼> 외에도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라인업에 올랐다. 또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용서와 사랑에 관한 흑백영화인 <프란츠>, 퐁네프 다리 위에서 서로를 치유해가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퐁네프의 연인들>, 아름다운 색감과 감각적인 연출로 수많은 영화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몽상가들>, 영상, 스토리, 음악, 연기 모든 것이 완벽한 천재적 작품이라 불리우는 <미스터 노바디: 감독판>, 이탈리아 거장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으로 2013년 ‘올해의 영화 TOP1’으로 선정되었던 <홀리 모터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숨은 명작 스릴러 <서스피션> 외에도 ‘컬트 영화의 제왕’ 데이빗 린치 감독의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관한 탐구를 그린 <로스트 하이웨이>도 상영된다. 스페셜 라인업으로 서울극장의 역사를 함께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아 합동영화사 작품 <쥐띠부인>이 특별상영된다. 1972년 제작된 <쥐띠부인>은 합동영화사와 서울극장의 설립자인 故곽정환 회장이 연출하고 現고은아 회장이 주연한 작품으로 대종상 건전작품상, 각본상, 여우조연상(도금봉), 조명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고맙습니다 상영회’는 상영회 기간 내 서울극장 현장 발권 티켓 분에 한하여 평일 100명 주말 200명에게 선착순 무료 티켓을 제공한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극장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체코 마리오네트’ 인형 극장
[전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체코 마리오네트’ 인형 극장
관절마다 매달린 끈을 이용한 인간의 조종으로 ‘생명’을 얻는 인형, 마리오네트는 기원전 이집트나 그리스의 아이 무덤에 끈이 연결된 인형이 함께 묻혔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대 로마 시절의 기록에도 비슷한 형태의 인형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진흙을 구워 만든 ‘네브로스파스톤(Nevrospaston, 그리스어로 ‘끈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라는 종류의 인형이 있었다. 이것은 지금의 마리오네트와 매우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교의 입문 의식 등 올림포스의 신들을 숭배하는 의식에 인형 공연이 많이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서울문화인] 서울역사박물관이 체코 흐루딤인형극박물관과 협력하여 <나무 인형의 비밀–체코 마리오네트>(Secrets of Wooden Puppets–Czech Marionette) 국제교류전시를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지금의 마리오네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 때 이탈리아의 교회에서는 어린이 교육을 위한 공연에서 출발한다. ‘마리오네트’라는 이름도 성서 속 ‘동정녀 마리아(Mary)’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회의 공연은 마리오네트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마리오네트 공연은 교회 밖에서 활발해졌다. 세속에 나온 마리오네트 공연은 재미있었다. 가르침과 윤리는 벗어던졌다. 공연은 당시 유행하던 기사 문학이나 시, 민담 등을 소재로 이어졌다. 선정적인 내용도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이처럼 교회의 문턱을 넘은 마리오네트는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번졌다. 17세기 중반 영국을 거쳐 체코까지 전파되었다. 마리오네트 공연은 당시 유럽에 퍼져 있던 바로크 양식의 영향으로 마리오네트는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갔다. 프랑스에서는 ‘기뇰(Guignol)’이라는 이름의, 손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유명하다. 원래 기뇰은 마리오네트 인형극 주인공의 이름이었으나 명성이 높아지면서 끈 없이 ‘손으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특히 ‘마리오네트 오페라’가 발달,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비롯해 글루크나 하이든, 레스피기의 곡들이 마리오네트 오페라 곡으로 만들어졌다. 음악가들은 마리오네트 오페라를 위해 따로 곡을 만들 정도였다. 시칠리아의 ‘오페라 데이 푸피’ 인형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19세기 초 민중 계급 사이에 마리오네트를 이용한 공연 ‘오페라 데이 푸피(L’Opera deî Pupi)’가 생겨났다. 이 인형극 속의 대화는 대부분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술사(Puppeteer)가 만들어낸 것으로 기사 문학, 이탈리아의 시, 그리고 성인이나 악명 높은 도둑에 관한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하면서 공연장은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모여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오페라 데이 푸피는 지역 사람들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높였다. 시칠리아에서는 이 인형극의 전통과 기예를 세대를 통해 전수하고 발전시키면서 유네스코는 시칠리아의 오페라 데이 푸피를 2001년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어 2008년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지금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Palermo) 인형극장이 오페라 데이 푸피 공연으로 유명하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마리오네트 전용 극장을 마련하고 꾸준히 인형극 공연을 하고 있다. 마리오네트를 처음 선보였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높은 수준의 공연을 보이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마리오네트의 본고장으로 체코(Czech)를 꼽는다. 체코에 간 여행자가 염두에 두는 대표적인 기념품이 마리오네트라고 하더라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많은 장인들이 마리오네트를 만들고 있는 곳이 체코이기도 하다. 