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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킨 ‘마르셀 뒤샹’의 예술세계...
[전시]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킨 ‘마르셀 뒤샹’의 예술세계...
[서울문화인]여러분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바로보고 이해하는가? 그럼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뻔한 상업용 남성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둔갑시키는 등 현대미술의 정의를 바꾼 ‘마르셀 뒤냥’의 예술세계는 어떻게 보여 지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샹은 파리의 입체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일명 <큰 유리>)를 1912년부터 8년에 걸쳐 제작한다. 동시에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1917년,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쟁적인 오브제가 전시회에 출품되면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했다. 당시 근소한 차이로 예술이 아니라는 판정이 있었다. 하지만 <샘>은 현대에 아이러니 하게 뒤샹을 기억하게 만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1920~30년대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며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다. 뒤샹은 수많은 레디메이드의 작가로서 에로즈 셀라비를 유머러스하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유희 작가로 활용했다. 뒤샹은 생전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뒤샹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필라델피아미술관의 그의 작품은 핵심 후원자였던 수집가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에 의해 기증된 작품들이다. 뒤샹과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의 인연은 1915년 여름, 뒤샹이 전쟁에 휩싸인 파리를 떠난 뉴욕에서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주변에 모인 재능 있는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아렌스버그 부부는 뒤샹의 주요한 후원자가 되었고, 1950년 12월 마지막 날, 당시 200여점의 작품과 함께 수많은 아카이브들을 필라델피아미술관에 기증하였고 1954년 10월, 기증한 컬렉션이 처음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헨리 클리포드는 마르셀 뒤샹에 대해 “뒤샹만큼 다채롭고 창의적인 인물을 찾기 위해서는 미술사의 저 앞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뒤샹의 커리어는(고작 6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더욱이 이 모든 것이 20대에 이룬 것이다) 대단히 짧다”며 “그의 독창성과 예언이 남긴 유산은 르네상스 이래 견줄 대상이 없을 정도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뒤샹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중인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점과 아카이브를 선보이는 전시이다. 이 중 다수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행가방속 상자> 작품도 처음 오픈 상태로 공개되었다. 전시는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특히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12년 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를 만나볼 수 있으며, 2부에서는 25살 뒤샹이 회화 기법과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했던 1912년 가을 이후의 시기를 조명하고 있다. 작가가 미술작품은 눈으로 본 것, 즉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 제작에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 <통풍 피스톤> 등 관련 작업과 <자전거 바퀴>, <샘> 등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탈바꿈 시킨 레디메이드 작품이 소개하고 있다. 레디메이드 작품에 대해 그 무렵 뒤샹이 자신의 노트에 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제3부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뒤샹이 파리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던 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체스 국가대표로 나갈 정도로 뛰어난 체스 실력을 겸비했던 뒤샹은 이 당시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근 20년간 직업정신을 갖고 체스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전시에서는 당시 체스에 몰두하던 모습과 함께 1920년대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이 페르소나의 탈을 쓰고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그리고 미술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학적 실험을 했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등을 선보인다. 특별히 뒤샹의 작품을 총망라한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속 상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1941년 에디션과 필라델피아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에로즈 셀라비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이름일까? 성전환을 한 것이다. 