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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인] 지난 6월 2일(금)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 내셔널갤러리와 함께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선보이고 있다.
15세기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유럽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는 문학은 물론 미술에도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종교개혁(16세기),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18세기)을 거치면서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 전시는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명화를 통해 15세기 유럽, 미술의 관심이 ‘종교와 신’에 집중되던 시대에서 ‘사람과 일상’에 대한 주제로 확장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근대 인상주의 회화까지,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회화의 흐름을 서양 미술 거장 50명의 화폭을 통해 살펴보는 전시라는 점에서 색다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전시의 구성도 시대별로 5부로 나눠 서양의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게 꾸며졌다. 먼저 1부(르네상스)는 서양 예술사에 가장 큰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다시 태어났다’는 뜻처럼 르네상스 시대, 오랫동안 중요시 했던 기독교 종교관에서 벗어나 문학, 예술계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시 인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종교적 세계관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의 변화이다. 중세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현실세계를 그려내었다. 또한, 그동안 금기시하던 누드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보티첼리, 라파엘로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2부(분열된 교회)는 1517년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서양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에게는 신과 성인의 모습을 표현한 미술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17세에 이르면, 카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은 미술에서도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가톨릭은 신앙을 북돋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의 역할에 여전히 주목하였지만 북유럽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종교 미술 대신 사람과 그 주변 일상으로 관심이 옮겨가 풍경화, 일상생활 그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는 벨라스케스, 푸생, 카라바조, 사소페라토, 렘브란트 등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3부(새로운 시대)는 18세기 계몽주의의 확산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예술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장,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18-19세기 작품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 시기 종교와 사상을 담는 작품을 넘어, 개인의 경험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그림들이 활발히 주문되었다.
마지막 4부(인상주의, 빛나는 순간)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등장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화가들의 관심은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된 도시의 변화된 모습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되었다. 비로소 그림은 ‘무엇을 그리는가, 얼마나 닮게 그리는가’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림 11, 12) 화가들은 점차 독창적인 색채나 구성을 바탕으로 화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현대미술의 근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림 13, 14)
전시장을 돌아보면 르네상스를 시발로 서양의 미술은 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유럽의 굴직한 역사와 마주하면서 이는 서서히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단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 간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이 전시는 보티첼리,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르네상스 시대(15~16세기) 화가는 물론 푸생,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렘브란트, 터너,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서양 미술사의 거장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이 그 명성을 이어갈 만한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로 그 역할을 다한 전시라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전시의 경향은 고전 회화나 유물중심의 전시보다는 근현대 작품이나 혹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이미지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은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서양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개막 당시 전시장을 찾았을 때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전 전시 ‘합스부르크 600년-매혹의 걸작들’과 비교하여 반응은 양분되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과거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비판이 있었던 회화 중심의 전시라는 점을 꼽았다.
사실 전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드러낸 것은 박물관의 속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은 미술관과 달리 근현대 이전의 다양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함을 넘어 우리나라 최고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미술사와 더불어 동시대 우리의 미술사를 비교하여 보여주었다면 이는 어떠한 미술관도 어떠한 전시를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업체도 할 수 없는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이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서양미술 전공자가 없다는 것이 이런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허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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