체코 인형극의 역사 체코에서 1770년대부터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1779년 얀 코페츠키(Jan Kopecký)의 공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1780년대에는 유명한 인형 제작자와 인형술사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18세기 중후반, 체코의 마리오네트 극장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당시 체코에는 200명이 넘는 마리오네트 인형술사들이 있었다. 마리오네트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인형술사들은 자식들에게 그들의 기예를 전해주었다. 19세기 말 낭만주의가 쇠락하고 산업화의 거센 물결이 일면서 체코의 마리오네트는 한때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아마추어들을 중심으로 마리오네트 운동이 부활했다. 도시 곳곳에서 마리오네트 공연이 펼쳐졌다. 마리오네트는 아이들을 위한 예술 교육으로도 활용되었다. 어느새 체코에서 마리오네트는 체코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체코의 정체성과 언어, 문화를 지켜낸 체코의 마리오네트는 다른 나라의 인형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열정적인 공연문화를 탄생시켰다.민중적 정서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체코의 마리오네트 문화는 20세기 요세프 스쿠파(Josef Skupa, 1892~1957)와 이지 트릉카(Jiri Trnka, 1912~1969)라는 뛰어난 두 아티스트의 활약과 함께 또 다시 꽃을 피운다. 스쿠파는 배우와 감독, 작가로 활동하면서 체코 마리오네트 공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특히 1920년대에 스쿠파가 만든 〈스페이블과 후르비네크(Spable &Hurvinek)〉라는 인형극 시리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TV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체코 프라하(Prague)에는 스페이블과 후르비네크 극장이, 스쿠파가 활동하던 필젠(Pilsen) 지역에는 스페이블과 후르비네크 기념상이 있다. 이후, 스쿠파의 제자 이지 트릉카는 스승에 뒤이어 체코 마리오네트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특히 인형이 움직이는 동작 하나씩을 프레임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퍼핏 애니메이션(Puppet Animation)’이라는 장르를 단단히 구축했다. ‘퍼핏 애니메이션’은 1930년대에 체코에서 만들어진 기법으로 트릉카가 이를 예술적 경지에 이르게 하면서 ‘퍼핏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란 영예로운 이름을 얻었다. 민족주의와 더불어 한층 발전했던 체코의 마리오네트는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아오던 체코는 30년 전쟁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지방으로 전락하면서 체코인들에게 독일어 사용을 강요하던 시기에는 체코어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2차 대전 때 독일의 나치 점령하에서 예술가적 감수성과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채 시대마다 저항하며, 민중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중반에도 체코에서는 3,000여 개의 인형극 극단이 활동했고 수많은 감독, 무대 디자이너 등이 탄생했을 정도로 인형극이 성행하였다. 더불어 중산층 이상의 대부분의 가정에서도 인형극장을 직접 구비해둘 정도로 가정 내에서도 인형극을 즐겼다. 체코에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던 20세기 후반 이후 극단 운영에 대한 법적 제재가 완화되면서 체코 내 다양한 인형극장이 설립되면서 드라크 극장의 ‘금발공주’, 리베레츠 나이브 극장의 ‘게으른 라르스’ 등 새로운 공연들도 탄생하였고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현재 체코에는 10곳의 전문 인형극장이 있으며, 체코 각 도시에서 인형극 축제가 매년 열리는 등 체코인들의 큰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200여 년을 지켜 온 체코의 마리오네트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참고 마리오네트(Marionette)-민중의 열정으로 활짝 꽃핀 문화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유만찬, 김진경) <나무 인형의 비밀–체코 마리오네트> 전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의 인형극을 주제로 하여 무려 156점의 인형 및 인형극 무대 배경, 인형극 실황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1. 체코 인형극의 시작과 발전 2. 20세기 초·중반 체코 인형극의 부흥 3. 현대의 체코 인형극으로 나뉘어진다. 전시에서는 체코 인형극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형극의 한 장면을 정지해 놓은 듯한 생동감 넘치게 구성했으며 전시실 곳곳에 손가락 인형, 마리오네트 인형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과 인형극에 쓰이는 음향 기구 등을 배치하여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 볼 수 있다. ‘카슈파레크(Kašpárek, 다른 유럽 지역의 인형극에서도 등장하는 인형으로 방울이 달린 광대 모자, 빨간 옷을 입은 것이 특징이다. 19세기의 전설적인 체코 인형 조종사 마테이 코페츠키(Matěj Kopecký)가 만들어낸 모습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가장 전형적인 체코 인형극의 대표 주인공으로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시의 마리오네트들은 18세기 유랑 인형극단들이 마차에 인형을 가득 싣고 도시마다 이동하며 다니면서 공연하던 당시의 마차를 재현하였다. 또한, 당시의 유랑 극단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 직접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로비 전시실에서는 체코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마리오네트 및 손가락 인형으로 어린이를 위한 5편의 인형극 영상이 상영되어 어린이들이 인형극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8월 29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 방침에 따라 별도 공지 시까지 사전예약관람제로 운영되며, 전시기간 가족이 함께 직접 인형극장을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어린이 워크북이 전시실을 방문한 가족을 대상으로 평일 선착순 20명, 주말 40명에게 배포할 예정이며, 전시기간 동안 유아 단체를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되니 확인 후 방문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허중학 기자]
[전시] 당신의 기억 속에 여의도는 어떻게 남아있나요?