내 개인적 취향에는 로즈는 가장 ‘추한(醜漢)’이고 셀라비는 ‘세라비(C’est la vie, 그것은 인생)’의 단순 말장난이다.” - 마르셀 뒤샹, 장 크로티와 쉬잔 뒤샹에게 보낸 1920년 10월 20일 자 편지 중에서 마지막 4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로로 널리 알려져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뒤샹은 은퇴한 상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68년 그가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방만한 크기의 디오라마 작품 <에탕 도네>가 공개되자, 뒤샹이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최후의 예술적 선언에 힘을 쏟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조각-건축물 <에탕 도네>와 함께 소재의 특성상 이동이 어려운 <큰 유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에탕 도네>는 제작 시 남긴 스터디 작품과 아카이브, <큰 유리>는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어 만나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뒤샹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 만 레이,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은 영국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해밀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생전 협업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와 함께 만들어진 전시 도록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 매슈 애프런(Matthew Affron), 뒤샹 연구자 알렉산더 카우프만(Alexander Kauffman)이 참여해 뒤샹이 작품에 사용했던 개념 레디메이드, 정밀광학, 인프라씬을 비롯하여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 뒤샹과의 인터뷰(1946, 1955) 및‘창조적 행위’(1957) 등 뒤샹이 직접 쓴 글도 포함되어 뒤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미술관장은 “그동안 ‘인상주의’전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박물관(미국 미술 300년)’ 등 한국에 우리미술관의 소장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은 1950년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의 의해 샤갈, 세잔 등 근대 대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다음에는 소개하지 않았던 대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며, 아울러 “우리 미술관의 소장품의 80%는 기증품으로 이뤄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르셀 뒤샹》전은 2019년 4월 7일(일)까지 MMCA 서울 1, 2 전시실에서 개최되며, 배우 이서진이 특별 홍보대사를 맡아 이서진의 가이드 투어를 통해 마르셀 뒤샹의 삶과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
[전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그려낸 한국의 모습들
[전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그려낸 한국의 모습들
-대한민국 ‘서울’을 주제로 한 신작 10 여점을 비롯하여 총 150 여점 소개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해녀 프로젝트’ 소개 [서울문화인]국내 아트페어에서 이미 서너 차례 그녀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녀의 작품처럼 그녀의 이미지는 항상 웃고 있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그녀의 개인전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을 위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규모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되는 만큼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유화, 판화, 드로잉, 대형 오브제 등 그녀의 초기 작 부터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까지 총 150 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를 전시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에바는 “한국은 항상 저를 두 팔 벌려 따뜻하게 환영해주는 특별한 나라였다. 이번 전시를 기회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저의 작품을 통해 함께 공감하며 그 동안 제가 받은 호의를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고 싶다.” 매년 2, 3회 한국을 찾는다는 에바는 10년 전 우연히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현재까지 작품을 통해 꾸준히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자주 한국을 찾는 에바에게 한국에 오면 공식적인 업무 이 외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에 오면 한국 음식이 좋아 많이 찾아먹는다. 그리고 한국 길거리를 많이 돌아다닌다. 한국의 건물,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밝혔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녀가 이번 한국 전시를 기념하여 대한민국 ‘서울’을 주제로 한 최신작이 특히 눈에 뛴다. 작품은 수십 차례 서울을 방문하며 보았던 서울의 풍경, 음식, 건물, 사람들의 모습을 그녀만의 사랑스러운 화풍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서울의 일상을 바라보고 녹여낸 작품은 우리들에겐 익숙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을 주제로 하는 작품 이 외에도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에바 알머슨의 한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제주 해녀에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중국의 한 호텔에서 제주 해녀에 대한 사진과 글을 접하고 흥미를 느끼고 그녀의 여동생과 제주 우도를 찾아가 직접 제주 해녀와 교감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해녀에 대한 관심은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를 위해 홍보를 자원했으며, 국내 해녀 관련 영화와 전시에 참여하며 해녀를 알리는데 앞장섰다. 