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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장 비젼 발표, 비젼 속에 알맹이?는 없었다.
신임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장 비젼 발표, 비젼 속에 알맹이?는 없었다.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청주관이 개관하면서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4관(과천, 덕수궁, 서울, 청주) 체제를 구축하면서 당시 공석이었지만 새로운 관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를 통해 지난 2월 1일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를 미술관 수장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과정에서 잡음은 코드인사 논란을 낳았다. 신임 관장 공모 최종 후보 ‘역량평가’에서 탈락했으나 재시험 기회를 받아 논란이 됐다. 당시 최종 후보자 3명(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중,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업무수행능력을 검증하는 역량평가에서 이용우 씨만이 기준 점수를 넘겨 합격했으나 문체부는 이 역량 평가결과로 마무리 짓지 않고, 떨어졌던 두 후보자들(윤범모, 김홍희)이 재시험을 치르도록 하였고 최종적으로 윤범모 씨를 신임 관장으로 낙점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립현대미술관장 취임 1개월을 맞은 신임 윤범모 관장은 3월 5일(화) 서울관에서 언론간담회를 열고 개관 50주년을 맞는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과 목표 및 중점과제를 발표하는 자릴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관장은 ‘미술로 감동과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미술문화를 나누는 세계 속의 열린 미술관’을 목표로 동시대 예술문화 중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면서도 미술관을 “이웃집 같은 미술관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중점과제로는 ①박물관은 물론 유관 기관과 협업체계를 공고히 하여 외연을 확장,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 문화예술계와 적극 소통, 기존 미술관협력망 사업을 강화하여 공립미술관 순회전, 전시와 연계한 지역미술관 아카이빙 구축 컨설팅, 지역작가 발굴소개 프로그램, 공사립미술관 보존지원을 추진하겠다. ②남북미술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분절된 한국미술사를 복원, 북한의 공적 기관과의 교류를 모색하여 소장품 교류전시, ‘분단 극복’을 위한 공동 기획 특별전 등의 주제들을 개발, 추진하여 미술사 담론의 지평을 확대하겠다. ③미술관 내 분산 운영되고 있는 국제 업무를 통합, 활성화하여 국제교류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한국미술 국제화의 교두보 확보하겠다. ④미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국 근현대미술사 통사 정립 사업을 통해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수립을 위해 내․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특별 연구팀을 가동하여 자료구축, 학술, 교육, 전시, 출판 등과 연계하는 선순환 구조의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⑤4관 체제 특성화 및 어린미술관을 강화, 과천관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기술 및 연구를 심화하는 한편, 어린이미술관은 직제 신설하여 가족중심 자연친화적 미술관으로 덕수궁관은 역사의 숨결 속에서 한국 근대미술문화에 대한 정의 및 연구를, 서울관은 관객 수요를 자극하는 국내․외 융․복합 현대미술 전시를, 작품 수집과 보존의 산실인 청주관은 개방형 수장고를 특화한 한국 현대미술 소장품 전시를 추진하겠다는 비젼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의 분위기는 전혀 새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없었고 구체적 방안에 대한 질문에 일관되게 ‘구체적인 시기를 말할 수 없다. 관련부처와 혹은 내부 협의해 추진하겠다’는 답변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 자신의 비젼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자신에게 제기 되었던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의중을 떠보는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윤 관장은 미술관 법인화와 비정규직 전환에 관련해서는 “법인화문제로 인력문제가 원활하게 해결이 안돼서 인력문제 어려움이 있다. 새로운 미술관을 지향하면서 직원들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보태겠다”하였으며, 남북미술 교류와 관련하여서는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정치 환경과 직결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 구체적인 시기와 또 언제할지도 모른다. 관련부처와 협의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있었다. 또한, 4관 체제가 되면서 분관장 도입과 관련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도 원론적만 ‘찬성’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관장에 임명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임명된 입장이기에 외적인 부분은 제가 무어라 말씀드리기 난감하다”고 답했다. 또한, 제기된 민중미술계열에 편중된 성향과 특정 갤러리와 유착되어 있다는 지적은 반박했다. “제가 발표한 글 1000편 중에서 민중미술은 10%도 되지 않고, 최근 기획한 전시에서도 오히려 균형 감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가나아트센터가 설립한 가나문화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재능기부였다. 미술관에 오면서 사임했다”고 해명했다. “30년 미술전문가로 활동해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 부족하지만 잘하라는 격려로 알고 미술관장직을 수행...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신임 윤 관장은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연 예산은 700억 원이며,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허중학 기자]
3·1운동 100주년, 한-일 양국의 대립 관계를 초월하여 현대미술 바라보다.
