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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 고대 상형토기 속 인물과 동물들 21세기 기술로 되살아나다.
무덤 속 고대 상형토기 속 인물과 동물들 21세기 기술로 되살아나다.
[서울문화인] 고대의 장송의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사후에도 현세의 삶이 이어진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연결되어 있다.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몸통이 비어있고 술과 같은 액체를 담거나 따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장송의례 때 사용한 제의용 그릇으로 보고 있다. 이때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안내하고 먼 길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에 선물과 같은 동행이 되어주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상형토기는 어떤 형상을 본떠 흙으로 빚은 그릇으로 주로 동물이나 사물의 모습이며 때때로 인물도 함께 표현되었다. 특이하게 상형토기는 대부분 영남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신라·가야의 특색 있는 토기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의 세계를 조명하는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은 무덤 속 토우 장식의 인물과 동물들을 21세기에 OLED와 미디어로 다시 심폐 소생시켰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청자’나 ‘자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는 않지만 두 토기에는 당시 인물들과 생활의 모습은 물론 이들과 동물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고대의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이 선보이는 전시에는 영원한 삶을 위한 선물이었던 두 토기의 다채로운 세계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로 최근 발굴되어 2022년 보물로 지정된 함안 말이산 45호 무덤의 상형토기 일괄품을 비롯하여 국보와 보물 15점을 포함 인물, 동물, 사물을 본떠 만든 332점의 토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중 97점은 일제강점기 경주 황남동에서 수습된 것으로 토기 뚜껑 위에 하나의 장면으로 복원하여 최초 공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기존 장식장 안에 단순히 유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OLED와 미디어의 유기적 결합으로 토우에 장식된 동물이 살아 움직이는 연출로 재미를 극대화시켰다. 이처럼 미디어와 잘 결합된 이번 전시는 고대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를 통해 한국 고대의 장송의례는 물론 신라와 가야 사람들이 어떤 복장과 도구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또 동물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관찰하면서 그들의 세계관을 생각해보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그간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독특한 외형 때문에 조형적 측면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번 전시로 형태를 넘어 제작 배경과 기능 등 그 속에 담긴 본질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보는 전시이다”고 말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내 1층 특별전시실에서 10월 9일(월)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열여덟 번째 괘불전, ‘부처의 뜰-청양 장곡사 괘불’ 선보여
국립중앙박물관 열여덟 번째 괘불전, ‘부처의 뜰-청양 장곡사 괘불’ 선보여
[서울문화인] 사찰에서 특별한 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에 야외에 거는 대형 불화 ‘괘불’은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진수를 보여주지만 높이가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달할 뿐만 아니라 보존상의 문제로 실제로 일반인이 실물로 보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괘불 소개하는 괘불전을 통해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열여덟 번째 괘불전으로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의 괘불을 소개하고 있다. 긴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장곡사長谷寺는 그 이름과 같이 칠갑산의 깊은 계곡 안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국보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석조대좌>를 비롯한 여러 국가지정문화재가 소장되어 역사가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국보 <청양 장곡사 괘불>은 조선 1673년(현종 14)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에서 승려와 신도 등 83명의 시주와 후원으로 조성되었다. 삼베 17폭을 옆으로 잇대어 높이 8m, 너비 5m가 넘는 거대한 화폭을 만들었으며, 철학哲學 등 5명의 승려 장인이 함께 그렸다. 화면의 중앙에는 거대한 본존불이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 가지를 들고 서 있으며, 본존불 좌우로는 불·보살·나한·천왕 등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장곡사 괘불은 화면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화폭에 그려진 총 39구의 불·보살·권속들 옆에는 모두 붉은색 네모칸을 마련하여 이름을 적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도상圖像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각각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중앙의 본존불 옆에는 ‘미륵존불’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현재 기록으로 본존불이 미륵불임을 알 수 있는 괘불은 장곡사 괘불과 <부여 무량사 괘불>(1627년)의 단 2점뿐으로, 매우 드문 미륵불 괘불의 예이다. 