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조선왕실 유물 곳곳에 피어난 모란꽃, 박물관에 다시 피어나다.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 특별전
기사입력 2021.07.19 14:28 조회수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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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 1818~1832)가 혼례 때 입은 혼례복과 조선시대 궁중 혼례복, 활옷

 

 

 

 

[서울문화인] 동서양을 막론하고 꽃과 관련된 설화나 상징은 수도 없이 많다. 이는 꽃마다 지닌 고유의형상과 생태적 특성을 인간사에 빗대거나 도덕적 의미 등에 은유한 결과이다. 그 결과 시기마다, 또는 특정 사상이나 가치와 관련하여 특정한 꽃이 선호되기도 했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르름을 간직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의 생태적 특성은 유교에서 지향하는 조선시대에는 절개를 지닌 군자의 풍모에 비유해 칭송되었고 연()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속성이 세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하여 맑고 깨끗한 본성을 지켜 깨달음을 향하는 불교의 지향을 오롯이 담은 것으로 간주되어 불교에서 상징적 꽃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 와서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전 대한제국은 오얏꽃(자두나무의 꽃)을 국화로 사용했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실에 사용된 오얏꽃 문양이 벚꽃과 오해를 하기도 한다. 오얏은 자두의 순 우리말로 열매가 진한 보라색이고 모양이 복숭아를 닮았다하여 그 열매를 자도(紫桃)라 하다가 자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럼 왜 대한제국은 오얏꽃을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하였을까. 고려 말 도선국사는 오얏성씨 왕조가 들어서리라라는 예언을 했고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으며 그 자두의 한자명은 이()이다.

 

조선 왕실 유물을 살펴보면 용이나 봉황, 거북만큼이나 자주 만나게 되는 장식 무늬가 있는데 바로 모란이다. 그럼 모란무늬는 언제부터 우리의 삶에 들어왔을까? 삼국사기삼국유사기록에는 선덕여왕 1(632)에 모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아명)에게 보인 적이 있다. 덕만은 이 꽃은 곱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웃으면서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기에 이를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고 있으면 남자가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무척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이와 같았다.

 

모란은 중국 중서부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꽃으로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꽃으로 만 1미터 남짓 자라는 크기에 접시만 한 큰 꽃이 피어 일주일 정도의 짧은 개화로 일상에서 그 실물을 실제 자주보기 쉬운 꽃은 아니다. 하지만 크고 풍성한 꽃을 피워내는 모란의 상징성 때문에 국보 98호인 12세기의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청자 상감과 여러 생활도구의 꽃무늬로 자리 잡았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모란을 숭상하는 풍속은 그대로 이어져 궁궐의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사용됨은 물론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흔하게 그려졌다. 전통 혼례복이나 신방의 병풍에도 모란은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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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 안녕安寧, 모란은 모란꽃을 매개로 조선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전시로 모란도 병풍을 비롯하여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등 각종 생활용품과 의례용품에 즐겨 장식되던 모란꽃을 담은 여러 유물 120여점을 통해 조선시대 모란무늬가 얼마나 왕실의 일상에 활용되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는 1가꾸고 즐기다’, 2무늬로 피어나다’, 3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빌다3부로 구성해, 모란이라는 식물과 그 무늬를 조선 왕실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즐겼는지,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상징이 담겼는지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먼저 1가꾸고 즐기다에서는 이전 전시와는 색다른 공간으로 꾸며졌다. 영상과 조경물로 연출된 정원 형태로 꾸며진 전시실에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포집한 모란향으로 제작한 꽃향기가 전시공간에 퍼지는 가운데 빗소리, 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정원에서 18~19세기의 대표적 모란 그림인 허련(1808~1832), 남계우(1881~1890)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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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늬로 피어나다는 조선왕실 생활공간을 장식한 무늬로서의 모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무늬는 장식적 기능과 함께 특정한 상징을 담는 기호이기도 하다. 왕실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각종 생활용품에 무늬로 사용하면서, 풍요와 영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나전 가구, 화각함, 청화 백자, 자수물품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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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옥공주의 혼례 때 사용한 수가 가득한 방석

 


모란 무늬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혼례복이나 가마와 같은 왕실 혼례이다. 2벌의 혼례복 중 한 벌은 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 1818~1832)가 혼례 때 입은 것인데, 남아 있는 활옷 중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한 유일한 것이다. 나머지 한 벌은 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인데, 재미있는 것은 보존처리 중에 옷 속에서 발견한 종이심이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옷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한 이 종이심이 살펴본 바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창덕궁 활옷은 이번 전시에서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복옥공주의 혼례 때 사용한 수가 가득한 방석은 혼례복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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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전해 내려오는 활옷, 보존처리 중에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어 옷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한 종이심이 살펴본 바 1880년 과거시험 답안지를 재활용한 종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2부는 종류와 구성이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는 것을 고려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유리 벽면을 설치해 연속성과 단절성을 함께 살렸다. 전면부는 방 형태로 공간을 구성하고, 창덕궁 낙선재 문살 장식을 활용해 벽면을 연출하고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 아래 유물을 배치했다. 혼례용품이 있는 부분은 주변에 삼베를 길게 늘어뜨린 후 혼례복의 다양한 꽃무늬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였다.

 

3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빌다는 왕실의 흉례(凶禮,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와 조상을 모시는 의례에 사용된 모란을 조명하고 있다. 흉례의 절차마다 모란 무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각종 의궤, 교의(交椅), 신주 신여(神輿, 가마), 향로와 모란도 병풍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중심 유물은 단연 모란도 병풍이다. 모란도 병풍은 감상용 보다는 의례용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란도 병풍의 모란은 한 점 한 점 개성을 살려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정해진 화본(畵本)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특히 흉례 때 여러 개의 병풍을 북벽에 가득 채워 설치하였는데 이 때 모란도 병풍을 사용한 것은 왕실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전시장 3면을 모두 모란도 병풍으로 둘러진 것은 의례의 공간에 가득했을 장엄함과 위엄을 직접 느낄 수 있음은 물론 마치 모란꽃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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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지막 부분에는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실제 우리가 마주하기 어려운 공간에도 모란무늬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물론 왕실의 조상을 모시는 의례와 모란의 관계를 한 번에 이해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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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얼마나 사랑했고 그 무늬가 어디에 얼마나 활용되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조선의 궁궐에도 모란무늬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싶다.

 

<안녕, 모란> 특별전은 1031일까지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예약과 현장접수를 합하여 시간당 100, 일일 최대 1,000명까지 개인 관람으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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