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덕혜옹주 유품 최초 공개

‘덕혜옹주’ 특별전 개최(2012.12.11.~2013.1.27.)
기사입력 2012.12.12 01:22 조회수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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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덕혜옹주(德惠翁主) 탄생 100주년, 환국 5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 문화학원복식박물관, 규슈국립박물관 등이 소장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유품을 국민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전을 열었다.


 



 


덕혜옹주는 조선왕조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 황제가 1912년 환갑의 나이에 본 고명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14살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에 일본인과 정략결혼이 이루어졌다. 이후 정신병을 앓는 등 불행한 삶을 살다가 1962년 환국 후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의 수강재(壽康齋)에서 머물다가 78세를 일기로 1989년 타계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덕혜옹주의 일생과 당시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덕혜옹주의 복식과 장신구, 혼수품 등 유품과 관련 기록물이 공개된다. 이 중 복식과 장신구, 혼수품 등 유품은 일본 도쿄(東京)에 소재한 문화학원 복식박물관과 후쿠오카(福岡)에 소재한 규슈국립박물관의 소장품이다.


 


덕혜옹주의 당의(唐衣, 조선시대 여자들의 예복) 등 복식은 덕혜옹주가 10세 이전에 입었던 유아복과 소녀 시절 복식이 대부분이다. 덕혜옹주와 이혼한 소 다케유키(宗武志, 1908~1985)가 1955년 이 복식을 조선왕실에서 보냈던 다른 혼례품과 함께 영친왕(英親王 또는 英王) 부부에게 돌려보냈는데, 이것을 당시 일본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의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德川義親, 1886~1976)에게 기증하면서 현재까지 도쿄에 남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덕혜옹주의 유품 중에는 소 다케유키의 본가인 쓰시마(對馬島)의 소(宗)가에 보내졌던 혼수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은으로 만든 찻잔 등의 소규모 금속공예품들이다. 이것들은 일본인 소장가가 구입하여 보관해 오다가 규슈국립박물관에 기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한 대한제국 황실과 우리 국민들이 겪은 온갖 고난을 상징하는 인물인 덕혜옹주의 인생과 조선왕실 여성의 복식·생활사를 이해할 수 있을 이번 전시는 2013년 1월 27일까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 문화학원복식박물관(文化学園服飾博物館) 소장 유물


덕혜옹주의 소녀시절 당의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문화학원복식박물관


연두색 당의로 크기를 보아 12~14세용으로 짐작된다. 1925년(덕혜옹주 13세)에 찍었다고
전해지는 사진에서 본 유물과 흡사한 당의를 착용하고 있다. 가슴과 양 어깨, 등에는 발가락이
다섯인 용을 입체감 있게 수놓은 오조룡보(五爪龍補)를 부착하였다.


 


덕혜옹주의 소녀시절 스란치마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문화학원복식박물관


하단에 한단의 스란단으로 장식한 덕혜옹주 소녀시절 스란치마로 겉감은 다홍색 숙고사로
하고 안감과 허리는 홍두깨로 다듬질한 얇은 흰색 명주를 사용한 겹스란치마이다. 예장용 치마로,
스란단에는 ‘복(福)’, ‘백(百)’, ‘세(歲)’, ‘수(壽)’, ‘남(男)’ 등의 문자와 석류, 여지, 영지 등의 화초
무늬를 금박하였다.


 


덕혜옹주의 소녀시절 대란치마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문화학원복식박물관


하단에 두 단의 스란단을 더한 덕혜옹주의 소녀시절 대란치마이다.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주로
착용하며, 대란치마만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스란치마 위에 겹쳐서 대란치마 밑으로 스란
치마의 스란단이 보이게 착용하기도 하였다. 스란단의 무늬는 신분에 따라 다르게 장식되었는데
왕비는 용무늬, 세자빈은 봉황무늬, 공주와 옹주는 꽃무늬를 사용하였다.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까치두루마기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문화학원복식박물관


여아용 까치두루마기이다. 까치두루마기는 일반 두루마기와 형태는 같으나 각 부분의 색을
달리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길이가 덕혜옹주 5세 때인 「병진사월 옹주아기시 의차발기」에
기록된 주의(周衣, 두루마기)의 길이 2자 4치(약 72.7cm)보다 작아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착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대와 화장용구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문화학원복식박물관


붉은색 주칠(朱漆)과 검은색 옻칠을 한 경대(鏡臺)로 3개의 서랍과 하나의 거울이 달려 있다.
서랍 속에는 경대에 들어있는 물품목록, 분합(粉盒) 2점, 솔 2개, 부용향 1개, 미지(美脂)와 함께
덕혜옹주 유물기증목록을 적은 기증서가 보관되어 있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九州国立博物館) 소장 유물