화면 맨 아래쪽에는 화기畫記란을 마련하여 ‘강희 12년(1673) 5월 청양 동쪽 칠갑산 장곡사 대웅전 마당에서 열린 영산대회靈山大會에 걸기 위한 괘불’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사찰 이름 뿐 아니라 ‘영산대회’라는 행사의 명칭, 그리고 ‘대웅전 마당’이라는 구체적인 행사의 장소까지 적었다. 장곡사 괘불이 조성된 후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다. 화폭의 둘레를 장식하고 있는 고대 인도의 문자인 범자梵字 또한 주목할 만한 요소다. 이 범자들은 불교의 신비로운 주문인 진언眞言으로, 불상이나 불화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종교적 신성성을 불어넣는 절차 때에 외우는 것이다. 장곡사 괘불은 화면 둘레에 범자를 장식한 조선시대 괘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한편, 대형불화는 그 무게나 크기로 인해 이동이 쉽지 않아 다른 회화 문화재에 비해 보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은 대형불화(괘불도)를 대상으로 ‘대형불화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총 10개년 동안 실시하는 대형의 불교회화 문화재 정밀조사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국보), 문경 김룡사 영산회 괘불도(보물),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통영 안정사 영산회 괘불도(보물),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보물),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보물) 등, 국보 1건과 보물 5건으로 총 6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2010년에 보존 처리를 진행하고, 2013년에는 모사도가 제작되었다. [허중학 기자]
호암미술관, 한국 미술사에 ‘추상’의 장(場)을 연 김환기의 40년의 예술세계
호암미술관, 한국 미술사에 ‘추상’의 장(場)을 연 김환기의 40년의 예술세계
- 유화와 드로잉, 신문지작업, 조각, 스케치북 등 약 120점 전시 - 도자기와 화구, 청년 시절의 사진, 작가 수첩, 편지, 50년대 스크랩북 등 100여 건의 자료 최초 공개 [서울문화인] 2015년, <19-Ⅶ-71#209>(1971년 작)이 서울옥션 홍콩 경매서 한화 47억 2100만원(31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면서 이전의 최고가로 남아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 기록한데 이어 2019년, 김환기의 <Universe 5-IV-71#200>(1971년 작)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억 3600만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을 기록하며, 한국의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작가 김환기. 20세기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 장(場)을 연 김환기(1913~1974)는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과 함께 ‘국민화가’로 불리며, 한국 미술사에서 빠질 수없는 작가이다. 올해는 그의 탄생 110년을 맞이하는 해로 호암미술관(경기도 용인)이 1년 반 동안 전시환경 개선을 위한 내부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새롭게 선보이는 첫 전시로 수화 김환기를 선택했다. 김환기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선, 형태, 색체,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30년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구축주의 등 당시의 전위미술인 추상미술사조를 익히고 1937년 귀국,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며,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가 되었다. 당시는 김환기가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로 민족예술의 계승을 주창한 김용준, 이태준, 최순우 등과 교류하며 전통미술에 대한 식견과 사랑을 키웠고, 자연과 전통의 현대적 표현을 목표로 평생을 추상에 매진했다. 1963년, 50세에 건너간 뉴욕에서 김환기는 무수한 이방인 무명작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을 찾기 위해 치열하고 꾸준하게 조형실험을 이어갔고, 만년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동양적 사유와 관조를 담은 전면점화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점화에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의 추상 여정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는 자연과 인간, 예술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에 대한 확장된 사유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암미술관 1,2층 전시실 전관에서 약 120점을 선보이는 전시 <한 점 하늘_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는 김환기의 40년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꾸며져 시대별 대표작은 물론,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여러 초기작들과 미공개작,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스케치북과 드로잉들을 최초로 선보일 뿐만 아니라 유족의 협조로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시절의 사진, 낡은 스크랩북 등이 처음으로 전시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2층 전시실에서 시작되는 전시 1부(달/항아리)는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나간 시기로 전시에서는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론도>(1938)는 물론, 김환기 특유의 한국적 추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달과 나무>(1948), 도자기가 빼곡한 성북동집 작업실 나무선반을 연상시키는 <항아리>(1956), 시간을 초월한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을 표현한 <영원의 노래>(1957), 전통미술양식과 점화의 씨앗이 함께 공존하는 <여름달밤>(1961) 등이 전시되며, 다수의 초기 작업들이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작가의 유일한 벽화대작 <여인들과 항아리>가 이전에는 1961년 작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발견된 작가 수첩을 통해 제작연도가 1960년으로 확인되었다. 