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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한 눈에  '한국의 세계기록유'
[출판]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한 눈에 '한국의 세계기록유'
[서울문화인]흔히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홍보하는데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의 잘 알려진 유적에 비해서 그 브랜드가 약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별도로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많이 보유한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물질보다는 정신을 더 중요시 하는 나라여서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나라가 소장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427건이 등재)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6종의 세계기록유산을 소장하여,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가이다. 이는 전통 시기 기록하는 것을 중시했던 문화와 기록을 보존하려는 노력들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하겠다. 유네스코는 1992년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하여 기록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 수단을 강구하고 온전히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World'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1992년 사라예보에 있던 보스니아 국립도서관 겸 대학도서관이 내전으로 인하여 150만 권의 책이 훼손되어 인류 역사의 한 장이 영원히 연기 속으로 사라지면서 더욱 그 필요성이 인정되어, 2년마다 개최되는 IAC(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세계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선정, 그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은 ▲필사본, 도서, 신문, 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와 플라스틱, 파피루스, 양피지, 야자 잎, 나무껍질, 섬유, 돌 또는 기타 자료로 기록이 남아 있는 자료, ▲그림, 프린트, 지도, 음악 등 비문자 자료(non-textual materials),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가 포함된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신청 유산이 진정성, 독창성 및 대체불가성, 그리고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즉 유산의 본질과 유래가 정확히 밝혀진 진품이어야 하고, 특정 시대 및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손실 혹은 훼손될 경우 인류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만큼 중요한 유산이어야 한다. 또한 시간, 장소, 사람, 주제와 테마, 형식과 스타일에 있어서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보조 요건으로 희귀성, 완전성, 위험성 및 관리계획도 충족해야 한다. 그리하여 2018년 12월 현재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초간본과 뉴질랜드 1893년 여성 참정권 탄원서 등 세계 128개국 8개 기구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는 427건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한국은 비교적 초창기인 1997년부터 세계기록유산 사업에 참여해 꾸준히 등재를 해온 결과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이래 2001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권하가 등재되었고,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등재되었으며, 2017년에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이 등재됨으로써 모 두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1997),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1997),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秒錄佛祖直指心體要節』권하卷下(2001),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2001),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高麗大藏經版-諸經版(2007), 조선왕조 『의궤(儀軌』(2007), 『동의보감東醫寶鑑』(2009), 『일성록日省錄』(2011),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2011), 『난중일기亂中日記』: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陣中日記(2013),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 국채보상운동 기록물(2017),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2017) 하지만 세계기록유산의 지역별 등재 불균형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지역은 전체 등재건수의 절반이 넘는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이 그 다음으로 많은 등재건수를 기록 중이다. 반면에 아랍과 아프리카지역의 등재건수는 두 지역을 합쳐도 전체의 10%가 되지 않는다. 등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지역들을 대상으로 기록유산 등재 지원 프로그램과 교육홍보 활동을 더욱 강화해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불균형을 보완해 나가는 작업이 시급하다. 또한 최근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둘러싸고 국제적 갈등과 분쟁이 고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이란 아부다비에서 개최된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 기록물’이 등재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되었다. 