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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낙쉐 로스탐(Naqsh-e Rostam)은 페르세폴리스 북동쪽 약 5, 6km 지점, 고레스 대왕의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르스, 그곳 큰 바위에 돋을새김을 한 무덤 군을 일컷는 곳이다.
이곳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를 비롯하여 그 후계 군주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왕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로아스터교 신전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무덤들과 바위에 새긴 부조들이 있는 이곳의 명칭, 낙쉐 로스탐은 페르시아의 영웅 로스탐에 얽힌 중세의 전설에서 얻었다고 한다. 7세기에 아랍 군대가 페르시아에 이슬람교를 들여왔을 때 많은 이교(異敎) 기념물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페르시아 학자들은 이 부조들이 이슬람의 영웅 로스탐을 나타낸 것이라 추측하여 보존해 두었다고 한다.
여하튼 다양한 설이 있지만 먼저 직사각형 내 위쪽에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많이 본 제국의 대왕이 서서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마즈다에게 예배하고 있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왕묘 아래쪽에는 사산 왕조 군주들의 영웅적인 정복 행위를 알리는 설명문을 비롯하여 7개의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사산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아르다시르 1세의 서임식(敍任式), 샤푸르 1세의 전승도(戰勝圖), 바흐람 2세의 입상과 기마전투도, 나르사프의 서임식 등이다.
그 중에서도 샤푸르 1세(Shapur Ⅰ, 재위 AD 241~AD 272)가 로마 황제를 포로로 한 전승도는 대표적인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샤푸르 1세는 260년 에데사 부근의 전투에서 로마의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고 이 승리를 이곳에 새겨놓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해 두었다. "발레리아누스는 29개의 유럽의 부족(비문에는 29개의 부족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으로 구성된 군대와 함께 전투에 임했다. 알레하(Alreha)와 에뎃사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발레리아누스을 포로로 잡았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장군들, 원로원 의원들, 고위 장교들을 전쟁포로로 잡아서 페르시아 영토 각지로 유배를 보냈다."
포로가 된 발레리아누스는 샤푸르 1세가 말에 오를 때 발레리안을 디딤돌로 사용한다는 소문과 함께 죽을 때까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사후에도 박제가 되어 신전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전쟁의 패배는 로마 군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거리가 되었다.
또한, 아르다시르 1세의 서임식 장면에는 '이란'이라는 이름의 사용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는 비문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낙쉐 로스탐은 거대한 부조물에 압도됨 보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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