1층 전시실로 이어지는 2부(거대한 작은 점)에서는 김환기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이면서도 국제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으로 흡수하여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수많은 작업을 시도한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1969년과 1970년 사이에 전면점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작품이자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늘 맘속으로 노래하며 그린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한 작품이자 ‘우주’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24–Ⅸ–73 #320>(1973) 등이 함께 전시되며, 작고 한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듯 그린 검은 점화 <17–VI–74 #337>(1974)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이번 회고전에는 그간 전시를 통해 보기 어려웠던 여러 초기작뿐 아니라 최초로 공개되는 1950년대 스케치북과 70년대 점화 등이 소장가들의 협조로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스물네살 청년 김환기의 사진, 작가가 애장한 도자기와 선반, 삽화와 기고문이 꼼꼼히 정리된 스크랩북, 파리 개인전의 방명록, 문화예술인 160명이 이름을 올린 1974년 추도식 팸플릿 등 작가의 유족이 수십 년 간 간직해온 김환기의 흥미로운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전시를 담당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는 한국현대 미술의 역사이자 상징같은 존재로 ‘고전’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대로 그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공명한다”라며, “그러나 김환기를 수식하는 최근의 단편적인 수사들은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다시 한 번 총제적으로 살펴보는 전시가 필요함을 일깨운다”며 회고전의 의미를 밝혔다. 전시는 9월 10일(일)까지 진행되며, 관람요금은 14,000원이다. 관람예약은 호암미술관 홈페이지(www.hoammuseum.org)을 통해 관람 2주전부터 온라인 사전 예약 후 관람가능하며, 현장발권도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은10:00~18:00(매표마감 17:00)) [허중학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1세대 화랑 동산방화랑 설립자 동산 박주환의 기증 한국화로 전시 꾸며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1세대 화랑 동산방화랑 설립자 동산 박주환의 기증 한국화로 전시 꾸며
[서울문화인] 2021년 대한민국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건희 회장 소장 예술작품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국공립박물관.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큰 이목을 끌었었다. 이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한 작품은 1,488점(1,226건)에 이른다. 당시 ‘이건희 컬렉션’으로 주목을 끌지 못하였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또 다른 소중한 기증이 이뤄졌었다. 바로 2021년~2022년, 2회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동산방화랑 설립자 고(故) 동산 박주환(1929-2020) 대표가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現 동산방화랑 대표)에 의해 한국화 209점이 기증되었다. 이로 인해 국립현대미술관은 ‘동산 박주환 컬렉션’ 209점이 더해져 한국화 소장품 수는 1,388점에서 1,542점으로 증대되어 보다 폭넓은 한국화 연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당시 기증 작품은 회화 198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이다. ‘동산방화랑’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1961년 표구사로 시작, 1965년 전시장을 별도로 운영하다가 1974년에 이르러서야 화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면서 표구사에서 화랑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동산방화랑은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서 신진 작가 발굴과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는 조선시대, 근대 작품은 활발하게 거래되었으나, 서양화의 거래는 극히 미미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직무대리 박종달)은 이를 기념하여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지난 5월 18일(목)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에서 ‘동녘’의 의미는 기증자의 호인 ‘동산(東山)’을 기념하는 동시에 해가 떠오르는 이상향의 자연을 상징하며, 근대 이래 한국화가들이 꿈꾸고 그려온 삶의 세계와 비전을 조망하는 이번 전시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동산 박주환 컬렉션’ 작품 209점 중 90여 점의 한국화 대표작을 선보이는 전시로 기증작 중 192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한국화의 변모와 실험의 단층들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구성, 사진사이자 사군자 화가로서 한국 근대미술의 미적 가치를 탐구한 김규진(1868~1933)부터 현대인의 삶을 수묵으로 표출하는 유근택(1965~)에 이르기까지 작가 57인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한국미술의 시대적 변천과 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한국화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크게 네 개의 주제와 ‘생활과 그림’이라는 한 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1부 ‘신구화도(新舊畵道): 옛 그림을 연구하여 새 그림을 그리다’에서는 근대화단의 탄생과 전개의 일면과 서화(書畵)의 대중화를 표방했던 당시 화단의 시대적 흐름을 짚어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전시에는 근대적 미술 교육기관인 서화연구회를 발족하고(1915) 사군자화 그리기의 대중화에 