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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첫 장욱진 대규모 회고전 선보여
국립현대미술관 첫 장욱진 대규모 회고전 선보여
[서울문화인] 거꾸로 서 있는 집, 작품 한가운데 사람과 강아지가 둥둥 떠다니며, 나무 아래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구성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격적인 구도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은 화폭에 그려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강아지, 순박한 농민을 닮은 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까치는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 나무위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 동물들은 한없이 귀엽고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족이다. 어쩌면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행복한 가족을 극대화하는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은 마냥 동화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양적 철학을 아주 간결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비록 작은 화폭에 간결하게 그려내었지만 그 어느 화가의 대형 작품보다 큰 철학을 품고 있다.그래서인가 장욱진의 그림은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동화’같은 감정과 함께 ‘매우 철학적이다’는 감정이 공존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지난 14일부터 ‘장욱진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장욱진張相鎭(1917-1990)은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이다. 그러나 앞서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깊이 있게 소개한 적이 있었으나, 김환기와 장욱진을 회고하는 전시는 기억에 없다. 참고로 김환기의 회고전은 현재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장욱진은 현재 알려진 작품들만 헤아려도 730여 점의 유화와 300여 점의 먹그림, 그리고 그는 매직펜 그림, 도자기 그림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나무와 까치, 해와 달, 집, 가족 등 몇 가지 제한된 모티프만을 평생에 걸쳐 그렸다. 그런 탓에 장욱진에게는 늘 “동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앵포르멜, 단색조 회화, 민중미술 등 거대 담론이 오가며 100호 이상의 대형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미술계에서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까치나 가족이란 주제를 일관되게 그렸던 장욱진의 10호 미만 작품들은 “작고 예쁜 그림”으로 치부되며 온전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만약 이 그림이 대형 작품으로 그려졌다면 앞서 느낀 ‘동심 가득한 감정’과 ‘동양적 철학’을 오히려 강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하여 소개하는 전시로 전시에는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모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장욱진은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다. 이렇듯 지속적이고 일관된 그의 창작 태도는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장욱진은 60여 년 화업 인생 동안 제한된 몇 가지 소재들을 반복해서 그렸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전시 제목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말한 장욱진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전시실 1층 1부와 4부에서는 초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연대별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2층 2부에서는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되는 소재들을 ‘내용’과 ‘형식’으로 접근하여 장욱진 그림을 보다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층 3부에서는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에 대해 면밀히 다루고 있다. 1부, 첫 번째 고백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으로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반월·목半月·木>(1963),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통해 초기 화풍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다. 완숙한 장욱진 작품의 전형(典型)이 완성되기까지 장욱진만의 독창적인 한국적 모더니즘이 창출되는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들을 통해 ‘신사실파’ 이 외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단체들의 활동 이력과 전람회 출품 등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과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의 오류를 바로잡은 연구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2부는 두 번째 고백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이다.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소재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 가운데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인 ‘까치’,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고 있는 존재 ‘해와 달’을 선정해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의 의미와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의 ‘발상과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이 최초로 전시되며, 그가 처음 그린 표지화 초안과 더불어 한국 전쟁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렸던 『국제신보』 「새울림」 (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 전체가 최초로 공개되고 있다. 3부는 세 번째 고백 <진眞.진眞.묘妙>이다. 이 공간에서는 장욱진이 남긴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보고 있다. 장욱진과 불교와의 인연은 청년기부터 여러 일화가 언급되지만 실제로 불교 주제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장욱진은 경전의 종교적 도상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과 요소들을 강조하고 변용했다. 장욱진이 최초의 불교 주제 회화로 아내의 초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장욱진에게 ‘가족’이란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전시에는 <진진묘>(1970)를 시작으로 해학성이 돋보이는 <심우도>(1979), <무제>(1979) 등과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최근 일본에서 발굴된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4부, 네 번째 고백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그의 노년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 공간에서는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수묵채색화 같은 유화 및 특유의 비현실적 화면 구성 등이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 대신 얇아진 색층이 등장하면서, 조형성이 강했던 졸박한 반추상에서 표현성을 가미한 담채풍의 담졸(淡拙)한 양식으로 변화가 본격화된다. <나무와 가족>(1982), <닭과 아이>(1990) 등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긴 듯한 말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장욱진 그림의 주요한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지속성’과 ‘일관성’을 꼽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둘이 무리 없이 일체體를 이루는 경우는 장욱진 외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분명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장욱진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도상, 이미지를 관찰하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을 도상으로 표현하는 디지털 기반 참여형 워크숍 <나의 진지한 고백>(현장 및 온라인, 상시 참여)과 장욱진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보는 워크숍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이 진행된다. 더불어 성인을 위한 작품 감상프로그램이 매일 3회차(12시, 14시, 16시) 진행된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내년 2월 12일(월)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리나라 16번째 세계유산
[문화재]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리나라 16번째 세계유산
[서울문화인]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지난 9월 10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9.10.~9.25.)에서 현지 시간으로 9월 17일 오후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7개 고분군은 ▲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이다. 이번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는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위 원회에서는 가야고분군의 등재가 결정되면서 여러 위원국의 지지와 축하가 이어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6건의 세계유산(문화 14건, 자연 2건)을 보유하게 되었다. ‘가야고분군’은 지난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2021년 1월 유네스코로 신청서가 제출되었으며,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의 현지실사 등 심사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등재 권고’의견을 받으면서 이번 9월 17일에 실제 등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한 편,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를 결정하면서 ▲ 구성요소(7개 고분군) 내 민간소유 부지를 확보하여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 유산과 완충구역, 특히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사이로 난 도로로 인한 영향을 완화하도록 하고, ▲ 구성요소(7개 고분군) 전 지역에 대한 홍보 전략 개발과 통합 점검(모니터링) 체계 구축, 지역공동체 참여 확대에 대한 사항을 권고하였다. [허중학 기자]
[전시] 화려하기가 으뜸인 조선의 공주·옹주가 입었던 활옷(혼례복)을 만나다.