일본은 ‘난징대학살 기록물’의 신청서가 날조되었으며, 기록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부적절하다고 반발하였다. 일반적으로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여부를 두고, 해당 기록물에 내재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국제적인 판결’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기록유산의 시비를 가리는 기관이 아니며, 기록유산의 등재가 역사적 사실의 공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자문위원회는 해당 기록유산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인류에 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세계적인 고유한 가치를 지녔을 경우 등재를 권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정치적 상황이나 외교적인 수단으로서 기록유산제도를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우리의 기록정신과 문화를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6종을 모두 담은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개인 연구자에 의해 ‘한국 세계기록유산’을 소재하는 책은 있었지만, 16종의 세계기록유산을 하나의 책으로 정리하고 그 가치와 활용방안까지 담고 있는 책은 없는 상태였다. 특히 2017년 등재된 3종의 기록유산까지 모두 포함함으로써, 현재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전체를 소개하는 책으로 발간이 되었다. 이 책은 특히 세계가 각각의 기록유산의 어떤 점에 주목해서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집필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은 말 그대로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기록물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각각의 기록물은 등재 과정에서 그것이 가진 세계사적 가치를 증명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등재 기록물은 국내에서 조명 받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가치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어떤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도, 그것을 세계가 왜 주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이 책은 인류가 한국의 기록유산이 가진 세계사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책으로 기획되어, 인류가 왜 이 기록물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집필하였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수준 높은 기록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강한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국학진흥원이 발의하여 출범한 <한국 세계기록유산 관리기관 협의회>의 공동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서 직접 집필하거나 또는 그에 추천을 받아 집필되었다는 의미이다. 현재 한국에서 세계기록유산을 중점 관리하고 있는 기관은 총 15개 기관으로, 대부분 기록유산의 등재를 주도했거나 또는 그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들이다. 이 기관들의 추천으로 참여한 집필자들 대부분은 실제로 그 기록물의 등재에 참여했거나, 혹은 직접 그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현 상태에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설명하는 가장 완성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담당하고 있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후원하였다. 조현재 한국국학진흥원장은 발간사를 통해 “지금까지 세계기록유산을 보존 관리는 각 기관들이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보존하고 있는 각 기관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은 한국인 모두의 유산이자 세계의 유산인 이 이 어떤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는지 대중에게 알려 기록유산의 가치를 공유할 필요성에 시작되었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세계기록유산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허중학 기자]
2019년 세종문화회관 무엇이 달라지나?
2019년 세종문화회관 무엇이 달라지나?
[서울문화인]지난 2018년 9월 27일에 취임한 김성규 사장(제9대)은 취임 100일을 넘어선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의 앞으로 운영 계획을 밝혔다. 먼저 김성규 사장 취임 직후 지난 10월 새로 조직한 ES추진단을 통해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기 위하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직 전반에 대한 ‘더 나은 세종을 위한 설문조사’를 온/오프라인 조사 실시, 총 40개 분야 248건의 설문을 제출받아 이를 통해 인사분야 개선 31.8%, 조직문화 개선 15.3%, 공연제작환경 개선 12.0%, 부대시설 환경 개선 및 확충 9.3%, 직원복지 개선 8.9%, 비전·정체성 정립 7.7%, 업무환경 개선 6.5%, 기타 8.5% 등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조직의 개선점들을 도출하였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비전 달성을 위한 추진 방향으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재충전하고 안식처가 되는 ‘시민들의 케렌시아’, ▲뛰어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 생산기지, ▲효율적인 조직과 소통하는 조직문화로의 변화, ▲사랑받는 세종문화회관, ▲펀드레이징을 정착시켜 대한민국 예술계 최고의 재원조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싱 공연장으로 안착, ▲한국예술의 새로운 발견과 세종미술관의 방향성 구축, ▲서울시예술단의 예술적 대표성 및 경쟁력 강화를 통한 예술적 가치 창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소통하는 조직문화로 개선을 6대 추진 과제로 선정, 추진 과제 달성을 위한 세부 사항들을 발표하였다. 