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올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이건희컬렉션’으로 불리는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기증하겠다는 발표에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졌었다. 이 기증품의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고 일부 근대 미술 작품은 작가의 연고지 등을 고려해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당시 공개된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은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요한 기증품 리스트는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지만 7월 20일, 가장 많은 기증품을 수여받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의 일부를 첫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9,797건(2만 1천 6백여 점,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기증받아 기증기관 중 가장 많은 기증품을 받았다. 공개된 기증품은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인왕제색도>는 76세의 노대가(老大家) 정선이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낸 최고의 역작이라 하겠다. 박물관 측은 이 작품의 가치에 맞춰 <인왕제색도>에 그려진 치마바위, 범바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명소와 평소 보기 힘든 비가 개는 인왕산 풍경을 담은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98인치 대형 화면으로 제공 한다.
이번에 공개된 아니 기증품 중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이는 새롭게 발굴되거나 해외에서 유입되지 않은 한 고고학 유물은 이미 여러 차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롯이 개인의 컬렉션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그동안 대규모로 공개되지 않고 일부 몇 점씩 따로 공개되어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품이 새롭게 ‘이건희컬렉션’이었다는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좀 더 세심한 연구와 공개가 쉬워졌다는 점과 기증문화를 알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공개된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2점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고려불화는 특유의 섬세함이 가진 작품성과 희소성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화작품이지만 국내보다는 해외기관에서 많이 소장하고 있어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문화재이다.
공개된 고려불화 2점은 기증 받은 이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려불화 세부를 잘 볼 수 있도록 적외선과 X선 촬영으로 연구, 우리나라 전통회화의 채색기법 중 하나인 뒷면에서 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했음을 확인 하였으며, 녹색의 석록, 푸른색의 석청, 백색의 연백(鉛白)과 붉은색의 진사 등 광물성 안료를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러한 배채법과 안료는 고려불화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라 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는 원본과 함께 밑그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물론 터치스크린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관객들은 <천수관음보살도>에서는 천수관음보살의 여러 손의 모양, 손바닥과 광배에 그려진 눈, 손에 들고 있는 다양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X선 사진으로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의 채색 방식 및 안료를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 뛰어난 금세공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제776호) 또한 눈여겨 볼 유물이라 하겠다. 이번에 공개된 ‘칼 손잡이’에 장식된 용무늬가 쌍용이라는 점 때문인데 대부분 봉황이나 용문양이 새겨져 있으나 기존에 발굴된 것에는 한 마리의 용인데 비해 이것에는 두 마리 용이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 유물이다.
이 외에도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을 발라서 붉은 광택이 아름다운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방울>(국보 제255호),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삼국시대 조각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살상>(보물 제780호), 조선 백자로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조화로운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보물 제1390호)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명품들과 세종대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釋譜詳節)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18> 등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한글 전적이 공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컬렉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9월 26일까지 진행되며, 전시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되며, 누리집에서 상설전시 예약과는 별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총 1,488점이 기증되었다.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과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으로 분류된다. 장르별로는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순으로 비교적 모든 장르를 고르게 포함하고 있다. 제작연대별로는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이 320여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22%를 차지한다. 그러나 작가의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할 때 1930년 이전에 출생한 이른바 ‘근대작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 작품 수는 약 860점에 이르러, 전체 기증품의 약 58%를 차지한다. 작가별 작품 수를 보면, 유영국 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으로 가장 많고, 이중섭의 작품이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포함),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공개한 이건희컬렉션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를 선정 34명의 주요작품 58점을 선정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크게 세 개의 주제로 나눠 공개하였다.
두 기관의 설명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문화재와 달리 미술품은 얼마든지 경매를 통해서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인 만큼 그 기대치가 확연히 달라보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국립현대미술관 박미화 과장은 이들 작품 중에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이 많았는데 예산의 부족으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미술관이 기증을 통해 소장하게 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선진국의 국립미술관에 비해 소장품의 가치는 물론 규모에서도 열악한 것은 일부 어쩔 수 없지만 그나마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며 20세기 초 희귀하고 주요한 국내 작품에서부터 해외 작품까지 포함된 이건희컬렉션의 기증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공간은 수용과 변화다.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공개되었다. 이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과 함께 미술계도 서구 유화가 등장하면서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생경한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조선의 전통 서화도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특히 백남순의 <낙원>은 서양의 유화를 동양의 병풍 형식의 판넬로 제작하였으며, 그 내용도 동서양이 혼존하고 있어 동서양 회화의 특징이 융합과 수용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성의 발현이라는 주제로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수없이 들어봤을 근대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등 많은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미술의 근간을 만들었으며 한국인에게도 작품에 대한 인지도나 작가들 또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들이 아닌가 싶다. 이 공간에서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등이 공개되었다. 특히 이건희컬렉션도이 시기의 작품이 집약되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정착과 모색으로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차츰 정착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한 시기로 이들은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김흥수의 <한국의 여인들>(1959) 등 이 시기의 대표작이 공개되었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작품검수, 상태조사, 사진촬영, 저작권협의 및 조사연구 등의 과정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 중이며, 순차적으로 미술관 누리집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미술애호가 배우 유해진이 이번 전시 오디오가이드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유해진의 전시해설 오디오가이드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며, 전시실 입구에서 오디오가이드 기기 대여도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2022년 3월 13일(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더불어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에서는 앞서 지난 6월 29일(화)부터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이 진행 중이다.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에는 김종영(1점), 문학진(2점), 변종하(2점), 서동진(1점), 서진달(2점), 유영국(5점), 이인성(7점), 이쾌대(1점) 작품 총 21점이다. ‘웰컴 홈: 향연’은 한국 근대미술의 별과 같은 작가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해, 대구의 초기 서양 화단을 형성했던 서동진, 서진달의 수작을 만날 수 있으며, 추상 조각의 거장 김종영, 한국적 추상화의 유영국, 1세대 추상 작가 문학진, 신형상주의의 변종하의 작품 등을 통해 한국미술 전반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특히 기증 작가 8명을 심도 있게 조명하기 위해 이건희 컬렉션 21점과 함께 대여 작품 및 소장 작품을 추가하여 총 40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8월 29일(일)까지 전격 공개되며, 사전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이번 공개 전시가 국민들의 관심이 커 조금 급하게 공개되어 현재 진행 중인 전시로 인한 공간 확보 등의 문제로 많은 기증품을 공개할 수 없었지만 좀 더 많은 조사를 진행하여 양 기관은 2022년 4월에 대규모로 공개할 것이라 밝혔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