[전시] 화려하기가 으뜸인 조선의 공주·옹주가 입었던 활옷(혼례복)을 만나다.
[서울문화인] 진한 붉은 비단 위에 자수 등 아름다운 장식이 더해진 활옷은 과거 공주, 옹주, 왕자의 부인 등이 입었던 혼례복으로, 양질의 염색기술과 수준 높은 왕실 자수로 제작된 만큼 의례복 중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옷이다. ‘활옷’은 민간에서 내려온 용어로 조선 전기 국가기록물에는 긴 홍색의 옷이라는 뜻의 ‘홍장삼(紅長衫)’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활옷은 고유 복식의 전통을 이은 긴 겉옷으로, 치마와 저고리 등 여러 받침옷 위에 착용하는 대표적인 조선왕실의 여성 혼례복이다. ‘활옷’은 사치를 배격했던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화려한 자수, 가장 진한 붉은 빛깔인 대홍(大紅)의 염색, 아름다운 금박 기법 등 많은 노력을 들여 제작되어 화려하기가 으뜸이다. 또한, 예로부터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절차부터 물품과 입는 옷까지 세세히 차별을 두었지만 혼례를 치르는 주인공의 삶이 행복하게 바라는 마음은 신분을 넘어 혼례를 축복하는 의미를 가득 담아 왕실뿐 아니라 민간까지도 함께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한 의복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왕실 여성들의 활옷과 이와 관련 유물까지 총 11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시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순조의 둘째 딸이 입었던 ‘복온공주 활옷’을 비롯하여 국내에 전하는 활옷 3점과 미국 필드 박물관(Field Museum), 브루클린 박물관(Brooklyn Museum), 클리블랜드 미술관(The Cleveland Museum of Art),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활옷을 비롯한 국외소장 활옷 6점 등 조선왕실 활옷의 특징을 잘 간직한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특히 ‘복온공주 활옷’(1830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은 국내외에 현존하는 총 50여 점의 활옷 중 유일하게 연대와 착용자가 알려진 것으로, 조선왕실 활옷의 기준작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LACMA) 소장 ‘궁중활옷’은 방탄소년단 알엠(RM)의 후원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국내로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쳤으며, 돌아가기 전 국내에서 최초 전시하는 유물이다. 이 외에도 의례에 대한 설명, 활옷 제작에 관한 문화를 다양한 유물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조선왕실 혼례 절차 중 가장 중요한 동뢰연(同牢宴)을 재현한 공간도 준비되어 있어 활옷 문화 전체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 긴 홍색의 옷, 홍장삼(紅長衫)과 활옷, ▲ 가례(嘉禮), 아름다운 왕실의 혼례, ▲ 공주, 궁을 떠나다 의 3개 세부 주제를 통해 왕실 여성들의 의례복, 혼례복과 그에 관한 왕실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왕비, 왕세자빈의 육례(六禮)와 비교하여 간소한 절차로 치렀던 공주, 옹주의 사례(四禮)와 이 중 활옷을 착용했던 동뢰를 각종 문헌과 혼례 물품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유일하게 현존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대형 왕실 ‘교배석(交拜席)’을 영상으로 선보여 왕실 혼례 핵심 공간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활옷의 자수 무늬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인 총 6점의 국내외 활옷과 함께 민간 혼례에서 착용되었던 사진자료 등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 육례 :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의 혼례 절차. 납채-납징-고기-책례-친영-동뢰 * 사례 : 공주, 옹주, 군부인(왕자의 배우자)의 혼례 절차. 육례 중 고기와 책례가 생략됨 * 동뢰 : 조선왕실 혼례의 맨 마지막 절차로 음식(牢, 희생)을 함께 나눔으로써 부부가 된다는 의미 * 교배석 : 동뢰 때 신랑, 신부가 맞절하며 식을 시작하는 교배례(交拜禮)를 위해 설치하는 자리 2부에서는 ‘여러 손길로 정성스레 만든 활옷’에서는 상의원(尙衣院) 등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온갖 재료를 조달하고 각 재질이나 작업에 따라 세분화되어 완성되는 활옷의 제작과정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의 보존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활옷 등에 활용되었던 순조의 셋째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년) 홍장삼 자수본(1837년)’은 조선 왕실 자수의 섬세함과 우수함을 증명해 주는 유물들로서 완성된 활옷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수놓을 도안을 종이에 먹으로 그려 놓은 이 자수본은 당시 화원(畫員)이 담당하였다. 한편, 특별전시 기간 중에는 활옷의 역사, 제작 방법 등에 대해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는 ‘왕실문화 심층탐구 강연’(성인 대상, 9.20, 10.4.~10.25 중 매주 수요일, 총 5회)과 ‘공주의 웨딩드레스 활옷’(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 대상, 9.22. ~ 12.8. 매주 금요일, 총 9회) 체험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전통 공예 현대적 조형으로 확장되다.  특별전
[전시] 전통 공예 현대적 조형으로 확장되다. 특별전
