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망명생활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다.

조국으로 가는 길 <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展
기사입력 2013.08.17 14:36 조회수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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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3(화)~10.13(일)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 대한제국 대신 중 유일하게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한 동농 김가진과


   임시정부의 안살림꾼 수당 정정화 이야기


-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따라 중국 망명생활의 모습을 생생한 재현기법으로 전시


- 연계전시 : S.Y. 또까레프의 독립운동가 초상




 


[서울문화인] 8·15광복절 기념으로 서울역사박물관과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지난 13일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조국으로 가는 길<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展을 열었다.




 


이번 전시회는 대한제국의 대신이자 대동단 총재였던 동농 김가진과 그의 며느리로서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 알려진 수당 정정화 등 일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의 뒷이야기와 함께 임시정부의 고단하고 어려웠던 생활상을 중심으로 크게 두 주인공의 이야기로 1. <서울 출신 개화파 관료 김가진>, 2. <새로운 선택, 상하이 망명>, 3. <고달픈 망명 생활상>, 4. <강물에 뜬 망명정부>, 5. <조국으로 가는 길>로 구성되었다.



 


동농 김가진 이야기 부분에서는 후손가에 전해 내려오는 다수의 관련 자료를 통해 대한제국 대신, 개화관료, 애국계몽운동가, 서예가의 면모를 보여주며, 수당 정정화 이야기 부분에서는 임시정부의 안살림꾼 정정화의 이야기를 전시와 연극무대 연출을 결합시킨 기법으로 임시정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다수의 유물자료는 물론 연극적인 무대연출과 음향효과, 모형, 영상 등을 다양하게 동원하여 5감을 자극하는 획기적인 전시 연출기법으로 전시의 각 코너에서는 주인공을 마치 연극 무대에서처럼 등장시켜 관람객과 소통하도록 꾸몄다.



 


또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많이 밝혀진 거시적인 독립운동史나 임시정부史, 혹은 주요 임정요인들의 정치활동에 초점을 둔 전시라기 보다는 수당 정정화의 시선을 따라 임시정부 식구들의 고달팠던 망명생활의 구체적인 일상 생활사를 전시하였다.



 


연계전시로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또까레프 교수가 그린 우리 독립운동가 49인의 초상이다. 이 그림들은 동임문화그룹의 김동임 대표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이 잘 남아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예브게니예프 또까레프 교수에게 의뢰하여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남기게 되었는데 내면세계를 잘 표현하고자 종이에 목탄을 사용하여 마치 빛바랜 옛 사진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조국으로 가는 길 <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展은 10.13까지 계속된다.





 


전시장 사진(김가진 파트)


전시장 사진(김가진 파트)


전시장에 연출된 기차(김가진이 상하이로 망명할 때 이용한 것)


러시아의 화가 또까레프의 독립운동가 초상 전시장 모습


독립운동가가 살았던 상하이 이농주택 모습


 


안동김씨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서얼이었던 김가진(1846~1922)은 규장각 검서관으로 늦게 출사하여 외교통상, 통신, 과학기술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근대사의 주역으로 성장한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두루 능통하여 격동의 시기 최장수 일본공사를 역임하였으며 군국기무처 회의원으로 갑오개혁안 입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신문물도입 및 제도 개혁에 앞장섰고 독립협회 창설 등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50세의 나이로 대한제국의 대신이 되어 서얼로서 정1품의 의정반열에 오르는 입지 전적의 인물이 된다. 1910년 한일병합이 이후 칩거하던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로 추대되었고 그해 10월 대한제국의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망명은 상해임시정부에는 큰 힘이 되었고 일본제국주의에는 큰 타격을 입혔다.




 


길상사 경내의 동농 글씨 ‘我泉石’


김가진을 중추원 의장으로 임명하는 칙명


김가진의 집 백운장 현판 탁본


농상공부대신 김가진을 비원장으로 임명하는 칙명


동농 김가진 대례복 사진


동농 김가진 대례복 초상


동농 김가진의 인장


몽룡정 현판


백운동(현 청운동) 동농 글씨 ‘白雲洞天’


조선민족대동단선언


 


 


수당 정정화(1900~1991)는 동농 김가진의 며느리로, 1919년 10월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상해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신문기사로 접하고,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한다’는 일념으로 1920년 1월 무작정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후 그녀는 중국 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백범 김구, 이동녕 등 임정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다.


 


김구 초상



김구가 김의한(수당 남편)에게 준 글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2년 새아침 기념사진


수당 정정화 중경 시절


안중근 초상


정정화 가족 가흥에서 김구 선생, 중국 친구들과 함께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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