또한, 2016년에 개봉된 영화 ‘물숨’의 고희영 감독이 지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장에서는 그녀가 제주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얻은 영감으로 그려진 작품들을 원작과 함께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그녀는 “한국과 보다 깊은 유대감을 형성 할 수 있었던 ‘해녀 프로젝트’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내가 그녀들을 통해 얻은 값진 경험들을 관람객들 또한 나의 작품을 통해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 속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 HOME(집)을 주제로 8개의 ROOM(방)으로 꾸며진 전시장은 우리의 일상을 연출하며, 관람객은 그녀의 거리낌 없는 유머와 매력, 솔직함이 가미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감정, 생각, 기억들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느꼈던 작은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즐거운가를 깨닫고 소소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함과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또한 그들에게 이번 전시가 따스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31일(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성인15,000원/청소년 11,000원/어린이 9,000원) [허중학 기자]
[전시] 치바이스와 중국 문인화의 전설 팔대산인부터 현대미술 거장 우웨이산을 한 자리에
[전시] 치바이스와 중국 문인화의 전설 팔대산인부터 현대미술 거장 우웨이산을 한 자리에
-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팔대산인 작품 등 - 중국 국가 1급 문물 4건 13점 등 총 71건 116점 공개 [서울문화인]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 서울서예박물관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농민화가로 시작하여 중국인민예술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인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 있다. 치바이스 시서화각(詩書畵刻) 일체의 조형언어로 ‘신문인화(新文人畵)’를 창출하여 중국 근현대미술을 혁신시킨 인물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존재로 중국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라 한다. 서울서예박물관이 2019년 2월 17일(일)까지 선보일 <같고도 다른 : 치바이스와 대화>展은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중국국가미술관(관장 우웨이산)과 함께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전시로 이번 전시에는 치바이스의 걸작 80여 점을 포함해 중국 문인화의 거두 팔대산인의 작품 7점, 오창석 14점, 인물 조각으로 유명한 우웨이산(現 중국국가미술관장)의 조소 8점 등 중국 유일의 국가미술관인 중국미술관(National Art Museum of China)이 소장한 걸작들 총 116점이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이 가운데에는 팔대산인 <학 사슴 오리 기러기[鶴鹿鳧雁]> 4폭병, 오창석 <화훼책(花卉冊)>, 치바이스 <화훼초충책(花卉草蟲冊)>, 우쭈어런 <치바이스 초상> 유화 등 한국의 국보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 1급문물이 4건 13점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조차 희귀한 팔대산인 주탑(朱耷, 1626-1705)의 작품 7점을 비롯하여 오창석의 진품이 해외전시를 위해 한꺼번에 반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가 ‘치바이스와 대화 형식’으로 보여주는 만큼 위로는 팔대산인과 오창석(吳昌碩, 1844-1927), 아래로는 우쭈어런(吳作人, 1908-1997), 리후(李斛, 1919-1975), 진상이(靳尚誼, 1934), 장구이밍(張桂銘, 1939-2014), 우웨이산(吳為山, 1962) 등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다섯 거장의 유화, 조소, 중국화와 창작 초안, 스케치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치바이스 스스로도 자신을 “팔대산인 문하의 주구”라 칭할 정도로 팔대산인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늘 전설처럼 거론되는 인물이며 명말청초 사의중심의 문인화 역사전통을 혁신시킨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섹션은 ‘치바이스의 인물 조형’ 섹션으로 우쭈어런, 리후, 진상이, 장구이밍, 우웨이산 등 중국 현대 다섯 대가의 유화, 조소, 중국화와 창작 초안, 스케치 등을 한 자리에 모아 작가마다 어떤 창작방식과 표현기법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고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진상이의 <팔대산인> 유화 시리즈와 우웨이산의 <오창석흉상> 조소작품을 열쇠로 삼아 중국미술관에서 소장한 팔대산인, 오창석의 걸작들, 그리고 치바이스의 화제와 화풍과 관련 있는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관람객들은 작품들을 서로 비교 감상하는 재미와 더불어 중국 예술의 주류에서 사의(寫意) 정신이 어떻게 이어지며 새롭게 창작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예술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전달되어 창의력으로 변환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은 치바이스 작품 50여 점이 회화의 소재, 표현기법, 미학적 취지 등 네 