3·1운동 100주년, 한-일 양국의 대립 관계를 초월하여 현대미술 바라보다.
[서울문화인] 100년 전, 3·1운동은 만주 지린,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중국 상하이 등에 흩어져 있던 유학생들의 총체적 움직임으로 열린 한민족 독립 운동의 서막이자 세계사적 의로도 중국의 5·4운동뿐만 아니라 인도, 필리핀, 동남아시아, 아랍지역의 민족 운동과의 연관성으로 충분히 연구된 바 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3·1운동을 단순 한국과 일본이라는 이항대립 관계를 넘어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국제적인 관점으로 3·1운동에 접근하여 동시대 미술의 지평과 세계사적 토대에서 재조명하는 전시로 풀어내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모두를 위한 세계(Zero Gravity World)》전은 인종이나 귀천, 빈부 차이에 대한 저항과 역사적 진보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식민지 본국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전복시키는 탈식민주의 개념이자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범세계적 움직임의 일부이자 세계사와 함께 흘러온 인권신장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 일본, 대만, 베트남, 덴마크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모두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미시적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다. 터키의 아흐멧 우트는 전시장 도입 부에 경사진 공간을 만들어 스케치 작품을 배치하였다. 그가 설계한 가파른 경사의 공간은 통치와 억압의 카프카적인 요소를 중력으로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벽면의 스케치들은 국민국가(민족국가, nation-state)의 개념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가짜 여권과 대사관 그리고 인공 대지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한 스케치들은 국가의 무의미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서구 문명을 인류 보편으로 간주하는 서구중심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윌리엄 켄트리지의 7채널 영상 설치 작품 <더욱 달콤하게 춤을>은 윌리엄 켄트리지가 르완다 피난민, 발칸반도 탈출 행렬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무렵의 인구 이동에서 받은 영감을 투영하고 있다. 장례 의식과 난민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행렬은 춤과 노래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애도한다. 특히 등장인물은 모두 흑색 그림자로 묘사되어 최대한의 기본 단위로 실체를 규정하려는 환원주의(reductionisum)적 관점을 환기한다. 국제적 난민의 문제를 인류 본질의 문제로 확장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키케로와 같은 로마시대 정치가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당시 선전선동에 등장하는 민초들의 얼굴도 등장하는데, 이는 정치적 항의를 암시하며, 끌려가는 시신들은 아프리카에 창궐했던 에볼라나 페스트의 희생자와 수세기에 걸친 중세 억압의 희생자를 상기시키면서 작품의 모든 요소는 지배와 폭력을 이겨내는 일련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 히카루 후지이의 영상작품 <2.8 독립선언서>도 눈여겨 볼만하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도쿄의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서부터 연구를 시작, 이를 통해 당시 종교 집회는 물론 출판과 사업까지 철저히 감시당했던 일본 동경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모여 선언했던 ‘2·8독립선언’을 알게 되었고 이를 행위를 재조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영상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유학생들을 섭외하여 2·8 독립선언문 낭독을 재연하는 연극을 꾸렸다. <2·8 독립선언서>는 베트남인의 목소리로 현재까지 일본 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불평등을 소환시키고 1919년 당시의 선언을 새롭게 인식시킨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베트남 노동자들이 일본 사회에서 받는 불평등을 과거 일본에서 차별받는 한국인을 대비시켰다고 한다. 이를 통해 피식민 국가와의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식민지배의 주체가 되었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는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 외에도 야오 루이중의 세계 곳곳에 생겨난 차이나타운을 보여주면서 작가에게 차이나타운은 스스로를 타자화 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고수한 상징을 보여주고 있는 <모두를 위한 세계>, 1980 한국 출생 후 덴마크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은 1948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파편적 기억과 억압된 역사를 조명하는 <거듭되는 항거>를 응우옌 트린티는 베트남의 침공으로 사라져버린 참파 왕조(Champa, 2세기 말엽부터 17세기 말 베트남 중부부터 남부에 걸쳐 인도네시아계인 참족이 세운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판두랑가에서 온 편지>(싱글 채널 영상, 35분)을 통해 다양한 국가 통치 아래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정체성을 발현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26일까지이며 무료관람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장 스케치]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서화미술특별전
