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간의 수리를 마치고 다시 모습을 들러내다.

기사입력 2018.06.20 14:57 조회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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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후 동북측면


 


 


 


[서울문화인]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20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지난 20년간의 작업 끝에 최근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을 공개하였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1998년 전라북도에서 구조안전진단을 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이후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라북도와 협약을 체결하고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기술 조사연구,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하였다. 총사업비는 230억원(국비 161억원, 지방비 69억원)이 투입되었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는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이다. 특히, 국제적 기준에 따라 학술조사와 해체·수리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다는 점에서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문화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추정 복원을 지양하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 등재 실사단(’14~’15)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더불어 20091월 석탑 해체조사 과정 중 1층 내부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어 학계, 불교계 등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석탑의 건립 시기(639), 미륵사 창건의 배경과 발원자 등이 밝혀졌으며, 이후 수습한 유물들이 학술조사와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최근 보물로 지정예고된 것도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이다.


 


익산 미륵사는 7세기 백제 무왕 대에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유지되었던 사찰로써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전체적인 규모와 가람배치의 특징 등이 밝혀졌다.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미륵사에 있었던 3개의 탑 중 서쪽영역에 위치한 석탑으로써 현존하는 석탑 중 최대(最大) 규모로 백제 목조건축의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양식의 석탑이다. 조선 시대 이후 석탑은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는데 1915년 일본인들이 붕괴된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보강한 채로 남아있어서 꾸준히 복원에 대한 제기가 이어졌었다.



 


1910년 동측면


1910년 서측면


수리 전 남동측면


수리 전 동측면


 


 


미륵사지 석탑은 오는 7월 중순까지 현장을 일반에 공개되며, 이후 12월까지 석탑 외부에 설치된 가설시설물의 철거와 주변 정비를 위해 잠시 현장의 개방을 중지할 예정이나, 정비를 마치는 12월부터는 미륵사지 석탑의 완전한 모습을 국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서울문화인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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