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국내 처음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기사입력 2022.05.16 15:35 조회수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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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카 서브 포스터.jpg

 



[서울문화인] 국립중앙박물관이 ‘태양의 아들, 잉카’(2009년), ‘마야 2012’(2012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2018년)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스테카 문명을 살펴보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우리가 흔히 아즈텍이라 불렀던 '아스테카(Aztecs)'는 18~19세기경 유럽에서 생겨난 단어로, 아스테카 신화에 등장하는 기원의 장소인 '아스틀란(Aztlan)'에서 유래한 용어로 아스테카인들은 스스로를 '메시카(Mexica)' 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오늘날 멕시코 공화국의 이름이 유래했다.

 

 

아즈테카 문명_위치.jpg
아즈테카 문명

 

 

 

메소아메리카는 유카탄반도를 포함한 멕시코 북부의 일부 지역과 멕시코 중부와 남부 전체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전체와 온두라스 서부, 니카라과의 서해안, 코스타리카 북서부 지역도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파울 키르히호프(Paul Kirchhoff)가 1943년에 이 지리적, 문화적 지역을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라고 명명하며 그 지리적 범위를 정하고 이 지역에 거주했던 다양한 종족 집단을 설명했다.

 

메소아메리카 동남부 열대 우림지대에는 도시국가 티칼, 치첸이사, 마야판 등으로 대표되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야 문명이 융성하였으며, 현대 멕시코시티와 그 주변 지역의 건조한 멕시코 중앙 고원지대에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테오티우아칸, 톨레카, 그리고 아스테카가 차례로 번성하였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1,500년경 올메카 문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가 꽃피우고, 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인 특성과 관습을 찾아냈다. 문자 체계, 집약적 농업, 계단식 피라미드 건축, 흑요석 날이 있는 도구와 무기 제조, 정교한 토기 생산, 두 종류의 고유 달력 사용, 메소아메리카 지역 내외에서의 장거리 무역, 그리고 인신공양 제의 등이 그것이다.

 

 

아스테카
아스테카 '태양의 돌'_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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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신 틀락록 장식판, 옥수수의 여신 치코메코아틀, 어린 옥수수의 여신 실로넨(복제), 1350-1521년경.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 사령관이 멕시코 만에 상륙했을 때, 당시 메소아메리카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정치체는 아스테카였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이래, 아스테카의 테노츠티틀란은 메소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가 되었고, 테노츠티틀란은 멕시코시티로 이어져 현대 멕시코의 수도가 된 것에서 당시 북·중앙아메리카 내 아스테카의 정치·경제·사회적 위상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현대 멕시코의 국명과 국기 등이 아스테카의 또 다른 이름 ‘메시카’에서 유래된 점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스테카는 마야와 함께 메소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스테카는 스페인 정복으로 1521년에 메소아메리카는 종말을 맞았다.

 

스페인군이 테노츠티틀란 외곽에 도달했을 때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를 본 이들은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놀라운 것들을 본 순간부터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우리 앞에 펼쳐진 모습을 어떻게 믿어야 할 지 몰랐다. 육지 한 편에 거대한 도시들이 있었고 호수 위에도 수많은 도시가 가득했다. 호수는 카누로 붐볐으며 둑길에는 간격을 두고 많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우리 앞에 멕시코의 위대한 도시가 펼쳐진 것이다.”(Díaz del Castillo 1943).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들을 통해 아스테카 인들의 문화가 서양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토착 문화와 유럽 문화 간 융합이 시작되었으나 이들은 이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보다는 정복전쟁에 집중한 결과, 아직도 아스테카의 문명은 연구의 대상이다.

 

아스테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크게 두 가지 자료에 의지하고 있다. 첫 번째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이다. 이들의 기록에서는 사건과 상황을 묘사하고 강조하는 방식이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두 번째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이다. 특히 멕시코시티 중심부 및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 주변에서 진행하고 있는 조사에서 새로운 유물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어 아스테카에 대한 지식도 깊어지고 있다.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04.jpg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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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알리 에에카틀 고문서

 

 

 

아스테카를 소재로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 이번 전시는 과거에 개최된 아스테카 문명에 관한 전시와는 달리,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아스테카의 예술품과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전시로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과 공동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이 도렐라(Doris Kurella) 박사의 지도하에 기획된 전시로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문화재 208점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아스테카지만 우리에겐 전쟁과 인신공양의 잔혹한 이미지와 스페인 정복자를 자신의 신으로 오해한 멸망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와 발굴조사 결과, 이러한 아스테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아메리카 대륙 침략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종교를 강요하였던 유럽 정복자의 과장과 왜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스테카 역사와 문화의 본 모습은 물론 우리가 잔혹함으로 치부하였던 인신공양과 정복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8월 28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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