[전시장 스케치]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서화미술특별전
[서울문화인]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이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하고 있는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은 3․1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이 3․1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일본인 검사의 요구에 답한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육필 원고,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의 친필 한운야학 閑雲野鶴(1945년)의 최초로 공개와 함께 등록문화재 제664-1호로 지정된 ‘3․1 독립선언서’(보성사판)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근대 인물들의 친필과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서화미술 작품들까지 근대 우리의 서화를 마주할 수 있는 전시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전시 한 켠에 길게 놓여있는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한용운이 191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일본인 검사 총장의 요구에 의하여 작성한 옥중 독립 선언문이다. 옥중에서 아무 참고서 하나 없이 53장에 걸친 조선독립에 대한 대선언을 남긴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정신이 구체적으로 담긴 대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만해 한용운을 옥중 뒷바라지를 한 김상호에 의하여 임시정부에 소개되었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제25호에 전문이 게재되었다. 흔히 <조선 독립의 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알려져 있으며,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는 3․1독립운동의 주역인물들인 민족대표 48인 중 길선주, 김선두, 김완규, 백용성, 신석구, 이갑성, 이종일, 임예환, 정노식, 최남선, 한용운, 함태영, 홍기조 등의 심정을 받아 적은 글이다. 백범 김구의 친필 <한운야학(閒雲野鶴)>은 남북 통합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김구의 뜻이 좌절된 순간, 자신을 한 마리의 학으로 표현했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글씨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던 1948년 8월 15일 백범이 경교장에서 남긴 친필로 김구 선생의 주치의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수정 박병래(1903∼1974)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성베네딕도 수도원이 이어받아 이번 전시 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번 전시의 볼거리는 다양하다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의 영향, 해방 후 월북으로 잊힌 작가 등 변혁기 한국 서화미술의 자화상(自畵像)을 통해 서화 미술의 변화 양상과 함께 근대 한국 서화미술의 흐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서화가들은 19세기말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미술을 배웠고, 일본과 꾸준히 교류했다. 강제병합 이후에도 고희동, 나혜석, 김관호 등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으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렸다. 일본 화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출품작가, 미술 교사 등의 역할을 통하여 조선 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외면’보다는 ‘직시’를 통하여 우리가 애써 회피해왔던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근대 서화미술사에서 재조명한다. 이 외에도 일제강점기 활발하게 활약했던 인물들 중 한국전쟁 이후 북(北)으로 건너간 ‘월북작가’도 서화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근원수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용준,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사사하여 조선미술전람회의 단골 입상자였던 정종여, 김기창․장우성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리석호(이석호) 등에게서 분단으로 인해 좀처럼 마주보지 못했던 절반의 미술사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는 4월 21일(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전시의 입장권은 성인 5천원, 청소년/어린이 3천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네이버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전시기간 중 매일 2회(14시, 17시) 도슨트가 진행되며, 전시 기획자가 직접 설명하는 큐레이터 도슨트가 주1회 진행되어 관람객들의 전시 이해를 돕는다. 3월 9일(토)부터는 매주 토요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로 살펴보는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전시로 살펴보는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서울문화인]고종 황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승하 직후, 고종이 일본인이나 친일파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이는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을 폭발시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오는 3월 31일까지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되돌아보고 있는 전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통해 당시의 상황속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고종 황제의 국장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하여 일본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존 국왕의 국장에 비하여 절차가 축소되고 변형된 장례로 진행되었다. 