[서울문화인]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이 우리의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확장하여 선보이는 특별전 <공예 다이얼로그(Dialogue)>를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공예 다이얼로그>전은 전승 장인과 현대공예 작가는 물론 화가와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층위에서 공예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전시로 금박, 분청, 채화 3개 분야에서 사물의 탐구를 통해 공예의 조형적 확장을 모색하는 6인(팀), 영원불멸의 빛을 새기는 ‘금박’(장연순×김기호), 산수를 담아내는 화폭으로서의 ‘분청’(이강효×김혜련), 피어나는 생명을 상징하는 ‘채화’(황수로×궁중채화서울랩)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 없이 다양한 조형성으로 공예의 외연 확장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먼저 현대 섬유예술가 장연순과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가 말하는 ‘금박, 빛을 새기다’에서는 <중심에 이르는 길Ⅲ>과 <천상열차분야지도> 연작을 선보인다. 이들은 각각 산업용 테플론 메시와 전통 직물에 금박을 입혀 그들이 추구하는 고유한 정신적 질서를 기하학적 도형과 천문으로 형상화했다. 금박은 예로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꽃 장식에서부터 백제 무령왕비의 목제 베개와 발받침, 가야의 고리자루 큰 칼, 신라·통일신라의 허리띠와 ‘화조도를 새긴 장식물(선각단화쌍조문금박, 線刻團華雙鳥文金箔)’, 고려의 등롱, 조선의 병풍, 초상화, 불화, 불상, 단청, 현판, 투구 등에 이르기까지 주로 왕실의 위엄과 종교의 신성함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장연순(1950~)은 모시, 삼베, 아바카 등 섬유 재료에 대한 집요한 실험과 탐구에 천착해 온 섬유예술가로 그는 최근 ‘금박’과 테플론 코팅을 한 유리섬유인 ‘테플론 메시’에 주목해, 동아시아 철학의 본질을 순수조형으로 표현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해서 덧입힌 순금박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기호(1968~)는 조선 철종 때부터 대대로 금박장 가업을 잇는 5대손으로,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금박의 전통기술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영역이나 기물에 적용될 수 있도록 연구하며, 현재 서울 북촌의 ‘금박연’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어 옹기와 분청 기법을 결합해 작업하는 이강효와 분청의 문양을 탐구하는 김혜련이 말하는 ‘분청, 산수를 담다’에서는 분청을 이용해 각각 <분청산수>와 <예술과 암호-분청> 연작을 제작했다. 분청사기는 회청색 바탕흙 위에 백토로 분장한 뒤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의 한 종류이다.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활발히 제작되었다가 자취를 감추었으나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오늘날 현대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자 탐구 대상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강효(1961~)는 홍익대학교 공예과에서 도자를 전공한 뒤 울산의 황말수 장인에게 옹기 기술을 배웠다. 사람 키를 넘는 대형 옹기 표면에 사물놀이 가락에 맞춰 화장토와 산화철을 흩뿌리고 쏟아붓는 <분청 퍼포먼스>로도 해외에 잘 알려진 도예가이다. 전통 옹기와 분청 기법을 결합한 그의 작품은 분청 특유의 우연성, 회화성이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마음에 떠오르는 자연의 형상인 산, 바람, 물 등을 거대한 산수 기형에 그려냈다. 김혜련(1964~)은 국내외 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며 고대 암각화나 선사 유물에서 발견되는 문양을 탐구하는 화가로 그는 분청에서 발견되는 도공들의 자유분방한 손길과 정신을 연상시키는 문양을 기호화하여 자신만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로 진화시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귀얄, 덤벙 기법 등 도기에 표현된 회화적 필치를 대형 캔버스에 먹으로 담아냈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 회화와 도자, 전통과 현대라는 장르와 시대의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분청에 깃든 회화적 가능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하여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보유자 황수로와 궁중채화의 현대화를 모색하는 궁중채화서울랩이 말하는 ‘채화, 꽃을 피우다’에서는 황수로와 궁중채화서울랩이 궁중채화의 원형을 재현한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과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수목(神樹木)>을 소개하고 있다. 채화(綵花)는 ‘비단 등으로 만든 꽃’을 의미하며 주로 궁중의 물품이나 행사를 장식했다. 정조19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하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11,919송이의 채화가 소용될 만큼 조선시대 궁중에서 열린 잔치는 꽃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시에 참여한 황수로(1935~)는 100여 년간 단절된 우리의 채화를 세상에 알린 장인으로,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의 작업은 채화 유물이 전무한 실정에서 옛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채화를 오늘날로 소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궁중채화서울랩은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이수자 최성우가 궁중채화의 현대적 확장을 실험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로 이번 전시에는 최성우(총괄), 유은정·이윤정(금속), 김우현·신유나·신혜연·장준호·조혜진(섬유), 오수(이끼), 최범석(설치)이 참여해 붉은색과 흰색의 매화가 함께 뒤엉킨 연리지로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수목을 탄생시켰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반평생 만들어온 매듭 작품, 박물관에 기증한 매듭공예가 이부자
[전시] 반평생 만들어온 매듭 작품, 박물관에 기증한 매듭공예가 이부자
