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남강(南剛) 김태곤(金泰坤: 1936~1996, 전 경희대 교수)이 평생 수집한 무속 관련 유물을 소개하는 ‘민속학자 김태곤이 본 한국무속’ 특별전을 2015년 4월 22일(수)부터 6월 22일(월)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태곤이 1960년대부터 굿 현장을 꾸준하게 기록하면서 멸실 위기에서 수집한 ‘관운장군도(關雲將軍圖)’ 등 무신도, 북두칠성 명두 같은 무구와 무복,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와 동해안굿 사진(1960~70년대 촬영), 남이장군사당제(1972년 촬영) 동영상 등 3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김태곤 교수는 원광대학교․경희대학교에 재직하며 평생 민속 현장을 조사‧연구를 하면서 「한국의 무신도(巫神圖)」 등 저서 34권과 「황천무가연구(黃泉巫歌硏究)」 등 논문과 글 200여 편을 남긴 민속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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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 거한수조운구황충, 18세기 말, 133×230㎝ 작자 미상 |
조운이 한수에서 황충을 구하다.
노르베르트 베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1923)에 수록된 그림과 동일하다. 동관왕묘에 봉안했던 그림으로 추정된다.
무신도가 된 배경: 1908년 국가제사가 폐지됨에 따라 관우장군을 영험한 장군신․재복신으로 섬기던 무속인이 동관왕묘에 걸었던 그림들을 신당으로 옮겨서 무속신으로 섬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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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e der Morgenstille)」(1923) 132쪽에 수록된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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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 장장군의석암안(張將軍義釋巖顔), 18세기 말, 작자 미상 |
장비가 엄안을 의롭게 풀어주다.
“조운이 한수에서 황충을 구한다.”는 거한수조운구황충과 동일 계통의 그림이며, 동관왕묘에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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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장군도(關雲將軍圖), 20세기 중반, 황춘성 |
촉한의 장수 관우를 그린 무신도. 관우를 수호신守護神‧재복신財福神으로 모셨다. 왼쪽에 ‘천하영웅 관우장군님’이라는 신명神名이 적혀 있는데, 이는 무당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이다.
뒷면에 ‘황춘성’이라는 화가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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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부인도, 20세기 중반, 황춘성 |
관우장군의 부인으로 알려진 신령을 그린 무신도. 뒷면에 ‘황춘성’이라는 화가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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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역사금이신장도(黃金力士金物神將圖), 20세기 중반, 황춘성 |
무당의 영험을 담당하면서 인간의 부귀공명을 도와주는 신령을 그린 무신도.
‘금이’는 금金으로 만든 칼을 뜻한다. 뒷면에 ‘황춘성’이라는 화가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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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상(山神像), 20세기 중반 |
산신령山神靈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신상神像.
흰머리와 흰 수염을 한 노인이 붉은 색 도포를 입고 호랑이 위에 앉아 있다. 전형적인 산신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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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두(明斗, 明圖), 20세기 중반 |
무당이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고 위하는 거울.
북두칠성을 새긴 북두칠성명두((北斗七星明斗)와 일월을 새긴 일월대명두(日月大明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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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두(明斗․明圖), 20세기 초 |
무당이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고 위하는 거울. 뒷면에 북두칠성을 별(☆)이 아닌 원(○)으로 표시하였다. 이는 서양의 표기 방식이 일반화되기 전에 만들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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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 육필원고 1996년, 「한국민속과 북방대륙민속의 친연성」 |
1996년 초까지 이 원고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을 쓰지 못하고 미완의 원고로 20년 남짓 김태곤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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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에벤키 족 샤먼 무복(巫服), 20세기, 경희대학교중앙박물관 소장 |
시베리아 에벤키 무당이 굿을 할 때 입는 무복으로 김태곤이 수집하였다.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가슴과 등에 수많은 철제 방울과 새 등을 매달아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