비록 장례절차는 일본식에 따라 치러야만 했지만, 능의 조성과 매장은 대한제국 황실관리 기관인 이왕직이 ‘옛 조선식’으로 진행하면서 행열은 조선왕실의 전통인 신연 행렬로 별도로 움직여 흥인지문(동대문) 밖에서 기다려 국장식을 마치고 나온 대열 행렬과 합류하여 남양주 홍릉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홍릉 건설은 고종이 생전에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고종은 황실의 위상에 맞는 능을 조성하기 위해 중국 명대 황제릉을 참조하여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함께 잠든 남양주 홍릉(洪陵)이 조성되었음을 사진과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층 전시실에서 작은 전시로 선보이지만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 등 총 3개의 주제로 국장 때 촬영된 당시 사진과 의궤 등에 남겨진 기록,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의 사진 등 총 15건의 작품이 소개하고 있다. 특히 당시 이런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첩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이태왕전하어장의사진첩)」(서울대학교박물관)을 통해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종 황제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 「이태왕전하어장주감의궤(李太王殿下御葬主監儀軌)」, 고종 황제의 국장 때 대여를 맨 민간단체의 기록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德壽宮因山奉悼會謄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며, 고종 황제의 승하와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순종황제실록 부록(純宗皇帝實錄 附錄)」, 「영친왕비(英親王妃) 일기」와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御寶)와 옥책(玉冊)으로 여전히 남아 있던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3월 21일 오후 2시에는 이번 전시와 연계한 특별 학술강연회가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라는 주제로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개최된다. 강연은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되며, 제1강연에서는 이욱 선임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고종황제의 국장(國葬) 과정을 분석하여 대한제국 황실 의례가 국권피탈 이후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제2강연에서는 윤소영 연구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이 고종 국장으로 인한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권피탈 후 억눌린 민족의 한이 3.1운동으로 폭발하는 과정을 발표한다. [허중학 기자]
[전시]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북한의 일상을 들여다 보다. 북한 그래픽디자인展
[전시]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북한의 일상을 들여다 보다. 북한 그래픽디자인展
[서울문화인]우표, 포장지, 만화책, 초대장, 선전(프로파간다) 포스터 등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컬렉션이 먼 길을 돌아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최근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모처럼 북한과의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북한의 문화는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낯설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광고와 디자인 인쇄물은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마주치지만 북한의 상품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북한의 시각분야 디자인을 떠올리면 매스컴을 통해 가끔 비춰지는 선전광고판이 아닐까 싶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제 3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는 <영국에서 온 Made In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展>은 영국인 니콜라스 보너(Nicholas Bonner, 1961년 생)가 25년간 북한 여행 투어를 하면서 수집한 켈렉션을 소개하는 전시로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을 통해 일상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라 하겠다. 