“실 한 올부터 직접 염색을 하고 그 실로 끈을 엮고, 맺고 조이며 힘들게 만든 것이라 가족들에게도 단 한 점도 주지 않았다” [서울문화인] 여든에 접어든 매듭공예가 이부자(1944년) 선생님이 반평생 고된 노동으로 완성하여 하나하나 자식과 같은 매듭 작품 144점을 지난 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매듭공예는 단순 매듭을 맺고, 그것을 길게 늘어뜨리는 ‘술’을 만들어 연결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매듭실을 용도에 따라 염색하고 때로는 매듭에 들어가는 자수까지 직접해야하는 아주 힘든 과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매듭의 역사는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특히 어떤 대상에 연결되어 주인공의 품격을 높이는 빛나는 조연으로서 생활용품에서부터 노리개 같은 장신구, 상여의 유소 장식 등 의례에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매듭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매듭장’과 ‘다회장(매듭의 재료인 끈목을 만드는 장인)’은 주로 남성이었다고한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다회와 매듭은 서양의 복식이 유입되고 정착됨에 따라 제작과 수요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1970~80년대에는 여성들의 규방공예가 유행하면서 매듭이 다시 부흥, 수많은 매듭 강좌가 개설되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으로 ‘동양 매듭’이 유행하며 매듭 벽걸이 장식 등이 남대문시장,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많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부자 선생님이 전통매듭의 매력에 빠진 것 것처럼 현대에도 많은 매듭 공예가가 활동하고 있고 매듭 동호회도 늘어났고 매듭전문매장 등도 여전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매듭 모양이 종류는 약 30사지 정도로,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종류가 약간 다르며 명칭도 다르다고 한다. 그 이름도 기능적으로는 ‘도래매듭’, ‘삼발창매듭’ 등이 있고, 동이나 식물의 모양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장식적 매듭으로는 ‘생쪽매듭’, ‘국화매듭’, ‘잠자리매듭’, ‘나비매듭’ 등이 있다. “좋은 매듭은 구성이 예쁘게 되고 모든 게 맞아야 하지, 색상도 그렇고, 노리개 같으면 한복에 어울리게 나와야지 그러니까 모든 톤이 맞아야 해” 기증자 이부자가 매듭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인생의 중반부인 1980년대 초, 우연히 신문에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매듭장 故 김희진(1934~2021)의 매듭 강의 소식을 본 이부자는 호기심에 이를 찾아갔고 매력을 느껴 그날로 매듭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김희진의 한국매듭연구회에 들어가 매듭을 배우고, 스승 김희진의 작업을 도왔다. 여러 차례 작품 전시회에 출품하고, 전승공예대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총 7번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에는 개인전도 개최하였다. 이부자는 깐깐하다 싶을 만큼 꼼꼼한 스승에게 매듭을 배웠기에 그의 솜씨도 다져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전만해도 매듭이라는 걸 몰랐어, 그러다가 선생님이 인간문화재라니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등록했어, 정말 행운이었지” 그러면서 “솔직히 말해서 우리 선생님은 깐깐하셨어요, 그런 스승이니까 제자가 그 밑에서 보통으로 넘어가서는 안 돼, 그러니까 내 솜씨가 다져진 거예요” 깐깐한 선생님 못지않게 깐깐한 제자는 매듭뿐만 아니라 수를 놓고 바느질도 하며,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적으로 응용한 것까지 다양한 작품을 손으로 빚어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증받은 이부자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노리개이며, 모시발 발걸이 유소(길게 늘어뜨리는 형태의 장식물), 주머니, 선추, 목걸이, 묵주, 인로왕번(불교 의례용 깃발), 보자기 등 다양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적으로 응용한 것까지 이부자가 손으로 빚어낸 시간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증하던 날, 섭섭해 눈물이 흘렀지만…이제는 마음 편안 2023년 2월에서 3월, 세 차례에 걸쳐 기증자의 작품들을 박물관으로 모두 옮겨졌다. 본인의 반평생을 바친 작품들이 모두 나간 날, 기증자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함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작품들이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물관에서 내 매듭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을 보고 혹시 내 매듭 가운데 어떤 것을 가져가려고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해서 당시는 조금 섭섭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매듭공예가 이부자가 기증을 결심한 것은 기증 경험이 있는 천연염색 연구가 이병찬의 권유 덕분이었다. 이병찬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천연 염색과 관련된 자료 221점을 기증하여, 2013년에 기증 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를 개최한 바 있다. 귀중한 기증의 경험이 또 다른 귀중한 기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이부자 선생님의 기증 매듭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오는 11월 6일(월)까지 기획전시실 2에서 이부자 기증 특별전《매듭》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매듭공예가 이부자 선생님이 2023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매듭 작품을 비롯하여 160여 점의 자료로 전통 매듭의 세계를 선보인다. 또한, 박물관은 우리 전통 매듭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자 관람객이 다회를 짤 때 나는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감상해 보고, 직접 다회틀에서 끈을 짜보는 체험도 할 수 있게 진행하며, 매화·국화·잠자리 등 자연물의 형태를 본떠 만드는 매듭의 이름을 맞춰보는 게임 등도 진행한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800년 전 고려의 빛 담은 나전칠기 1점 국내로 돌아오다.
[문화재] 800년 전 고려의 빛 담은 나전칠기 1점 국내로 돌아오다.