사실 이번 비젼은 대중들에겐 피부로 느껴지거나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의 재정 자립도가 2017년 기준 37% 수준으로 해마다 인건비, 관리비등의 고정비용을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재정 여건상 출연금에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공연장, 미술관 등 회관 내 활용할 수 있는 공간들을 기업들과 연계하여 마케팅 활동을 진행, 재원조성을 다각도록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공연 분야에서는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시즌제의 기존 레퍼토리 시스템을 더욱 더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하겠는 것이다. 먼저 서울시예술단 대표 브랜드 공연이자 서울시예술단 최초의 <창작 통합 브랜드 공연>을 개발한다. 여기에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예술단이 협업하고 우수한 기량을 갖춘 단원들을 참여시켜 대중성과 완성도를 높여 향후 해외진출을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공연예술기관은 물론 타 기관과 협업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우선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업하여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공연을 추진 중에 있으며, 아시테지 국제아동청소년축제, 예술경영지원센터 아트마켓 유치 등 대외 협력을 강화하여 공연장 운영을 더욱 활성화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19년에는 총 48편의 작품이 275회에 걸쳐 공연된다. 또한, 현재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고 있는 삼청각, 북서울꿈의숲, 서울돈화문국악당 등 서울시 위탁운영기관들도 변화를 추진한다. 삼청각은 서울시 주관으로 운영 활성화 컨설팅 예정이며, 북서울꿈의숲은 운영 활성화 및 효율화를 위해 다각도로 운영 방안을 검토중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서울시와의 위수탁 계약이 오는 2월 15일자로 종료되어 민간에 이관될 예정이라며 후속 운영 업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상점들이 입점해 있는 지하 뜨락 공간을 공연관람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보다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대극장 3층과 4층 로비는 관객들의 휴게공간으로 조성되며, 홈페이지에서 공연을 예매하는 관객들에게는 보다 편리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VR을 구축하여 3차원 공연장 뷰가 제공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미술관으로 변모를 가진지 3년째가 되는 세종미술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없다는 점이다. 타 대형 미술관과의 차별화 및 미술 생태계에서 세종미술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차별화된 두 가지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창작공간등과 연계하여 신진 예술가, 큐레이터의 성장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작가에게는 해외아트페스티벌 참가를 지원하는 등 우리나라 미술계를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 밝혔지만 전혀 새롭지도 차별화 되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미술관은 최우선은 전시관의 역할이다. 전시는 몇 달 만에 준비하여 진행되는 것이 아닌데 아직까지 연 간 전시에 대한 그림이 없다는 것은 결국 자체 기획보다는 대관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 기획전시는 졸속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드가’전이 전시를 앞두고 취소 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세종미술관은 공연장과 더불어 여느 미술관보다 접근성뿐만 아니라 광화문이라는 환경적으로도 우수하다. 그러나 예술단체가 단장체제로 운영되는 반면 미술관은 그렇지 못하는 것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다. [허중학 기자]
[영화] 영화 말모이의 감동과 국립한글박물관의 ‘사전의 재발견’에서 만나는 말모이 원고
[영화] 영화 말모이의 감동과 국립한글박물관의 ‘사전의 재발견’에서 만나는 말모이 원고
[서울문화인]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웃음이 영화가 끝나자 한동안 침묵만이 흐른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대정부 질의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곤혹을 치뤘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맞이한 지도 70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언어습관에는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주시경 선생이 한일합병 초기인 1911년에 시작, 선생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로 우연히 들어가게 된 한 평범한 사람의 시선과 변화를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던 엄유나 감독 지금 우리들이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게 쓰고 있는 우리말과 한글. 이름조차 일본식으로 바꿔야 하는 창씨개명까지 이르렀던 일제 통치 기간 동안, 우리말은 과연 누가 어떻게 지켰을까? 