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조선 승려 장인의 손길로 탄생한 부처의 세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기사입력 2021.12.07 11:13 조회수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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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

 

 

 

 

[서울문화인]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우리의 유물 중 하나는 불교미술 일 것이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가 우리역사에 끼친 영향이 오래되었고 종교라는 힘이 정치는 물론 대중들의 삶에도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도입된 초기에는 불교에서는 승려가 수행에 전념하도록 노동이나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나오면서 바뀌었다. <유가사지론> 같은 대승 경론에는 승려가 보살이 되려면 다섯 가지 일에 밝아야 한다는 오명五明을 익혀서 중생에게 베풀라고 제시했다. 이 오명 중 하나인 공오명(工五明)은 온갖 세간의 공교한 일에 능숙할 것, 즉 현실에 유용한 기술을 습득할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교리는 우리나라 불교에도 영향을 미쳐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서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승려 장인을 배출했다.

 

그동안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쇠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때문에 이 시기의 불교미술 또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1592~1598) 이후의 조선 후기에 불교미술은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현재 전국의 사찰에는 이때 만든 수많은 불상과 불화가 전한다. 그중에는 다채롭고 화려하며 수준 높은 작품 또한 적지 않다. 이는 승려 장인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란계회도 중 제 9면, 조선 1857년(철종8), 국립중앙박물관 -1.jpg
금란계회도 중 제 9면, 조선 1857년(철종8), 국립중앙박물관 / 북한산 중흥사 인근 야외에서 있었던 모임을 기록한 글과 계회도로 승려들이 문인의 모임에 자연스럽게 어울렸음을 잘 보여주는 기록화이자 풍속화이다.

 

 

 

승려 장인은 전문적인 제작기술을 지닌 출가승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분야의 승려 장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신앙의 대상인 부처를 형상화하는 조각승(彫刻僧)과 화승(畫僧)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으로 협력하여 불상과 불화를 조성했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으며 기술을 전수하였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와 달리 불교를 억제하던 조선시대에도 현재까지 파악된 조선 후기의 조각승은 1천여 명이고, 화승은 24백여 명에 이른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고 이처럼 많은 수의 승려 장인이 활약,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르네상스였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 승려 장인의 대표작을 한 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조성한 승려 장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7일부터 기획전시실 새 전시로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은 국내외 27개 기관의 협조를 받아 국보 2, 보물 13,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총 145건을 출품하는 대규모의 조선시대 불교미술전이다(15개 사찰 출품작 54건 포함). 또한, 전시된 작품의 제작에 관여한 승려 장인은 모두 366명이에 이른다.

 

이번 전시의 백미라면 미술관에는 볼 수도 없었고, 아니 이제 다시 볼 수도 있을지 모르는 용문사(예천)의 보물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그 뒤쪽에 배치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아닐까 싶다. 이 보물이 특별히 다가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미타여레좌상을 중심으로 아미타여레설법상은 불화 혹은 좌우로 별개의 신상으로 배치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데 아미타여레설법상이 부조로 제작되어 웅장함은 물론 예술로도 뛰어난 자태를 뽐낸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화단의 화기에 따르면 1684(숙종 10) 단응(端應)을 비롯한 조각승 아홉 명이 일괄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400년이 지난 조각 작품임에도 근래에 제작 된 것인 마냥 여전히 생생히 다가온다. 이 보물은 이번 전시를 위해 337년 만에 처음으로 사찰 밖으로 나왔다.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jpg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 조각승 단응(端應) 등 9명, 조선 1684년(숙종 10), 예천 용문사, 보물/ ‘목각설법상(木刻說法像)’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조각승 단응(端應)을 비롯해 승려 장인 아홉 명이 예천 용문사에서 깊이감이 느껴지는 부처의 세계를 구현했다. 목각설법상은 어떻게 하면 법당을 더 아름답고 경건하게 만들지 고민한 끝에 탄생한 독창적인 장르다.

 

 

 

아울러 붓의 신선으로 불렸던 18세기 전반의 화승 의겸(義謙)1729(영조 5)에 그린 <해인사 영산회상도>(보물),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화승 화련(華蓮)1770(영조 46)에 그린 <송광사 화엄경변상도>(국보)도 서울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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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영산회상도, 화승 의겸(義謙) 등 12명, 조선 1729년(영조 5), 합천 해인사, 보물 / 18세기를 대표하는 화승 의겸(義謙)을 비롯해 열두 명의 화승이 1729년에 완성한 영산회상도이다. 화면 전체를 장식한 화려한 금니 문양을 비롯한 섬세한 표현은 왜 의겸을 ‘붓의 신선’이라 불렀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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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화엄경변상도, 화승 화련(華蓮) 등 13명, 조선 1770년(영조 46), 송광사성보박물관, 국보 / 화련(華蓮)을 비롯한 화승 열세 명이 『화엄경』의 방대한 가르침과 무한히 겹쳐진 불교 세계관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한 화폭에 이 내용을 담기까지 끊임없이 불교 교리에 매진한 화승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약사삼존과 약사여래를 수호하는 신장 12명을 그린 약사십이신장도’(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이다. 16세기 왕실 발원 불화로 추정되는 이 불화는 조선시대 불화임에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선시대 불화와는 달리 고려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회화적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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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십이신장도, 조선 16세기 후반, 비단에 색, 미국 보스턴미술관 / 나라의 안녕을 위해 대비가 솜씨 좋은 장인에게 명하여 조성한 불화 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 승려 장인이 왕실 불사를 도맡기 전 도화서 화원이나 관청 소속 장인이 왕실 발원 불사에 참여하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의 특징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완성된 불화만을 보아 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 불화의 초본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더불어 불교미술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현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는 점이다. 먼저 승려 장인이자 통도사 방장(方丈)이신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의 인터뷰에서는 불교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켰으며, 현대 설치미술가와 협업으로 전시장을 색다르게 구현해 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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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팔상도> 사문유관상과 초본, 조선 1775년(영조 51), 통도사성보박물관, 보물 / 1775년 통도사에서 화승 수십 명이 모여 석가모니부처의 생애를 여덟 장면에 나누어 그린 대작이다. 참여한 화승은 수십 명이 넘지만 화폭에 기록된 화승 명단은 각기 다르다. 대형 불사가 있을 때 어떻게 분업했는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밑그림 네 점과 <통도사 팔상도> 네 점이 함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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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불․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vakki)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

 

 

 

 

조선의 승려 장인과 이들이 만들어낸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2236()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일부 유물들은 교체되어 전시된다.(관람료, 5천원)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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