[서울문화인] 국화넝쿨무늬와 모란넝쿨무늬가 흐트러짐 없이 배열된 나전칠기는 8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선에 따라 형형의 색을 발한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 이하 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새롭게 환수한 고려 나전칠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폭 33.0 x 18.5cm, 높이19.4cm)를 언론에 최초 공개하였다.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상자)’의 문화재적 가치는 희소성이다. 고려 나전칠기는 전 세계 약 22여 점으로, 완형은 약 15점이 남아있는 것을 파악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국내에는 총 6점이 남아있는데 고려 나전칠기 완형은 국내에 단 2점(경함 1점, 불자 1점) 뿐이다. 그러다 2020년 일본의 한 소장가로부터 환수하여 ‘나전합’이 1점 환수되어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 환수된 ‘나전합’은 모자합(母子盒, 하나의 큰 합 속에 여러 개 작은 합이 들어간 형태)의 자합(子盒) 중 하나로, 전 세계에 단 3점(미국, 일본)만이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상황에서(대영박물관에 손상된 1점, 국립중앙박물관에 일제강점기 출토품 2점이 불완전한 잔편으로 소장), 유일하게 매입 가능했던 개인 소장품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은 미국과 일본의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매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여 년 이상 보관되어 최근까지 일본에서조차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유물로 문양과 보존상태가 고려나전을 대표할 만큼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고려나전이라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재단의 일본 현지 협력망(네트워크)을 통해 최초로 확인되었고 이후 문화재청과 재단은 1년여 간의 치밀한 조사와 협상 끝에 지난 7월 마침내 환수에 성공했다. 환수를 위해 재단은 정밀조사를 위해 소장자와 오랜 기간 설득하여 올 4월 국내와 들여와 사전 조사를 진행, 고려나전임을 확인하였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며,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하는 등 고도의 정교함과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 라고도 일컬어진다. 특히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공예품으로 손꼽혀 왔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라고 기록했으며, <고려사(高麗史)>에도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송(宋), 요(遼) 등 외국에 보내는 선물 품목에 나전칠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볼 때 당시 주변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도경(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인종 1)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지은 책으로 당시 고려의 문물과 풍속 등을 기록한 자료이다.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무늬의 정교함은 고려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문양을 살펴보면,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連珠, 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하여 만든 무늬)무늬가 고루 사용되었다. 전체 면에 자개로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장식하고, 천판(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배치했으며, 외곽에는 약 1,670개의 연주무늬가 촘촘히 둘러져 있는 등 사용된 자개의 수가 약 4만5,000개에 달한다. 또한 C자형 금속선으로 국화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줄기를 표현했고, 두 선을 꼰 금속선으로 외곽 경계선을 표현했다. 국화꽃무늬는 중심원이 약 1.7mm이며, 꽃잎 하나의 크기는 약 2.5mm에 불과한데, 꽃잎 하나하나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세부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이처럼 자개로 국화 또는 모란무늬를 기물 전면에 빼곡하고 규칙적으로 배치한 점, 단선의 금속선으로 넝쿨 줄기를 묘사한 점, 매우 작게 오려낸 자개에 음각의 선을 그어 세부를 표현한 점 등은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8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전 본래의 무지개 빛깔과 광택이 살아있어 오색의 영롱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전과 금속선 등 장식 재료의 보존상태도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나전 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환수 과정에서 매입 전에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고려 나전칠기의 제작기법, 재료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밝혀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X선 촬영 등 과학적 조사를 통하여 정밀분석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목재에 직물을 입히고 칠을 한 목심저피칠기(木心苧被漆器)로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칠기 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허중학 기자]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Anish Kapoor》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Anish Kapoor》
[서울문화인] 검은색과 붉은색을 뒤집어쓴 커다란 바위가 건물의 외벽을 뚫고 박혀있다. 그리고 거기서 떨어져 나올 것 같은 파편을 그물망으로 씌어놓은 것 같다. 또 다른 공간에는 피가 튀고, 내장이 튀어나온 어느 끔찍한 사고현장을 입체적으로 박제해 놓은 같다. 이 기괴한 형태의 작품은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런던과 베니스에 거주 및 활동하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이다. “핵심은 무엇이 물질적이며 무엇이 그 물질을 초월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모든 작가가 하는 일의 본질이자 미술의 주요한 방법론적 지향점이다.” – 아니쉬 카푸어 국제갤러리가 지난 2016년 이후 7년 만에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을 K1, K2, K3 전 공간에 걸쳐 조각, 페인팅, 드로잉을 망라하는 작가의 다채로운 작업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갤러리 측에서는 먼저 갤러리 가장 안쪽에 위치한 K3로 안내했다. K3에는 네 점의 거대한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작품을 평가하기에 앞서 지구 반대편인 런던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옮겨왔을까 하는 쓸 때 없는 걱정마저 들게 하는 이 작품은 카푸어를 대표하는 색채인 진한 빨강과 검정을 입은 〈그림자(Shadow)〉와 〈섭취(Ingest)〉라는 제목의 조각 작품은 지질학적 조직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해부학적 내장의 모양새에 기대기도 한다. 작가는 각기 다른 성격의 건축 공간을 활용, 작품들 간의 새로운 대화의 제안이자 ‘신체’에 대한 집중력의 피력이다. 