영화 <말모이>는 그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며, 전국의 학교에서 우리말 사용과 교육이 금지되고, ‘국어’시간에 일본어를 가르치고 배워야 했던 1940년대, 우리말을 모아 조선말 사전을 만들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대거 옥고를 치렀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된 이들의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토대로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시경 선생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았던 우리말 사전 편찬이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에 의해 재개되었지만 일제의 방해로 전국의 사투리를 모으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비밀리에 공청회를 거치는 ‘말모이’의 완수를 위해 펼쳐지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함께 지켜내어야만 하는 것처럼 긴장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어린 학생들부터 지식인들까지. 나이와 성별, 지식 유무를 떠나 조선인이기에 ‘말모이’에 마음을 모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말이 왜 민족의 정신인지, 사전을 만드는 것이 왜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 자연스러운 공감으로 이어진다. 소매치기 사건을 통해 정환(윤계상)과 판수(유해진)는 피의자와 가해자로 첫 만남이 이뤄진다. 이들의 악연은 사람을 구하던 조선어학회의 어른이자 판수의 감옥소 동기 조갑윤(김홍파) 선생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과자에다가 글도 못 읽는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과 남매 데리고 먹고살려면 자존심 따위 잊어버리고 취직을 해야 하는 판수. 두 사람은 서로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이 다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글을 읽지 못하기에 사전 만들기에 도무지 도움 될 리 없어 보이던 판수는 글을 배운 후 감옥에서 길에서 험한 인생 살아오다 만난 보통 사람들을 데려와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동지’로 변화하고, 정환은 그를 통해 지식인이 선도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말모이’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달랐던 두 사람이 ‘동지’가 되어 가는 두 사람과 관계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전개이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까막눈 아버지와 달리, 똑똑한 아이들만 가는 명문 경성제일중학교에 다니는 판수의 아들(김덕진)과 일곱 살 먹은 딸(김순희)의 관계는 아버지가 조선어학회에 깊이 관여 할수록 아버지를 다시 감옥에 보낼 수있다는 불안감과 자신도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에 정환과의 관계와는 역행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움이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구조는 정환도 그의 아버지이자 경성제일중고 이사장이자 친일파 류완택(송영창)과 관계도 판수와 다르지 않으며, 조선어학회 회원들도 이런 상황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런점이 어쩌면 친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친일을 할 수밖에 없는 면죄부라기 보다는 그들이 이러한 이중적 구조속에서도 우리말을 지켜내려고 했던 힘든 현실을 만들어 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사투리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사투리는 고쳐야 하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표준어 못지않게 사투리 또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의 말이다. 그 속에는 지역적 특성과 우리의 오랜 문화와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것은 상업적인 재미를 떠나서 또 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하겠다. 국립한글박물관, 우리말 사전 특별전 ‘사전의 재발견’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영화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의심이 들 것이다. 분명 인물에 대해서는 영화적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지만 기본적 모티브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개최중인 ‘우리말 사전’ 특별전 <사전의 재발견>을 보시길 권해본다. 사실 이 전시는 지난 12월 25일 끝나는 전시였지만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올 3월 초까지 연장되었다. <사전의 재발견>전에는 1911년부터 주시경(周時經, 1876-1914) 등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등록문화재 제523호)와 조선어학회(이후‘한글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 동안 작성한 원고의 최종 수정본인 ‘조선말 큰사전 원고’(1929-1942, 한글학회 소장,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실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제에 압수되었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2만6500여 장 분량의 원고인데, 이를 바탕으로 『조선말 큰사전』권1(1947), 권2(1949)를 간행하고 1957년에는 총 6권의 우리말 대사전인 『큰사전』 편찬에 기틀이 되었다. 다시 찾은 <사전의 재발견>전 새롭게 취재를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전시 담당자에 따르면 영화 개봉 후, 전시장을 찾는 관객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관객은 영화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전시를 보고 영화를 볼 것이라고 했다. 사실 국립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 관객들이 많이 찾지를 않는다. 하여 이번 영화 말모이의 현상은 박물관에서는 호재이기는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영화의 말모이의 실제 원고가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박물관 측에서는 이에 영화사와 홍보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또한, 이웃한 용산 CGV에도 영화관에 홍보물을 배치하는 것도 금전을 요구하여 이뤄지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전시가 유로 전시라면 이해가 되지만 국가기관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전시인데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그들 스스로가 역행하고 있다는 것에 이중성이 느껴진다. [허중학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의 기본 터전인 ‘지역’을 조사한 보고서와 민속지 발간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의 기본 터전인 ‘지역’을 조사한 보고서와 민속지 발간