힘썼던 해강(海岡) 김규진 <풍죽>,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매화 고목을 담묵으로 묘사한 10폭 연폭 병풍 <월매>, 변관식(1899-1976), 1923년 작품으로 가을날의 암산과 물가의 쓸쓸한 풍경을 묘사한 산수화 <추경산수>,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1926) 출품작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적막한 초겨울 농가의 풍경을 표현한 청전(靑田) 이상범 <초동> 등을 비롯하여 김진우, 김은호, 이상범, 박승무, 이용우, 최우석 등도 만나볼 수 있다. 2부 ‘한국 그림의 실경(實景)’에서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이래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는 시대적 격동 속에서 전통 화단의 계보를 잇고 한국 회화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노력했던 작가들을 조명하고 있다. 2부에서는 앞선 세대의 화가들이 이루어 놓은 예술적 기반을 토대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한 손재형의 <석죽(石竹)>을 비롯하여 이번에 공개된 <송하인물(松下人物)>는 이상범, 김기창, 정종여 세 작가가 함께 그려낸 작품으로 소나무 아래에서 바위에 기대어 달을 감상하는 인물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종여(1914~1984)가 월북하기 1년 전인 1949년, 김기창(1914~2001), 이상범(1897~1972)과 합작(合作)하여 그린 작품으로 정종여는 소나무, 김기창은 인물, 이상범은 마지막에 그림과 부합하는 화제를 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합작은 근대기에 이르러 서화가들의 창작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도 이응노, 허건, 배렴, 장우성, 김옥진 등의 산수화와 화훼화, 한국 채색화의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 정은영, 유지원, 김흥종의 영모도, 화접도를 함께 조명하고 있다. 3부 ‘전통적 소재와 새로운 표현’에서는 전통 소재의 현대적 해석과 표현을 시도했던 장운상, 박노수, 서세옥, 송영방, 이규선과 현장 사생(寫生)을 토대로 실경산수화의 현대적 면모를 실험했던 오용길, 이열모, 이인실, 이영찬, 김동수, 송영방, 이종상, 임송희와 더불어 수묵의 가능성을 종이 위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송수남, 이철량, 하태진, 이종상 등 국내 미술대학에서 수학하고 1960년대 이후 전통회화기법에 과감한 조형실험을 시도하여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4부 ‘중도의 세계: 오늘의 표정’에서는 전통 수묵화 매체의 근간인 ‘지·필·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작업 세계를 펼친 작가들과, 한국화의 화법적 질서 또는 동양적 미감을 적용한 서양화와 판화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4부에서는 강경구, 석철주, 김호득, 유근택의 작품에서 포착할 수 있는 산수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이왈종, 임효, 류민자, 김영주, 신명범, 김근중의 작품에서 보이는 전통적 상징성과 조형성 그리고 장상의, 송수련, 박석호, 이항성, 석란희의 화면에서 구현된 자연에 대한 관조적 심상 등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 생활과 그림’에서는 그림을 통해 화가들이 주변인들과 소통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며 삶의 세계를 투영하는 모습을 조명, 어떤 공간이라도 산수화가 걸리면 그곳엔 하나의 자연이 펼쳐지고, 축수화(祝壽畵)나 길상도가 걸려 있으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축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아울러 전시실 밖 회랑 공간에서는 동산방 표구(1961~)와 동산방화랑(1974~)이 걸어온 발자취를 아카이브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조명k며, 아카이브에서 표구 디자인 개발 등으로 한국화가들의 작품 활동을 뒷받침한 동산방 표구의 행적도 확인할 수 있다. 개막에 앞서 간담회를 찾은 고(故) 동산 박주환의 아들이자 현 동산방화랑 대표 박우홍(72)은 “제 선친이신 동산 박주환은 미술계에 들어와 생계를 꾸리고 자식들을 교육시켰는데, 세상을 떠나며 한국 미술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다. 장남으로 늘 곁에서 지켜봤던 저는 그 바람을 새겨서 두 동생과 상의한 후 작품 기증을 결정했다.” 이어 “동산방화랑에서 심부름부터 군생활을 제외하고도 47년이나 함께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렇게 기념해서 전시를 가지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한편, 일제가 1922년부터 해마다 개최한 미술 공모전인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면서 1부 동양화, 2부 서양화 및 조각 3부 서(書)로 구분하며 ‘서양화’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동양화’라는 용어가 쓰였다. 하지만 1950년부터 ‘동양화’를 대신해 중국화와 일본화에 대응하기 위한 명칭으로 ‘한국화’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한국화’라는 용어는 198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관의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시는 2024년 2월 12일(월)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일제강점기 훼철된 ‘대한제국기 영빈관’ 덕수궁 돈덕전 현판 제막… 9월 정식 개관
[문화재] 일제강점기 훼철된 ‘대한제국기 영빈관’ 덕수궁 돈덕전 현판 제막… 9월 정식 개관
