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사찰에서 특별한 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에 야외에 거는 대형 불화 ‘괘불’은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진수를 보여주지만 높이가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달할 뿐만 아니라 보존상의 문제로 실제로 일반인이 실물로 보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괘불 소개하는 괘불전을 통해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열여덟 번째 괘불전으로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의 괘불을 소개하고 있다.
긴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장곡사長谷寺는 그 이름과 같이 칠갑산의 깊은 계곡 안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국보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석조대좌>를 비롯한 여러 국가지정문화재가 소장되어 역사가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국보 <청양 장곡사 괘불>은 조선 1673년(현종 14)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에서 승려와 신도 등 83명의 시주와 후원으로 조성되었다. 삼베 17폭을 옆으로 잇대어 높이 8m, 너비 5m가 넘는 거대한 화폭을 만들었으며, 철학哲學 등 5명의 승려 장인이 함께 그렸다. 화면의 중앙에는 거대한 본존불이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 가지를 들고 서 있으며, 본존불 좌우로는 불·보살·나한·천왕 등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장곡사 괘불은 화면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화폭에 그려진 총 39구의 불·보살·권속들 옆에는 모두 붉은색 네모칸을 마련하여 이름을 적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도상圖像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각각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중앙의 본존불 옆에는 ‘미륵존불’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현재 기록으로 본존불이 미륵불임을 알 수 있는 괘불은 장곡사 괘불과 <부여 무량사 괘불>(1627년)의 단 2점뿐으로, 매우 드문 미륵불 괘불의 예이다.
화면 맨 아래쪽에는 화기畫記란을 마련하여 ‘강희 12년(1673) 5월 청양 동쪽 칠갑산 장곡사 대웅전 마당에서 열린 영산대회靈山大會에 걸기 위한 괘불’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사찰 이름 뿐 아니라 ‘영산대회’라는 행사의 명칭, 그리고 ‘대웅전 마당’이라는 구체적인 행사의 장소까지 적었다. 장곡사 괘불이 조성된 후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다.
화폭의 둘레를 장식하고 있는 고대 인도의 문자인 범자梵字 또한 주목할 만한 요소다. 이 범자들은 불교의 신비로운 주문인 진언眞言으로, 불상이나 불화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종교적 신성성을 불어넣는 절차 때에 외우는 것이다. 장곡사 괘불은 화면 둘레에 범자를 장식한 조선시대 괘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한편, 대형불화는 그 무게나 크기로 인해 이동이 쉽지 않아 다른 회화 문화재에 비해 보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은 대형불화(괘불도)를 대상으로 ‘대형불화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총 10개년 동안 실시하는 대형의 불교회화 문화재 정밀조사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국보), 문경 김룡사 영산회 괘불도(보물),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통영 안정사 영산회 괘불도(보물),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보물),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보물) 등, 국보 1건과 보물 5건으로 총 6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은 2010년에 보존 처리를 진행하고, 2013년에는 모사도가 제작되었다. [허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