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도 신년 운세를 봤을까?

조선시대 일기자료로 본 선비들의 정월 초하루나기
기사입력 2020.01.23 18:48 조회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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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조선시대 설날에는 아침 일찍 조상에게 제사지내고 친척 어른을 방문하여 술을 받아 마시거나 사당에 배알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과음을 하면 제아무리 선비여도 심지(心志)를 잃고 행동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었다. 1615년(광해군 7) 1월 2일 장흥효(張興孝)가 쓴 '경당일기(敬堂日記)'에는 “과음으로 심지(心志)를 어둡게 하였고 위의(威儀)를 잃었다”라고 반성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물론 가뭄과 재해로 전염병과 굶주림이 잦았던 시기에 제수품과 세주(歲酒)를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역질이 돌아 설날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광계(金光繼)가 쓴 '매원일기(梅園日記)'에는 1610년(광해군 2) 경술년 새해가 되었지만, 집안에 역질이 돌아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형제들이 사당을 보며 참배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1733년(영조 9) 12월 30일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은 '청대일기(淸臺日記)'에 “정성이 있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없다.”라는 주자(朱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설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면 세배 다니느라 세주(歲酒)를 마셔서 마음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정월 초하루 제사[正朝祭祀]는 섣달그믐에 지내고, 설날에는 아침 일찍 떡과 탕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였다. 제사에 무엇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을 보면 정월 초하루가 아닌 설 전에 가묘(家廟)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두의 내용처럼 조선 후기에 쓰인 생활일기는 유교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비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색적인 관습들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관계 맺는 가족과 공동체의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새해가 되면 운세를 많이 본다. 그럼 당시 선비도 궁금한 신년 운세를 어떻게 보았을까?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는 과거 시험을 앞두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는 중요한 시기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점을 치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은 '주역(周易)'의 괘를 맞추는 시초에 기반하여 점을 쳤는데, 새해의 복운을 기원하며 신년 운세를 볼 때도 시초점(蓍草占)을 활용하였다. 시초점은 산가지나 서죽(筮竹)으로 셈하여 치는 주역점으로, 시초점을 치려면 점을 치기 전에 명상을 하고 점을 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후기에는 간단하게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는 방식[銅錢占]을 선호하였다.

 

1846년(헌종 12) 서찬규(徐贊奎, 1825~1905)는 정사년 설날을 맞이하여 매해 그러했듯이 닭이 울 무렵 조모와 부모님께 세배하고, 차례를 지낸 뒤 점을 친 내용을 그의 일기 [임재일기(林齋日記)]에 적어 놓았다. 그러면 주역점의 괘는 어떻게 풀이하였을까. 한국국학진흥원에는 주역괘를 그림과 해설로 쉽게 풀이하여 점을 치도록 만든 '화주역(畵周易)' 2책(乾·坤)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흥해배씨 임연재 종택에서 2015년 7월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자료로, 이번에 외부에 처음 공개되었다. 책의 앞부분이 결락되고 파손이 심하여 괘를 보는 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각 면 상단에 괘명 혹은 효명을 적고 아래에 괘사 혹은 효사와 그림을 그려 점괘를 풀이해 놓았다.

 

 

좌)임재일기, 우)화주역 본문.jpg
좌)임재일기, 우)화주역 본문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에는 2020년 1월 현재 54만여 점의 국학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이 중에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일기자료 3,000여 종이 포함되어 있다. 임진왜란의 참상과 개항기 의병운동의 전개 과정을 기록한 일기자료도 있지만, 향촌의 일상생활을 담담히 써 내려간 생활일기자료도 여러 종 있어서 전통시대 민간의 생활상과 의식 세계를 생생히 엿볼 수 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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