[서울문화인] 대한제국기 외교를 위한 영빈관 덕수궁 돈덕전이 2017년 재건을 시작한지 5년만인 지난 해 11월 공사를 마무리하고 22일 오전 11시, 돈덕전 현판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돈덕전은 1902년(광무 6년) 10월에 있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 때문에 지어졌다. 고종은 이 예식을 통해 근대 국가 대한제국의 위용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각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 바로 그 행사의 연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돈덕전을 지은 것이다. 이후 대한제국기 외교를 위한 영빈관 및 알현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1907년에는 순종이 즉위한 역사적인 장소였으나 1920년대 들어서 일제에 의해 훼철, 1930년대에는 건물터가 아동유원지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1945년 이후에는 덕수궁관리소 등의 용도로 가건물이 지어졌다가 발굴조사와 복원 작업을 위해 철거하는 등 다양한 이력이 있다. 앞서 얘기했듯 돈덕전은 1902년(광무 6년) 10월에 있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 때문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사의 진척 속도가 많이 더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옥헌이 불타자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02년(광무 6년) 5월경에야 다시 진행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후 언제 완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황성신문》 1903년(광무 7년) 4월 6일 자 기사에 칭경예식 장소와 관련하여 돈덕전 언급이 있는 것을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완공했고 이름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1902년(광무 6년) 10월에 치루었어야 할 칭경예식 행사를 1903년(광무 7년) 4월까지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원래 계획한 날에 열지 못했다. 이후에도 여러 이유로 미뤘다가 결국 영원히 개최하지 못했다. 1904년(광무 8년) 4월에 일어난 경운궁 대화재 때 다른 주요 건물들은 불 타 사라졌지만 돈덕전은 무사했다. 이후 돈덕전은 황실과 정부에서 수옥헌과 함께 주로 사용하는 건물이 되었고 황제와 황태자가 각국의 공사와 사절들을 만나고 연회도 열었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한 예로, 1906년(광무 10년)에는 황태자 이척(순종)과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의 가례 때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더불어 외국의 국빈급 귀빈들이 묵는 일종의 영빈관으로도 활용되었다. 궁궐에 외국인 숙소가 있는 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애당초 외국인과 교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생각하면 크게 의아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1905년(광무 9년) 방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일본 황족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등이 여기서 머물렀다.1905년(광무 9년) 11월 을사조약 이후에는 일본 경관들이 머물며 경운궁을 감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덕수궁은 근대에 지은 황궁이니만큼 서양식 건물, 양관(洋館)이 여러 채 있었다. 돈덕전도 그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번에 공개된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구한말 원본 현판을 실측한 뒤 전통 안료를 사용해 만든 복제본으로 ‘돈덕(惇德)’ 뜻은 “덕(德) 있는 이를 도탑게(惇) 하여 어진 이를 믿는다”라는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에서 유래했다. 당시 현판 글씨는 당나라 명필 구양순(歐陽詢)의 글자를 모아서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 현판의 왼쪽(구양순, 구양순인)에 적혀져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5년부터 일제에 의해 훼철되고 변형된 건축물을 재건·복원하여 덕수궁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역사문화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덕수궁 복원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 돈덕전은 2017년에 발굴조사, 2018년에 설계를 마친 뒤 201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1월 준공했다. 발굴 당시 출토된 타일이나 벽돌 등의 유구와 고증 사진·문헌·기사자료 등을 면밀히 분석해 건물 원위치와 외형 등을 재건했다. 문화재청은 9월 정식 개관 전인 7월부터 돈덕전을 비추는 경관조명을 야간에 상시 점등하고, 그간 공사 가림막으로 접근이 어려웠던 주변 영역도 일부 공개하여 돈덕전 재건의 의미를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보다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
[문화재] ‘4.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아시아 최다 세계기록유산 보유
[문화재] ‘4.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아시아 최다 세계기록유산 보유
[서울문화인] 지난 4월, 제14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정기회의와 지난 11일에 열린 임시회의 심사결과에 따라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던 ‘4.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5.10.~5.24., Executive Board)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가 최종 결정되었다. ‘4.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물로 ‘4.19혁명기록물’은 1960년대 봄 대한민국에서 발발한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1,019점의 기록물로,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으며,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185점의 기록물로,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두 기록물은 2017년 3월부터 5월까지 실시한 대국민 공모를 통해 접수된 기록물들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제도개선을 위해 2017년부터 약 4년간 세계기록유산 등재 프로그램을 중단하였다가 2021년에 재개함에 따라 문화재청은 2021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로 등재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4.