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이 우리의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확장하여 선보이는 특별전 <공예 다이얼로그(Dialogue)>를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공예 다이얼로그>전은 전승 장인과 현대공예 작가는 물론 화가와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층위에서 공예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전시로 금박, 분청, 채화 3개 분야에서 사물의 탐구를 통해 공예의 조형적 확장을 모색하는 6인(팀), 영원불멸의 빛을 새기는 ‘금박’(장연순×김기호), 산수를 담아내는 화폭으로서의 ‘분청’(이강효×김혜련), 피어나는 생명을 상징하는 ‘채화’(황수로×궁중채화서울랩)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 없이 다양한 조형성으로 공예의 외연 확장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먼저 현대 섬유예술가 장연순과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가 말하는 ‘금박, 빛을 새기다’에서는 <중심에 이르는 길Ⅲ>과 <천상열차분야지도> 연작을 선보인다. 이들은 각각 산업용 테플론 메시와 전통 직물에 금박을 입혀 그들이 추구하는 고유한 정신적 질서를 기하학적 도형과 천문으로 형상화했다.
금박은 예로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꽃 장식에서부터 백제 무령왕비의 목제 베개와 발받침, 가야의 고리자루 큰 칼, 신라·통일신라의 허리띠와 ‘화조도를 새긴 장식물(선각단화쌍조문금박, 線刻團華雙鳥文金箔)’, 고려의 등롱, 조선의 병풍, 초상화, 불화, 불상, 단청, 현판, 투구 등에 이르기까지 주로 왕실의 위엄과 종교의 신성함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장연순(1950~)은 모시, 삼베, 아바카 등 섬유 재료에 대한 집요한 실험과 탐구에 천착해 온 섬유예술가로 그는 최근 ‘금박’과 테플론 코팅을 한 유리섬유인 ‘테플론 메시’에 주목해, 동아시아 철학의 본질을 순수조형으로 표현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해서 덧입힌 순금박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기호(1968~)는 조선 철종 때부터 대대로 금박장 가업을 잇는 5대손으로,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금박의 전통기술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영역이나 기물에 적용될 수 있도록 연구하며, 현재 서울 북촌의 ‘금박연’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어 옹기와 분청 기법을 결합해 작업하는 이강효와 분청의 문양을 탐구하는 김혜련이 말하는 ‘분청, 산수를 담다’에서는 분청을 이용해 각각 <분청산수>와 <예술과 암호-분청> 연작을 제작했다.
분청사기는 회청색 바탕흙 위에 백토로 분장한 뒤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의 한 종류이다.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활발히 제작되었다가 자취를 감추었으나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오늘날 현대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자 탐구 대상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강효(1961~)는 홍익대학교 공예과에서 도자를 전공한 뒤 울산의 황말수 장인에게 옹기 기술을 배웠다. 사람 키를 넘는 대형 옹기 표면에 사물놀이 가락에 맞춰 화장토와 산화철을 흩뿌리고 쏟아붓는 <분청 퍼포먼스>로도 해외에 잘 알려진 도예가이다. 전통 옹기와 분청 기법을 결합한 그의 작품은 분청 특유의 우연성, 회화성이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마음에 떠오르는 자연의 형상인 산, 바람, 물 등을 거대한 산수 기형에 그려냈다.
김혜련(1964~)은 국내외 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며 고대 암각화나 선사 유물에서 발견되는 문양을 탐구하는 화가로 그는 분청에서 발견되는 도공들의 자유분방한 손길과 정신을 연상시키는 문양을 기호화하여 자신만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로 진화시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귀얄, 덤벙 기법 등 도기에 표현된 회화적 필치를 대형 캔버스에 먹으로 담아냈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 회화와 도자, 전통과 현대라는 장르와 시대의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분청에 깃든 회화적 가능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하여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보유자 황수로와 궁중채화의 현대화를 모색하는 궁중채화서울랩이 말하는 ‘채화, 꽃을 피우다’에서는 황수로와 궁중채화서울랩이 궁중채화의 원형을 재현한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과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수목(神樹木)>을 소개하고 있다.
채화(綵花)는 ‘비단 등으로 만든 꽃’을 의미하며 주로 궁중의 물품이나 행사를 장식했다. 정조19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하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11,919송이의 채화가 소용될 만큼 조선시대 궁중에서 열린 잔치는 꽃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시에 참여한 황수로(1935~)는 100여 년간 단절된 우리의 채화를 세상에 알린 장인으로,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의 작업은 채화 유물이 전무한 실정에서 옛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채화를 오늘날로 소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궁중채화서울랩은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이수자 최성우가 궁중채화의 현대적 확장을 실험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로 이번 전시에는 최성우(총괄), 유은정·이윤정(금속), 김우현·신유나·신혜연·장준호·조혜진(섬유), 오수(이끼), 최범석(설치)이 참여해 붉은색과 흰색의 매화가 함께 뒤엉킨 연리지로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수목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