니콜라스 보너는 93년 가을 첫 북한 여행을 다녀온 후 북한 사회에 대한 놀라움에 정기적으로 북한 여행을 하기위해 북경으로 이사를 하였고 그 해 베이징에 있는 북한 지인의 요청에 북한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고려 여행사(Koryo Tours)’를 설립하고 이후, 25년간 투어를 해오면서 그가 접할 수 있는 북한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모아 현재 약 1만여 점에 이르는 컬렉션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약 200여점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를 연출하였으며,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팀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북한에 관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지난 25일 전시장을 찾은 니콜라스 보너는 “처음 흥미를 끈 것은 절제된 색상이 가득한 나라에서 눈길을 끌 정도로 알록달록하면서 빛나는 밝은 색상의 사탕 박스들이었다. 이후에 정기적으로 평양과 근처 지방을 여행하면서 흥미로운 디자인 제품을 컬렉션 하였다”고 밝혔다. 이번에 소개되는 전시품들은 북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의 대표적인 디자인과 패키지와 그가 북한에서 초대되어 관람한 초대장들까지 그의 자취가 서려있는 것들로 이를 통해서 북한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순수 미술이 아닌 북한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시각문화 콘텐츠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온다. 소개되는 것은 주로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이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으라면 손으로 직접 그려진 선전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과거 공산권 국가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파간다(선전,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적 선전포스터는 일종의 우리의 공익광고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북한 정부가 사회적,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많이 제작된 선전포스터는 초기에는 소비에트 시대 러시아 예술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디자인 포맷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조선의 전통과 북한의 고유 언어와 색감이 들어있다. 가장 최근의 디자인은 대담한 색, 양식화된 모양 및 북한 고유의 동적 레이아웃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들이 디자인한 포스터는 상업 광고처럼 식량과 상품의 소비를 장려하기보다는 ‘인민’의 이익을 위한 생산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니콜라스 보너에 따르면 “프로파간다포스터는 지방에서도 제작이 되지만 대부분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된다. 또한,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수작업 포스터는 사라지고 컴퓨터를 사용하여 제작된다”고 전했다. 북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도력, 국가 및 사회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배운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이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혁명적, 산업적, 자연적 의미의 아이콘을 작업에 나타내고 있으며, 일상생활용품은 1950년대 이래로 자립적인 국가가 되려는 야심과 포부는 북한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되었고 이를 위해 거의 모든 재료와 제품이 처음에는 내부에서 제조되었고, 디자인, 인쇄 및 생산물은 그들의 디자이너와 제조업체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엽서와 프로그램은 스포츠 및 국가 행사를 기념하고 북한의 문화 및 자연 명소를 기념품으로 제작되며, 초상화, 건축 및 조경 사진은 블록 색상과 수공 인쇄술이 함께 사용되어 만들어 지는데, 일부 디자이너는 공연자의 운동 신경을 반영하여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합성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에서 렌티큘러 엽서는 매우 인기 있는 품목이라 한다. 시민과 관광객을 위해 제작된 이 엽서의 주제는 전통 민속 무용 장면에서부터 상징적인 건축물, 문화 및 자연 명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우표는 국가에 대한 주제가 일반적이지만, 스포츠, 자연 그리고 국제 행사 등과 같은 다른 주제들도 제작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쟁, 군사 이야기나 액션 모험을 주제로 하는 만화책과 다양한 제품 라벨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징이라면 모두 분야의 디자인이 우리와는 달리 활자가 전자 서체가 아니라 수작업으로 그린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한, 전시에 소개되는 제품 디자인은 우리 민족 고유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우리의 1960~80년대를 연상시키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전시 이외에도 “Enter Pyongyang”이라는 영상물을 통하여 평양에서 생활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만나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영국의 유일한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공공 갤러리인 “하우스 오브 일레스트레이션 (House of Illustration)”에서 지난 2018년 최초로 공개되었고 세계순회전의 첫 번째 나라로 한국에서 선보이는 전시로 전시장 디자인 역시 소장자인 보너씨의 요청에 따라 영국전시와 똑같이 재현하기 위하여 동일한 공간디자이너와 큐레이터가 한국전시를 감독하였다. 북한의 디자이너들의 손으로 직접 그려진 일상적인 오브제들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4월 7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3.1운동과 캐나다인 재조명 기념전 열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3.1운동과 캐나다인 재조명 기념전 열려