[서울문화인]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민속의 기본 터전인 ‘지역’을 조사하고 조사를 바탕으로 조사보고서와 민속지, 총 3종을 발간하였다. 한강의 물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한강 수로와 어로문화’ 조사보고서 ‘한강 수로와 어로문화’ 조사보고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2018년부터 우리나라 주요 수로를 중심으로 수로문화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는 그 첫 결과물이다. 보고서는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한강’의 물길을 따라 문헌조사를 토대로 현지 조사하였다. 한강은 전통적으로 이 물길을 차지한 나라가 한반도 주도권을 행사할 정도로 역사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조운선, 돛배, 뗏목 등 하루에도 수십 척이 오간 한강은 20세기 초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점차 쇠퇴했지만,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19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물류 이동의 중심이었다. ‘한강 수로와 어로문화’ 조사보고서는 한강의 물길을 터전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강의 수로문화에서는 댐과 교량이 설치되기 전 한강의 나루와 포구를 기록하고, 물길을 이용한 배를 운송용과 어로용으로 정리했다. 특히,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간 뗏목과 달리, 바람을 타고, 돛대, 상앗대, 노, 밧줄 등 상류와 하류를 자유롭게 오간 돛배의 운행방법을 다룬 점이 이색적이다. 또한, 그간 주목하지 않은 내륙 어로문화는 물론 떼꾼으로부터 어부에 이르기까지 강변 사람을 함께 다루고 있다. 조선후기 서유구가 집필한 『난호어목지』와 『전어지』등 각종 문헌을 토대로 전통 어로문화를 정리하고, 현지 조사를 통해 현대 어로문화를 내수면어업으로 담아내었다. 팔당 조선소에서 주문에 맞게 배를 만들어 팔았던 배목수, 영월에서 뗏목을 타고 서울까지 내려왔던 떼꾼, 옛 어구를 사용해 그물을 쳤던 어부를 통해 예전에 한강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편, 박물관은 한강에 이어 2019년에는 금강의 수로문화와 더불어 강경 젓갈을 통한 식문화를 조사하고, 아울러 2020년과 2021년에는 낙동강과 영산강의 수로문화와 더불어 강변의례 및 장시 등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사 요충지, 한강의 관문에서 다양한 어족자원의 공급처, 남북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강화 포구의 역할을 조명, ‘한강과 서해를 잇는 강화의 포구’ 민속지 발간 과거의 강화 포구는 군사 요충지, 한강의 관문으로써의 역할이 중요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에 대항한 임시도성의 역할을 했고, 정묘호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마지막 보루이자 방파제 역할을 한 곳이 강화도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고려궁지, 강화산성, 삼도수군통어영지, 17세기부터 해안선을 따라 쌓은 53개의 돈대, 12진보 등 강화도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또한, 강화도 포구는 한강의 관문 역할을 했다. 강화도의 동검도와 서검도는 한강을 드나들던 선박을 검문했다. 현재는 다양한 어족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화도 갯벌(천연기념물 제419호)의 풍부한 영양 염류는 바다를 풍요롭게 만들어서 새우, 장어, 숭어, 반지, 꽃게 등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한다. 특히 가을에 잡히는 젓새우의 70%가 강화 어장에서 생산된다. 그만큼 해산물 공급처로써 강화 어장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강화 포구는 ‘남북 협력과 평화의 공간’이다. 2018년 11월 5일에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남북 공동으로 한강하구 수로조사를 하여, 12월 9일에 완료했다. 선박이 다닐 수 있는 물길을 찾기 위해서 파주시 만우리로부터 강화군 말도까지 660km를 수로를 측량했다. 남북 협력과 평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싹을 틔우며 ‘남북 평화와 협력의 공간’이 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 ‘한강과 서해를 잇는 강화의 포구’는 남북 분단 전까지 강화도 최대 포구였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산이포를 비롯하여 염하수로에 있는 더리미와 황산도, 석모수로의 창후리, 외포, 후포 그리고 강화 남단의 선두4리와 선두5리, 강화도의 부속섬인 석모도의 어류정항과 교동도의 남산포와 죽산포의 현황과 함께 강화도의 주력 어선인 꽁당배, 지양배 등의 어선과 어법, ‘젓새우 가공과 유통’, ‘강화 갯벌’, 외포리 곶창굿(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의 전 과정 등을 기록하였다. 이번 조사는 2018년 6월 하순부터 12월 초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전문 연구자 1명과 사진‧영상작가가 한 팀이 되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발간하였다. 지역 기초자료를 발굴하여 전통생활문화 자료집으로 발간. 