이는 카푸어의 작업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생(生)의 숭고한 격렬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K2에서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폭발적으로 표현주의적인 작가의 회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캔버스 위에 흩뿌려지거나 진이겨진 듯한 검은색과 붉은색이 가득한 입체 작품은 마치 유혈이 낭자한 내장을 연상시킨다. 이 회화 작품은 유화, 섬유유리 및 실리콘으로 제작돼 날것의 상태를 구현한 이 작품도 역시 ‘신체’의 다공성 경계에 대한 작가의 지속되는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제는 K1 바깥쪽 전시 공간에 설치된 과슈 작품을 통해 다소 절제된 방식으로 고찰된다. 회화에 비해 작은 크기로 제작되는 이 종이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서와 마찬가지의 시각적 혼돈 안에 문 내지는 창문을 암시하는 어떤 공(空)의 영역을 묘사한다. 창에 대한 기하학적 환영은 작가가 조각 및 회화 작업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장치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작품 안에 투영시켜 자신이 놓인 환경과 대면하는 신체의 불안정성을 인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전의 작품은 관객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면 K1의 안쪽 전시장에 놓인 검정 작품들은 블랙홀처럼 관객을 끌어들인다. 작품을 정면에서 응시하면 평면의 원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발길을 옮겨 보면 검은색 점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거나 아닌 평면이 아닌 반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마치 마법에 홀린 것 같다. 카푸어의 검은색이라는 이 특수한 안료는 빛을 99.9%을 흡수한다는 한다고 알려졌다. 이 안료가 개발되었을 때 카푸어는 이 안료에 대한 권리를 사들여 이 특수 안료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가졌다고 한다. 멀리서 기존과 너무나 대비되는 이 작품을 멀리서 바라봤을 때는 이것이 작품일까 싶었다. 그러다 막상 이 검은색 작품을 들여다보고는 그가 왜 그러한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비록 과학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검정으로 염색된 이 작품들은 아주 단순하고 원초적이지만 어쩌면 앞서 마주한 거칠고 괴기스런 작품들보다 더 잔혹하게 시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카푸어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한동안 그의 작품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 같다. 전시는 10월 22일(일)까지 진행된다. 국제갤러리 한옥에서 프레젠테이션 《동면 한옥》 더불어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는 양혜규 자각의 프레젠테이션 《동면 한옥》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휴면 상태에 있는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로 공간의 상태를 적극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제목의 ‘동면’이 주는 느낌을 전시 연출의 주된 방법론으로 채택,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을 가장 먼저 자극하는 것은 여러 한약재 냄새와 전기 양초들이 한옥의 어느 구석에는 조각이 방치된 듯 바닥에 늘어져 있다. 또 다른 구석에는 저장용 항아리나 가마니처럼 조각 작업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비교적 협소한 한옥 공간 내부에 높은 밀도로 전시된 작품들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제작 시기도 모두 상이하지만 이들 작품에는 마치 무속인의 다양한 무구들을 연상케 한다. 이 전시는 10월 8일(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작품 대부분 공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작품 대부분 공개
[서울문화인] 평면의 캔버스는 그의 자유로움 표현하기에 부족하였을까... 그가 빚어낸 도자기는 형태는 자유롭지만 그 도자기에 그려낸 그림의 소재도 인물, 동물, 물고기, 신화 평소 그가 캔버스에 그려낸 주제를 담아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누가 봐도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회에서와는 달리 도자 작품에는 해학이 넘쳐 보인다. 피카소는 도예 작업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으며 흙을 만지면서 느낀 창작의 자유가 유희적 도예의 근간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도자 작품은 유희적 도예로 분류하고 있다. 피카소는 일상의 기물을 예술로 전환하는 도예 작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노년에도 불구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9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청주 미술품수장센터(이하 청주관)가 2021년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112점 가운데 보존처리 문제로 5점이 제외된 107점을 공개하는 전시 《피카소 도예》를 열었다.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작품의 대규모 공개는 2021년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통해 피카소의 도자 90점이 공개된 이후 두 번째이다. 입체주의의 선구자이며 현대미술의 천재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무대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은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특히 도예는 화가로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룬 말년의 시기에 시도한 새로운 도전으로, 흙과 불의 특성에 매료되어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피카소가 처음 도자를 접하게 된 계기는 1906년 스페인 출신 도예가 파코 프란시스코 두리오(Paco Francisco Durrio, 1868-1940)를 만나면서다. 또한 그가 소개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도예 작품을 보고 도자의 매력을 발견하였다. 1929년에는 도예가 장 반 동겐(Jean Van Dongen, 1883-1970)과의 협업으로 화병을 제작하는 등 도예에 대한 호기심을 이어갔다. 그리고 1946년 휴가차 머문 지중해 연안의 도시 발로리스 마두라 공방을 방문하게 되면서 도예와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다. 피카소는 마두라 공방에서 도예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성실하게 배워나갔다. 화장토, 산화물, 유약 등의 도자 재료와 불과 흙의 특성 및 번조의 과정을 익혔으며, 공방에서 규칙적으로 생산되는 접시, 그릇, 화병 등에 대해 연구하며 도자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 초기에는 도자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접시 위에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으나 점차 도자의 모양을 변형하면서 피카소만의 조형적 특성을 형성하며, 도예에서 회화와 조각, 판화의 요소를 두루 발견할 수 있는 점은 피카소 도예의 묘미이다. 특히 피카소는 평소 즐겨 다루었던 주제를 도예에 자유롭게 응용했다. 