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대한민국은 ▲ 훈민정음(1997년), ▲ 조선왕조실록(1997년), ▲ 직지심체요절(2001년), ▲ 승정원일기(2001년), ▲ 조선왕조의궤(2007년), ▲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2007년), ▲ 동의보감(2009년), ▲ 일성록(2011년), ▲ 5ㆍ18 관련 기록물(2011년), ▲ 난중일기(2013년), ▲ 새마을운동기록물(2013년), ▲ 한국의 유교책판(2015년), ▲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15년), ▲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년), ▲ 국채보상운동기록물(2017년), ▲ 조선통신사기록물(2017년) 등 기존의 16건을 포함하여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어 독일 24건(세계최다), 영국 22건에 이어 대한민국, 폴란드 18건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3위, 아시아 최다 기록유산을 보유 기록문화 강국으로의 위상을 높이게 되었다. 참고로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에 이어 중국 13건, 이란 10건, 인도 9건, 인도네시아 8건, 일본 7건 등이 있으며, 3건 이상 등재한 국가는 전 세계 54개국이 있다. [허중학 기자]
[사진전] 건축, 생동하는 풍경이 되다... 김용관 건축 사진전
[사진전] 건축, 생동하는 풍경이 되다... 김용관 건축 사진전
[서울문화인] 사진이란 어디에 없는 세상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세상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 사진을 담아내는 작가의 철학에 따라 우리는 다른 세상의 풍경을 마주하는 듯하다. 그리고 작가의 색감과 철학으로 담아낸 풍경은 또 다른 이미지로 뇌리에 각인되곤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을 기록하고 있는 건축 사진가 김용관이 건축 사진을 찍어온 지 30년 만에 첫 개인전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디자인랩 1층 디자인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건축 사진가 김용관은 1990년 건축잡지 <건축과 환경> 재직 당시 처음 건축 사진을 찍기 시작해 국내에 가장 오래된 건축 전문지 <공간>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했다. 1999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건축가협회(AIA)의 건축 사진가상을 받았으며 현업 건축 사진가 최초로 건축 사진 1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현재는 2014년 창간한 건축 매거진 <다큐멘텀>을 창간해 건축 과정을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30년 동안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아 대중에 알려온 그의 이번 전시 타이틀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 전은 건축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오브제나 사물이 아닌 자연과 도시 속에서 주변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생동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사진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건축 사진은 역사성, 문화성, 예술성을 지닌 건축물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의미를 형성하는데 깊숙이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작가는 거의 대부분 누군가의 의뢰를 통해 작업을 하고 있지만 전제 조건은 가이드라인이 주어지는 일은 거절한다는 점이다. 보통은 건축가와 함께 건물을 둘러보면서 나오는 이야기와 의도를 캐치하는 것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을 통해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는 건축물의 예술성만을 강조해서 담아내는 것이 아닌 풍경의 일부로 해석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이타미 준의 수, 풍, 석 미술관 사진이다. 온통 눈에 뒤덮인 곳에 덩그러니 서있는 석, 풍미술관과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에 파묻혀 간신히 지붕만 보이는 수미술관은 건물에도 표정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용관은 작가는 “내가 찍는 사진은 나의 직업이자 나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건물을 디자인하는 건축가들의 고민과 시간을 담아낸 함축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온전히 나의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건축물은 주변의 수많은 관계를 통해 탄생하듯 나의 작업도 관계에서 출발한다. 관계야말로 건축이 가진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건축물을 풍경의 일부로 해석하는 만큼 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나는 일몰 전후 “석경에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작가가 촬영한 수천만 장의 건축 사진 중 장소의 현상학적 풍경이 두드러진 40여 점을 골라 이번 전시에 선보이며, 전시를 풍성하게 해줄 ‘작가와의 대화’와 ‘포럼’도 준비됐다. 작가와의 대화는 5월~7월 중 월별 두 번씩 전시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포럼은 6월 15일(목) 오후 4시 DDP 디자인랩 3층 디자인홀에서 열린다. 참여 방법은 DDP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또는 현장 신청하면 된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100년 전 발간되었던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전시] 100년 전 발간되었던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서울문화인] 요즘 어린이는 미래를 이끌어 갈 존재이자 항상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자 인권적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과거, 어린이라는 존재는 지금처럼 인권이 크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바쁜 부모를 대신 노동력을 보충해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불가피했던 시대 상황도 한 몫 하였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1923년에 창간된, 잡지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존재가 현재보다 미흡하고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하여 어린이들에게 꿈과 설렘, 그리고 희망을 주었다. 