개의 단원으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고학찬 사장은 “지난 2017년 경색된 한중관계의 물꼬를 트는데 큰 역할을 했던 <치바이스>展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해 우리 국민들에게 선보이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중장기적인 한중예술교류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예술의전당은 이번 <같고도 다른 : 치바이스와 대화>展을 마치고 교환전시로 내년에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을 중국국가미술관에서 개최되며, 교환전시는 향후 3년간 매년 두 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입장권은 성인 5천원, 청소년/어린이 3천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콜센터(02-580-1300)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전시] 9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럽의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들
[전시] 9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럽의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들
[서울문화인]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지난 5일부터 2019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선보인다.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로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약 160㎢)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지만 900년 역사를 지닌 유럽의 가문으로 오늘날까지 자신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럽 왕실 가문으로 ‘대공’(Fürst, Prince)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이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12세기에 오스트리아 인근에서 발흥한 약 900년 역사의 귀족 가문으로, 1608년 카를 1세(Karl Ⅰ von Liechtenstein, 1569-1627)가 대공의 지위를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왕가의 기초를 세웠다. 1719년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Anton Florian Ⅰ von Liechtenstein, 1656-1721)이 셸렌베르크(Schellenberg)와 파두츠(Vaduz) 지역을 합쳐 공국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어 내년에 개국 300주년을 맞는다. 현재는 한스-아담 2세 대공(Hans-Adam Ⅱ, 1945~)이 국가 원수로 있으며, 가문의 오랜 전통에 따라 아들 알로이스 대공(Alois, 1968~) 세자가 실질적인 국정을 맡아 섭정을 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빈을 떠나 1719년 파두츠에 자리 잡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제적 관계에 의해 어려움이 많았으나 리히텐슈타인 대공 프란츠 요제프2세(1906-1989)와 현 국가 원수인 한스-아담2세(1945~)는 빈곤하고 거의 시골에 가까웠던 나라를 세계에서 GDP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고수익을 창출하는 산업국가로 탈바꿈시겼으며, 1990년 UN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국제사회에서도 그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리히텐슈타인 가문에 있어 미술품은 권력과 지위의 상징이자 한편으로는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재산이었기에 17세기 초부터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은 가문에게 중요한 일이 되었고그 미술품은 가문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1945년 상당수가 적군에 의해 모스크바로 빼앗겼다가 현재는 이를 반환 받아 빈에 나아있던 자료들과 다시 합쳐 역사적인 순서대로 정리된 상태이다. 이번 전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문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조성해 온 세계 최고 수준의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LIECHTENS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소장품을 바탕으로 왕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로 이번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은 198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약 천년의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역사를 둘러보고 있다. 1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에서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오스트리아 동부 지역에서 발흥하여 체코 지역까지 세력을 넓힌 내용을 담은 문서와 카를 1세가 대공에 오른 후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통치한 내용을 그린 초상화, 연수정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가문의 문장을 새겨 만든 ‘마이엥크루그’(뚜껑이 달린 병) 등을 소개하고 있다. 2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생활 문화’에서는 왕가의 생활과 미술품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궁전의 그림과 그곳에서 사용했던 화려한 가구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색깔 있는 돌을 짜 맞추어 장식한 석상감(石象嵌)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으로 장식한 함과 알로이스 1세 