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174점, 역대 최다 작품으로 소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박수근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기사입력 2021.11.16 14:48 조회수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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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레터, 1954-56년경.jpg
빨래터, 1954-56년경

 

 

 

 

-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 공개

- 박수근의 회화, 박완서의 소설, 한영수의 사진과 함께 전후 서울 풍경 조명

- 화집,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박수근의 그림 공부 자료 약 100여 점

- 202231()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선보여

 

 

[서울문화인] 미술관을 자주 찾는 예술 애호가 이든 아니든 이중섭, 박수근을 모르는 성인은 드물 것이다. 그 만큼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화가이다. 이들이 이런 칭호를 들을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삶을 작품에 녹여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2016, 이중섭(1916-56)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초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60개 소장처로부터 대여한 이중섭의 작품 200여점, 자료 100여점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에 이어 또 한명의 국민화가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열었다.

 

그동안 한국미술을 조망하는 전시에는 박수근의 작품은 언제나 빠지지 않고 소개되었지만 소개되는 작품은 몇 점에 불과했다. 그만큼 박수근의 작품을 대규모로 소개하는 전시는 드물었다. 기억에 2015, 박수근 50주기를 맞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었던 박수근 회고전에 당시 역대 최고로 50여 점을 선보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때와는 규모면에서도 압도할 정도로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 역대 최다 작품과 함께 아카이브 자료가 공개된 전시로, 향후 이런 전시는 당분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규모의 전시이다. 이는 박수근 작가의 작품이 많이 곳에 분산되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여 년이라는 짧은 화가의 삶에서 그의 작품은 현재 500여 점 이상 파악되고 있다.)

 

박수근의 그림은 창문 용지로 사용되는 까칠한 한지, 즉 창호지와 같은 질감을 낸다. 그의 더 커다란 화폭들도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의 우툴두툴한 표면과 유사한 효과를 자아낸다. 그의 기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박수근의 그림에는 언제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한국적 정서가 담겨 있다.” 천승복, ‘코리안 리퍼블릭’(1962.2.3.)

      

흔히들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널리 사랑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존재한다. 박수근(1914-1965) 또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같은 관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당시 미술계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특히 일체의 배경을 제거하고 간략한 직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칠게 표면을 마감한 그의 회화는 조선시대 도자기’, ‘창호지’, ‘초가집의 흙벽’, ‘사찰의 돌조각등을 연상시키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미감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해 내었다.

 

 

창신동 시절 박수근과 가족.jpg
1959년 박수근 창신동 집 마루에서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부유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두 살 되던 무렵, 밀레의 <만종>을 원색 도판으로 보고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첫 입선을 하고 이후 수차례 입선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굳혀갔다. 그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서 창신동에 자리를 잡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했는데, 여기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는 훗날 이 시절 박수근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겼다. 이것이 바로 박완서의 출세작 나목이다.

 

박수근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피난민으로 경제적 기반도 전무했지만, 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며 경력을 쌓았다. 1953년 국전에서 첫 입선을 한 이래 거의 매해 국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국제자유미술전 등 국내외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당시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화에 경도되지 않고 자신만의 주제를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하면서, 서양화를 한국적으로 잘 수용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미군, 외교관, 사업가, 관광객 등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그의 작품이 인기를 얻고 미국 개인전을 추진하게 되었지만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196551세로 타계하고 말았다. 같은 해 유작전이 열리고, 1970년 박완서의 데뷔 소설 <나목>이 나왔다. 이후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그의 그림들이 널리 사랑을 받으면서 국민화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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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박수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로만 제한되던 박수근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戰後) 시대상에 주목하였고, 당시 화단의 파벌주의로 인한 냉대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불우한 화가였다는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박수근의 성취를 조망한다. 또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시행된 박수근전작도록 발간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수근의 활동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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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964년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미군부대는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Contemporary Korean Paintings)(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참혹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고단한 이웃의 생활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을 통해 전후 1950-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기 위해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키워드로 1<밀레를 사랑한 소년>, 2<미군과 전람회>, 3<창신동 사람들>, 4<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jpg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밀레를 사랑한 소년>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박수근이 그림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jpg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

 


2<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과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그만큼 이 공간의 작품들은 다른 공간의 작품들과는 다른 비교적 큰 사이즈를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이 시절 박수근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긴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소재가 되었던 <나무와 두 여인>도 감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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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리움미술관

 


박수근의 삶과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은 그가 정착했던 창신동이다. 3<창신동 사람들>에서는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더불어 최근 박수근전작도록사업을 통해 조사된 유화 2점과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삶을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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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판잣집,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박수근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는 여성과 나무이다.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 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4<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소개하며 이들이 박수근 작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는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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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수근, 고목과 여인, 리움미술관.jpg
박수근, 고목과 여인, 리움미술관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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