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미술의 산 증인 김병기 작가의 60여 년에 걸친 작품세계 조망

2015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기사입력 2014.12.12 23:04 조회수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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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2014년 마지막 전시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산 증인 김병기(1916-)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김병기 : 감각의 분할》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던 최근 10여 년 동안의 신작과 개인 소장가들이 소장한 미공개작을 포함,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 점이 소개되고 있다.


 


김병기는 1950년대 초부터 서양 현대미술의 전개와 동시대의 흐름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성, 아카데미즘과 전위, 구상과 추상을 주제로 많은 글을 발표하면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예리한 비판정신을 갖춘 논객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경력의 최절정에 있던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한 후 뉴욕주의 한적한 동네(사라토가)에 홀연히 남는다. 이러한 선택은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오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추상회화 형성기에 서구미술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면밀하게 고찰했던 김병기는 이때부터 현대적인 조형언어인 추상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정물화는 대상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인간존재의 고독과 존재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은유가 되었다. 그리고 풍경화는 인간과 현실, 역사, 자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가 되었다. 작가는 스스로 ‘궁극의 예술’이라 천명한 회화를 통해 예술과 인생,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평양 출신(광성고등보통학교 졸업)인 김병기는 어려서부터 평양의 신식문명과 전통적인 풍류를 동시에 누리며 성장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희동, 김관호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동경에서 서양화를 배운 김찬영)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김병기는 김환기(1913-74), 유영국(1916-2002), 이중섭(1916-1956)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 추상 등 1930년대 일본의 신흥미술을 직접 체험하고, 한국전쟁 전인 1948년 월남해 줄곧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 월남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을 역임하는 등 전후(戰後) 이데올로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예술가이면서 행동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강사 및 서울예술고등학교 설립당시 미술과장을 지내면서 한국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윤명로, 최만린, 정상화, 임충섭, 조평휘 등 많은 원로화가들이 그의 제자다). 김병기는 무위(無爲)의 태도로 자기를 비워가며 질문을 하는 욕망의 주체로서 회화에 대한 인문적 통찰을 멈추지 않는 진행형의 화가다. 한 세기를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삶과 예술의 의문과 풀리지 않는 모순들이 산적해 있다고 하는 작가에게서 우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가 말한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의 실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근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김병기의 역작들을 네 시기(추상의 실험 : 1950년대 중반~1970년대 초, 형상과 비형상의 공존 : 1970년대 초~1980년대 말, 감각의 분할 : 1980년대 말 ~ 2000년대 초, 미완(未完)의 미학 : 2000년대 초 ~ 현재)로 나누어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으며, 전시기간 동안 작가 인터뷰 등을 담은 다큐멘타리(감독: 이화실)가 상영되고, 작가의 작업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드로잉 및 관련자료가 전시되어 작가의 생애와 예술을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가로수_1956_캔버스에 유채_국현소장


고초도_1983_캔버스에 유채


방랑자_2013_캔버스에 유채



 


 


 

[서울문화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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