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가 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공유하는 신진작가들을 소개하고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을 키워드로 동시대 미디어 아트의 동향을 살펴보는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를 진행 지난 2년 간 여섯 명(팀)의 아티스트를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랜덤 액세스’라는 프로젝트의 명칭은 백남준이 자신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1963)에서 선보였던 동명의 작품에서 비롯하였다. 〈랜덤 액세스〉는 오디오 카세트의 테이프를 케이스 밖으로 꺼내 벽에 임의로 붙이고, 관객이 마그네틱 헤드를 자유롭게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내게 했던 작품이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올해는 오주영, 신승렬, 함혜경 세 명의 작가가 선정되어 먼저 백남준아트센터 야외 이음-공간에서 오주영 《주사위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쥐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Rats)〉, 〈버스마크: 작품의 디지털 대리물을 감상하는 인공 감상자(BirthMark: An artificial viewer for appreciation of digital surrogates of art)〉 2점을 선보이고 있다.
오주영은 인공 인지 모델을 활용한 연구와 작품 활동을 해 온 연구자 겸 작가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작가는 시각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라는 두 가지 학제적 배경 하에 작품을 발전시켰다. 학자의 시각에서 인간의 시각 인지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인공 인지 모델의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동시에, 작가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의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왔다. 그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 선 작업으로 이응노 미술관 아트랩(2017)과 서울문화재단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9) 등의 참여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BR41N.IO 디자이너스 해커톤(2019)에서 착용형 EEG 헤드셋에 대한 구상으로 대상인 IEEE Brain Prize를 수상하였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Vol. 7 《주사위 게임》에서는 오주영 작가의 작품 두 점을 소개한다. 신작 〈쥐들에게 희망을〉은 연구자 P가 겪은 실패의 기록과 비디오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과학적 진실들이 딛고 서 있는 불완전한 근간을 상기하게 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인공지능을 다루는 〈버스마크(BirthMark)〉는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모반(birthmark)’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과학적 방법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이 있음을 암시한다.
과학적 발견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서야 이루어진다. 따라서 과학자의 연구와 실험은 필연적으로 희망과 의무감을 바탕으로 수행되는 반복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유의미한 성과를 담보하지 못하며, 때로 그 과정에서 파괴적인 행위들이 수반되기도 한다. 〈쥐들에게 희망을〉은 연구자 P가 겪은 실패의 기록과 비디오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게임에서 실험용 쥐를 조작하며 상징적으로 구현된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 P의 피실험체가 되어볼 수 있다. 당뇨병에 걸린 쥐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P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결실을 얻지 못하며, 실험의 결과와 관계없이 수많은 쥐들은 희생된다. 게임의 과정에서 관람객들이 반드시 체험할 수밖에 없는 반복적인 실패의 경험은 과학적 진실들이 딛고 서 있는 불완전한 근간을 상기시킨다.
〈버스마크〉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인간의 인지 과정을 ‘감추어진 이미지(camouflage)’에서 ‘의도를 읽어내고(solution)’ 그 의미를 ‘깨닫는(insight)’ 세 단계로 정의한다. 16명의 작가의 각기 다른 작품을 기록한 아카이브 영상을 보며, 〈버스마크〉의 인공지능은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려 시도한다. 대상 인식 체계인 YOLO9000은 작품의 이미지에서 사물을 추적하고, 뇌의 구조를 모방한 인지 모델 ACT-R은 이를 읽어내고 지각한다. 인공지능이 작품을 인식하는 일련의 과정은 영상으로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파악해 낸 작품의 키워드들이 작은 화면에 나타난다. 동시에 구형 환등기에서는 해당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설을 인공지능이 의미론적으로 이해한 내역이 나열된다. 인공지능의 인식 과정은 일견 인간의 작품 감상 행위와 유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인공지능이 작품 이미지에서 정확히 분석해 낸 키워드는 300단어 중 2-5단어에 불과하다. 작품이 추상적일수록 인공지능의 이해도는 급감한다. 작품과 동명인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에서 ‘모반(birthmark)’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과학적 방법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선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