지역에는 동계, 일기류 등 지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기초 자료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대부분 자료들은 다양한 필체로 기록된 한문 또는 일문이거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한글 고어여서 일반 연구자도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립민속박물관은 연구자 등이 현지 조사를 통해 발굴한 지역 자료를 자료집으로 발간함으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역의 기초 자료를 축적하는 목적에서 시작했고, 이번에 그 첫 결과물을 전통생활문화 자료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전통생활문화 자료집은 지역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초 자료를 발굴해서 번역하고, 그 결과를 자료집으로 발간한 것으로 원주시 신림면 백운·치악산신제 계문서,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김해김씨 문서, 인천광역시 강화군 계문서 등을 발굴하여 전통생활문화 자료집 3권으로 발간되었다. 자료집은 일반 연구자가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각 자료에 대한 해제, 원문이미지, 탈초, 번역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자료집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자료로 가리파재 성황당에 있는 백운산신과 치악산신 계문서이다. 이 자료는 가리파재를 중심으로 백운산신과 치악산신이 합쳐진 경위에서부터 보부상단이 해체되고 성황당계가 마을신앙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자료는 보부상과 마을신앙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자료집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마을문서로 활남마을 김해김씨 고문서이다. 이 자료는 상서(上書), 소지(所志), 통문(通文), 명문(明文), 간찰(簡札) 등 고문서로 활남마을에 사는 김해김씨가 19세기 후반 이 지역에서 발돋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자료는 문중사뿐만 아니라 지역사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세 번째 자료집은 강화도 계(契)문서이다. 이 자료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구성원을 모아 금전이나 물질, 노동력으로 상호 부조하는 공동체 민속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자료는 지역사를 재구(再構)하는 준거를 찾아내고, 지역민의 정체성을 해석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지역’이란 민속의 기본 터전이자, 민속의 특징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역에 산재해 있는 기초 자료들을 발굴하는 것은 민속에서 지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세 권의 전통생활문화 자료집으로 시작해서 앞으로도 드러나지 않은 지역 자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발굴하고 축적하는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고 밝혔다. [허중학 기자]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68점, 고국의 품으로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 68점, 고국의 품으로
[서울문화인]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가 한글로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을 비롯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가 지난해 11월 미국에 거주하는 덕온공주가 윤씨 가족으로부터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셋째 딸로 윤의선과 결혼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고(23세), 윤용구(尹用求, 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윤용구의 딸 윤백영(尹伯榮, 1888-1986)이 집안대대로 전하는 왕실유물로 왕실 후손이 3대에 걸쳐 작성한 것으로 한글 책과 편지, 서예작품 등 총 68점이다. 세부적으로 덕온공주 친필유물(6점), 왕실여성유물(22점), 윤용구번역역사서(9점), 윤용구서예작품(11점), 윤백영 한글서예작품(8점), 기타유물이 11점이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의 귀환은 국내기관 간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유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수집하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에 제공하였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소장자와 접촉과 매입 협상을 통해 유물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문화재 환수 실적을 보면 2013년 석가삼존도(국립중앙박물관)를 시작으로 2014년 곽분양행락도(미국, 국립고궁박물관), 2015년 선암사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선암사), 팔금강도(직지사), 범어사 극락암 칠성도(스위스, 3점, 범어사), 2016년 석천암 지장시왕도(독일, 불교중앙박물관), 2017년 분청사기상감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국립광주박물관), 옥천사 나한상(미국, 옥천사), 강노초상(미국, 국립중앙박물관), 2018년 조선시대 갑옷(국립고궁박물관), 독립운동가 송일성 자료(3점, 독립기념관), 효명세자빈 책봉죽책(프랑스, 국립고궁박물관), 운문사 칠성도(미국, 운문사), 봉은사 시왕도(미국, 봉은사), 덕온공주 동제인장(미국, 국립고궁박물관), 덕온공주家 전래한글자료 등(미국, 68점, 국립한글박물관), 양봉요지(왜관수도원)까지 총 17건 88점에 이른다. 이번에 환수된 자료들은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이 주목을 끈다. 두 책은 모두 본래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덕온공주가 한글로 번역해 작성한 자료로, 덕온공주가 쓴 것으로는 이번에 처음 발견되어 희소가치가 높다. 자경전기(慈慶殿記)는 ‘ᄌᆞ경뎐긔’는 ‘자경전기(慈慶殿記)’의 원문에 토를 달아서 한글로 쓰고 이어서 우리말 번역문을 적은 것으로, 단아한 글씨는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의 친필이다. 표지에 제첨(표지에 직접 제목을 쓰지 않고 다른 종이(쪽지) 등에 별도로 제목을 써서 붙인 것)은 쓰지 않았다. 한문으로 된 원문 ‘자경전기’는 순조(純祖, 1790~1834)가 효의왕후(孝懿王后, 정조 비, 1753~1821)의 명을 받들어 1808년에 지었다. 