-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2.23.~3.31. 시민청 시티갤러리 - 외국인 최초로 국립현충원 안장 스코필드 박사 등 캐나다인 5명의 헌신 조명 [서울문화인]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에는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헌신도 큰 몫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국적을 떠나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함께 힘을 보태고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파란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특별전이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지하1층)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시는 인도주의(人道主義)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함께 지키고 의료봉사와 학교설립 등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힘을 보탠 5명의 캐나다인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5명은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1889~1970), ▴영국에서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한 프레드릭 맥켄지(Frederick A. Mckenzie‧1869~1931), 병원, 학교, 교회 등을 설립하며 애국계몽운동을 추진한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1868~1965), ▴중국에서 독립만세운동 사상자 치료와 희생자 장례식을 개최하고 경신참변(1920) 당시 한인 피해상황을 국제사회에 폭로한 스탠리 마틴(Stanley H. Martin‧1890~1941), ▴명신여학교를 설립하고 여성교육, 한글, 국사 교육에 힘쓴 아치발드 바커(Archibald H. Barker‧?~1927)이다.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들어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 현장을 사진에 담아 기록했으며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보도해 당시 한국의 심각한 상황을 알렸다. 그가 한국인을 돕는 것이 알려지자 조선총독부가 강제출국 시켰지만 그는 캐나다로 건너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1958년부터 한국에 머무르며 여생을 한국에서 마쳤으며, “한국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는 1970년 외국인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중국 길림성 제창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스탠리 마틴은 1919년 3월 13일 만주에서 있던 독립만세운동 당시 부상자를 치료하고 희생자의 장례식을 치러줬으며 이듬해 경신참변 시 우리 민족의 피해상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그는 1968년 독립장을 받았다. 함경북도 성진에 병원과 학교, 교회 등을 설립하며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던 로버트 그리어슨도 독립만세운동을 지원한 공을 인정받아 사후 2년 뒤인 1968년 독립장을 받았다. 1913년 명신여학교, 1920년 은진중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여성교육과 한글‧국사교육에 여념이 없던 교육자 아치발드 바커는 경신참변을 해외에 알려 1968년 독립장을 받았다. 종군기자로 한국 땅을 밟은 뒤 의병활동 등을 취재하고 독립운동을 후원한 언론인 프레드릭 맥켄지는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공훈을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스코필드 박사가 직접 촬영한 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과 시위행진 사진을 비롯해 5명의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이들의 활동과 관련된 일러스트, 글, 영상 등 총 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의 사진과 관련 일러스트 각 2부가 전시되고 관련 영상 3개가 상영되며, 1920년 북간도 경신참변을 알렸던 마틴과 바커의 관련사진 각 3장과 용정 만세운동 당시를 묘사한 일러스트 5점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의병 활동을 알린 맥켄지의 활동 당시 사진 11장과 관련 일러스트, 그리어슨의 가족사진과 그가 세운 교회, 학교 등의 사진 7장 및 활동상을 담은 만화 8장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26일(화) 17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박원순 시장과 스코필드 박사의 손자인 딘 케빈 스코필드(Dean Kevin Schofield) 씨, 마이클 대나허(Michael Danagher) 주한 캐나다 대사, 정운찬 ㈔호랑이 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 이항 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하였다. 전시는 오는 3월31일(일)까지 개최된다. [김진수 기자]
폐막 1주일 남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대고려’展, 관람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시품은?
폐막 1주일 남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대고려’展, 관람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시품은?