대공비를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으로 묘사한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초상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의 대형 유화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이 주목할 만하다. 3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도자기’에서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빈 황실도자기공장(합스부르크 황실 소속)에서 제작하여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아시아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수입하여 사용한 다양하고 아름다운 장식 도자기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이 로마에서 사용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은식기도 감상할 수 있다. 4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말 사육과 사냥’에서는 유럽 귀족 사회의 특권이었던 말 사육과 사냥, 총기와 관련한 그림, 기록 등이 소개된다. 특히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말을 사랑하여 자신들의 애마를 다양한 회화로 남겼다. 마지막으로 5부 ‘리히텐슈타인 대공의 미술품 수집과 후원’에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와 함께한 예술적인 소장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로 르네상스 매너리즘과 바로크 시대의 정교한 회화와 조각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의 주요 화가인 알레산드로 마냐스코(Alessandro Magnasco,1667-1749)가 ‘바카날리아’와 일명 ‘안티코’의 청동 조각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편 특별전 기간 중, 12월 19일과 1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클래식 공연과 함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리히텐슈타인 왕가와 관련된 명소를 담은 엽서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의 우표 스탬프(도장)를 찍어 간직할 수 있는 행사(행사는 엽서 소진 시까지만 진행)와 함께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활동지를 통해 알기 쉽게 학습하는 ‘활동지와 함께 하는 전시해설’과 초등학생(4~6학년, 회당 10명)을 포함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 연계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문의 02-3701-7634) 이번 전시를 개최하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그간 왕실문화 전문 박물관으로서 다양한 국가의 왕실 문화를 알리기 위해 국외왕실 특별전을 꾸준히 개최해 왔다. 이번에 소개되는 리히텐슈타인은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나라이자 나라 규모도 작지만 긴 역사와 내실 있는 예술 문화 정책을 오랜 동안 유지해 온 국가로 이번 전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해 절대주의 시대 유럽 왕실의 면모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허중학 기자]
[전시] 국내 최초 카자흐스탄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특별한 전시
[전시] 국내 최초 카자흐스탄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특별한 전시
[서울문화인]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11월 27일부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450여 점의 전시품을 선보이는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관장 김찬동)은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공동 주최로 카자흐스탄의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포커스 카자흐스탄-유라시안 유토피아>전이 시간을 같이하며 선보이고 있다. 현대적 네트웍은 물론 생활문화권이 훨씬 좁았던 과거에도 문화가 어느 한 지점에서 독창적으로 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 대부분 지역적으로 교류를 통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라 할지라도 간간히 유물을 통해 과거 문명의 교류를 살펴보기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제 3세계의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좀처럼 주어지질 않는다. 시스템적으로도 그 지역의 미술을 이해하고 소개할만한 큐레이터가 부족함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오히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이상의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동시에 한 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문화예술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카자흐스탄이 자국의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포커스 카자흐스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기에 수원과 한국 미술의 세계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과 맥을 같이하며 이뤄지게 되었다. 이곳 전시 이전에 런던, 베를린, 뉴저지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의 심장에 위치한 국가로 유럽과 아시아 문명의 가교이자 서로 다른 민족의 개념이 공존하는 중첩지로 18세기 이래 구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독립했다. 