[전시] 당신의 기억 속에 여의도는 어떻게 남아있나요?
[서울문화인] 중년의 두 여성분이 과거 여의도를 회상하며 말씀을 나누신다. 그 분들과 비슷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어 “혹시 서울분이세요?”라고 여쭤보니 “아뇨 저희는 부산사람입니다.” 그러나 나 또한 서울사람이 아니지만 여의도를 기억하는 것은 비슷했다. 여의도는 정치, 금융, 방송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여의도는 서울의 어느 곳 보다 대한민국 근대사와 함께 해온 곳이다. 여의도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무엇보다 여의도 광장의 기억이다. 남북한의 국사력 경쟁 속에 우리의 국방력을 알리기 위한 80년대 국군의 날 행사,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국풍81과 같은 관제행사, 전후 세대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6.25전쟁의 상처를 깊게 각인시킨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1983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 행사(1984년), 첫 대통령직선제로 자신들의 세를 알리는데 활용했던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1987년)을 비롯하여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관제 집회가 열리던 여의도광장은 대통령 유세와 시민 주도의 시위가 줄을 이었다. 이처럼 여의도는 때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때로는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광장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이는 7~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거의 비슷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당시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전 국민 누구나 방송을 통해서 함께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95년 서울 민선시장이 부임하며 국가권력의 상징이었던 여의도광장은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더 이상 정부나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의 이미지는 사라지게 되었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 이상 정치적 목소리 보다는 여의도 광장에서 수많은 연인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던 추억마저 가물가물해져갔다. 198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5·16광장의 이름을 ‘여의도광장’으로 바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이 재정비되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하였다. 여의도 동쪽 끝에 당시 동양 최고의 63빌딩이 완성되어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선보였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반세기종합전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展 바로 오랜 기억 속에 여의도를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전시이다. 전시는 후리의 그 기억을 넘어 조선시대 목양장에서부터 비행장, 정치, 금융의 중심지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함께해 온 여의도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이용가치가 적은 땅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윤중제 착공과 함께 강력한 국가 주도의 개발로 신개념의 도시가 계획되고 실현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완결된 섬 여의도는 어떻게 정치, 방송,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전시는 18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여의도 관련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여의도의 모습, 일제강점기 항공교통의 중심지였던 비행장, 해방 이후 1960년대 윤중제 축조를 시작으로 빌딩숲에 이르기까지 변천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보통 이런 전시는 당시의 기록물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두 개의 영상은 이 전시가 아니 우리가 기억하는 여의도를 짧은 시간에 알려준다. 바로 전시장을 들어서면 전시장 바닥에는 그려낸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화과정을 여의도 영상과 전시장을 나설 때 그려낸 여의도 광장의 변천사를 그려낸 영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전시장 깊이 더 들어가 보자. 1부 조선시대의 여의도 1부에서는 조선시대 여의도에 대한 모습을 기록한 자료를 통해 당시 여의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또는 ‘나의주羅衣洲’라고 불렸으며 인접한 율도栗島(현 밤섬)과 크게 구분 짓지 않았다. 『세종실록』 등에서는 여의도를 가축을 기르는 섬이다.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압구정狎鷗亭’은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 조선전기 문신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압구정기狎鷗亭記」과 서거정(徐居正, 1420~1488)「압구정부狎鷗亭賦」에서는 당시 여의도에 있던 압구정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사숙재집私淑齋集』,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에서 여의도의 모습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2부 비행장이 된 여의도 2부에서는 여의도에 비행장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 여의도 비행장의 항공노선, 안창남과 손기정 이야기, 해방 이후의 이범석과 여의도 비행장 그리고 여의도 국제공항에 관한 내용이다. 1916년 일제는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였다. 그 중 일부를 활주로와 격납고를 세워 간이비행장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1929년에 경성비행장이 되고 군용과 민간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 되었다. 여의도 비행장은 만주와 일본 가운데 위치하여 항공교통의 요지였다. 처음에는 우편비행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여객항공으로 발전하였다. 