자경전(慈慶殿)은 1777년 정조(正祖)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養和堂) 옆 작은 언덕에 지은 전각으로 후에 효의왕후가 거처하였던 곳이기도 하나, 현재는 터만 남았다. 규훈(閨訓)은 여성들이 지켜야 할 덕목과 예절에 관한 책으로 덕온공주가 쓴 규훈은 외편(外篇) 독륜(篤倫)의 봉선장(奉先章)과 교자손장(敎子孫章)의 우리말 번역문을 단아한 궁체로 적었다. 또한, 이번에 환수된 자료에는 왕실에서 작성한 한글 편지와 왕실 여성들을 위한 한글 역사서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글 편지들은 덕온공주의 어머니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1823~1887)에게 딸의 근황을 묻는 편지(윤의선이 감기와 기침을 심하게 앓아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든든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를 비롯하여, 신정왕후(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인 익종(翼宗, 추존왕)의 비이자, 제24대 헌종의 어머니)가 윤용구의 첫 번째 부인인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1874년 2월 8일에 명성왕후가 원자(후에 순종)를 출산한 기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명헌왕후(헌종 계비), 철인왕후(철종 비), 명성황후(고종 비) 등이 직접 쓰거나 상궁이 대필해서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것들이다. 이 중에는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로 알려진 궁중여성 서기 이씨(書記 李氏)가 대필한 편지도 있어 사료적 중요성이 크다. 한글 역사서에는 「정사기람(正史紀覽)」과 「여사초략(女史抄略)」 등이 있는데, 「정사기람」은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가 고종의 명을 받아 왕실 여성들을 위해 쓴 역사책이며, 「여사초략」은 윤용구가 당시 12살이던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서 작성한 책이다. 이외에도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의 서예작품이 눈에 띄는데, 윤백영은 일제강점기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글 궁체로 쓴 서예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입선하였으며, 전통적인 한글 궁체를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이번에 환수된 68점의 한글 자료는 조선 왕실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한글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하였던 아름다운 한글 궁체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지낸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이번에 구입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는 기존에 소개된 단편적인 왕실 편지나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자료로서, 왕실 부마 집안의 일괄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왕실인물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환수의 의의를 밝혔다. 한편, 국립한글박물관은 2016년부터 덕온공주가의 왕실 한글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순원왕후와 덕온공주의 친필을 포함 이전까지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 중, 2016년 특별전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을 개최하여 덕온공주가(家) 왕실 유물 41점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기도 하였다. 박물관은 더불어 이번에 이관 되는 유물과 함께 올 4월 기획특별전 “덕온공주가 3대 한글유산(가제)”를 통해 200여점을 공개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공연장 스케치] 추상 표현주의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조수 켄의 예술에 대한 고뇌. 연극 레드
[공연장 스케치] 추상 표현주의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조수 켄의 예술에 대한 고뇌. 연극 레드
[서울문화인]연극 <레드>는 이야기다. 작가 존 로건은 여느 작품들처럼 화가 마크 로스코의 생애를 훑기보다는 그의 중년 시절에 있었던 한 사건에 모티브를 두었다. 1958년, 뉴욕 씨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 받은 마크 로스코가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사건에서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존 로건은 실제 마크 로스코가 했던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냈다. 더 나아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을 등장시키고, 처음부터 끝까지 로스코와 켄, 단 두 사람의 대화로 극을 구성해냈다. 연극 <레드>는 색면추상의 대가로 알려진 화가 ‘마크 로스코’와 그의 작업실에서 가공의 인물 조수 ‘켄’과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으로, 추상표현주의에서 신사실주의로 변화하는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영국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이 제작)은 2010년 제 64회 토니어워즈에서 연극 부문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등 6개 부문 최다 수상을 기록했으며, 한국에서는 2011년 초연되어 그동안 4차례 공연되었으며, 강신일, 강필석 등 실력파 배우를 시작으로, 정보석, 한지상, 카이, 박은석 등 개성 있고 걸출한 배우들이 거쳐 갔다. 이번 시즌에서는 마크 로스코 역에 배우 강신일, 정보석, 켄 역에 김도빈, 박정복 배우가 캐스팅되었으며,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김태훈 연출을 맡았다. 연극 레드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오는 2월 10일까지 공연 된다.(R석 6만원 / S석 5만원 / A석 4만원)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