그리고 130여개 이상의 민족으로 이뤄진 국가이지만 우리역사에서 익숙한 중세국가 돌궐의 튀르크계가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토대로 예술 분야도 이주와 정주, 상실과 발전의 과정을 부침하며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런 역사적 과정들은 카자흐스탄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쳐 구소련 시절 장식적이고 응용적인 민속 예술에 치중되었던 카자흐스탄 미술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았고, 혁신성과 창의성이라는 아방가르드의 사유를 바탕으로 집약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포커스 카자흐스탄 : 유라시안 유토피아〉전은 현실의 변혁 속에서 카자흐스탄 예술이 어떻게 유토피아적(post scriptum) 이상을 구축해왔는지 살펴보는 전시로 전시에는 카자흐스탄 근현대미술 대표작가 57명(팀)의 회화, 설치, 미디어 등 총 11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는 시대 흐름에 따라 총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카스티브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된 20세기 미술로 초기단계와 정체성 발견 단계로 나뉘어 소개하고 2부에서는 1991년 구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후, 경제성장, 신자유주의 등 글로벌리즘 이슈를 다루는 동시대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1부의 1섹션은 “붉은 별의 빛 : 카자흐스탄 미술발전의 초기 단계”부제로 광활한 자연과 사람들의 일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웅장한 산맥을 배경으로 건장한 성들이 카자흐스탄 전통 의상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장면이 담긴 20세기 카자흐스탄 최고의 화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파벨 잘츠만의 1656년 작 <아만겔드의 전사들>과 카자흐스탄 전통 스포츠를 표현한 카나피아 텔자노트의 <콕파르>를 통해서도 전통과 일상을 볼 수 있으며, 2섹션 부제는 “황금 독수리의 비행 : 독립 카자흐스탄의 예술 – 정체성의 발견”으로 시기에는 사상이나 체제 같은 거대 담론이 소멸되고 민족화, 젠더 등이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 키워드로 변모했다. 카자흐스탄의 미술 사조 개념을 구축하면서 1960대 미술계를 ‘아잇바예프의 세대’라고 부를 정도의 당대 최고의 화가인 살리히트딘 아잇바예프의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1997년)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동시대 미술을 보여주는 2부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현대미술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옐레나 앤 빅토르 보로브예프 그룹의 작업은 살고 있는 환경에 깊숙이 관계를 맺는 사회문화의 내면을 연구한 전시를 보여주며, 2004년 부산 비엔날레 등에도 참여한 알렉산더 우가이(b.1978~)는 1930년대 스탈린의 통치를 피해 극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로 현실과 미래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해 기억과 향수의 문제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동시대 카자흐스탄 미술 작가들은 가볍고 유머러스한 접근법을 이용해 격변한 사회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카자흐스탄 미술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고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 미술의 과거,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상호교류와 이해를 넓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김찬동 관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생소한 근현대미술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단일민족이라고 일컫는 우리가 서구 중심의 영향을 받은 현대미술과 다민족 국가로 사회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국가의 근현대미술이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 동시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라 하겠다. 전시는 2019년 3월 3일(일)일까지 개최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세계에 내어놓아도 빛나는 고려 예술의 정수를 만나다.
[전시] 세계에 내어놓아도 빛나는 고려 예술의 정수를 만나다.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전 “대고려(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 ‘고려불화’, ‘고려청자’ 등 과거 장르별 전시를 가진 적은 있지만 이번 “대고려”특별전은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전시로, 국외(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4개국 11개 기관을 포함해 총 45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 문화재 45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으며, 규모면에서는 물론 국보 19건, 보물 33건 등 유물의 질적인 면에서도 근래에 보기 힘든 최고의 전시라 해도 손색이 없다. 전시 소개에 앞서 루이스 랭카스터(UC버클리 명예교수)의 말을 빌려보자. “조선왕조의 사학자들과 관료들은 고려를 가혹하게 비판했다. 그러한 부정적 시각에는 잘못된 통치, 부패, 사치스러운 불교 후원에 대한 비난이 포함됐다. 그러나 고려는 동아시아에서 통치 기간이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이다. 원나라의 군사력, 명나라의 초기를 모두 겪으며 중국과 초원지대 사람들의 강력한 힘에 직면하면서도 긴 시간동안 지속됐다. 