 


뒤주와 솥을 축소하여 은으로 만든 장식품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규슈국립박물관


식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기본 도구인 쌀을 넣는 뒤주와 솥을 작게 축소하여 제작한 장식품
이다. 두 점이 한 벌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에 ‘순은(純銀)’과 ‘미(美)’가 새겨져있다. ‘미(美)’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마크로, 장식품이 담긴 상자의 뚜껑에도 ‘경성이왕가미술공장조(京城李
王家美術工場造)’라는 문구가 인쇄된 표기가 붙어있어 왕실용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으로 만든 신선로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규슈국립박물관


은으로 제작된 일인용의 신선로로 산과 바다 위에 떠있는 배 등 한 폭의 풍경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신선로 손잡이는 박쥐 형태로 되어 있으며 바닥에는 ‘화신(和信)’과 ‘순은(純銀)’ 마크가 새겨져
있어 ‘화신’에서 만든 ‘순은’ 제품임을 알 수 있다. ‘화신’은 1890년대에 종로에 금․은․귀금속품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상회로 창립되어 1930년대 무렵에는 화신백화점으로 성장한 상회이다.


 


덕혜옹주의 혼수품 노리개


제작 : 20세기 초
소장 : 규슈국립박물관


금으로 도금된 호로병 삼작노리개이다. 상자 위에는 ‘정화당(貞和堂)’이라고 쓴 표기가 붙어
있는데, 고종의 계비로 간택되었던 정화당 김씨가 덕혜옹주의 결혼선물로 보냈던 예물로 여겨진다.



 


국내소장유물


 


덕혜옹주의 태항아리와 태지석


제작
- 태항아리: 1912년경
- 태지석: 1929년경
소장 : 국립고궁박물관


덕혜옹주의 태를 넣은 태항아리와 태지석이다. 덕혜옹주는 1912년 음력 4월 9일 출생으로,
같은 해 4월 23일에 창덕궁 비원에 태를 묻었다. 1929년(소화 4) 일제에 의해 서삼릉 태실이
조성될 때 덕혜옹주의 태도 그곳으로 옮겨 묻었다. 덕혜옹주 태항아리의 형태는 키가 낮고 4개의
고리가 몸체 아래에 붙은 형태를 띠었다. 4개의 고리가 다른 태항아리와 달리 횡으로 붙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태지석에는 "명치사십오년임자사월구일생 덕혜옹주태 명치사십오년임자사월이
십삼일장 우 창덕궁비원 소화사년 월 일이장(明治四十五年壬子四月九日生 德惠翁主胎 明治四
十五年壬子四月二十三日臧 于 昌德宮秘苑 昭和四年 月 日移藏)"이라고 새겨져 있다.



당의를 입은 덕혜옹주의 어린시절 사진


제작 : 1924년
소장 : 국립고궁박물관


일본 동경에서 1924년 2월 1일자로 발행한 <황족화보皇族畵報> 제220호에 실린 덕혜옹주
사진이다. 용보(龍補)가 달린 당의와 대란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다. 1924년 2월
1일에 발행된 것으로 덕혜옹주가 13살 이전에 촬영된 사진으로 추정된다.


 


이해선이 덕혜옹주의 무사귀국을 알리는 편지


제작 : 1962년
소장 : 국립고궁박물관


1962년 1월 28일에 이해선(李海善, 1905~1983년)이 영친왕 부부에게 보낸 편지로 덕혜옹주가
무사히 한국에 귀국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해선은 영친왕의 재당숙(7촌 조카)이다.


<번역문>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데 전하께서는 병환이 점차 차도가 있으신 듯하니 진심으로 경축하오며,
비 전하께서도 모두 안녕하시다 하오니 경하 드리옵니다.
다년간 병고로 외롭게 병원에 계시던 덕혜옹주께서 26일 오후 김포공항으로 무사히 환국하였
음을 알려드립니다. 신문기사와 사진을 동봉하오니 열어보시옵소서.
대비전하께서도 모두 안녕하옵시며 대단히 기뻐하셨나이다.
1962년 1월 28일 소인 이해선 올림



덕혜옹주의 5세 생일을 위한 의복 목록


제작 : 1916년
소장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916년 덕혜옹주의 다섯 살 생일을 기념하여 지어올린 의복의 종류를 기록한 발기로, 뒷면에
“병진월 아기시 의복”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총 17종 21점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린 나이에
맞는 색동저고리와 두루마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하절기 옷감이 주로 사용
되었다.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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