[서울문화인]지금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중 가장 핫한 전시를 꼽으라면 단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에서 열리고 있는 ‘대고려전’이 아닐까 싶다. 오는 3월 3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대고려전’은 지난 주말에는 토요일 전시에 4,012명, 일요일에는 4,146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성황리에 진행되어 2월 24일(일요일) 현재 누적관람객은 145,257명에 이르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시품이 무엇인지 조사를 해본 결과 해인사 소장 <희랑대사상>과 미국 보스턴 박물관 소장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으로 나타났다. 우선 관람객들이 온라인상의 블로그에 남긴 후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전시품을 살펴보면 첫 번째가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으로 투명한 아크릴 상자 속에 드러나는 화려한 모습과 사진이 잘 나오는 점이 그 요인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는 <희랑대사상>으로 처음으로 해인사에서 나와 전시된다는 희소성과, 10세기 중반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자 고려시대 유일한 승려 초상이며 나란히 전시하기로 했었던 <고려태조 왕건상>인 북한 유물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는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병>으로 ‘대고려전’ 포스터 속의 전시품이라는 대표성 때문인 것으로 파악했다. 현장 관람객 320명(남성 119명, 여성 2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품이 무엇인지 질문한 결과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해인사 소장 <희랑대사상>을 1위로 꼽았다. 남성 관람객은 보스턴박물관 소장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을 2위,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감>을 3위로 선택한 반면, 여성 관람객은 <금동삼존불감>을 2위,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을 3위로 뽑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학예사 대상 자체 조사 결과에서 학예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시품 1위로 <희랑대사상>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영국박물관 소장 <나전 국화넝쿨무늬 경함>,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관람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희랑대사상>의 경우 해인사에서도 보존의 필요에 따라 전시공개는 복제품으로 하고 진품은 외부공개를 하지 않고 있어 이번 전시가 아니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며,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의 경우에도 미국 보스턴박물관에서 어렵게 대여하여 전시하는 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특별전은 고려(918~1392) 건국 천백주년을 맞이하여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전시로, 국외(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4개국 11개 기관을 포함해 총 45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 문화재 45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허중학 기자]
[전시] 만해, 백범.. 독립운동가 친필부터 당대 서화작품 한자리에
[전시] 만해, 백범.. 독립운동가 친필부터 당대 서화작품 한자리에
[서울문화인]예술의전당은 오는 3월 1일(금)부터 4월 21일(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 - 나를 보다>展을 개최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등록문화재 제664-1호로 지정된 ‘3․1 독립선언서’(보성사판)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근대 인물들의 친필과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서화미술 작품들이 다수 공개된다.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친필 최초 공개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3․1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이 3․1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일본인 검사의 요구에 답한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육필 원고,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의 친필 한운야학 閑雲野鶴(1945년)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한용운이 191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일본인 검사 총장의 요구에 의하여 작성한 옥중 독립 선언문이다. 옥중에서 아무 참고서 하나 없이 53장에 걸친 조선독립에 대한 대선언을 남긴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정신이 구체적으로 담긴 대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만해 한용운을 옥중 뒷바라지를 한 김상호에 의하여 임시정부에 소개되었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제25호에 전문이 게재되었다. 흔히 <조선 독립의 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알려져 있으며, <3․1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諸位在獄中吟)>는 3․1독립운동의 주역인물들인 민족대표 48인 중 길선주, 김선두, 김완규, 백용성, 신석구, 이갑성, 이종일, 임예환, 정노식, 최남선, 한용운, 함태영, 홍기조 등의 심정을 받아 적은 글이다. 백범 김구의 친필 <한운야학(閒雲野鶴)>은 남북 통합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김구의 뜻이 좌절된 순간, 자신을 한 마리의 학으로 표현했던 애달픈 심정을 표현한 글씨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던 1948년 8월 15일 백범이 경교장에서 남긴 친필이다. 이 글은 김구 선생의 주치의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수정 박병래(1903∼1974)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성베네딕도 수도원이 이어받아 이번 전시 때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외에도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의 영향, 해방 후 월북으로 잊힌 작가 등 변혁기 한국 서화미술의 자화상(自畵像)을 통해 서화 미술의 변화 양상과 함께 근대 한국 서화미술의 흐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서화가들은 19세기말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미술을 배웠고, 일본과 꾸준히 교류했다. 강제병합 이후에도 고희동, 나혜석, 김관호 등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으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렸다. 