이처럼 끈질기게 지속된 통치 방식을 부적당한 것으로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고려는 현존하는 가장 감동적이고 영구한 예술 작품들을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고려왕조의 창의력을 보여주는 사례 중 많은 수의 유물들이 현재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그 유물들에 대한 경의는 그들이 국제적인 문화유산 품목으로서 오늘날의 한국 국내 상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면에서, 이번 전시는 고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 최고의 업적 중 하나로서 불교 미술의 존재는 특별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展은 고려왕조에 대한 새로운 관찰의 가능성을 열어줄 문이자, 고려시대를 논평하기 위한, 역사 문헌과는 다른 종류의 렌즈이다.”고 밝혔다. 조선을 건국한 주축들은 이처럼 고려를 비판적인 시각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하지만 고려는 앞선 왕조가 지닌 문화적 전통을 배척하지 않고 열린 태도로 융합했다. 외국인을 재상으로 등용할 만큼 개방적이었으며,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중국 본토에 세워진 송(宋, 960~1279)이나 거란족이 건립한 요(遼, 916~1125), 여진족의 금(金, 1115∼1234)과도 오랜 기간 국교를 유지하며 교류했다. 이후에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한 원(元, 1271~1368)과도 정치적 간섭 속에서도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이어나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고려의 창의성과 고려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럽보다 150년 앞선 고려활자,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고려대장경, 세계 최고의 그림 고려불화, 세계 최고라는 중국에서도 감탄한 고려청자, 우리문화에서도 세계에 내어놓아도 가장 아웃스탠딩(Outstanding 뛰어난, 걸출한)한 고려시대의 문화를 통해 조금은 희미하게 생각하는 한국문화를 이번에 세계의 다른 어느 문화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우리문화에서 예술적 최고봉의 시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고려의 화려한 예술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았고 볼 수 있다. “대고려”특별전은 고려가 주변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이룬 찬란한 미술과 그 문화적 성취를 네 가지 이야기로 펼쳐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출발한다. 밖으로 열려 있던 사회, 고려의 바다와 육로를 통해 드나든 다양한 물산과 교류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이국인의 눈으로 본 고려의 모습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회화·금속공예품·나전칠기·자기 등 최고급 소재로 새로운 차원의 다채롭고 화려한 미술을 펼쳐놓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고려 사찰로 가는 길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 세계적으로도 귀하면서도 예술성을 인정받는 불화와 불상과 등 불교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유물들로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어 제3부는 ‘차가 있는 공간’, 고려의 다점茶店이다. 이 공간은 화려한 유물의 시선에서 빗겨 차가 고려인의 생활과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에 주안점을 두어, 관람객이 시각과 후각, 청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며놓았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로, 예술성의 정점을 이룬 공예 미술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으며, 에필로그에서는 세계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와는 또 다른 고려의 독창적이고 화려했던 예술을 선보인다는 점만으로도 가슴 설래가 하는 전시임에 틀림없다. 비록 노력을 기우렸던 왕건상을 비롯하여 북한의 고려유물, 직지 등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자랑스러운 고려의 유물들을 모두 만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다음을 위한 여백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특히 이번 “대고려”전은 과학과 문화예술이 세계를 선도화 하는 시점에서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매우 의미 깊은 전시이라 하겠다. 한편, 고려(918~1392) 건국 천년이 되던 1918년은 일제강점기였기에 이번 천백주년의 의미는 더욱 크다. 국립박물관은 고려 건국 천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 12월 국립제주박물관(삼별초와 동아시아, 나주박물관 순회전시)을 시작으로 국립부여박물관(개태사), 국립청주박물관(중원의 고려사찰), 국립춘천박물관(창령사 터 오백나한),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고려시대의 미륵사), 국립전주박물관(부안청자․강진청자), 국립대구박물관(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 국립공주박물관(충청남도의 고려) 등 소속관의 성격과 특성에 맞는 특별전을 개최해왔다. 또한, 개막날(12. 3)에는 기념 명사 초청 국제 심포지엄 “고려 건국 1100주년, 통합과 화해의 시대, 문화에서 길을 찾다”(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를 선보인데 이어 오는 15(토), 연계 학술대회 <대고려: 그 찬란한 미술>(10:00-18:00,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전문가 초청 학술 강연회(1차 2018. 12. 20.(목) / 2차 2019. 1. 10.(목) / 3차 2019. 1. 24.(목) / 4차 2019. 2. 14.(목) 대강당 *사전 예약 필요 없음)를 진행한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계속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카자흐스탄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유물 450여점 국내 선보여.
[전시] 카자흐스탄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유물 450여점 국내 선보여.