여인과 동물, 신화와 투우, 사람들과 얼굴 등 각각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제의 상충적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을 즐겼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물은 피카소에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주제로 가장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었다. 이번 전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도 31점의 작품이 얼굴을 주제로 한 것이다. 피카소는 얼굴의 정면과 측면을 음각과 양각 기법, 나이프 각인 등으로 장식하거나, 백토와 적토의 접시와 화병에 단순하고 재치있게 묘사하며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주제를 확장했다. 1955년부터는 판화와 같이 원본을 기초로 여러점의 작품을 제작하는 에디션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07점은 모두 에디션 작품으로, 피카소가 사용한 기법과 재료를 바탕으로 원본을 복제한 에디션 피카소(edition picasso), 작품 원판을 석고틀로 제작하고 점토로 찍어내는 엉프렁트 오리지널(empriente originale), 리놀륨 판화에 새겨 만든 도장을 점토 위에 눌러 제작한 뿌앙송 오리지널 드 피카소(poinçon original de picasso) 등의 방식으로 에디션을 표기했다. 이런 에디션 제작은 도예의 대중성과 범용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랬던 피카소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이번 전시는 여인, 신화, 얼굴, 투우 등의 주제별로 구성되었으며, 1946년부터 프랑스 남부 도시 발로리스 등에서 꽃피운 피카소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따라가는 여정을 담아내었다. 또한, 전시 공간은 지난 전시와는 달리 도자 뒷면의 에디션 기록을 관람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이 외에도 당시 마두라 공방의 모습과 작업 환경을 담은 사진 등 아카이브 56점과 영화 1편(루치아노 엠메르, 피카소를 만나다, 2000)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2024년 1월 9일(화)까지 진행되며, 누리집(mmca.go.kr)을 통한 예약제로 운영된다. 한편, 청주관 외벽과 로비에는 MMCA 청주프로젝트로 ‘미래의 가상 도시’ 담아낸 안성석 작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안성석: 모두의 안녕을 위해》이 진행되고 있으며, 청주관 2층에 위치한 ‘보이는 수장고’에서는 9월 5일(화)부터는 《보이는 수장고: MMCA 이건희컬렉션 3》를 개최한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하여 1부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2부 박생광의 <무속> 등에 이어 3부에서는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과 변관식의 <무창춘색>(1955)을 선보인다. 서양화가 1세대인 백남순의 광복 이전 화풍을 살펴볼 수 있는 <낙원>과 산수화가 변관식의 독자적 표현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무창춘색>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를 잇는 새로운 잇는 새로운 회화와 이상향의 모습을 담고 있다. [허중학 기자]
백남준아트센터, 20세기와 21세기 기술문명의 상징하는 백남준의 작품 국내 첫 공개
백남준아트센터, 20세기와 21세기 기술문명의 상징하는 백남준의 작품 국내 첫 공개
[서울문화인] 9/11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2002년 여름에 도시 곳곳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중 하나로 록펠러 센터 광장에서 진행된 전시 개막식에서 백남준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피아노 퍼포먼스 〈20/21〉을 선보였다. 당시 백남준은 뉴욕과 시드니에서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라〉(1997)와 함께 8미터 높이의 메인 타워와 사이드 타워들로 구성된 〈트랜스미션 타워〉 작품을 함께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백남준의 레이저 협업자 노먼 발라드는 백남준의 피아노 사운드에 맞추어 네온과 레이저가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하여, 움직임이 불편했던 노년의 거장 백남준이 자유롭게 빛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최근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백남준의 2002년 뉴욕 록펠러 센터 광장과 2004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전시되었던 이 대형 레이저 설치 작품 〈트랜스미션 타워〉(2002)가 국내 최초로 백남준아트센터 야외에 공개하였다. 메인 타워 옆면에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의 네온이, 상단에 레이저가 설치되었는데 방송 송신탑 형태의 타워들과 네온, 레이저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빛을 통한 21세기 정보시대의 상징하는 것으로 이번 타워의 레이저 작업은 윤제호 작가가 새롭게 〈공명하는 주파수〉로 재구성하였다. 윤 작가는 모차르트 진혼곡의 음, 타워를 둘러싼 네온의 네 가지 색 요소들, 그리고 타워 상단의 레이저 광선들을 분절하고, 중첩하며, 확장하고, 디지털로 재가공하여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공명하도록 했다. 타워의 레이저는 숲과 언덕을 가르며 스펙터클한 경관을 연출, 20년 전 백남준이 상상했던 기술과 정보, 생태가 균형을 이루는 미디어 환경을 눈앞에 펼쳐내었다. 이와 함께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처음 선보이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백남준의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라〉가 〈트랜스미션 타워〉와 함께 설치되었다.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는 폐차된 실제 자동차 32대로 구성된 작품으로 작품 속 자동차들의 좌석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시청각 기계들의 잔해가 가득하다. 이 작품은 자동차를 통해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술문명에 진혼곡으로 고별을 알린 작품으로 새로운 세기의 매체인 레이저를 사용하는 〈트랜스미션 타워〉와 한 자리에 전시되어 기술문명이라는 세기의 변환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자동차는 20세기 기계 문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레이저는 21세기 정보 문화의 상징입니다.” 라고 언급하며, 이 작품들을 두 세기를 은유하는 메시지의 완성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 두 작품은 백남준아트센터 2층으로 연결되어 〈트랜스미션 타워〉와 관련된 기록과 백남준의 퍼포먼스 영상이 유리를 통해 안팎으로 조응한다. 특히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아트센터 야외에서 역동적인 레이저와 네온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 〈트랜스미션 타워〉는 뉴욕에서 선보인 이후 백남준이 경기문화재단에 기증하였으며,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는 현재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타워의 레이저는 외부에서 전시실 내부로 이어진다.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아카이브 영상들은 2002년 뉴욕 록펠러 센터 앞 광장을 담고 있다. 뉴욕 전시의 오프닝 현장과 저녁 시간에 반짝이는 타워의 모습을 벽면 전체에서 감상하며, 귀에 익숙한 미국적 레퍼토리로 구성된 백남준의 피아노 퍼포먼스 〈20/21〉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볼 수 있다. 밀레니엄을 맞으며 제작된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레이저 조각 〈삼원소〉 앞에서 육성으로 ‘금강에 살어리랏다’를 열창하는 백남준을 보여주며, 한국적 상상력에 기초하여 백남준 예술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또 다른 레이저 조각 〈삼원소: 삼각형〉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레이저 빛으로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낸다. 흔히 백남준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라 지칭한다. 백남준은 인간과 기술이 균형을 이루는 긍정적인 미디어 환경을 예견했고, 미디어와 공존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했다.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은 20년 전 백남준의 레이저 광선을 다시 쏘아 올리며, 백남준이 보낸 미디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전시는 오는 12월 3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허중학 기자]