일본 화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출품작가, 미술 교사 등의 역할을 통하여 조선 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외면’보다는 ‘직시’를 통하여 우리가 애써 회피해왔던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근대 서화미술사에서 재조명한다. 일제강점기 활발하게 활약했던 인물들 중 한국전쟁 이후 북(北)으로 건너간 ‘월북작가’도 서화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근원수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용준,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사사하여 조선미술전람회의 단골 입상자였던 정종여, 김기창․장우성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리석호(이석호) 등에게서 분단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절반의 미술사를 마주할 수 있다. 입장권은 성인 5천원, 청소년/어린이 3천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네이버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2월 28일까지 네이버페이를 통해 1+1 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으며 전시 개막일인 3월 1일(금)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전시기간 중 매일 2회(14시, 17시) 도슨트가 진행되며, 전시 기획자가 직접 설명하는 큐레이터 도슨트가 주1회 진행되어 관람객들의 전시 이해를 돕는다. 3월 9일(토)부터는 매주 토요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100년 전 만세를 외친 이들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조명
[전시] 100년 전 만세를 외친 이들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조명
[서울문화인] 1919년 3월 1일 정오 파고다공원,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선언문을 채 읽기도 전에 꽉 눌려 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만세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 독립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정석해, ‘고종황제는 아직 생존해 계시냐?’, ‘털어놓고 하는 말2’ 뿌리깊은나무, 1980) 이날 독립선언과 함께 시작된 만세운동은 서울,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7개 도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 소식은 한반도를 넘어 해외로 퍼져 중국 상하이, 룽징, 미국 필라델피아 등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또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뿐만 아니라 신문, 격문, 경고문이 발행되어 곳곳에 뿌려지거나 벽에 붙여졌다. 1919년 3.1운동은 종교계 민족대표와 학생대표가 이끌었다. 학생들은 1919년 1월부터 모임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있던 중에 종교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3월 1일 만세운동을 함께 준비했다. 하지만 당일 민족대표가 파고다공원으로 오지 않자 그들을 대신해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그리고 3월 5일 독자적으로 현 서울역 앞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이후 고향으로 흩어져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3.1운동은 겨레의 혼을 깨우며 학생, 종교인, 농민, 노동자, 장사꾼, 무직자 할 것 없이 대한독립을 외쳤다. 하지만 우린 3․1운동하면 먼저 유관순 열사가 떠올리게 된다. 서대문형무소의 3.1운동 관련 수감자 카드를 기준으로 보면 총 1,014장으로 엄청난 인원이 수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죄명은 보안법, 소요, 출판법으로 기재되어 있다.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20대(39.29%), 30대(22.74%), 40대(15.13%), 10대(12.79%), 50대(7.315), 60대(2.74%)> 신분으로 나누면 평민(653명, 85.25%), 양반(113명, 14.75%)로 당시의 신분의 비율로 봐서 신분에 관계없이 참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주진오)에서 개막한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특별展은 올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역사 가운데, 당시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상황을 조명하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3․1운동 참여와 그 참여로부터 개개인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 생애는 어떠했는지, 해외의 낯선 환경 속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등에 관련된 자료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러시아, 미주 등 해외의 여러 지역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3․1운동 참여와 그 참여 이후 여러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임시정부 사람들 조국을 그리다’에서는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조명하고, 그들이 활동했던 공간적 환경과 삶의 생생한 모습을 조명(2부 ‘임시정부 사람들 조국을 그리다’), 해외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한인들의 삶의 흔적, 후손들의 모습을 최근의 사진을 통해 조명(3부‘고향, 꿈을 꾸다’)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 행정안정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소연)이 함께 마련한 전시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련하여 기미독립선언서, 상해판 독립신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원본 자료를 비롯해서, 일반인들의 3․1운동 참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총독부 판결문 원본 자료,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붕준의 망명 트렁크, 신한청년 창간호,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 등 주요 자료 200여 점과 고암 이응노의 회화작품인 군상 2점도 만나볼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진오 관장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우리 근대사의 주요 사건이지만, 3․1운동에 참여했던 보통사람들의 삶이나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의 생생한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면서 이번 전시의 의의를 언급했고, 국가기록원 이소연 원장은 “조선총독부 판결문 등에서 볼 수 있는 조선인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숨은 영웅들이자, 지금의 나와 다를 바없는 우리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특별展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3층 기획전시실, 부출입구 전시공간 등에서 오는 9월 15일(일)까지 진행되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