[서울문화인]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2009년 ‘동서 문명의 십자로-우즈베키스탄의 고대 문화’에 이어 9년 만에 서西투르키스탄 특별전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450여 점의 전시품을 선보이는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는 튀르크어로 ‘자유인, 또는 변방의 사람’을 뜻하고, ‘스탄’은 땅을 의미한다. 해석하면 카자흐스탄은 ‘자유인이 사는 땅 또는 변방인이 사는 땅’이 된다. 중앙유라시아에 유치한 카자흐스탄은 동쪽으로는 알타이산맥에서 서쪽으로 카스피해까지, 남쪽으로 중아아시아의 오아시스 지대에서 북쪽으로 시베리아까지 펼쳐져 있는 땅으로 오랜 기간 유목을 생업으로 삶을 영위하였으며,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카자흐 칸국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19세기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가 1991년 12월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인해 다시 지금의 130여 민족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카자흐스탄공화국이 되었다. 이곳은 과거 이란계 유목민들이 고대 문화를 주도하였으나 기원을 전후로 알타이어족 튀르크계와 몽골계 유목민들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후, 알타이 지역과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발흥한 돌궐 제국이 등장하여 정치,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주변지역으로 통치영역을 확대하면서 민족대이동을 촉발, 카자흐스탄으로 대대적으로 진출하여 이곳을 튀르크화하면서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8세기 당나라와 아랍 세력이 맞붙은 탈라스 전투에서 아랍세력이 승리하면서 튀르크화는 이슬람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초원 지역인 이곳의 이슬람화는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보급되었다. 이번 전시는 자유인 또는 변방의 사람들이 초원의 중심에서 이룩한 대초원 문명이 무엇이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모두 3부에 걸쳐 구성되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1973년 경주 게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황금으로 만든 장식보검 <계림로보검>(보물 제635호)을 조명하며 카자흐스탄의 대초원 문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모색한다. 이 보검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출토 보검 장식과 형태가 비슷하여 일찍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구리 함량이 당시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헝가리 출토 금제품의 구리 함량과 유사하며, 카자흐스탄 악타스티 고분군, 카나타스 고분군, 레베둅카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제품의 세공기술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동서 문물 교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시의 1부 ‘대초원 문명, 황금으로 빛나다’는 카자흐스탄의 대초원 문명을 소개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 카자흐스탄국립박물관에서 주관하는 순회전시다. 이번 순회전시에는 카자흐스탄 국가의 상징인 이식 쿠르간에서 출토된 <황금인간>(복원품)이 전시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 황금인간을 중심으로 탈디, 탁사이, 사이람 유적지에서 발견된 황금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황금 문화재들은 2017년 12월 벨라루스를 시작으로 올해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중국, 폴란드에서 전시되어 호평을 받았던 전시이다. 이 외에도 <산과 표범 모양 장식>, <염소 머리 관모 장식>, <문자를 새긴 완> 등을 통해 기원전 4~3세기 당시 사람들이 초원에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 자라하고 있다. 2부에서는 ‘초원, 열린 공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초원은 동서양 문화와 산물의 교차로이자 다양한 민족의 이동과 성쇠의 역사가 서려있는 공간이다. 민족 간의 이동은 때로는 교역을, 때로는 전쟁을 유발하였고, 한 민족의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전파하거나 변용되었다. 초원에서 길을 열고 길을 오가며 살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의 흔적을 환경, 사회, 의례, 이슬람문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스키토-시베리아 양식의 쿠르간 출토 <동물 모양 마구>를 중심으로 옛사람들의 종교 관념이 반영된 <동물 머리 장식 제단>, <세발 달린 솥>, <튀르크인 조각상>, 카자흐스탄 남부 오아시스 도시 오트라르 출토 <명문이 있는 접시 조각>과 <위생도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3부에서는 ‘유목하는 인간, 노마드’의 삶을 담았다.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온 유목민의 애환이 담긴 중앙유라시아의 보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혹독한 환경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된 유르트를 형상화한 구조물과 카자흐스탄 전통 카펫인 <시르마크>,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인 <돔브라>, 화려하게 장식된 여성용 안장인 <아이엘 에르>, 세밀하게 가공된 혼례용 신부 모자 <사우켈레>, 남성 전통 예복 <샤판>, 은으로 만든 장신구인 <셰켈리크> 등을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중앙유라시아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민속품과 공예품을 다양한 영상과 최신 일러스트 기법으로 조명하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카자흐스탄에 정주한 우리 민족, 고려인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졌다.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머나먼 땅, 카자흐스탄에 쫓겨 가 처음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한 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은 약 10만 명에 이르며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다민족 공동체국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있지만 단순 유물 중심의 전시 구성으로 중앙유라시아의 오랜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전시 방법에 대해 카자흐스탄의 기획에 의한 전시로 꾸미기로 한 계약조건과 아울러 많은 전시 유물이 진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전시라 생각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내년 2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입장료 성인 4,000원 / 어린이 및 청소년 2,000원)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