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킨 ‘마르셀 뒤샹’의 예술세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공동 주최로 회화, 드로잉 등 150여점 전시
기사입력 2018.12.24 02:32 조회수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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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여러분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바로보고 이해하는가? 그럼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뻔한 상업용 남성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둔갑시키는 등 현대미술의 정의를 바꾼 마르셀 뒤냥의 예술세계는 어떻게 보여 지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샹은 파리의 입체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일명 <큰 유리>)1912년부터 8년에 걸쳐 제작한다. 동시에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1917, 뒤샹이 <>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쟁적인 오브제가 전시회에 출품되면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했다. 당시 근소한 차이로 예술이 아니라는 판정이 있었다. 하지만 <>은 현대에 아이러니 하게 뒤샹을 기억하게 만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1920~30년대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며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다. 뒤샹은 수많은 레디메이드의 작가로서 에로즈 셀라비를 유머러스하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유희 작가로 활용했다.

 

뒤샹은 생전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뒤샹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필라델피아미술관의 그의 작품은 핵심 후원자였던 수집가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에 의해 기증된 작품들이다.

 

뒤샹과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의 인연은 1915년 여름, 뒤샹이 전쟁에 휩싸인 파리를 떠난 뉴욕에서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주변에 모인 재능 있는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아렌스버그 부부는 뒤샹의 주요한 후원자가 되었고, 195012월 마지막 날, 당시 200여점의 작품과 함께 수많은 아카이브들을 필라델피아미술관에 기증하였고 195410, 기증한 컬렉션이 처음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헨리 클리포드는 마르셀 뒤샹에 대해 뒤샹만큼 다채롭고 창의적인 인물을 찾기 위해서는 미술사의 저 앞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뒤샹의 커리어는(고작 6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더욱이 이 모든 것이 20대에 이룬 것이다) 대단히 짧다그의 독창성과 예언이 남긴 유산은 르네상스 이래 견줄 대상이 없을 정도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뒤샹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중인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점과 아카이브를 선보이는 전시이다. 이 중 다수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여행가방속 상자> 작품도 처음 오픈 상태로 공개되었다.

 

전시는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특히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12년 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를 만나볼 수 있으며, 2부에서는 25살 뒤샹이 회화 기법과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했던 1912년 가을 이후의 시기를 조명하고 있다. 작가가 미술작품은 눈으로 본 것,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 제작에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 <통풍 피스톤> 등 관련 작업과 <자전거 바퀴>, <> 등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탈바꿈 시킨 레디메이드 작품이 소개하고 있다. 레디메이드 작품에 대해 그 무렵 뒤샹이 자신의 노트에 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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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Louise and Walter Arensberg Collection,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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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磁器)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125th Anniversary Acquisition. Gift (by exchange) of Mrs. Herbert Cameron Morris, 1998

 

 

3부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뒤샹이 파리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던 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체스 국가대표로 나갈 정도로 뛰어난 체스 실력을 겸비했던 뒤샹은 이 당시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근 20년간 직업정신을 갖고 체스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전시에서는 당시 체스에 몰두하던 모습과 함께 1920년대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이 페르소나의 탈을 쓰고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그리고 미술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학적 실험을 했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등을 선보인다. 특별히 뒤샹의 작품을 총망라한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속 상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1941년 에디션과 필라델피아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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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속 상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에로즈 셀라비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이름일까? 성전환을 한 것이다. 내 개인적 취향에는 로즈는 가장 추한(醜漢)’이고 셀라비는 세라비(C’est la vie, 그것은 인생)’의 단순 말장난이다.” - 마르셀 뒤샹, 장 크로티와 쉬잔 뒤샹에게 보낸 19201020일 자 편지 중에서

 

마지막 4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로로 널리 알려져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뒤샹은 은퇴한 상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68년 그가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방만한 크기의 디오라마 작품 <에탕 도네>가 공개되자, 뒤샹이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최후의 예술적 선언에 힘을 쏟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조각-건축물 <에탕 도네>와 함께 소재의 특성상 이동이 어려운 <큰 유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에탕 도네>는 제작 시 남긴 스터디 작품과 아카이브, <큰 유리>는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어 만나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뒤샹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 만 레이,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은 영국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해밀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생전 협업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와 함께 만들어진 전시 도록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 매슈 애프런(Matthew Affron), 뒤샹 연구자 알렉산더 카우프만(Alexander Kauffman)이 참여해 뒤샹이 작품에 사용했던 개념 레디메이드, 정밀광학, 인프라씬을 비롯하여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 뒤샹과의 인터뷰(1946, 1955) 창조적 행위’(1957) 등 뒤샹이 직접 쓴 글도 포함되어 뒤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미술관장은 그동안 인상주의전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박물관(미국 미술 300)’ 등 한국에 우리미술관의 소장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은 1950년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의 의해 샤갈, 세잔 등 근대 대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다음에는 소개하지 않았던 대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아울러 우리 미술관의 소장품의 80%는 기증품으로 이뤄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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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럽 필라델피아미술관장(좌측 세 번째)

 

 

 

마르셀 뒤샹전은 201947()까지 MMCA 서울 1, 2 전시실에서 개최되며, 배우 이서진이 특별 홍보대사를 맡아 이서진의 가이드 투어를 통해 마르셀 뒤샹의 삶과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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