올해 한글 잡지 『어린이』의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영수)은 기획특별전 <어린이 나라>를 오는 5월 4일부터 8월 20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잡지 『어린이』를 통한 ‘어린이’의 가치 재조명 전시에서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발간한 총 122권의 잡지 중 현재 전하는 120권의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어린이’라는 개념의 정착, 어린이 문화의 형성 과정, 그리고 미래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역으로서의 어린이를 보여준다. 먼저 1부 ‘어린이 잡지의 탄생’에서는 1920~30년대 잡지 『어린이』의 편집실 공간을 재현하여 『어린이』의 창간 배경, 제작 과정, 참여자 등을 소개한다. 2부와 3부는 『어린이』 잡지 속 ‘어린이 나라’로 공간을 꾸몄다. 2부 ‘놀고 웃으며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어린이들이 푸른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인터랙티브 체험 영상 등을 통해 보여주며, 3부 ‘읽고 쓰고 말하는 세상’에서는 잡지에 실린 문학 작품, 한글의 역사 등 다양한 읽을거리소개와 함께 과거 어린이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꾸며졌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어린이』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1976년부터 수차례 영인본으로는 소개되면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어린이』 제1권 제5~7호(1923년)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자료는 모두 신문 형태로 발행되었고, 『어린이』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당시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임에도 한글과 한문이 호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국내 소식 이 외에도 외국의 다양한 모습도 사진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당시 어린이들의 외국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잡지 『어린이』는 원래는 3.1 만세 운동의 정신을 기려서 3월 1일에 창간하고자 했지만, 검열로 시간이 미뤄져 3월 20일에 첫 호가 나왔다고 한다. 첫 면에 나오는 웃는 어린이의 모습과 ‘아하하하하하하’라는 문구는 어린이들이 ‘여기서는 그냥 재미있게 읽고 놀기’를 바라는 편집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어린이날 기념호로 발행한 『어린이』(1926년) 제4권 제5호에 실린 방정환의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어린이날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세계 명작 동화인 「백설공주」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번안하여 소개(『어린이』 제1권 제4호(1923))한 방정환의 작품과 함께,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 직접 쓴 문예 작품과 각 지역 소년회 소식 등을 실은 『어린이』부록 「어린이 신문」 제1호(1925년)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고 있다. 이 외에도 최초의 어린이 잡지인 『붉은저고리』의 창간호(1913년)를 비롯해 『아이들보이』 창간호(1913년) 등도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잡지들은 대부분 짧은 기간 발간되다가 자취를 감추었으나 『어린이』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10만여 명의 국내외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단순 잡지 자체를 소개하는 전시가 아닌 김민지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위해 현재 남아있는 잡지 『어린이』을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시장에 풀어놓음으로써 전시적 측면을 넘어 학술적 측면에서도 한글 콘텐츠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용한 전시라 할 수 있다. 가장 재밌는 부분은 당시 『어린이』이 편집자들의 특징과 성향을 보여주는 디지털은 그동안 알기 힘들었던 인물들의 개인적인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린이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에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체험물 ‘세계 일주 말판’을 비롯한 몸으로 즐기는 3종 놀이 말판과 『어린이』의 표지 등 대표 이미지의 사진틀에 관람객이 자신의 사진을 담아가는 ‘찰칵찰칵 사진’을 비롯하여 관람객이 후기를 남기고 공유하는 ‘여러분의 남은 잉크’ 등을 통해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되어 있다. 더불어 박물관은 디지털화, 관람객의 참여, 관람객과 상호 작용, 지속 가능성, 접근 가능성이라는 5가지의 핵심 가치를 구현하고자 주요 전시유물 10점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등 7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으며, 직접 전시장에 오지 못하는 분들도 박물관 누리집이나 누리소통망(SNS)의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전시 유물의 원문과 다국어 번역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이밖에도 3D영상의 ‘별이 된 어린이들의 여정’ 등 전시되고 있는 다양한 정보를 디지털로 만나볼 수 있게 하였다. 전시는 오는 8월 20일(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전시] 고판화박물관, 불교도상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밀교판화’ 특별전
[전시] 고판화박물관, 불교도상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밀교판화’ 특별전