막 오른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주제로 57개국 251작가‧팀 3,000여점 소개
막 오른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주제로 57개국 251작가‧팀 3,000여점 소개
[서울문화인] 회화와 달리 한 점 한 점 우연의 결과물이 아닌 작가의 오랜 수해의 결과물을 보는 듯하다. 1999년, ‘조화의 손’을 시작으로 24년을 이어오고 있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지난 31일(목) 문화제조창 야외광장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45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는 세계 57개국 251작가․팀의 작품 3,000여점이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를 주제로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공예가 나아가야할 미래 지형도를 ‘생명애Biophilia’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예정신이 다섯 가지 서사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80%에 달하는 본전시, 참여작가들이 신작을 내놓았다. #1.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 전시장 입구 엄청난 스케일로 시선을 압도하는 황란 작가의 대형 섬유작품을 지나 만나게 되는 이곳에는 땅에 묻힌 금속의 변색된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작가 아디 토크부터 원시 식물의 풍경을 테라코타로 빚는 김명진, 도자 넝쿨과 풀꽃으로 정원을 구축하는 작가 다카하시 하루키까지, 국적도 작품세계도 모두 다르지만 첫 번째 서사에 함께한 작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이는 ‘대지와 호흡하고 마주하는 관찰자’들이라는 점이다. 이 땅위에 살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공예에 녹여내었다. #2.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 공예는 인류의 태초부터 함께 해 온 장르지만 대대로 이어진 가업과 지역, 문명권마다 각기 다른 유전자를 갖게 되었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돼 왔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로병사, 그리고 의식주와 가장 밀접한 예술이기에 공예는 전통과 현대를 잇고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이 공간에는 아름다운 삶만큼이나 중요한 아름다운 죽음을 공예적인 장례문화로 담아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3.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 이 공간은 30kg의 은을 오로지 두드림만으로 단조한 원시적인 작업(이상협 작가)부터 수학적 규칙의 아름다움을 3D도자로 구현해낸 작품까지 극과 극의 제작방식과 기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 서사의 특이점은 ‘기록’이라는 문명을 만들어낸 연금술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각자장부터 벼루장, 활자장, 필장과 배첩장까지, ‘직지’라는 인류가 창조해낸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을 태동한 청주의 공예적 DNA에 관한 헌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4.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 산업 폐기물로만 치부되던 구리 조각과 덩어리를 아름다운 가구와 소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스튜디오 더스댓, 버려진 플라스틱 로프와 어망을 수집해 지역의 직공들과 협업해 타피스트리로 제작하는 아리 바유아지, 해진 옷과 버려지는 사물을 수선해 정서적인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실리아 핌, 동물 실험 반대와 친환경 캠페인을 실천하는 기업 ‘러쉬LUSH’까지, 이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공예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 청주에서 나고 자랐고, 또 생을 다한 팽나무로 제작된 유르겐 베이 작가의 벤치부터 죽은 생명체를 표본화해 맑고 투영한 유리 속에 오래도록 살게 한 양유완 작가의 작품까지, 공예로 인간과 자연이라는 새로운 ‘사물의 지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주제관을 맞은편에는 스페인이 주빈국으로 참여 스페인공예진흥원이 ‘Soul+Matter’을 주제로 31명의 작가의 150여 점을 통해 스페인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예품과 현대적 공예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올해 ‘청주공예공모전’의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문화제조창 동부창고에서도 다양한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동부창고 6동 이벤트홀에는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단이 문화재를 첨단기술로 구현한 실감형 미디어 포퍼먼스 <공존(共存): 전통공예, 우리와 함께한 시간>이, 동부창고 8동에는 참여형 열린 비엔날레로 60여명의 작가의 200여 점이 소개되는 <어마어마 페스티벌>이, 동부창고 8, 34, 36, 38동에는 지역 작가(협회) 참여로 <작가의 사물전>이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 전시 외에도 비엔날레 기간에는 국내외 공예 관련 석학들의 담론의 장 ‘크라프트 서밋’과 7개국 13작가‧팀이 진행하는 ‘국제공예워크숍’부터 어린 시절 공예비엔날레를 보며 자란 일명 ‘비엔날레 키즈’들이 구현한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공간에서 ‘조물조물 두둥 탁!’ 공예를 체험하는 ‘어린이 비엔날레’, 그리고 주빈국으로 참여한 스페인 문화주간(10월 8일~14일)에는 스페인의 춤‧음식‧영화‧여행 등 다양한 스페인의 다양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된다. 올해 비엔날레 강재영 예술감독은 “비엔날레 주전시장인 문화제조창 본관 1층에 들어서면서부터 처음 마주하게 되는 류종대 작가의 디지털 크래프트 작품부터 엄청난 스케일로 시선을 압도하는 황란 작가의 대형 섬유작품을 지나 마지막에 만나게 될 오마스페이스의 몰입적인 음향 공예작품까지, 본전시장의 모든 작품이 대표작이자 추천작”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국내와 해외작가를 막론하고 이번 주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작가들이 21세기 공예와 함께 던지는 메시지에 귀기울여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K-컬처 이벤트 100선에도 꼽힌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는 9월의 첫날 정식 개장해 10월 15일까지 45일간의 여정을 이어간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