1930년대에는 도쿄-경성-다렌을 잇는 항공노선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항공노선발전은 일제의 만주침략, 만주국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의도 비행장에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의도 비행장을 무대로 1922년 고국방문비행을 한 안창남(安昌男 1900~1930),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孫基禎 1912~2002) 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광복 직후 1945년 8월 18일 한국광복군 이범석과 장준하, 노능서, 김준엽은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한 이야기 등 여의도 비행장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국내에도 미리 광복군이 진입해 있었더라면 여의도에서 맥없이 우리가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김준엽, 『장정』중에서 3부 여의도 개발시대 3부에서는 1968년 여의도의 윤중제 공사에서부터 택지가 조성되어 각종 시설이 입주하여 빌딩숲을 이루고 한강재정비에 이르기까지 여의도의 현대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1960년대 서울은 인구과밀화, 주택, 급수난 등으로 도심부를 확장해야 했다. 한강 홍수로 인한 침수피해를 계기로 여의도 개발이 중점과제로 떠올랐다. 서울시장 김현옥(재임 1966.3~1970.4)은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택지를 개발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윤중제를 공사하였다. 여의도 도시계획에 대한 초안은 건축가 김수근이 계획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광장 조성을 지시하여 당초 계획에서 변화가 생겼다. 이와 더불어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1970년 4월 8일)으로 김현옥 시장이 사임하고 양택식 시장이 부임하였다. 그는 여의도에 대규모 광장을 조성하고 택지 개발을 시작했다. 드넓은 여의도에는 공공기관 및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여의도는 빌딩숲이 되었다. 1981년 제24회 올림픽을 유치가 확정되면서 한강의 수질오염과 치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수 처리장, 저수로 정비사업 등이 시행되었고 둔치가 조성되었으며 한강공원이 개장되었다. 2008년에는 여의도를 특화 사업지구로 지정하여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4부 여의도의 건물들 오래전부터 여의도가 가지는 이미지는 역시 정치, 금융, 방송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다. 여의도가 이러한 수식어가 생기게 된 데에는 여의도에 대표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4부에서는 국회의사당, 한국거래소, KBS, MBC, SBS, 63빌딩의 건립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1971년에 완공된 시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중앙공급식 난방으로 도시가스, 엘리베이터라는 최신식 시설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접근성이 좋지 못하고 상가도 없어 인기가 없었으나 초·중·고등학교 설립으로 특수학군이 설정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민간업자들이 적극 참여하여 삼익, 은하, 한양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1976년 KBS가 여의도에 신사옥을 건설한 이후 1980년 TBS, 1983년 MBC가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여의도에는 국제방송센터가 건립되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KBS는 국제신호를 제작해 세계 방송기관에 공급하는 역할과 함께 국제방송센터를 설치·운영 하였다. 1990년 SBS도 여의도에서 개국하며 여의도는 한국 방송산업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2014년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로 SBS와 MBC가 이전하며 현재 여의도에는 KBS만이 남아 한국방송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의 중심은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동했다. 1978년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여의도 화재보험빌딩으로 이전했고, 1920년대 이래 명동에 위치했던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도 1979년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며 여의도 금융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 중반 경제 호황으로 성장한 증권사들은 거래 업무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빠른 전산거래를 위해 여의도 거래소 내 전산시스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해 여의도로 이전 하였다. 5부 시민의 광장으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5.16 광장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1971년 제23회 국군의 날 행사 개최되었다. 이후 반공행사, 교련대회, 국풍81 등 관제행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73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 1984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 등의 행사로 점점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 각종 시민대회 개최 등을 통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광장으로 바뀌어 갔다. 여의도 광장은 1997년에 조순 시장의 공원 추진화를 통해 1999년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고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세계 최장 생방송 기간은 ‘138일 453시간 45분’으로, 1983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기록돼 있다. 1983년 6월 30일 밤 1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이 나간 이후 KBS는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로 뒤덮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총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는데, 6·25전쟁(38.8%)과 1·4후퇴(26.9%)때 헤어진 형제자매(50.1%)를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프로그램 관련 2만 522건의 기록물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시의 시작이 여의도의 변화상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면 전시의 마지막은 여의도 광장의 변화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전시를 마치고 있다. 21세기 20대들은 여의도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정치, 여의도 한강공원, 윤중로의 벚꽃, 불꽃놀이, ... 그 기억은 현대에는 개개인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 20세기 근대화시기 여의도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100년간의 여의도 역사, 그 속에 우리의 기억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9월 26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