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35년이란 짧은 생을 살면서 400점이 채 안 되는 유화작품만으로 20세기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의 대표화가이자 파리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기록 된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의 그의 진품 작품 70여 점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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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
현존하는 모딜리아니의 유화작품은 400여 점 채 안될 만큼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매우 적다. 10년간의 화가생활을 했던 19세기말의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작품이 900여 점에 달하는 걸 보면 얼마만큼 모딜리아니가 남긴 작품 수가 소량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전시기획자들에겐 엄청난 도전이며 어떤 대가의 전시보다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 수반되는 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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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커머셔너 서준수 박사 |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의 소장처로는 영국의 피츠윌리엄미술관, 맨체스터갤러리, 프랑스 파리 시립미술관, 오랑주리미술관, 피카소미술관, 낭시미술관, 그르노블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 일본 도쿄후지미술관, 오사카시립근대미술관, 미국 톨레도미술관, 스위스 라쇼드퐁미술관,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핀란드 아테네움미술관 등에 산발적으로 소장되어있는 국공립 미술관 소장 작품과 미국과 유럽의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적 없는 개인소장 작품까지 전 세계 45곳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모딜리아니 예술의 정수를 국내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모딜리아니의 예술은 지리적으로 당대 전 세계 예술가들의 산실이었던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 두 장소로 구분되며, 파리에 도착한 1906년부터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회화(약 350점)와 조각(약 30 점)으로 나뉜다.
이번 회고전은 모딜리아니의 예술세계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1906년부터 1920년까지의 유화, 드로잉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의 짧았던 생애만큼이나 간결하고 응축된 특유의 표현양식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총 여섯 개(남자의 초상, 여인상 기둥(Caryatid), 여인의 초상, 누드, 종이작품, 모딜리아니와 모이즈 키슬링)의 테마로 몽마르트 시기의 초기작품과 더불어 몽파르나스시기에 조각가 브랑쿠시의 영향을 받아 조각에 몰두했던 1910-1913년을 조명하는 동시에 다시 회화로 돌아오면서 변화된 그의 표현 방식이 어떻게 그를 ‘파리의 이방인 예술가’ 에서 ‘몽파르나스의 전설’ 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여정으로 꾸며졌다.
또한, 파리에서 활동했던 전 시기 동안 그 어떤 장르보다 모딜리아니가 몰두했던 초상화를 대거 소개한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는 20세기 초 폭발적으로 발전한 파리의 문화와 그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폴 알렉상드르 , 폴 기욤과 같은 개인 소장가 및 젊은 화상들, 모이즈 키슬링, 샤임 수틴,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그의 작업실을 자주 드나들던 여인들 중 루냐 체코프스카, 러시아의 여류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와 더불어 그의 마지막 사랑 잔느 에뷔테른느를 담은 초상화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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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 ⓒ The Israel Museum, Jerusalem, Israel Gift of Stella Fischbach to American Friends of the Israel Museum Bridgeman Ima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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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쉬르바주의 초상 © Ateneum Art Museum, Finnish National Gallery, Helsinki, Finland Bridgeman Images |
또한, 1916-1917 년에 제작된 대형 누드화 연작 중 <셀린 하워드의 초상>(1917, 개인소장, 미국) 과 <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1917, 오사카시립근대미술관 소장)를 통해 모딜리아니 후기 작품세계의 성숙미와 관능미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더불어 몽파르나스에서 브랑쿠시를 통해 조각가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1910-1913년 이후 더욱 확고해진 모딜리아니 화풍의 유화작품과 종이작품을 통해 아프리카 원시부족 조각품에 영향을 받은 그의 이국적인 색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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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 ⓒ Osaka City Museum of Modern Art, Os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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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앞면) 1908년 ⓒ Hecht Museum, University of Haifa, Israel |
한편,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두 개의 작품이 한 캔버스 앞, 뒷면에 그려진 총 4작품을 볼 수 있다. 붉은 여인상 기둥과 부부 그리고 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와 모드 아브랑트의 초상은 한 캔버스에 상하가 다르게 그려져 한 여인은 거꾸로 관객을 맞이하여야하는 운명을 지녔다. 이외에도 작품 중에는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은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는 병약했던 모딜리아니가 운명이란 유한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눈은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보는 창으로 인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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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아브랑트의 초상(뒷면) 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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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앞면) 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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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인상 기둥(앞면) 전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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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뒷면) 전시장 |
프랑스 파리에서 모딜리아니가 정착했던 센느강 우안 몽마르트와 센느강 좌안 몽파르나스는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던 창작과 교류의 장소였다. 1890년대에 접어들면서 몽파르나스는 기존에 예술가들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를 뛰어넘는 파리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심지가 된다.
당시 몽파르나스는 모딜리아니 외에도 샤갈, 피카소, 브랑쿠시, 키슬링, 수틴, 반 동겐 등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의 집합지였다. 이들은 1925년 미술평론가 앙드레 바르노에 의해 일명 파리화파로 불리는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의 중심을 이루는 작가들이었다. 1890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의 약 40여 년 동안 몽파르나스의 거리와 카페에서는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이 열렸고, 많은 예술적 유행이 창조됐다.
1920년대에 피카소, 헤밍웨이, 스타인 등이 바로 몽파르나스 일대의 단골손님이 되면서부터 몽파르나스는 유명세를 탔다. 또한 14구는 만 레이나 모딜리아니, 헨리 밀러 같은 예술인들의 천국이 되었다.
몽파르나스의 전설이 된 비운의 화가 모딜리아니의 예술과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해보는 이번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10월 4일(일)까지 계속된다.(입장료 : 성인기준 1만 5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