[서울문화인] 국내 유일의 판화전문박물관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이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 기념으로 “불교도상의 향연 - 동 아시아 밀교만다라 특별전”을 오는 5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한다. 올해로 개관 20여년을 맞이한 고판화박물관은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한선학관장이 30여년 동안 수집한 6,000여점의 고판화를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연스럽게 불교 판화가 2,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불교 판화가 많이 만들어진 장르인 정토와 밀교와 관련된 판화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정토 판화 소개에 이어 올해는 밀교판화를 소개함으로써 불교판화의 다양성을 선보이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 소개에 앞서 밀교는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이것이 밀교라고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밀교는 대승불교의 한 분야로 7세기 경 인도에서 성립되었다. 밀교가 성립될 당시의 인도불교는 부파불교시대(소승불교시대)로서 실천보다는 전문적 이론과 승려중심의 경향이 매우 짙었다. 이러한 불교계의 흐름은 교학(敎學)의 찬란한 발전을 가져오는 장점도 있었지만, 많은 신도를 잃게 되고 교단의 위축을 스스로 가져오는 단점도 있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실천을 위주로 한 대중불교운동이 밀교라 한다. 밀교는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향, 국내에도 삼국시대 유입되어 고려나 조선시대까지 민중신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특히 불교미술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밀교 미술이며, 이는 판화로 많이 표현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밀교가 발전하였던, 티벳과 일본의 작품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의 바퀴, 주기(순환) 이라는 뜻하는 티벳의 ‘칼라차크라(Kalachakra)’ 만다라를 찍을 수 있는 판목을 비롯하여 일본의 대형 태장계만다라와 금강계만다라를 흑백판화와 채색판화,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밀교 문두루법(국가를 위한 진호국가 기도법)을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중국 당시대 그림을 일본에서 판화로 복각한 승적비사문천왕(勝敵毘沙門天王)판화 등 일본의 수준 높은 판화 작품과 한국의 유물로는 고려시대 판각된 금강계, 태장계다라니와 유가심인도, 밀교의식을 종합해서 보여주는 500여 년 전 조선에서 만들어진 강원도 유형문화제 151호인 안심사 제진언집, 강원도 문화재자료 153호인 만연사판 중간진언집 등 밀교 미술을 대표하는 수준 높은 판화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다. 한선학 관장은 “이번 특별전은 고판화박물관 개관 20주년 기념 두 번째 대규모 전시회로, 특히 그동안 수집된 고판화박물관 유물 6,000여점 중 불교 회화사와 판화사에 주목 받는 ‘밀교’와 관련된 목판과 전적, 불화 판화 등 200여점을 선별하였으며, 관련학자들과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에게도, 동 아시아인들이 꿈꿔왔던 현생에서 성불하는 즉신성불의 길인 밀교의 세계를 고판화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 할 수 있어 동양 문화를 심층적으로 연구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하였다. [허중학 기자]
[전시] 피카소, 앤디 워홀 등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의 20세기 거장展
[전시] 피카소, 앤디 워홀 등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의 20세기 거장展
[서울문화인]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피카소 컬렉션과 세계 최고 수준의 팝아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독일 쾰른에 위치하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의 현대 미술품이 서울 삼성동에 위치하고 있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선보이고 있다. 쾰른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은 20세기 미술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역사적인 컬렉션 및 현대미술의 실험적인 행보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1946년 요셉 하우브리히 (Josef Jaubrich)가 나치 정책의 탄압 속에서 지켜냈던 소중한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쾰른 시에 기증함을 시작으로, 1976년 피카소와 팝아트에 조예가 깊은 페터 루드비히(Peter Ludwig)와 이레네 루드비히(Irene Ludwig) 부부가 350점의 현대 미술품을 기증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작품 기증이 지금의 컬렉션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뜻깊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20세기 이후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카소 컬렉션과, 팝 아트 분야의 컬렉션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전시는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특별 전시로서,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예술사조와 거장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걸출한 컬렉션을 통해 독일 표현주의, 러시안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추상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 격변의 시대에서 태동한 예술운동의 배경과 서양 미술사의 발자취와 이에 영향을 받은 현 세기의 독일 예술도 조망한다.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작품들을 루드비히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배경과 그 작품들을 독일의 정치적인 탄압과 분단과 통합 과정에서 보존한 시민들의 역할을 한국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이 외에도 도슨트 및 오디오 가이드 전시해설로 작품의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어린이 대상 교육으로 키즈 아틀리에와 시즌 이벤트 프로모션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전시는 오는 8월 27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2만원이다. (관람 시간 : 월~일요일 10:00~20:00)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